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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의 ‘세계의 컬렉터’] 샤울라거(SCHAULAGER) 

일시적 관람이 가능한 창고 

샤울라거의 기원은 에마누엘 호프만(Emanuel Hoffmann, 1896~1932)과 마야 호프만 스텔린(Maya Hoffmann Steh lin, 1896~1989)이 1920년대 초부터 시작한 현대미술 작품 컬렉션이다. 스위스 바젤 출신인 부부는 파리와 브뤼셀을 오가며 아방가르드 작품들을 열정적으로 수집했다.

▎Storage room at Schaulager®, Munchenstein/Basel; works by Stephan Balkenhol and Jean- Frederic Schnyder, both Emanuel Hoffmann Foundation, on permanent ol an to the Offentliche Kunstsammlung Basel. Photo: Tom Bisig, Basel.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는 프랑스가 자랑하는 위대한 국가 자산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탄생 500주년을 맞는 2019년 12월, 다빈치의 전시가 루브르의 나폴레옹관에서 진행 중이다. 전 세계의 다빈치 팬들은 적어도 두세 달 전부터 예약을 해야만 이 특별 전시를 볼 수 있다. 루브르 아부다비에도 가장 상징적인 다빈치 작품이 있는데 [살바토르 문디(Salvator Mundi)]다. 2017년 11월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 나온 4억5030만 달러(약 5000억원)에 이 작품을 구입했다. 모나리자(77×53㎝)보다 약간 작은 크기(66×46㎝)의 나무 위에 그려진 유화로 처음에는 다빈치의 제자 조반니 안토니오 볼트라피오의 작품으로 여겨졌었다. 이 작품은 영국 왕실 소장품이었다가 수집가 프란시스 쿡(Francis Cook)이 소유하던 것을 1958년 쿡의 후손들이 경매에서 단돈 45파운드에 팔아버렸다. 2005년 들어 미술상들이 공동 구매해 복원 작업을 하면서 다빈치의 작품일 가능성을 발견했다.


흥미롭게도 2017년 아부다비에 판매되기 전인 2013년 세계적인 딜러 이브 부비에(Yves Bouvier)가 8000만 달러에 낙찰받았었고 같은 해, 러시아 사업가 드미트리 리볼로프레프(Dmitri Rybolovlev)가 1억2750만 달러에 구입했다. 스위스 딜러인 이브 부비에는 작품을 사고팔면서 엄청난 수익을 창출했는데 그는 단순한 딜러라기보다는 야심만만한 사업가다.

우선 그는 모든 수집가의 고민을 해결해주고 있었다. 고가의 미술품 보관과 운송을 위해 이브 부비에는 싱가포르와 룩셈부르크, 베이징에 자신의 회사를 창업했다. 원래는 세관 서비스를 받지 않는 수출 창고 역할을 하며 국제무역에서 운송 중인 상품을 임시 보관하기 위해 사용되었지만, 이제는 영구적으로 예술작품, 골동품, 자동차, 보석류, 고급 와인 등을 장기 보관하는 데 이용되는 프리존이다. 즉, 이브 부비에에게 작품 구입과 판매를 위탁하는 수집가들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혜택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는 장점이 생긴다. 그러나 피카소의 후손들이 위탁한 작품 중 두 점을 소장자도 모르게 드미트리 리볼로프레프에게 판매한 것이 발각되면서 이브 부비에는 ‘21세기 손꼽는 사기’의 주인공이 됐다.


▎Exterior view Schaulager®, Munchenstein/Basel Photo: Ruedi Walti
이브 부비에의 사기 사건은 예술 작품 보관 장소에 이의를 제기한다. 수집한 작품을 자신의 집에 설치하고 즐길 만큼만 효율적으로 수집하고 있는 수집가들에게는 전혀 문제 되지 않지만 1000점, 2000점 넘게 수집하는 이들에게 보관 장소는 중요한 이슈다.

런던의 쟈블르도비츠 컬렉션, 파리의 루이비통 재단, LA의 더 브로드, 베를린의 토마스 울브리히트 등 자신의 개인 박물관을 만들어 예술에 대한 열정을 공유하는 수집가들 덕분에 대중은 마음껏 멋진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이들은 박물관 형식으로 개인 소장품을 전시하고 있는데 이와 달리 수장고의 현실을 폭로하면서 작품을 감상하게 해주는 특별한 공간들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벨기에의 반헤렌츠 컬렉션(vanhaerents art collection)과 스위스의 샤울라거(Schaulager)다.

‘공공 박물관’, ‘수장고’, ‘연구소’


▎Schaulager, View of an exhibition room, 2005. Schaulager® Munchenstein/Basel, View of an exhibition room:
아버지의 회사에서 일하던 에마누엘 호프만의 첫 컬렉션은 샤갈의 [곡예사 Acobat(1914년)]다. 이후 1925년 벨기에 지사로 옮기면서 레옹 드 스메트, 빌렘 얀 반 덴 베르게, 에드가르드 타이가트 등 벨기에 작가들의 작품을 수집했다. 이후 조지 루오, 맥스 에른스트, 한스 아르프, 조지 브라크, 파블로 피카소, 폴 클레 등으로 이어졌다.

호프만은 1930년 바젤로 돌아와 바젤미술협회(Basel Art Association)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931년 이듬해 미술협회 회장으로 임명됐다. 1932년, 36세 나이에 그는 아르버그와 리스를 가로지르는 안전하지 않은 철도 건널목에서 열차와 충돌해 부상을 입고 사망했다.


▎Permanent installation, Katharina Fritsch, Rattenkonig, [Rat-King], 1993. Katharina Fritsch, Rattenkonig, [Rat-King], 1993, Polyester, pigment, Height 280 cm, ø 1300㎝ (permanently installed at Schaulager, Basel), ⓒ 2016, ProLitteris, Zurich, photo: Ruedi Walti, Basel
에마누엘 호프만이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1933년 마야 호프만은 남편의 이름으로 에마누엘 호프만 재단(Emanuel Hoffmann Foundation)을 설립했다. 이후 80년이 넘도록 150명이 넘는 작가의 페인팅, 조각, 설치, 비디오 작품으로 수집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수집을 시작한 때가 1920년대이다 보니 로베르 들로네, 폴 클레 등 지금은 모던아트 작가로 분류되는 수집품까지 광대하다. 이 화려한 역사를 이어가는 1960대 수집품들로는 요제프 보이스, 브루스 나우먼 등인데 당시는 이 작가들이 중요한 작가로 인식되기 전이었다.

1941년, 에마누엘 호프만 재단과 바젤 공공미술 컬렉션(Öffentliche Kunstsammlung Basel)은 지역사회에 현대미술의 접근을 용이하게 하려는 재단의 목표에 따라 영구 대여 계약을 체결했다. 바젤 공공미술 컬렉션은 ‘사용 가능한 공간과 미적 선호도에 따라 대여한 작품 중 일부만 전시할 수 있는 자유권’을 갖고 있다.


▎Permanent installation, Robert Gober, Untitled, 1995~1997 Robert Gober, Untitled, 1995~1997, Installation, Different materials, Emanuel Hoffmann Foundation, on permanent loan to the Offentliche Kunstsammlung, Basel (permanently installed at Schaulager, Basel), ⓒ Robert Gober, Foto: Tom Bisig, Basel
샤울라거의 회장은 에마누엘 호프만 재단의 마야 오에리(Maya Oeri)다. 그녀는 설립자인 마야 호프만 스텔린의 손녀이며, 모던아트와 컨템퍼러리 아트의 보관, 연구, 전시를 위한 ‘로렌츠 재단’을 설립한 당사자다. 마야 오에리는 샤울라거의 운영을 맏고 있는 로렌츠 재단을 죽은 아들, 로렌츠 야코프를 기리기 위해 1999년에 남편과 함께 설립했다. 샤울라거는 ‘보는’이라는 샤우(Schau)와 ‘창고’라는 라(Lager)가 합쳐졌다. 즉, 폐쇄된 창고가 아니라 ‘관람이 가능한 창고’란 의미다. 마야 오에리가 선택한 건축가는 헤르조그&드뫼롱(Herzog & de Meuron)이다. 두 건축가는 1978년 스위스 바젤에 건축회사를 설립했고 2001년 건축 부문에서 가장 높은 명성을 자부하는 프리츠커(Pritzker)상을 수상했다.

헤르조그&드뫼롱은 건물의 평면을 부등변 오각형으로 만들었다. 외부에서 보면 창이 하나도 없으며 오로지 서쪽 벽 구석에만 문이 하나 있다. 그들은 외부에서 열이 들어오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갈과 흙으로 외벽을 마감했다. 2003년에 문을 연 샤울라거는 최상의 상태로 작품을 보존하기 위해 실내 온도와 습도, 채광 등을 고려해 변동을 최소화한 건축가들의 설계가 뛰어난 작품이다. 샤울라거는 ‘공공 박물관’, ‘수장고’, ‘연구소’라는 세 가지 기능을 충족해주는 곳으로 특별전에 선택된 작품들은 에마누엘 호프만 재단의 수집품들이다.

“신성하면서도 모욕적인 사랑의 화려하고 낭만적인 동굴”


▎Schaulager, view of a storage space. Schaulager® munchenstein/Basel, Collection of the Emanuel Hoffmann foundation, view of a storage space, photo: Jonas Kuhn, Zurich
샤울라거는 예술품을 분해해 상자에 포장하는 기존 방법과 달리, 개방형 보관소에서 큐레이터와 보관 전문가들이 작품 상태를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조사할 수 있다. 동시에 샤울라거는 2003년 개관전 디터 로스(Dieter Roth) 전시에 이어 2004년 헤르조그&드뫼롱, 2005년 제프 월, 2006년 로버트 로버, 2008년 안드레아 지에텔, 모니카 소스노브스카, 2009년 홀나인 투 틸맨스, 2010년 매슈 바니 전시를 했다. 이후 프랑시스 알리스, 스티브 맥퀸, 폴 챈, 브루스 나우만 등 세계적으로 중요한 현대 예술 가들의 전시회를 꾸준히 개최하고 있다.

로렌츠 재단의 자금을 지원 받는 샤울라거는 해마다 한 번씩 대중에게 작품 저장 공간을 둘러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100년을 바라보는 수집의 역사를 창조하고 있는 에마누엘 호프만 재단의 컬렉션을 감상하게 해주는 동시에 전 세계의 수집가들에게 또 다른 포부와 안목을 높이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있다. 샤울라거는 2019년 6월 아트바젤 기간 동안 단 6일만 저장고를 오픈하는 ‘6 DAYS OPEN STORAGE 11~16 June 2019’라는 예외적인 행사를 했다. 무료지만 미리 날짜와 시간을 예약해야 했고 소장품과 관련해 1시간가량 가이드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창고는 과학적 연구 및 중재 목적으로 전문가들에게만 공개되므로 샤울라거 수장고에 보관된 작품들을 직접 살펴보고 보관 및 보존에 대한 전문 기관의 고유한 접근 방식을 배울 수 있는 특별한 기회였다.

샤울라거가 내세우는 대표적인 작품은 로버트 고버(Robert Gober)와 카타리나 프리츠(Katharina Fritsch)의 기념비적인 두 설치작품이다. 로버트 고버의 작품은 창고 공간이자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의 확장 공간인 게펜 컨템퍼러리(Geffen Contemporary)에 설치한 대규모 작품이었다. 고버의 다른 조각품 및 설치물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 역시 아티스트 자신이 세심하게 수작업으로 완성했다. 평론가 크리스토퍼 나이트가 이 작품을 보자마자 “신성하면서도 모욕적인 사랑의 화려하고 낭만적인 동굴”이라고 평했을 정도로 역설적인 부분이 산재해 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182㎝ 높이의 콘크리트 성모상 동상이며 큰 배수관이 성모상의 복부를 관통하여 뻥 뚫린 성모의 배를 신랄하게 보여준다. 성모상은 물이 흐르고 있는 배수구 위에 마치 박아버린듯 설치됐다. 마치 성모가 비극의 삶에 못 박힌 듯하여 마음이 아프다. 물은 고버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데 때로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 조각상 가슴에서 쏟아지기도 한다. 고통을 상징하는 성스러운 피 혹은 세례를 받을 때의 성수를 의미하기도 하는 고버의 작품 속 물은 지속적으로 폭포처럼 흐르고 있고 그 소리 때문에 더욱 강한 충격을 준다.


▎Schaulager, view of a storage space. Schaulager® munchenstein/Basel, Collection of the Emanuel Hoffmann foundation, view of a storage space, photo: tom Bisig, Basel
이 성모상을 중심으로 양쪽에 안쪽을 실크로 마감한 여행용 가방이 뚜껑이 열린 채 관람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가까이 가서 보면 열린 가방은 바닥이 뚫려 있고 그 아래로 물이 흐르고 있으며 서 있는 누군가의 하반신이 보인다. 아기 예수인가? 예수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던 세례 요한인가? 폭포는 성모상 동상 뒤의 나무 계단을 따라 내려와 계단 바닥의 또 다른 배수구로 흘러 들어간다. 고버는 설치의 여러 구성 요소가 아래에 물이 채워진 조수 수영장을 덮고 있는 빗물 배수구 위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실내 동굴을 만들었다.

크리스토퍼 나이트는 “이 작품은 시청자가 영적, 물질적으로 침례를 받도록 유혹하기 위해 시력과 소리를 자극한다”고 주장했는데 실제로 관람자들을 더욱 작품 속에 끌어들이는 것은 물이 흘러내리는 자극적인 소리다. ‘예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채 던지기도 전에 관람자들은 넋이 빠져 망연하게 작품 속을 이리저리 휘젖고 다니는 유령이 되어버린다. 로버트 고버의 이 작품은 다른 박물관에서는 감히 설치할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대형 작품이라 과감한 수집가의 취향을 잘 보여준다.

더 많은 사람이 샤울라거에서 주장하는 “예술이 보여지지 않는다면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돌보지 않는 예술은 위험에 처한 것이다”를 함께 체험하며 자신만의 삶의 취향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기를 바란다.


※ 박은주는… 박은주는 1997년부터 파리에서 거주, 활동하고 있다. 파리의 예술사 국립 에콜(GRETA)에서 예술사를, IESA(LA GRANDE ECOLE DES METIERS DE LA CULTURE ET DU MARCHE DE l’ART)에서 미술시장과 컨템퍼러리 아트를 전공했다. 파리 드루오 경매장(Drouot)과 여러 갤러리에서 현장 경험을 쌓으며 유럽의 저명한 컨설턴트들의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2008년부터 서울과 파리에서 전시 기획자로 활동하는 한편 유럽 예술가들의 에이전트도 겸하고 있다. 2010년부터 아트 프라이스 등 예술 잡지의 저널리스트로서 예술가와 전시 평론을 이어오고 있다. 박은주는 한국과 유럽 컬렉터들의 기호를 살펴 작품을 선별해주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202001호 (2019.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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