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진호의 ‘음악과 삶’ 

영화 '블레이드 러너' 속 2019년과 오페라 '탄호이저'의 의미 

미래는 더 많은 놀라움을 경험하는 세계일 것이다. 기계에 대해서 말이다. 그런데 인간의 위대함은 경탄하는 것을 넘어 자신이 왜 경탄하는지, 자신을 경탄하게 만드는 존재는 어떤 기제를 장착했는지를 알려 하며, 결국 알아내고 만다는 점에 있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 속 복제인간 로이. / 사진:wikipedia
“나는 너희 인간들이 상상하지 못할 것들을 봤지. 오리온 좌의 어깨 위로 포화를 내뿜는 전함들, C광선의 빛이 탄호이저의 문(Tanhäuser gate) 근처 어둠 속에서 명멸하는 것도 봤지. 그 기억들 모두 시간 속에서 사라지겠지. 빗속 눈물처럼. 이제 죽을 시간이다(Time to die).”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인간의 모습을 한 기계가 죽어가며 읊은 명대사다. 1982년 제작되어 개봉된 [블레이드 러너]는 미래사회에서 일어날 성싶은 사건들을 다룬 SF영화다. 그 미래가 2019년이다. 영화의 시공간적 배경인 2019년의 로스앤젤레스는 스모그와 산성비로 몸살을 앓는다. 거대한 빌딩으로 가득 덮인 이 도시를 비롯해 지구는 황폐해졌고, 감당할 수 없는 인구로 고통받는다. 정작 많은 인간은 실업자다. 그들이 하던 일들을 복제인간들이 맡고 있어서다. 인간의 지능과 외모를 가진 복제인간들은 그들대로 불만이 많다. 그들 중 일부가 결국 반란을 일으킨다. 미국 배우 해리슨 포드가 분한 영화 속 주인공은 반란자들을 찾아내 죽이는 일을 한다. 영화에서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을 ‘블레이드 러너’라고 명명한다. 탁월한 블레이드 러너해리슨 포드는 반란군 지도자 복제인간 로이를 찾아내 죽이려 했다가 반대로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로이는 그를 살려주며, 위의 대사를 읊고 나서 죽는다. 복제인간 제작자들이 복제인간의 수명을 4년으로 프로그래밍했기 때문이며, 마침 그 순간이 4년이 되는 시기였다. 복제인간 로이로 분했던 네덜란드 배우 룻거 하우어는 영화 속에서 죽은 해인 2019년에 실제로 타계했다.

기계가 발화하는 시적 표현


▎영국 화가 존 콜리에(John Collier)의 1901년 작 [비너스성의 탄호이저](Tannhäuser in the Venusberg) / 사진:wikipedia
복제인간 로이는 탄호이저에 대해 알 정도로 유식하다. [탄호이저]는 19세기 독일 작곡가 바그너의 오페라다. 로이의 대사는 알쏭달쏭하다. C광선은 우주 공간에서 사용되는 무기다. 빛의 속도에 가까운 이 광선은 충격을 받으면, 즉 우주 속 공격 대상과 접촉하면 반짝반짝 빛난다. 그런 강력한 광선이 시야에서 사라질 정도로 우주공간은 넓다. 드넓은 우주에서 엄청 빠른 광선이 사라져가는 것을 보았다고, 죽어가는 복제인간 로이가 말한다. 로봇의 생도 인생만큼이나 무상하다는, 기계가 발화하는 시적 표현이다. 로이가 말한 ‘문(gate)’을 통해 영화는 우주의 먼 곳으로 빠르게 이동하려면 특별한 문들을 거쳐야 한다는 점을 암시한다. 그런 문들, 즉 인터스텔라 게이트로 ‘탄호이저 게이트’가 상정된다. 왜 탄호이저일까?

탄호이저는 1250년경 사망했다고 전해지는 중세 독일의 기사이자 음유시인이다. 그에 대한 전설을 바탕으로 바그너는 오페라 [탄호이저]를 창조했다. 1845년 드레스덴 궁정극장에서 초연된 이 작품의 원제는 [비너스 산, 낭만적 오페라]였다. 나중에 [탄호이저]라고 명칭이 바뀌게 된 배경에는 당시 사람들의 ‘비너스’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이 있었다. 오늘날 별문제 없이 그저 미의 여신으로 알려져 있는 비너스는 유일신 사상을 따르는 기독교의 관점에서 볼 때 이교도의 신이다. 그것도 음탕하고 저질적인 여신이다. 이런 인식 때문에 중세 독일어에서 비너스에 해당하는 베누스(Venus)는 ‘마녀’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 (비너스의 그리스 이름은 아프로디테였다. 이것이 로마신화에서는 베누스로 명칭이 바뀌었다가 이 베누스를 영어로 비너스(Venus)라고 발음하게 된다. 독일인들은 로마식 발음을 그대로 따랐다.) 고대 그리스신화에서 아프로디테는 미의 여신인데,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미인은 건강함이 넘치는 존재였다. 이런 존재가 육체적 사랑을 자유롭고 솔직한 태도로 지향하는 것은 헬레니즘의 관점에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중세 시대로 넘어 오면서 이런 태도가 변한다. 중세를 지배했던 기독교는 남녀의 성적 관계를 부끄러운 것, 죄스러운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런 시류에 직면한 비너스는 자신을 추종하는 이들과 함께 세상을 등지고 북쪽으로 피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낭만주의 시대의 주제였던 이른바 ‘신들의 망명’에 해당하는 사건이다. 망명하여 새로이 정착한 곳이 비너스 성(Venusberg)이라고도 불리는 회르젤베르크(Hörselberg)산이다. 독일 중부 튀링겐주 아이제나흐 지역에 실재하는 이 낮은 산은 석회암 성분이 많아서 그런지 크고 작은 동굴이 많았다. 비너스는 그중 한 동굴에 정착해 자신의 이교도적 종교행사, 즉 사랑의 축제를 벌인다. 전설상의 이 축제를 기독교적 도덕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바그너의 [탄호이저]는 바로 이 도발적이고 퇴폐적인 비너스 산에서의 축제로 시작한다. 당대의 교회가 바그너를 요주의 인물로 보게 된 계기가 바로 이 오페라일 수 있다. 또 [탄호이저]는 주인공 탄호이저가 비너스의 축제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은총을 거부하는 교황을 그린다. 탄호이저 전설 및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13세기 초부터 중반까지 실존하여 탄호이저에게 무자비한 저주를 내린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교황 우르반 4세(Urban IV)다. 이 전설에 기초해 바그너는 탄호이저를 용서하지 않았던 교황을 자신의 오페라에서 분명 호의적으로 그리지 않았다. 오페라 속 교황은 “내 손에 든 이 지팡이에서 싹이 돋아날 수 없듯이 그대(탄호이저)는 지옥의 뜨거운 불길에서 구원받을 길이 없다”고 강경하게 외친다. 마지막 장면에서 탄호이저는 비너스의 세계를 거부하고 정신적이며 기독교적인 세계를 받아들여 결국 구원받기는 한다. 하지만 바그너는 이 오페라의 초연 당시에 구원 장면을 너무나 성의 없게, 이해하기 힘들게 처리했다. 구원 이전의 고민과 방황이 더 길고 중요하게 처리되었고, 마지막에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구원됨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구원보다는 정신적 방황, 즉 기독교에 대한 저항에 분명히 더 방점이 찍힌 작품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당대의 교회가 바그너를 좋게 볼 수 없었던 한 이유였다. 비너스는 비기독교적인 독일 전설에서는 프라이아(Freia)로도 불리는데, 바그너는 이후 자신의 또 다른 오페라 [라인의 황금]에서 프라이아를 미의 여신으로 등장시켰다. 이교적일 수 있는 고대 게르만 전설을 소재로 오페라를 작곡하는 바그너에게 독일의 교회는 최소한 주의를 기울였을 것이다. 바그너는 이후에도 [나사렛 예수]와 [승리자들]이라는, 완성되지 못한 오페라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승리자들]에서는 석가모니 이야기를 다루려고 했고 [나사렛 예수]에서는 인간 예수를 다루려고 했었다. 교회와는 도대체 화해할 생각이 없었던 불온한 바그너였을까. 흥미롭게도 [탄호이저]에서 가장 유명한 음악은 경건한 [순례자의 합창]이다.

“더는 인공지능을 이길 수 없어 바둑을 관뒀다”

[탄호이저]에는 비너스의 세계에 참여해 질펀하게 노는 탄호이저가 갑자기 비너스의 세계를 거부함으로써 순식간에 그 세계에서 벗어나는 장면이 있다. 연출가에 따라 달리 표현되겠지만, 내가 만약 연출을 한다면, 이 장면을 우주 속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순간 이동하는 모습으로 그리고 싶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도 그려진 이러한 우주 속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모종의 문(gate)이고,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복제인간 로이는 이 문을 ‘탄호이저 게이트’라고 불렀다.

이제 당신은 복제인간 로이가 19세기 오페라 [탄호이저]와 우주 속 게이트 등에 대해 알고 있는 지극히 지적인 존재로 그려졌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고도로 지적인 복제인간은 인간만큼이나 삶이 무상하다는 감정을 가지면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는 않고, 그럼에도 죽음이 모든 기억을 사라져버리게 만든다는 인간적 관념을 탑재하고 있다. 1982년의 영화감독 리들리 스콧은 이렇게 로봇을 그렸다. 그럴듯하며, 놀랍다.

2019년이 이제 지났지만 로이와 같은 복제인간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인공지능은 오래전에 만들어졌다. 2019년 11월 27일, 인공지능 알파고에게 이긴 유일한 인간 이세돌 9단이 모 방송에서 “더는 인공지능을 이길 수 없어 바둑을 관뒀다”고 말했다. “AI에게 바둑을 배우는 게 유쾌한 마음은 아니다”라고도 덧붙였다. 이 9단의 허한 심정을 알 길은 없지만 대충 공감할 수는 있다.

자신을 죽일 수도 있었던 복제인간 로이가 놀라운 대사를 읊고는 자신을 살려주는 것을 경험한 영화 속 주인공과 그 주인공에게 공감했던 우리는 영 화 속 복제인간의 위대함을 인지했고, 경탄했다. 이세돌 9단의 알파고에 대한 경험도 비슷했으리라. 기계의 위대함을 그는 인지했을 것이고 경탄했을 것이다. 독일의 위대한 수학자 다비트 힐베르트는 말했다.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결국)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2020년, 이제 알아야 할 시간이다(Time to know).


※ 김진호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의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

202001호 (2019.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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