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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 대기자의 ‘역설의 리더십’(10) 

간신은 군주가 만든다 

간신이라고 광고하는 이는 없다. 오히려 생김새는 충신일 수 있다. 지도자는 늘 고민한다. 누가 충신이고, 누가 간신인지. 하지만 군주 자신도 준비가 돼 있어야 훌륭한 신하를 만날 수 있는 법이다.

▎일러스트 이정권 기자
간신과 충신을 구별하는 건 인류 역사상 지도자들의 오랜 숙제였다. 아마도 끝내 풀리지 않는 영원한 숙제로 남을 것이다. 간신이라고 이마에 ‘간신’이라는 두 글자를 써 붙이고 다니지는 않는 까닭이다. 사악한 눈빛과 음흉한 미소, 비열한 몸짓처럼 정형화된 간신의 모습은 영화 또는 드라마에서나 존재하는 것이다. 어쩌면 인간의 마음속에 간신은 그럴 것이라는 선입견이 깊이 새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와 드라마가 없던 오랜 옛날부터 간신들에게 속고 놀아나는 군주가 숱하게 많았지 않았나 말이다.

하지만 간신은 간신처럼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남들보다 더 충신처럼 생겼을 수도 있다. 국어사전은 ‘간사하다’는 단어를 ‘자기 이익을 위해 나쁜 꾀를 부리는 등 마음이 바르지 않다’고 풀고 있는데, 나쁜 꾀를 부려 충신을 가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악의 간신일수록 그렇게 가장할 수 있는 재주가 뛰어날 것이다. 실제로 대한민국 국민에게 간신 하면 떠오르는 인물을 물으면, 열에 아홉은 꼽을 게 분명한 이완용도 전형적인 간신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술과 여자를 멀리하고, 시문과 서예를 즐기는 점잖은 조선 선비의 모습 그대로였다. 중국 최고의 간신 진회도 마찬가지다. 중국인들이 오늘날까지 이름자에 ‘회(檜)’ 자를 쓰지 않을 정도로 부끄럽게 생각하는 인물이다. 중국 항저우 악왕묘에 가면 벌거벗겨진 채 무릎을 꿇고 있는 진회의 동상이 있는데, 그 얼굴조차 20년 재상의 유능하고 인자한 풍모를 보인다.

사실 해로운 신하로는 간신만 있는 게 아니다. 중국 한나라 말기의 학자 유향(劉向)은 『설원(說苑)』이라는 책에서 ‘육사신(六邪臣)’, 즉 여섯 가지 해로운 신하를 밝혔다. 간신은 그중 하나일 뿐이다.

육사신에는 먼저 ‘구신(具臣)’이 있다. ‘구’란 시체를 세는 단위다. 즉 시체처럼 아무 역할도 못 하고 그저 수만 채우고 있는 무능한 신하를 말한다. 유향은 구신을 이렇게 설명한다.

“관직에 편안히 있으면서 봉록을 탐하고, 공사에 힘쓰지 않으며 시류에 따라 행동하고 좌우의 정세를 관망한다.”

둘째는 ‘유신(諛臣)’이다. 말 그대로 군주에게 아첨만 하는 신하를 일컫는다. 이런 설명이 달린다.

“군주의 말은 모두 훌륭하고 군주의 행동은 모두 옳다고 말하며, 은밀히 군주의 좋아하는 바를 알아내 권함으로써, 군주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고 비굴하게 비위를 맞춰 더불어 즐거움을 함께하며 그 후에 오는 해악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셋째가 간신이다. 설명은 이렇다.

“속마음은 음험하고 외모는 소심하며 교묘한 말을 하고 안색은 선량한 척하지만 어진 사람을 질투하고, 천거하려는 인물은 장점만 밝게 하고 악은 숨기며 물리치려는 사람은 단점만 드러내고 장점은 숨긴다.”

넷째는 ‘참신(讒臣)’으로, 자신의 영달을 위해 참소를 일삼는 신하를 말한다.

“지혜는 자신의 비리를 꾸미는 데 족하고 말솜씨는 자신의 주장을 펴 실행하는 데 족하며, 안으로는 골육 간을 이간하고 밖으로는 조정의 내분을 꾸민다.”

다섯째 해로운 신하는 ‘적신(賊臣)’이다. 개인적 이익만 앞세워 반역하거나 불충한 신하다.

“권세를 제멋대로 하여 모든 일의 경중을 변경하고 사가(私家)에 도당을 만들어 그 가문을 부유하게 하며 군주의 명령을 멋대로 고쳐 자신의 귀함을 높인다.”

마지막 신하는 그야말로 최악이다. 나라를 망하게 하는 ‘망국신(亡國臣)’이다.

“간사하게 아첨하여 군주를 불의에 빠뜨리고 붕당을 지어 서로 친하며 군주의 눈을 가려 흑백을 구별하지 못하게 하고 시비를 분별할 수 없게 하며 군주의 잘못을 나라 안과 사방 외국에까지 퍼뜨린다.”

앞서 해로운 신하의 다섯 가지 유형을 모두 겸비한 신하다. 그런 인물을 등용하니 나라가 망하지 않을 수 없다.

간신은 간신처럼 생기지 않았다

그렇다면 좋은 신하의 유형은 어떤 것일까. 유향은 좋은 신하도 여섯 가지로 나눠 설명한다. 이른바 ‘육정신(六正臣)’이다. 흔히 말하는 충신 역시 훌륭한 신하 유형의 하나일 뿐이다.

먼저 ‘성신(聖臣)’이 있다. 그야말로 성인에 버금가는 신하다.

“아직 사물의 싹이 트지 않았고 형체의 조짐도 보이지 않지만 홀로 국가 존망의 기미를 밝히고자 하며 득실의 요점을 통찰해 예상하고 대비해 군주가 초연케 하여 영예롭게 해준다.”

둘째는 ‘양신(良臣)’이다. 문자 그대로 어진 신하다.

“마음을 비우고 뜻을 다해 날마다 노력하고 도리에 통달하고, 군주를 예의로써 힘쓰게 하며 좋은 계책으로 깨우치게 하고, 장차 훌륭함을 받들어 순정하며, 군주의 악을 바로잡아 구원한다.”

셋째가 ‘충신(忠臣)이다.

“새벽 일찍 일어나 밤늦게 잠자리에 들고 현자를 찾는 데 게으르지 않고, 수없이 옛 성현의 행적을 칭송함으로써 군주의 마음을 독려한다.”

넷째는 ‘지신(智臣)’이다. 지혜로운 신하다.

“밝게 성패를 살피고 조속히 위험을 막아 대책을 찾아 구제하며, 틈새를 막고 화근을 끊어 전화위복이 되도록 한다. 군주로 하여금 끝까지 근심이 없게 한다.”

다섯째는 ‘정신(貞臣)’, 즉 곧은 신하다.

“법률을 지키고 받들며 관직에 임해서는 사무를 충실히 하고 뇌물을 받지 않으며 높은 봉록과 하사한 물품을 사양하며 검소하고 절약한다.”

마지막은 ‘직신(直臣)’이다. 곧은 신하를 일컫는다.

“국가가 혼란한 시기에도 아첨하지 않으며 군주가 엄한 표정을 지어도 두려워하지 않고 면전에서 군주의 과실을 아뢴다.”

유향의 ‘육정신 육사신’은 좋은 신하와 나쁜 신하를 구별하는 방법이라기보다는, 훌륭한 신하가 되는 길을 밝히는 것에 가깝다. 유향 역시 신하들의 유형을 나누기에 앞서 이렇게 썼다.

“육정을 따르면 영예롭고, 육사를 범하면 치욕을 당한다(行六正則榮 犯六邪則辱).”

게다가 신하들의 유형이 너무 정형화돼 있어 현실과 유리되기 쉽다. 세상에 선한 사람이라고 모든 행동이 옳고, 악한 사람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악하기만 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유향의 분류에 이어 순자의 말을 들어보는 게 좀 더 도움이 될 듯하다.

순자는 신하의 길(臣道)를 다섯 가지로 나눈다. 명령을 따르고 군주를 이롭게 하는 걸 순(順)이라 한다. 현군 아래 현신 있는 이상적인 경우다. 군주가 올바른 지시를 내리고 신하가 잘 따르니 순조롭지 않을 리 없다.

이어 명령을 거스르며 군주를 이롭게 하는 게 충(忠)이다. 무조건 따른다고 충성이 아니란 얘기다. 군주가 어질지 못해 올바른 지시를 내리지 못한다면 좋은 신하는 그것을 무조건 따라서는 안 된다. 군주의 잘못된 판단을 지적해 올바른 명령이 나올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군주 앞에서 쓴소리할 줄 알아야 충신이다.

명령을 따르되 군주를 이롭지 못하게 하면 첨(諂)이다. 아첨의 적극적 해석이다. 군주의 잘못에 눈감는 것도 아첨이란 말이다. 군주의 명령이어서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건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다.

명령을 거슬러 군주를 이롭지 못하게 하면 그건 찬(簒)이다. 군주가 현명해서 올바른 명령을 내렸는데 이를 거역해 끝내 군주를 나락에 빠뜨리는 것이다. 그야말로 찬탈, 즉 반역이다.

여기서 순과 찬은 최상과 최악의 사례이니 크게 설명할 게 없다. 흔히 문제가 되는 건 충과 첨의 상황이다. 군주가 어리석을 때 대처하는 신하들의 자세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좌우될 수 있다. 순자는 “군주의 치욕을 막고 나라에 이익이 된다면 능히 군주의 명을 거역하고, 필요하다면 군주의 권한까지 대신 행사하는 게 보필”이라고 말한다. 말만 잘 듣는 것이 충이 아니라 옳지 않은 지시는 거스를 줄 알아야 최악의 결과를 막고 궁극적으로 군주를 지킬 수 있다는 적극적 의미로서의 충이다.

간신인 줄도 모르고 간신으로 전락

하지만 현실이 어디 그런가. 모자란 군주가 내리는 명령이 아무리 잘못됐다 하더라도 그것을 거역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날처럼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권력자에게 바른 소리를 하기가 쉽지 않거늘, 하물며 생살여탈권을 거머쥔 군주 앞에서 “불가한 줄 아뢰오”라고 외치는 게 어디 쉽겠나. 목이 아니더라도 행여 자리라도 날아갈까 봐 입 다물고 물러나는 사람이 열에 아홉일 것이다. 순자의 기준으로 보자면 이들 모두 첨신, 즉 아첨하는 간신들이다. 간신이 된 줄도 모르고 어느새 간신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간신들이 주위에 있다면 그것은 모두 군주 책임이다. 직언이란 직언을 들을 준비가 된 군주 앞에서나 가능하다. 그렇지 못한 군주 곁에는 간신들만 꼬이게 되는 게 당연한 이치다. 그래서 순자는 간신들을 막는 ‘군주의 길(君道)’에 대해서도 말한다.

“밝은 군주는 함께하길 좋아하고 어두운 군주는 혼자 하길 좋아하며, 밝은 군주는 직언하는 신하를 포상하고 어두운 군주는 처벌한다.”

권력자가 쓴소리 통로를 크게 열고 밝게 비춰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 못한 어두운 군주 앞에서 신하들은 첨 아니면 찬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그것도 아니면 다섯째 길만 남았다. 어쩌면 가장 많은 이가 가는 길이다.

“군주의 명예나 치욕, 나라의 흥망엔 관심 없이 구차하게 영합해서 녹봉이나 받는 것을 국적(國賊)이라 한다.”

군주가 욕되건 말건, 나라가 망하건 말건 나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이런 간신 아닌 간신들로 넘쳐날 때 군주의 치욕은 말할 것도 없고, 백성들의 잠자리가 편안할 수 없다. 그것은 곧 군주의 책임이다. 순자 말이 그것이다. “이것은 신하 된 자를 논한 것으로, 나라의 길하고 흉함과 군주의 어질고 어질지 못함을 알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다.”

군주 입장에서도 좋은 신하와 나쁜 신하를 구분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언로를 활짝 열고 쓴소리를 받아들인다고 해서 모든 신하가 충신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고로 간신들은 충신의 탈을 쓰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갖췄고, 그런 능력이 없는 충신들은 쉽게 간신의 누명을 쓰기도 한다. 그래선지 예로부터 충신과 간신 구별법이 많이 전해지고 있다.

강태공의 저술로 전해지고 있는 춘추전국시대의 병법서 『육도(六韜)』에는 ‘팔관법(八觀法)’이라는 게 있다. 여덟 가지 관찰법이라는 의미다.

• 질문해서 대답하는 말을 살핀다.
• 자세히 캐물어서 그 반응을 살핀다.
• 몰래 사람을 보내 성실함을 살핀다.
• 핵심을 찌르는 말로 덕을 살핀다.
• 돈과 관련된 일을 시켜 청렴함을 살핀다.
• 여자를 붙여 단정함을 살핀다.
• 재난이 일어났다고 알려 용기를 살핀다.
• 술에 취하게 해 솔직한 모습을 알아본다.


전국시대 진나라 때 여불위가 편찬한 『여씨춘추』에도 ‘여덟 가지 방법’이 나온다.

• 순조로울 때 어떤 사람을 존중하는가 살핀다.
• 높은 자리에 있을 때 어떤 사람을 추천하고 기용하는지 살핀다.
• 부유할 때 어떤 사람을 접촉하는지 살핀다.
• 평소 무엇을 말하고 듣는지 살핀다.
• 한가할 때 무엇을 즐겨 하는지 살핀다.
• 친해진 다음 말하며 드러내는 속뜻을 살핀다.
• 실의에 빠졌거나 좌절했을 때 지조를 본다.
• 가난할 때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는지 살핀다.


간신 구별법이라기보다는 인재 판단법에 가까운 것들이다. 게다가 함정수사에 가까운 테스트와 장기간 관찰해야 하는 까닭에 현실적인 방법이 되기 어렵다. 이보다는 한비자가 제시한 ‘찰간술(察奸術)’ 다섯 가지가 더 소구력 있어 보인다.

첫째, 관청법(觀聽法)이다. 즉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정보에 의해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흔히 평판을 듣지만 다른 이들의 눈과 귀에 의존하는 정보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공자 역시 “모든 사람이 다 좋다고 해도 직접 보고 판단하고, 모든 사람이 다 나쁘다고 해도 직접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둘째, 일청법(一聽法)이다. 개인적 또는 개별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제나라 선왕은 합주를 선호해 300명이나 되는 합주단까지 거느렸다. 그중에 남곽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연주 능력도 없으면서 최고 연주자로 자처해 높은 보수를 받았다. 선왕의 뒤를 이은 민왕은 독주를 좋아했다. 그래서 한 사람씩 독주를 시켰다. 그러자 남곽은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셋째, 협지법(挾智法)이다. 알면서도 모르는 체하며 상대를 시험하는 방법이다. 한나라 소후는 손톱을 깎다가 잘린 손톱이 없어졌으니 불길한 징조라며 신하들에게 찾게 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측근들이 방 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손톱이 있을 리 없었다. 그때 한 신하가 찾았다고 외쳤다. 자신의 손톱을 이빨로 끊어낸 것이었다. 소후는 모른 척하며 그 신하를 포상했으나 그에 대한 신뢰를 거둬들인 뒤였다.

넷째, 도언법(倒言法)이다. 말을 뒤집는 것으로 사실에 맞지 않는 말로 사람을 시험하는 방법이다. 진나라의 2세 황제 밑에서 전횡을 펼치던 환관 조고가 자신의 편을 알아내기 위해 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고 한 ‘지록위마(指鹿爲馬)’ 고사가 바로 전형적인 도언법이다.

다섯째, 반찰법(反察法)이다. 상반된 입장에서 동기를 찾는 방법이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손해를 보는지 판단하는 것으로, 현대의 수사기법에서 자주 응용되는 방법이다. 한나라 희후가 목욕을 하다 욕조에서 돌을 발견했다. 희후는 욕조 담당을 혼내지 않는 대신 그가 파면되면 뒤를 잇게 될 후임자를 불러 죄를 다그쳤다. 결국 후임자가 욕조에 돌을 넣었다고 실토했다.

이처럼 어떤 신하가 해로운 신하인지 구별하는 방법이 예로부터 다양하게 전해 내려오는 것은 그만큼 사람을 다루는 용인술이 어렵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해 보인다. 신하란 군주 하기에 달렸다는 것이다. 군주 스스로 준비가 돼야 훌륭한 신하를 만날 수 있다. 그것은 시대를 넘어 오늘날까지도 유효한 진리다.


※ 이훈범은… 남들이 못 보는 세상을 보고 싶어 기자가 되었고, 기자로 살며 본 세상을 칼럼에 녹이고 있다. 역사 속 사건과 인물에서 혜안을 얻는 게 삶의 기쁨이다. 1989년 중앙일보에 얽매여 기자로 산 지 30년째, 그중 10년 이상을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역사, 경영에 답하다』(2009), 『대한민국 국격을 생각한다』(2010, 공저), 『세상에 없는 세상수업』(2014), 『품격』(2019)이 있다. 파리10대학 문학박사 과정 수료.

202002호 (2020.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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