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포드자동차는 현재까지 4대째 경영승계를 이어오고 있다. 후손들이 보유한 보통주 지분이 2%에 불과하지만 보통주보다 의결권이 큰 클래스 B 주식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1903년 헨리 포드가 설립한 포드자동차 회사는 현재까지 최고경영자 기준으로 4대에 걸친 승계 이후에도 포드 가문이 의결권의 40% 이상을 행사하며 강력한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포드 가문의 후손들이 보유하고 있는 포드의 보통주 지분율은 2%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통주 지분율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포드 가문 후손들이 상장회사인 포드의 의결권 40% 이상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차등의결권이 부여된 포드 클래스 B 주식 때문이다.우리나라는 주식의 차등의결권을 인정하지 않지만, 미국은 차등의결권을 인정하고 있다. 주당 1의결권이 인정되는 보통주를 ‘클래스 A(Class A)’ 주식이라고 하고, 보통주보다 더 많은 의결권이 부여되는 차등의결권 주식을 ‘클래스 B(Class B)’ 주식이라고 한다. 미국의 대표적인 주 회사법이라 할 수 있는 미국 델라웨어주 일반회사법은 차등의결권 발행을 허용하고 있으며, 미국의 모델 회사법 역시 차등의결권을 허용하고 있다. 포드 외에도 이러한 차등의결권을 채택한 미국의 대표적 상장기업으로는 페이스북, 버크셔 해서웨이, 허쉬, 뉴욕타임스, UPS, 나이키 등이 있다.포드가 2019년 온라인 주주총회를 준비하며 미국 증권거래소에 공시한 내용에 따르면, 2019년 3월 13일 기준으로 포드사의 보통주는 39억 주, 클래스 B주식은 7000만 주 정도다. 전체 발행된 주식에서 클래스 B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1.78%에 불과하며 나머지 98.22%는 보통주다.그런데 회사 정관에 따르면 의결권의 60%만 보통주에 할당되고, 40%는 클래스 B 주식에 배정되어 있다. 따라서 2019년 주총에서 포드 클래스 B 주식은 주당 37.872의 의결권을 갖게 되었다. 이 차등의결권에 클래스 B 주식수를 곱하여 산출한 클래스 B 주식 총 의결권 수와 주당 1의결권만 있는 클래스 A 주식 총수 사이의 비율을 계산해보면 4:6을 확인할 수 있다.일반적으로 보통주의 경우 유상증자, 무상증자, 스톡옵션 행사 등으로 그 수가 매년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차등의결권을 도입한 미국 상장기업의 클래스 B 주식이 전체 의결권에서 차지하는 비중 및 발행주식 수는 상장 시점에 한 번 정해지고 그 후에는 변경될 수 없다. 매년 주총일 현재 보통주 총 발행주식 수는 변경될 수 있기 때문에 클래스 B 주식의 차등의결권 수준도 그에 따라 매년 변경될 수 있다.포드 가문 후손들은 보통주의 2% 미만을 보유하고 있지만, 클래스 B 주식의 99.9%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전체 의결권의 40% 이상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포드사의 공시 자료를 보면 클래스 B 주식을 5% 초과하여 수혜 기준으로 보유(beneficiary ownership)하고 있는 세 주주를 확인할 수 있다. 린 알란(Lynn F. Alandt)이 10.44%, 데이비드 라슨(David P. Larsen)이 16.44%, 의결권신탁(Voting Trust)이 99.9%를 보유하고 있다.린 알란은 포드사 현재 회장인 윌리엄 클레이 포드 주니어의 사촌 누나이며, 데이비드 라슨은 클래스 B 주식의 실소유자는 아니다. 일부 포드 가족들의 클래스 B 주식이 신탁된 몇몇 신탁의 관리인이다. 의결권신탁은 알란이 보유한 10.44%, 라슨이 관리하는 16.44%를 포함해서 포드 가문 모든 후손이 보유한 모든 클래스 B 주식에 대해서 통일적 의결권 행사를 위해 만들어진 신탁이다.이 신탁은 총 신탁자 지분의 50% 이상의 찬성 없이는 해산되지 않는 영구적 신탁이며, 신탁관리인은 신탁지분의 다수결에 따라 회사 주주총회에서 전체 신탁자 지분 모두에 대해서 통일된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되어 있다. 즉, 포드 가문 후손들이 포드 클래스 B 주식 99.9%를 의결권신탁 형태로 모아서 주주총회에서 집단적으로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클래스 B 주식을 보유한 가문 후손 중에서 상속세 납부 등 필요에 의해서 일부 주식을 매각할 경우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우선적으로 매입할 수 있도록 하여 클래스 B 주식의 외부 유출을 차단하고 있다.클래스 B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포드가 후손은 대략 100명 전후로 추정된다. 회사의 공시자료를 통해서 클래스 B 주식 보유 현황을 알 수 있는 후손은 알란 10.44%, 회장인 포드 주니어 20.04%, 에드셀 포드 2세(Edsel B. Ford II) 7.58% 등 세 사람이다. 후자의 두 사람은 현재 포드사의 이사회 구성원이어서 주식 보유 상황이 공시된다.후손들이 각각 얼마의 클래스 B 주식을 갖고 있는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클래스 B 주식 99.9%에 대해서 의결권을 행사하는 의결권신탁의 신탁관리인이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이 신탁의 관리인으로 에드셀 포드 2세, 포드 주니어, 벤슨 포드(Benson Ford, Jr.) 알프레드 포드(Alfred B. Ford) 등 네 명이 지정돼 있다.포드 2세는 3세대 장손 헨리 포드 2세의 아들(1948년생)로 포드사의 이사회 멤버다. 포드 주니어는 헨리 포드 2세의 막냇동생의 큰아들(1957년생)이며 빌 포드라고 불린다. 강력한 리더십으로 2001년부터 현재까지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벤슨 포드 주니어는 헨리 포드 2세의 바로 아래 동생의 아들(1949년생)이자 알란의 친오빠다. 알프레드 포드는 헨리 포드 2세의 여동생 조세핀 클레이 포드(Josephine Clay Ford)의 아들(1950년생)이다.흥미로롭게도 이 네 사람은 모두 사촌지간이면서 4세대다. 1세대 창업주 헨리 포드는 외아들인 에드셀 포드를 두었고, 그는 슬하에 4남매(3남 1녀)를 두었는데, 이 3세대 4남매의 각각의 자녀(4세대) 중에서 각 1명씩 대표하여 전체 가문 후손들이 보유한 클래스 B 주식 전체를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포드 가문은 확고한 경영권을 가지고 포드를 경영하고 있다.물론 미국 내에서 클래스 B 주식을 통한 차등의결권에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하지만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초우량 장수기업 발전 등 긍정적인 평가도 적지 않다. 포드사의 배당을 포함한 장기 투자수익율이 시장 평균을 크게 상회하는 것도 차등의결권을 통한 경영권 안정과 관련돼 있다.올해 63세를 맞는 윌리엄 클레이 포드 주니어 회장의 뒤를 이어 누가 포드사의 최고경영자 자리를 이어갈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현재 포드 가문의 5세대 후손들 중 상당수가 회사에서 활동 중이이므로 이들 중에서 리더십과 경영능력이 뛰어나고 다수 가족 구성원의 지지를 이끌어낼 제5세대 포드 후손이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이성봉 서울여대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