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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환 아이디어스 대표 

‘작가’가 된 판매자, ‘작품’이 된 상품 

세상 모두가 스피드와 최저가만 원할 때 ‘금손’의 가치를 알아본 이가 있다. 핸드메이드의 매력에 빠졌다면 온라인 마켓을 직접 만든 CEO든, 상품을 사는 고객이든 한 달 넘게 걸리는 제작 기간쯤은 별문제가 아니다.

▎아이디어스는 국내 최대 온라인 핸드메이드 플랫폼이다. 2014년 창업에 나선 김동환 대표는 ‘좋은 물건은 결국 팔린다’는 믿음으로 시장을 개척했다.
총알과 번개, 새벽도 모자라 급기야 번쩍이란 말까지 온라인마켓에 넘실댄다. 경쟁사를 압도하는 속도, 이에 더해 ‘최저가’로 상징되는 할인 경쟁은 이커머스 업계의 생존을 좌우하는 잣대가 된 지 오래다. 새벽이면 문 앞에 놓일 더 싼 물건을 찾는 소비자의 요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변덕을 부려 여기저기 쇼핑몰을 옮겨 다니기 일쑤다. 이들을 붙들어두자니 남보다 빠른 배송은 기본이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미끼 가격도 필수다. 대규모 적자 출혈을 우려하는 업계 뉴스가 심심찮게 나오는 배경이다.

김동환 아이디어스(법인명 백패커) 대표는 대량 생산된 공산품, 혹은 피 튀기는 할인 경쟁과는 사뭇 다른 전략을 택했다. 지난 2014년 문을 연 아이디어스는 핸드메이드(수제품) 상품만 판매하는 온라인 마켓이다. 핸드메이드 하면 떠오르는 공예품은 물론이고, 농수산물 같은 먹거리까지 ‘작가(판매자)’가 손수 제작한 상품만 취급한다. 작품 제작에 한 달 이상 걸리는 건 예사고, 소량 주문생산이라는 특성상 ‘묻지 마’ 최저가 같은 마케팅도 통할 리 없다. 기존 온라인 기반 이커머스 업계의 상식과는 완전히 다른 전략을 고수하는 셈이다.

하지만 느리되 정성이 담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제품들은 아이디어스가 국내 최대 핸드메이드 마켓으로 성장한 배경이 됐다. 지난해 말 기준 아이디어스에 입점한 작가만 1만4000명에 달한다. 월 거래 액은 120억원, 월 방문자는 300만 명을 넘어섰다. 창업 이후 누적거래액은 2000억원을 돌파했고, 애플리케이션 다운로드도 지난해 말 기준 763만 건에 달한다.

온라인으로 끌어들인 핸드메이드 시장


김 대표는 아이디어스 창업 전 포털과 스타트업 등에서 동영상 콘텐트, 블로그 마케팅을 경험했다. 대학에선 사회학을 전공했고 한때는 열혈 운동청년이기도 했다. 핸드메이드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이력의 소유자가 시장을 만나고 성공 가능성을 확신했던 건 함께 자취했던 사촌 동생 덕이었다.

“동생이 도예과를 졸업한 도예 작가입니다. 홍대 플리마켓 가판에서 직접 판매를 도왔는데, 물건만 좋으면 수요가 있다는 걸 눈으로 확인했어요. 반면 제대로 된 시장(플랫폼)이 없다 보니 상품이 아무리 좋아도 가판에서 끝나버리는 게 안타까웠죠.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인 시장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온라인 기반 핸드메이드 플랫폼이 하늘 아래 처음 나온 서비스는 아니다. 미국에선 아이디어스와 비슷한 콘셉트의 핸드메이드 플랫폼인 ‘엣시(ETSY)’가 이미 전체 이커머스 업계에서 3~4위권에 포진해 있을 정도다. 엣시는 지난 2015년 나스닥에 상장해 업계 최강자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업계 1위인 아마존도 핸드메이드 시장에 진출했지만 엣시만큼 강력한 플랫폼으로 크진 못했다.

아마존이 엣시에 밀리는 건 핸드메이드 시장의 특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일단 시장을 선점한 업체가 있을 경우, 후발주자는 좀체 비집고 들어갈 틈을 찾기 어렵다. 미국도 엣시 외에는 이렇다 할 경장사나 플랫폼을 찾기 어렵다. 아마존이 비슷비슷한 공산품으로 무한 경쟁하는 시장이라면, 엣시는 로열티 강한 셀러와 고객이 몰려드는 커뮤니티에 가깝다.

김 대표는 “시기를 장담할 순 없었지만, 한국에서도 반드시 시장이 열릴 거라 확신했다”고 말했다. 자본금 1000만원에 고시원 수준 사무실에서 노트북 하나로 창업에 나선 이유다.

벤처·스타트업의 성공 스토리가 으레 그렇듯 김 대표도 ‘맨땅에 헤딩’하는 수준의 우여곡절을 열정과 신념으로 버텨냈다.

“미국만 해도 엄청 큰 시장이에요. 그에 비해 한국은 니치마켓 수준이라, 사업 초기엔 투자 유치에 나섰다가 셀 수 없이 퇴짜를 맞았을 정도예요. 사업계획서를 보여주는 것조차 어려웠죠.”

창업 이후 3년간은 그야말로 고군분투였다. 포털 블로그나 온라인몰을 일일이 검색하고, 핸드메이드 페어를 무작정 찾아가 작가들을 만났다. 손님인 줄 알고 반겼던 작가들은 사업계획서를 내밀자 잡상인 취급하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시장에 대한 확신을 발판으로 작가 섭외에 온 힘을 기울였고, 제품을 구입한 고객들의 입소문이 이어지면서 비로소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실현되기 시작했다. 아이디어스가 2014년 이후 기록한 누적거래액은 2000억원 수준이다. 그 중 2019년 한 해 기록한 거래액만 1100억원이다. 창업 5년 만에 비로소 기대했던 궤도에 올랐다는 뜻이다.

파는 물건과 마케팅 콘셉트가 다르니 아이디어스는 여느 온라인몰의 분위기와 확연히 다르다. 아이디어스에선 물건을 만들어 파는 ‘판매자’나 ‘업자’ 대신 모든 셀러가 ‘작가’로 통한다. 작가별로 개인 ‘홈(home)’이 따로 있어 신제품 출시, 개인 스토리, 할인 이벤트 등을 고객에게 전한다. 일종의 미니 홈페이지다. 고객은 좋아하는 작가를 팔로(follow)한다. 단순한 온라인 쇼핑몰이라기보다 작가와 고객이 소통하는 SNS에 가깝다. 팔로어 수만 명을 거느린 인기 작가들의 경우 월 1억원이 넘는 고수익을 올리는 경우도 많다. 상위 10% 작가들의 경우 월평균 매출이 1000만원을 넘어섰고, 최상위 3%는 연 2억원 넘는 매출을 올리고 있다.

작가와 고객 감성 연결한 ‘팬덤 커머스’


▎아이디어스는 동영상 강의(금손클래스)와 해외 진출 등 사업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작가가 올린 가격보다 더 큰 금액으로 주문하는 고객이 전체의 15%에 달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최소 1000원 단위로 후원하는 기능이죠. 웃돈을 주고 사는 셈인데, 일종의 ‘팬덤 커머스’라고 할까요. 작가 개인이 꾸미는 ‘스토리’도 회사 차원에서 일절 관여하지 않습니다. 고객과 작가의 인간적 교감에 충실한 거죠.”

300만 명이 넘는 아이디어스 이용자 중 한 달 내 재구매 비율은 80%에 달한다. 가판에서 액세서리를 팔다가 아예 오프라인 사업을 접고 지방에 공방을 열어 아이디어스 판매에만 전념하는 사례가 나올 정도다. ‘노점상’ 취급을 받던 셀러들을 ‘작가님’으로 존중한 결과다.

150만 건에 달하는 구매후기 중 불만(컴플레인) 사례를 찾기 어려운 것도 아이디어스만의 강점이다. 수익 확대보다는 입점한 작가와 제품의 퀄리티를 최우선 순위에 둔 결과다. 김 대표는 “철저한 심사를 통과해야만 입점할 수 있다”며 “작가들 사이에서 아이디어스 입점이 하나의 스펙으로 통할 정도가 됐다”고 말했다. 고객 입장에선 입점 심사와 실시간 확인이 가능한 구매후기 등 여러 차례의 스크리닝을 통해 상품을 믿고 선택할 수 있다.

단순한 쇼핑 채널을 넘어 작가와 기업이 공생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하는 길은 김 대표가 풀어야 할 또 다른 과제다. 작가의 성공이 곧 아이디어스의 지속가능한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믿음 때문이다.

“대개 작가들이 판매 전략이나 마케팅 스킬 같은 게 부족해요. 정성과 노력을 담은 제품이라도 팔리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걸 잘 모르죠. 판로 개척도 쉽지 않고요. 회사 차원에서 작가 교육과 지원에 힘을 쏟는 이유입니다.”

서울 동교동에 자리한 아이디어스 본사에는 제품 사진을 촬영하기 위한 스튜디오가 따로 마련돼 있다. 작가들을 위한 판매 지원책 중 하나다. 카메라와 조명 등 전문 장비를 갖춰놓고 잘 만든 상품만큼 멋진 사진으로 고객에게 다가가는 스킬을 지원한다. 원할 경우 무상 촬영도 지원한다. 이 밖에 패키지 디자인, 로고 디자인, 온라인 판매 노하우 교육 등도 수시로 진행한다. 배송 시 꼭 필요한 충전재나 박스 등을 회사가 구매해 작가들에게 원가 이하로 제공하기도 한다.

작가 지원의 하이라이트는 ‘아이디어스 크래프트랩’이다. 서울 홍익대 인근 5층 건물에 마련한 공유공방이다. 따로 작업실을 마련하기 어려운 작가들을 위해 독립적인 개인 작업실과 공용 작업실, 촬영실 등을 갖추었다. 수천만원이 넘는 값비싼 제작 장비들도 들여놓았다. 한 달 정액으로 입주한 작가들은 2개 층에 마련된 전용 작업 공간을 쓸 수 있고, 비용을 내지 않아도 나머지 층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건물 1층은 라운지로 꾸며 작가들의 커뮤니케이션과 네트워크를 돕는다. 라운지에서 파는 주류와 음료, 식재료도 모두 입점 작가들의 ‘작품’이다.

“크래프트랩에 가보면 항상 만실이에요. 입주 대기가 3개월 후까지 밀려 있죠. 작품을 만들 공간과 장비를 원하는 니즈가 그만큼 컸다는 뜻이고, 이들에 대한 지원이 전무하다는 뜻이기도 하죠. 대학에서 공예를 전공한 사람만 한 해 2만 명에 달해요. 무언가를 손으로 만드는 이들인데, 대부분 일반 사무직 취업에 머무는 게 현실입니다.”

가내수공업 수준에 머물러 있는 열악한 작업 환경도 작가들과의 공생이 원칙인 김 대표에겐 고민거리일 수밖에 없다. 김 대표는 이를 위해 입점 작가들의 건강검진도 지원하고 있다. 매년 호텔을 빌려 성대하게 개최하는 핸드메이드 어워드 역시 작가들을 격려하기 위한 자리다.

스타트업일수록 기업문화 정립 절실

CTO와 단 둘뿐이었던 직원 수도 어느덧 100여 명을 넘어섰다. 외부 수혈이 많아지니 창업 초기 기업문화를 해치는 사례가 늘었고, 2017년에는 성장이 급격히 정체되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김 대표는 ‘잘될 때의 기억’을 명문화하기로 했다. 기업문화 정립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이다

“인력이 적은 초기 스타트업은 부서 이기주의나 경쟁 같은 게 적어요. 추진력도 강하고 스피드도 있죠. 멱살 잡고 싸워도 뒷담화는 없다고 할까요. 조직이 커지니 없던 문제들이 생기기 시작하더군요. 기업문화, 조직문화 정립이 절실해졌죠.”

현재 아이디어스의 기업문화는 ‘One Team(하나의 팀), Be Open(열린 자세), Action(실행), Aim High(높은 목표), Be Professional(전문성), Be a Superb Colleague(최고의 동료)’ 등 6개로 명문화됐다.

“정체기를 겪다가 기업문화를 정립하니 다시 빠른 속도로 성장하더군요. 모든 구성원이 회사와 일의 가치를 명확하게 이해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말만 가져다 붙인 추상적 구호가 아니라, 실제로 ‘우리가 잘될 때 뭐가 좋았는지’를 2년간 고민해 하나하나 정한 가치들이에요.”

국내에 없던 온라인 핸드메이드 플랫폼을 궤도에 올려놓은 김 대표는 다음 목표로 사업 확대를 꼽았다. 고객 접점을 확대하기 위해 오프라인 매장도 인사동 쌈지길과 롯데몰 용인수지점에 열었다.

지난해에는 동영상 콘텐트 전문기업인 페이브를 인수했다. ‘금손클래스’ 강화를 위해서다. 온라인으로 직접 작가들에게서 작품 제작을 배울 수 있는 강의 서비스로 지난해 말 시작했다.

해외 진출도 장기적인 사업 확대 목표다. 해외 작가들이 아이디어스에 입점해 상품을 파는 ‘직구’의 경우 현재 10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다. 김 대표는 “더 중요한 건 한국의 훌륭한 작가들이 해외에서 매출을 올리는 사례”라며 “올해 첫 삽을 뜨려 한다”고 말했다. 한국 작가의 제품을 미국과 일본, 유럽에 ‘역직구’로 판매한다는 목표다.

“창업 이후 누적투자액이 210억원 수준인데, 사업 확장에 도움이 될 M&A 후보를 몇 군데 물색해둔 상황이에요. 버티고 살아남는 자가 이긴다는 생각으로 끌고 왔는데, 생각보다 기회가 빨리 열린 것 같습니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사진 원동현 객원기자

202003호 (2020.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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