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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명 인사의 신탁 

 

미국 유명 인사의 유언이 화제가 된 사례가 많다. 사실 유언보다 그가 남긴 재산과 물려받을 후손이 누구일까에 쏠린 관심 탓이다. 막대한 재산을 탕진했다는 후손 얘기도 듣기 힘들다. 신탁이 힘을 발휘한 덕분이다.

영화에서 ‘유언’은 주인공의 인생을 바꿀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만큼 유언은 중요하고 사적인 기록으로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 가치는 상속을 의미하고, 신탁이 끼어든다. 역사적인 인물이나 유명 인사의 경우 종종 비공개 원칙인 유언이 공개되는 경우가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런 유언에 쏠리는 관심은 누구에게 얼마만큼의 재산을 주느냐다. 결국 상속이다. 고대 이집트 파피루스에도, 고대 바빌로니아 함무라비법전에도 재산 상속 의지가 담겨 있다.

재미있게도 지난해 일본 미쓰비시 UFJ 신탁은행이 재산을 상속하려고 유언하고, 신탁을 활용했던 유명인의 사례를 정리해 공개했다. 내용을 살펴봤다.

먼저 월트 디즈니(1901~1966, 애니메이션 제작자이자 프로듀서)다. 월트 디즈니는 애니메이션을 하나의 문화 장르로 구축했고, 캐릭터 산업이라는 새로운 사업 영역을 개척한 인물이다. 미국 테마파크 디즈니랜드를 세운 ‘미국 영화계의 별’이기도 하다.

디즈니랜드의 주주는 회사 일에 관여하기 싫어했던 아내를 빼고, 디즈니의 두 딸과 동서인 빌 코트렐이 전부였다. 월트 디즈니는 유언장에서 자신의 재산 전체를 신탁으로 관리하도록 지정했다. 재산 45%는 자신의 아내를 수익자로, 재산 10%는 친척들을 수익자로 지정하고, 나머지 45%에 대해서는 자선단체를 수익자로 둬 신탁 배당금 대부분이 캘리포니아 예술학교에 기부되도록 했다.

엘비스 프레슬리(1935~1977, 가수)도 리스트에 올랐다. 로큰롤의 제왕, 최초이자 최고의 록스타, 대중음악사 불멸의 아이콘 등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붙는 엘비스 프레슬리. 그는 1950~1970년대까지 수많은 히트곡을 내며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고, 로큰롤이 고유한 음악 장르로 자리 잡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1977년 8월, 42세 나이로 갑자기 사망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사망하기 6개월 전에 작성한 마지막 유언장에서 자신의 부채를 갚고 남은 재산은 신탁으로 관리하라고 밝혔다. 그는 회계사와 전처를 수탁자로 지정하고, 당시 11살이던 딸과 할머니, 아버지를 수익자로 지정했다.

유언장 하면 마이클 잭슨(1958~2009, 가수)을 빼놓을 수 없다. 엄청난 재산에 복잡하게 얽힌 가족까지. 유언장을 세 번이나 고친 이유일지도 모른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은 2009년 6월, 50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 이후 수많은 가십성 기사가 나왔다. 정확한 액수는 알 수 없을 정도로 재산이 많았다. 2002년 7월 7일에 작성한 마지막 유언장에서 빚을 갚고 남은 재산은 그가 살아 있을 때 설정한 신탁재산에 넣도록 했다. 이 신탁 중 20%는 아동 관련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남은 금액은 어머니와 3명의 자녀를 위해 설정돼 관리하도록 했다.

문학작품에서도 신탁의 흔적이 발견된다. 신탁 하면 일단 영국이 원조 아니겠나. 대표적으로 셰익스피어 [베니스의 상인](1596~1597)이 그렇다. [베니스의 상인]은 16세기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의 극작가인 셰익스피어의 5대 희극 중 하나다. 셰익스피어는 신탁의 초기 형태인 *유스(USE)가 성행하던 시기에 살았다.

*유스(USE): 약 1000년 전 중세 영국의 토지 이용제도. 토지 소유자가 자신이 지정한 목적에 따라 토지를 관리 또는 처분할 것을 조건으로 관청이나 제3자에게 자신의 토지를 양도하는 계약이다. 중세 초기에는 교회 신도들이 종교적 목적으로 토지를 기증하려 할 때 이용했다. 당시 성당은 청빈의 의무 때문에 재산을 소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래 목적보다는 봉건영주들의 과도한 세금 요구나 재산몰수를 피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이탈리아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는 샤일록에게 담보로 맡긴 배가 모두 난파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모든 재산을 잃게 되어 살 1파운드를 떼주어야 하는 위기에 처한다. 이 소식을 듣고 포샤가 재판관으로 변장해 “살은 주되 피를 흘려서는 안 된다”고 선언함으로써 샤일록은 패소하고 재산을 몰수당한다. 그리고 샤일록의 재산을 압수한 안토니오는 그중 절반을 샤일록의 딸에게 남길 것을 제안하는 데, 여기서 ‘신탁’이 나온다.

마크 트웨인 『톰 소여의 모험』(1872~1875)도 해당된다. 『톰 소여의 모험』은 ‘미국 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크 트웨인의 대표작으로, 1876년에 출간된 이래 줄곧 세계적인 스테디셀러다. 미시시피강 변의 작은 마을에 사는 허클베리 핀과 단짝은 우연히 인디언 조가 마을의 의사를 칼로 찔러 죽이는 장면을 목격한다. 이 사건의 재판에서 톰과 허클베리 핀은 진범이 인디언 조라는 것을 밝혀 하루아침에 영웅이 된다. 결국 조는 시체로 발견되고, 조가 감추어두었던 보물은 톰과 허클베리 핀이 나눠 갖게 된다. 당시 미성년자는 많은 돈을 가질 수 없었기에 어른들이 그 보물을 신탁으로 관리한다. 『톰 소여의 모험』은 당시 미국 사회에 이미 미성년자를 위한 금융안전 시스템으로 신탁이 쓰였음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비교적 신탁이 유럽보다 미국에서 빨리 자리 잡은 듯 보인다. 이유가 있다. 영국에서는 신탁이 중세의 토지법과 복잡하게 얽혀 있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영업신탁은 발달하지 못했다. 반면 미국에서는 신탁재산이 토지·귀금속보다 금전이나 유가증권인 경우가 많았다.

신생국인 미국에선 지연과 혈연이 없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주변에 신뢰할 수 있는 관리자가 없었기에 이를 대신할 수 있는 관리자가 필요했다. 공신력이 있는 법인 조직인 은행이나 보험회사가 수탁자나 유언집행자가 돼 신탁이 하나의 사업화됐다. 미국에서 최초로 신탁업 면허를 받은 신탁회사는 1822년 뉴욕의 파머스 파이어인슈어런스 앤드 론 컴퍼니(Farmer’s Fire Insurance and Loan Company)다. 초기의 신탁사업은 생명보험에 가입한 사람이 사망한 후 유족들을 위해 보험금을 관리하는 것에서 출발해 1930년대에 미국이 농업경제에서 산업경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철도회사와 광산회사에 필요한 신규 자금을 조달하는 수단이 되면서 크게 발전했다. 여기에 상업은행까지 신탁업에 가세하면서 미국 유명 인사도 신탁을 손쉽게 활용할 수 있게 됐다. 더불어 미국은 전 세계에서 신탁업이 가장 발달한 나라가 됐다.

- 배정식 KEB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장

202003호 (2020.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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