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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명품 시장의 신흥 강자들] 박경훈 트렌비 대표 

한국에서 현지 할인가로 명품 사는 법 

개발자가 명품 비즈니스에 뛰어들자 업계 이목이 쏠렸다. IT 기술로 무장한 이 기업은 ‘패션테크’의 대표 주자로 불리며 무서운 속도로 성장 중이다. 성장세를 눈여겨본 다수의 VC로부터 총 70억원의 투자금도 유치했다.

옥스퍼드 졸업생, 최연소 마이크로소프트 MVP 프로그래머, 한국 최대 규모 개발자 커뮤니티 운영자, 프로그래밍 도서 저자, 앱 개발 스타트업 캠든소프트 대표…. 개발자로서 성공 가도를 달리던 한 청년이 2016년 돌연 명품 산업에 도전장을 던졌다. IT 기술을 활용해 ‘전 세계 최저가 명품을 찾아주겠다’는 포부였다.

그로부터 1년 후인 2017년, 트렌비라는 명품 판매 플랫폼이 세상에 등장했다. 이미 많은 명품 플랫폼이 패션피플을 잡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시기였다. 하지만 ‘테크’라는 차별화된 무기를 장착한 트렌비는 후발 주자란 말이 무색하게 순식간에 성장했다. 창업 첫해인 2017년 91억원이었던 매출액이 이듬해 254억원으로 껑충 뛰었고 2019년엔 매출 451억원을 달성했다. 3년간 누적 거래액은 700억원에 이른다. 플랫폼 경쟁력의 핵심 지표로 여겨지는 월간 순이용자(MAU)도 첫해 32만 명에서 지난해 12월 195만 명으로 6배 이상 치솟았다.

핵심 서비스는 창업 초기부터 구상했던 ‘전 세계 최저가 스캐너(검색)’다. 트렌비의 기술력이 가장 많이 녹아든 서비스이기도 하다. 트렌비는 하루에 250만 개가 넘는 명품을 검색해 전 세계 최저가를 찾아 구매까지 도와준다. 가장 저렴한 항공권을 찾아주는 앱 ‘스카이 스캐너’와 비슷하다. 박경훈(39) 트렌비 대표는 “자체적으로 개발한 ‘트렌봇’이란 검색엔진으로 하루 세 번, 제휴 브랜드의 온오프라인상 최저가를 찾는다”며 “할인 행사는 물론 재고와 환율 등을 파악해 정보화한다”고 설명했다.

‘정말 최저가가 맞느냐’는 질문에 박 대표는 “우리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브랜드나 아웃렛 기준으론 그렇다”고 답했다. 이어서 그는 “국내 병행수입·구매대행 업체의 판매 가격까지 모니터링하기 위해 지난달부터 병행수입 업체와의 제휴도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제품의 다양성도 트렌비의 강점으로 꼽힌다. 명품 브랜드는 국가마다 유행하는 품목을 선별해 선택적으로 유통하는데, 트렌비는 전 세계 온오프라인 판매 채널을 대상으로 정보를 얻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제품도 소개할 수 있다. 박 대표는 “예를 들어 구찌가 전 세계적으로 판매하는 품목이 5000개라면 한국에는 500개만 유통한다”며 “트렌비는 ‘트렌봇’으로 나머지 4500개 제품의 정보까지 찾아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트렌비에서 확보한 브랜드는 구찌, 루이비통, 프라다, 샤넬, 에르메스 등을 포함해 5000여 종이며 제품 수는 150만 개 이상이다.

트렌비는 ‘패션테크’를 실현하기 위해 트렌봇의 기술 고도화에 초점을 맞추었다. 트렌봇 안에는 크게 두 가지 기능이 있다. ‘트렌봇 스캐너’와 ‘트렌봇 AI’다. 트렌봇 스캐너는 여러 사이트를 다니며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역할, 트렌봇 AI는 세일가 등을 모니터링하면서 가격경쟁력 추이 등을 분석하는 역할을 한다.

“트렌비의 강점은 기술력 아니겠어요. 기술력을 발휘해 다른데선 볼 수 없는 고급 정보를 제공하고 사용 편의성을 높여나갈 생각입니다. 우선 트렌봇 스캐너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합니다. 최저가 스캐너와 이미지 스캐너 기능이에요. 최저가 스캐너는 구매자가 사고 싶은 상품을 올려두면 해당 상품의 가격 변화를 주기적으로 구독할 수 있는 기능입니다. 이미지 스캐너는 구글의 이미지 검색 기능처럼 상품명을 모를 때 이미지로 검색할 수 있습니다.”

트렌비에서 진행하는 모든 기술개발 과정엔 박 대표가 ‘개발자’로 참여한다. 15년가량을 개발자로 이름을 날린 그에겐 너무 당연한 일이다. 박 대표는 2002년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 대신 게임 회사에 입사했다. 직접 개발한 코딩 프로그램으로 지원했는데 덜컥 합격한 것이다. 이후 박 대표는 국내 최대 규모의 개발자 커뮤니티인 ‘훈스닷넷’을 만들어 운영하고 10여 권에 이르는 프로그래밍 관련 책을 내는 등 커리어를 쌓았다.

검색엔진 고도화로 정보력 강화


“더 발전하려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2009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당시 해외에선 애플의 아이폰과 앱스토어가 센세이셔널했는데 개발자에겐 ‘풍요의 시대’가 열린 거나 다름없었죠. 공부를 잠시 미루고 아이디어를 앱으로 구현해주는 스타트업 ‘캠든소프트’를 차렸습니다.”

캠든소프트는 KBS, MBC를 비롯해 유명 기업이 앱 개발을 맡길 정도로 업계에서 인정받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사업성은 떨어졌다. 박 대표는 미련 없이 캠든소프트를 매각하고 새로운 사업 아이템 구상에 나섰다.

“런던에 있는 아웃렛 ‘비스터빌리지’를 방문했을 때였어요. 그날따라 캐리어를 끌고 쇼핑 온 중국인들이 눈에 띄더군요. ‘저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뭘까’ 궁금했습니다. 이유를 찾으려 명품 관련 정보를 크롤링(웹을 탐색하는 컴퓨터 프로그램)해보니 명품은 현지에서 직접 구매할 때 가장 저렴하더라고요. 답은 ‘가격’이었던 거죠.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명품을 찾아 온라인으로 판매하면 수요가 엄청나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시작은 혼자였다. 박 대표는 영국에서 전 세계의 실시간 스포츠 게임 정보를 모아 보여주는 개발팀을 이끌었던 경험을 살려 온라인상에서 명품 가격 데이터를 수집하는 검색엔진부터 만들었다. 3년이 지난 지금, 트렌비엔 많은 변화가 생겼다. 영국에 있던 본사를 한국으로 옮겨 왔고 혼자 쓰던 사무실엔 100명이 넘는 직원이 함께 근무한다. 영국, 독일, 미국에 자회사도 두고 있다. 박 대표는 “자회사에선 현지의 작은 아웃렛부터 백화점, 브랜드 본사까지 콘택트해 파트너십을 확장하는 업무와 주문이 들어온 상품을 구매해 가품 검수, 배송하는 일을 한다”고 설명했다.

트렌비 이후 업계엔 패션테크를 표방하는 유사 플랫폼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브랜드에 대한 취향 변화, 즉 정통적인 럭셔리 브랜드에서 개성 강한 브랜드로 옮겨가고 있는 변화를 잘 감지하고 대처해야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박 대표는 코로나19 유행 이후 명품 온라인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코로나19 이전에도 업계에선 2025년 명품 시장에서의 온라인 채널 비중이 25%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며 “플랫폼과는 거리가 있던 50대 이상의 연령층까지 온라인 구매 경험을 쌓고 있기 때문에 이 수치는 더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데뷔 4년 차에 접어든 트렌비의 최종 목표는 ‘패션계 아마존’이 되는 것이다. “이미 3년치 로드맵을 세워뒀어요. 첫 번째 과제가 기술 외적인 부분을 강화하는 거예요.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브랜딩이죠. 지금껏 트렌비는 제가 잘하는 분야를 중심으로 치우쳐 성장해왔어요. 균형 있는 성장을 위해 여러 방면에서 힘써보려 합니다.”

- 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사진 김현동 기자

202006호 (2020.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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