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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준 명지병원 이사장 

감염병 전문가의 꿈 

서울대 의대 83학번 출신 중엔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 양윤선 메디포스트 대표 그리고 이왕준 명지병원 이사장이 있다. 이들은 코로나19 사태로 휘청거렸던 우리 사회에서 버팀목이 되어 활약 중이다. 특히 여러 차례 감염병 위기 때마다 임상 최전선에서 싸웠던 이왕준 이사장은 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왕준 명지병원 이사장은 서울대 의대 83학번 출신으로, 동기 중엔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 양윤선 메디포스트 대표가 있다. 특히 이 이사장은 여러 차례 감염병 위기 때마다 임상 최전선에서 싸웠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대한병원협회 코로나19 비상대응본부 실무단장, 코로나19 치료제·백신개발 범정부 지원단 방역물품·기기 분과장, 질병관리본부의 감염병 전문가위원회 일원, 캔서롭(질병진단키트사) 대표….’

이왕준(56) 명지병원 이사장이 쓴 감투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이하 코로나19)가 지난해 말 중국 우한(武漢)에서 발생한 이후 확산하면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선언되고 전 세계가 난리를 겪었다. 한국도 예외일 수 없었고, 이 이사장이 앞장서 활약하고 있다. 코로나19 방역 최전선에 서 있는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과 서울대 의대 83학번 동기다.

“오는 일 막지 말자는 생각으로 일을 맡다 보니 타이틀 부자가 됐습니다.(웃음) 맘에 드는 직함을 꼽자면 ‘명지병원 이사장’이고 제일이고, 다음은 ‘대한병원협회 코로나19 비상대응본부 실무단장’ 입니다.”

이 이사장의 말이다. 하지만 말이 쉽지 감투에 따른 책임은 꽤 무겁다. 다른 병원이 마다하는 코로나19 확진자의 응급 수술을 명지병원이 도맡고 있어서다. 미국에서도 화제가 됐다. 지난달 25일 재미 교포 여성이 명지병원 ‘음·양압 듀얼 수술장’에서 성공적으로 수술을 받았다. 이 수술실에서는 환자가 숨을 내쉴 때 나오는 ‘바이러스 공기’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 이 환자는 임신 후 초음파 검사에서 자궁 내 임신 과정 중 영양막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증식하는 질환인 ‘포상기태(Hydatidiform Mole)’ 진단을 받았다. 포상기태는 치료를 미루면 악성종양으로 발전할 수 있어 빨리 수술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 뉴저지주 카운티 주립대학을 비롯해 여러 병원이 코로나19 감염을 우려해 수술을 거부했고 결국 명지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다음 날 저녁에도 명지병원에서 100㎞ 떨어진 안성의료원에서 온 복막염 환자를 긴급 수술했다. 경기 서부, 북부를 통틀어 음압 수술실을 운영하는 곳은 명지병원이 유일하다.

이런 시설은 남다른 노력의 산물이다. 집도의, 마취과 전문의, 간호사 등 수술실에 들어오는 모든 의료진은 레벨 D 방호복을 입어야 한다. 방호복을 입은 응급실 의료진, 이송 요원, 소독 요원, 폐기물 처리원 등 총 27명이 필요하다. 수술 준비부터 수술 후 소독까지 12시간이 걸린다. 평소보다 3~4배 많은 인력과 시간이 드는 셈이다. 하지만 병원이 받는 수술비는 일반 수술과 같은 60만원 남짓. 코로나19 환자를 받을수록 병원이 손해 보는 구조다.

이 이사장은 “코로나19 위기를 겪으며 K바이오의 위상이 한껏 높아졌다지만, 의료계 현실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고민이 많아진다”며 “타이틀 탓에 병원 식구들이 번아웃(burn out, 어떠한 활동이 끝난 후 심신이 지친 상태)에 빠지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지만, 우리가 안 하면 그 환자들은 갈 곳이 없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어떤 바이러스가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가면 끝나는 유행도 아니라고 했다. 이어 그는 “코로나19를 비롯한 감염병이 상존하는 ‘뉴노멀’ 시대가 도래했다”며 “감염의 위험 때문에 신속하게 치료와 수술을 받지 못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음압수술장 2개와 음압 혈관조영실을 운영하고 있지만, 음·양압 듀얼 수술장을 늘려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감염병 시대를 훨씬 이전부터 예견했다. 현재 대한병원협회에서 코로나19 비상대응본부 실무단을 이끌고 있지만, 2009년엔 신종플루 상황실장, 2015년엔 메르스 대책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질병관리본부의 전문가위원회 위원으론 벌써 11년째 일하고 있다. 명지병원이 세간에 알려진 것도 2009년쯤부터다. 이 이사장은 “명지병원을 띄우려 감염병 일선에 뛰어든 게 아니라 당시 권역응급의료센터, 감염병 거점병원 운영권을 다른 병원이 반납해 우리가 하겠다고 한 것”이라며 “외래, 입원은 물론 응급실 환자마저 줄어 병원 경영이 어려워질 수도 있었지만, 그때도 갈 곳 없는 환자를 생각해 내린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물론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명지병원은 국가가 지정한 음압격리 병상을 운영하는 전국 29개 병원 중 하나다. 이 이사장은 “국내 병원 최초로 병원 내 코로나 대응 상황실도 갖추었는데, 지난 1월 20일 국내에서 첫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한 다음 날 바로 설치했다”며 “명지병원에서 첫 확진자(3번 환자, 1월 26일)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확진 환자 39명을 받아 치료했거나 하고 있다”고 말했다. 명지병원은 민간병원 최초로 공공의료사업단도 꾸렸다. 2012년 공공의료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갖춘 조직이다. 2013년에 경기 북부권역 응급센터로 지정, 같은 해 국가지정 격리병상 운영 병원, 경기도 거점 재난의료분야 병원은 어쩌다가 얻은 ‘타이틀’이 아닌 셈이다.

이런 타이틀 뒤엔 그의 노련한 경영 능력이 자리하고 있다. 이 이사장은 병원계에서 인수합병(M&A) 귀재로 통한다. IMF 금융위기 직후인 1998년, 34살 나이에 인천사랑병원(전 세광병원)을 인수했고, 2008년 리먼브라더스발 금융위기가 터진 이듬해 명지병원을 넘겨받았다. 그는 “3억원을 빌려 200여 병상 규모인 인천사랑병원을 인수했고, 이어 500여 병상의 명지병원까지 인수했다”며 “의대를 졸업한 1992년에 의학 전문지인 [청년의사]를 창간해 의료 현실을 지적하는 글을 내면 ‘현실’을 모른다는 얘길 많이 들었던 터라 병원을 직접 운영해 우리 구상을 보여주겠다며 친구들과 뛰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인천사랑병원장 시절엔 패기로 버텼다. 쥐꼬리만 한 월급(80만원)을 받고 100일간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며 응급실 당직을 자청했다. 이렇게 아낀 돈으로 유능한 의료진을 영입하고 최신 의료장비도 샀다. 그렇게 환자가 몰리며 3년 만에 빚을 갚았다. 하지만 2009년 명지병원 인수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자칫하면 완전히 망할 수도 있었다. 이 이사장은 “대기업이 인수를 포기한 명지병원이 매물로 나와 잡으려 하니 자문변호사는 계약금 조로 100억원을 고스란히 날릴 수도 있다며 으름장을 놨다”며 “하지만 600병상 규모의 대학병원급을 운영해봐야겠다는 목표에 달려들었고, 인수 6개월 만에 중도금 140억원을 다 갚았다”고 했다.

결국 병원의 ‘경쟁력’이 가른 성과였다. 이 이사장은 미국에서 존스홉킨스대병원과 함께 세계 병원 평가에서 1, 2위를 다투는 158년 역사의 메이오클리닉에 주목했다. 이 이사장은 “인구 10만 명인 미네소타주 로체스터시 허허벌판에 차려진 이 병원엔 세계 각지의 왕족부터 기업 오너들이 찾아와 치료를 받는다. 심지어 이곳은 살인적인 의료비로 악명이 높은 미국에서도 비영리법인”이라며 “매년 매출 10조원 이상, 순이익 4000억원 이상을 남기는데 정부, 사보험, 외국인 환자, 기부금에서 수익이 나온다. 이렇게 번 돈은 병원에 재투자되는데 여기엔 ‘환자’, ‘팀워크’를 최우선으로 하는 철학이 깔려 있다”고 말했다.


메이오클리닉은 단순히 진료 역량뿐만 아니라 공간에도 신경을 쓴다. 별로도 구축한 디자인센터는 병원을 환자 입장에서 가장 편안한 진료 환경이 될 수 있도록 꾸민다. 환자가 집이나 직장에 있으면서 스마트폰이나 비디오를 활용해 질병을 치료·예방·관리하는 시스템,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노년층이 집처럼 편안하게 느낄 수 환경 등이 모두 이들 작품이다. 이 이사장은 메이오클리닉의 이런 노력을 ‘케어디자인’ 혁신 사례라고 추켜세웠다.

2012년 문을 연 명지병원 건강보험검진센터 ‘숲마루’가 메이오클리닉 환경과 똑 닮아 있는 이유다. 660㎡ 규모의 이 센터엔 수많은 나무와 돌, 식물로 이뤄진 진짜 숲을 조성했다. 부호들만 오는 곳도 아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무료로 받을 수 있는 일반검진, 암 검진 등을 모두 이곳에서 받을 수 있다. 이 이사장은 “아무리 의사가 치료와 진료를 잘해도 병원 서비스와 환경이 엉망이면 다시 찾지 않는다. 병원이 그만큼 많다”며 “우린 환자들에게 최고의 의료진은 물론 남다른 진료 서비스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취지에서 과감히 투자했다”고 강조했다.

실제 명지병원은 2018년 메이오클리닉과 파트너십을 맺었다.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유일하게 파트너십을 맺은 곳이다. 그는 “이번 코로나19 사태 때도 명지병원 의료진은 메이오클리닉 의료진과 웨비나(웹세미나)를 열었다”며 “응급센터 건물을 용도별로 나눈 방역관리 시스템,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진단시스템을 개발한 사례를 공유할 정도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명지병원의 ‘음·양압 듀얼 수술장’ 내부
그의 열정은 새로운 의료기술 개발로 이어졌다. 지난해 12월 은사인 서정선 마크로젠 회장이 운영하던 코스닥 상장업체 MG메드를 인수했다. 회사 이름을 ‘캔서롭’으로 바꾸고 유전체 분석과 분자진단, 면역치료제 개발 등 의학 관련 신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뒤 자체 진단키트로 유럽인증(CE)을 받고 수출에 나섰고,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사용승인도 기다리는 중이다. 이 이사장은 “기존 병원 시스템을 넘어 미래 헬스케어 서비스의 모델을 만들려면 결국 임상에서 쌓은 노하우를 바이오 연구개발(R&D)에 쏟아부어야 한다”며 “명지병원, 캔서롭을 필두로 세포치료제 개발 기업 MJ셀바이오까지 두고 항암면역세포치료제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누군가는 너무 일을 크게 벌린다고 할지 모르겠다. 실제 그를 향해 무모한 짓을 한다고 손가락질을 하는 이가 많았다. 이 이사장은 “명지병원이 대형병원과 경쟁해서 살아남을 수 있으려면 우리가 잘하는 걸 더 잘해야 한다”며 “오픈 마인드로 해외 모범사례를 받아들이고, 의료기술 연구에도 힘써야 진짜 선도하는 병원으로 자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인터뷰는 2시간을 넘겼다. 얘기가 오가는 중에도 그의 스마트폰은 끊임없이 울리며 다음 일정을 재촉했고, 그는 쏟아지는 SNS 메시지에 일일이 대응했다. 시쳇말로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이 이사장이 ‘환자제일주의’를 외치며 그간의 활동을 설명할 땐 1987년 민주화 항쟁 당시 학생운동을 했던 ‘청년 이왕준’이 오버랩됐다. 그만큼 에너지가 넘쳤다. 사회제도를 바꾸려고 뛰어든 학생운동이었지만, 정치가 새로운 걸 만들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미련 없이 본업에 몰두했다. 각자의 전문 영역에서 혁신적인 모델을 만드는 것이 진정한 변화를 꾀하는 길이라는 믿음에서다. 코로나19 사태는 다시금 그의 의지를 불태우는 계기가 됐다. 이왕준 이사장은 인터뷰를 마치며 이렇게 말했다.

“‘민주화’를 부르짖던 우린 젊었고, 급진적이었습니다. 그땐 제도를 봤는데, 바이러스 사태를 겪으면서 더 큰 줄기를 보게 됐어요.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의미를 주려고 나타난 건 아니지만, 우리에게 ‘고난의 의미’를 묻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바이러스를 안 게 150년, 항생제가 개발된 것도 100년이 채 안 됐습니다. 감염병이 끝난 줄 알았는데 새 바이러스가 무수하게 나왔죠. 큰 변수가 들어오면 예측 모델도 소용없습니다. 앞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수많은 물음과 답이 나오겠죠. 저는 의료 환경 개선과 기술 개발에서 답을 찾겠습니다. 그게 제 역할이자 목표입니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사진 김경빈 기자

202007호 (2020.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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