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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럭셔리 산업의 리더들(15) 김성운 스카발 코리아 대표 

“특별한 가치 추구가 럭셔리의 본질” 

대한민국 럭셔리 시장을 이끌고 있는 전문가를 만났다. 영국의 명품 테일러링 브랜드 스카발을 국내에 소개하고 있는 김성운 대표다. 지난 23년간 다양한 브랜드에서 유통 전문가로 활약해온 그에게 한국 명품 시장의 미래를 물었다.

▎서울 청담동 스카발 플래그십 매장에서 만난 김성운 대표.
스카발(SCABAL)은 창립자 오토 헤르츠가 1938년 벨기에에 처음 문을 연 원단 회사에서 출발했다. 브랜드명은 ‘영국·벨기에·독일·룩셈부르크 상인 협회(Societe Commerciale Anglo Belgo Allemande et Luxembourgeoise)’의 머리글자에서 따왔다. 스카발이 유럽 각지에 원단 생산기지와 유통망을 구축한 선구자적 브랜드이자 글로벌 기업의 정체성을 추구하는 브랜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번치 북(Bunch Book, 다채로운 컬러와 무늬의 원단을 손바닥 크기로 잘라 엮은 책)을 최초로 제작한 브랜드로도 유명한 스카발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천연 소재인 비쿠냐(Vicuna)를 비롯해 캐시미어, 카멜, 실크 등 최상의 원단 컬렉션을 갖추고 있다. 현재 브리오니, 에르메스, 프라다, 구찌, 톰포드 같은 유명 브랜드에 원단을 공급하고 있으며, 전 세계 65개국에 수출한다.

1972년 현대 남성복의 발상지인 런던 새빌로에 쇼룸을 연 스카발은 현지 테일러들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영국식 테일러링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스카발의 MTM(Made to Measure) 서비스는 브랜드가 가진 고유의 이미지를 고객의 몸에 맞게 표현하는 특화된 작업이다. 지난 80년간 MTM 서비스를 제공해온 브랜드답게 새빌로 장인들의 특별한 노하우를 담은 완성도 높은 패턴을 보유하고 있다.

매 시즌 브랜드만의 소재와 컬러, 무늬가 담긴 컬렉션으로 포멀 웨어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는 스카발은 전 세계 유명 인사들과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영화 [대부]의 말런 브랜도를 비롯해 [카지노]의 로버트 드니로, [타이타닉]의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007 시리즈]의 피어스 브로스넌과 다니엘 크레이그가 스카발의 턱시도와 슈트를 착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또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스카발 애용자로 알려져 있으며,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오스카 시상식에 스카발 턱시도를 입고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최근 초현실주의 미술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에서 받은 영감을 모티브로 완성한 원단 컬렉션 ‘비전(VISION)’으로 화제를 모은 스카발은 2017년 서울 청담동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고 국내 남성복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런던, 파리, 브뤼셀, 제네바, 상하이에 이어 6번째로 문을 연 이 매장에서는 체계적인 맞춤 서비스와 스타일링 어드바이스를 받을 수 있다.

백화점 명품관에서 잔뼈 굵은 유통 전문가


▎1938년 스카발이 최초로 제작한 번치 북 (Bunch Book).
지난 4월, 서울 청담동 스카발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김성운(49) 대표를 만났다. 지난 23년간 명품업계에서 유통 전문가로 종횡무진 활약해온 김 대표는 “명품이 되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 꾸준하게 고객들의 인정과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브랜드 고유의 DNA가 있어야 한다”며 “지난 82년간 패밀리 비즈니스로 일관된 철학을 고집스럽게 이어온 스카발이야말로 그런 조건을 충족하는 브랜드”라고 말했다.

“명품으로 인정받으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해요. 우선 오랜 기간 꾸준하게 수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아야 하죠. 다른 하나는 고유의 DNA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요. 자신만의 색깔이 분명한 것을 의미해요. 대부분의 명품은 자신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코닉한 아이템을 하나씩 갖고 있으며, 이를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면서 성장해왔어요. 그런 측면에서 스카발은 명품이 될 수 있는 요건을 충분히 갖추었다고 생각해요. 오랜 시간 품질 좋은 원단을 생산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온 고집스러운 브랜드죠. 아이템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명품이 대중의 지지를 받으려면 무엇보다 전문가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과거에는 왕이나 귀족 같은 상류층의 전폭적인 지지가 시작점이 될 수 있었죠. 역사적으로도 루이비통이나 까르띠에 같은 브랜드는 상류사회의 라이프스타일을 주도하면서 오늘날 명품 브랜드 반열에 올랐죠. 최근 양상은 과거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는데요. 특히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인플루언서 같은 새로운 전문가의 영향력이 커지는 추세예요.”

부산대에서 의류학을 공부하고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패션 마케팅을 전공한 김 대표는 23년간 럭셔리 패션 브랜드를 두루 섭렵한 유통 전문가다. 1997년 갤러리아 명품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김 대표는 샤넬, 에르메스, 루이비통, 까르띠에, 구찌, 페라가모 같은 명품 브랜드들이 입점해 있는 럭셔리 하우스 브랜드 담당자를 역임했다.

또 브리오니, 지방시, 꼼데가르송, 알렉산더 맥퀸, 존 갈리아노, 에트로, 막스마라 등 다양한 브랜드의 국내 론칭을 주도했다. 이후 CJ오쇼핑의 미디어 커머스 디렉터, 이새FnC 해외사업부 디렉터 등을 거처 2017년 스카발 코리아 대표에 취임했다. 김 대표는 “대학 시절부터 패션 비즈니스에 관심이 많았던 것이 명품업계와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됐다”며 “그간 명품 시장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초창기 명품 시장은 ‘보따리상’들이 주도했다고 볼 수 있어요. 해외 유명 제품을 소량으로 들여와 일부 부잣집 사모님들에게 대면 판매하는 방식이었죠. 한마디로 소수의 부유층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이 때문에 정보도 매우 제한적이었고 가격도 비쌀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던 것이 1980~90년대 해외 제품들의 수입이 원활해지면서 수많은 브랜드가 앞다퉈 국내 시장에 들어왔는데요. 특히 1990년대 후반부터 생겨난 국내 에이전시를 통해 명품 브랜드들이 속속 진출하면서 명품들이 한곳에 모여 있는 형태의 백화점도 생겨나기 시작했죠. 갤러리아 명품관이 시초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때부터 국내 명품 시장의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과거와 달리 공급이 넘쳐나다 보니 선택이 폭이 넓어지고 경쟁도 점점 치열해진 거죠. 이런 격변기를 거쳐 지금은 안정화에 접어들고 있는 상황이에요. 경제력만 웬만큼 뒷받침된다면 누구나 루이비통 백 하나 정도는 갖고 있을 정도니까요. 다시 말해 명품의 대중화가 진행되고 있는 건데요. 이는 럭셔리 브랜드들이 전략적으로 나아가는 방향과도 일치해요. 한 가지 덧붙이자면 과거 명품의 소비 주체가 여성 중심이었던 것에 비해 최근에는 젊은 세대로 옮겨가고 있어요. 구찌 같은 브랜드가 젊은 디자이너를 영입한다거나 루이비통이 게임 회사와 협업해 신제품을 선보이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죠. 혼자만의 힘으로 누리던 지위를 협업을 통해 연장해나가고 있는 추세라고 할 수 있어요.”

온라인 채널 확대가 명품 성장의 해법


▎스카발의 2020년 S/S 컬렉션 화보.
취임 이후 김 대표에게 주어진 미션은 글로벌 시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생소한 스카발의 국내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김 대표는 지난 3년간 브랜드를 알리는 데 역량을 집중해왔다. 스카발의 가치와 위상을 유지하면서도 고객들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 중이다. 스타일링 클래스 같은 오프라인 행사는 물론 소셜 미디어를 적극 활용해 브랜드 인지도 제고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 대표는 “최근 패션 마니아들을 중심으로 우리 브랜드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기대된다”며 “이는 패션의 다양성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상류층이나 특정 그룹을 겨냥한 ‘언노운 럭셔리’ 시장이 각광을 받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요. 일반 대중이 범접할 수 없는 극소수 하이엔드 브랜드가 여기에 해당되는데요. 자동차의 경우 람보르기니, 페라리, 롤스로이스 등을 들 수 있죠. 이미 미국이나 일본 같은 해외시장에서는 다양성이라는 이름 아래 언노운 럭셔리 브랜드들이 많이 진출하고 있는 추세예요. 그런 면에서 스카발도 언노운 럭셔리 브랜드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는데요. 패션에 관심 많은 사람들만 알고 있는 게 사실이거든요. 럭셔리의 목적은 특별한 가치 추구에 있다고 생각해요. 남들에게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자리에서 격식을 갖추는 것이라 할 수 있어요. 스카발이 MTM 같은 테일러링을 지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개개인의 취향과 니즈를 중시하기 때문이죠. 규격에 맞춰 대량 생산하기보다 개인의 니즈를 충족해주는데 집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스토리텔링이 생겨나죠. 그것이 원래 럭셔리가 추구했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어요. 최근 마니아들을 중심으로 언노운 브랜드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조만간 다양한 브랜드를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김 대표에 따르면 최근 국내 명품 시장의 미래는 전망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과거에는 트렌드를 예측하고 그에 맞춰 제품을 출시하면 어느 정도는 맞는 분위기였고 소비자들도 트렌드에 따라 소비하는 경향이 강했지만 지금은 무한 경쟁 체제 속에서 정보가 넘쳐나고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정보를 골라내는 것이 더 어려울 정도라고.

“특히 클래식 남성복은 주식처럼 경기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카테고리인데요. 지출 순위에서 항상 밀리고 제품을 구입할 때도 배우자에게 맡기는 경향이 강해요. 또 캐주얼을 선호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슈트 브랜드가 설 자리가 더욱 좁아지고 있는 상황이에요. 여기에 설상가상 코로나 사태로 상황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요. 이런 난국에는 고객 니즈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클래식 슈트에 뿌리는 두고 있는 스카발도 비즈니스 캐주얼 쪽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어요. 브랜드 본연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신규 고객을 창출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죠. 숨 가쁘게 돌아가는 사회 현상과 패션 트렌드, 고객 니즈에 적절히 대응하는 브랜드만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세월 동안 쌓아온 노하우와 트렌드를 정확히 짚어내는 선구안으로 국내 럭셔리 시장의 꾸준한 성장을 주도하고 있는 김 대표에게 명품 산업의 발전을 위한 해법을 물었다. 그는 “코로나 이후 유통 채널의 변화가 명품업계의 성패를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최근 포스트 코로나에 대한 예측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요. 명품 시장에서는 유통 채널이 가장 큰 화두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온라인 채널의 확대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예요. 얼마 전 디지털 스토어를 열고 이커머스 강화를 선언한 에르메스의 사례가 이를 입증했죠. 밀레니얼 세대가 명품 소비의 주류로 부상하고 있는 만큼 이커머스 럭셔리 시장에 대한 투자가 지속적으로 이뤄진다면 국내 명품 시장이 지금보다 몇 배는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 오승일 기자 osi71@joongang.co.kr·사진 김현동 기자

202007호 (2020.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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