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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열 마리오아울렛 회장 

40년을 지켜온 ‘아울렛 대부’의 고객 제일주의 

다들 안 된다고 기를 쓰며 말려도 끝까지 제 길을 고집하는 고집불통들이 있다. 하지만 때로는 이들의 무모한 도전이 새로운 역사를 써내는 원동력이 되곤 한다. 불 꺼진 구로공단 한쪽에 대형 아울렛 쇼핑몰을 세운 홍성열 회장이 그랬다.

▎마리오아울렛 패션타운 앞에 선 홍성열 회장. 한국 아울렛 20년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IMF 외환위기가 터지자 구로공단 땅 70~80%가 매물로 쏟아졌습니다. 부도로 문을 닫거나 아예 지방으로 터전을 옮기는 기업이 수두룩했죠. 밤이면 사람 구경하기 힘들 정도로 캄캄했습니다. 그 와중에 아울렛과 공장을 겸하는 복합건물을 짓겠다고 나선 거예요. ‘안 그래도 황량한 땅에 백화점이 웬 말이냐’며 만류 일색이었지만 나름대로 확신이 있었습니다.”

불 꺼진 구로공단에 한국 유통산업 최초로 아울렛 쇼핑몰을 세운 홍성열 마리오아울렛 회장의 회고다. 지난 2001년 염려와 우려 속에 닻을 올린 대한민국 최초 아울렛은 20년이 흐른 지금 3관까지 개장하며 사업 영토를 넓혔다. 그 사이 불 꺼진 구로공단은 가산디지털단지와 가산패션 타운으로 변신했다. 오가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슬럼화됐던 지역이 상전벽해를 이뤄낸 건 도전에 주저하지 않았던 홍 회장의 결단이 바탕이 됐다.

충남 당진 출신인 홍 회장은 그 시절 대개가 그랬듯 가진 것 없이 맨손으로 상경했다. 20대 젊은 청년은 1980년 마리오상사라는 이름으로 패션 사업에 뛰어들었다. 형제들에게 빌린 200만원을 들여 편물기 4대로 시작한 사업은 1984년 여성 패션 브랜드 ‘까르뜨니트’ 출시와 함께 전성기를 맞았다. ‘니트는 겨울에 입는 옷’이라는 통념을 깨뜨리며 사계절용 니트를 선보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일본·유럽 등 패션 본고장에서도 앞다퉈 수입할 정도로 디자인과 품질을 인정받았다.

황량한 산업공단이 도심형 패션타운으로

까르뜨니트의 성공과 아울렛 쇼핑몰 개척에 이르기까지 홍 회장의 40년 경영 인생은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파괴적 혁신’의 전형으로 평가받는다.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혁신 기업의 딜레마(The Innovator’s Dilemma)』에서 처음 소개한 파괴적 혁신은 단순하고 저렴한 제품과 서비스로 시장 밑바닥을 공략해 기존 시장을 파괴하고 급기야 시장 전반을 장악하는 전략을 말한다. 기존 강자들이 판에 박힌 고객 니즈에 전전하며 혁신 DNA를 잃어버릴 즈음, 파괴적 혁신으로 무장한 메기가 등장해 업계 판도를 바꿔놓는다는 이론이다. 까르뜨니트와 마리오아울렛이 모두 그랬다. 계절에 구애받지 않는 제품으로 대박 신화를 터트렸고, 입지를 고려하지 않은 유통 혁명은 오늘날 가산디지털단지 일대를 대형 패션타운으로 바꿔놓았다.

패션업계에서 입지를 굳힌 홍 회장이 아울렛 창업에 뜻을 두기 시작한 건 IMF 외환위기 직후였다. 크고 넓은 생산 공장과 매장에 목말라하던 차에 헐값 매물이 쏟아지는 구로공단은 또 다른 기회의 땅으로 다가왔다.

“당시 신림동 사거리에 5층짜리 사옥이 있었습니다. 공장과 디자인실을 겸했는데, 사세가 커질수록 작업 공간이 너무 좁아지는 바람에 이전을 결심했어요. 당시 해외 바이어를 만나러 출장을 많이 다니면서 국내에는 없던 아울렛의 성공 가능성을 눈여겨봤습니다. 우리가 직접 만든 질 좋은 제품을 유통마진을 줄여 저렴하게 판매한다면 분명 반응이 있을 거라 생각했죠.”

문제는 입지였다. 아무리 싸게 나온 땅이라도 유동인구가 사라지다시피 한 황폐한 공단에 대형 쇼핑몰을 짓겠다는 건 누가 봐도 무모한 도박에 가까웠다.

“성공 가능성을 100% 확신한 사람은 저 빼고 아무도 없었어요. 하지만 까르뜨니트 사업에서 얻은 교훈이 저를 이끌었습니다. 좋은 상품은 백화점 화장실 옆에 매대를 들여도 팔린다는 사실이에요. 마리오아울렛 개장 초기에는 푸드코트 입점을 겨우겨우 성사시켰을 정도로 주변 반응이 차가웠습니다.”

‘이 판국에, 더구나 그 땅에 무슨 백화점이냐’는 핀잔이 부러움과 찬탄의 목소리로 바뀌는 데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리오아울렛 개장 후 일주일, 열흘이 지나자 ‘이러다 건물이 무너지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손님들이 무섭게 몰려들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아는 유명 브랜드를 어느 곳보다 싸게 판다는 입소문은 그곳이 구로공단이든 어디든 상관없이 고객을 끌어모았다. 홍 회장이 강조했던 ‘백화점 화장실’ 영업론이 보기 좋게 적중했던 셈이다.

불 꺼진 구로공단에 전에 없던 활기를 불러일으킨 마리오아울렛은 2004년 8월 들어 2관을 열었고, 2012년 9월에 3관을 개점하면서 마리오 패션타운을 완성했다. 현재 마리오아울렛은 평일 10만 명, 주말이면 20만 명 이상이 찾는 패션 메카로 성장했다. 그 사이 인근에는 W몰과 현대아울렛, 롯데팩토리아울렛 등이 잇따라 문을 열며 서울과 수도권을 대표하는 패션 성지로 자리 잡았다.

낡은 규제와 싸워 일군 20년 아울렛 역사


패션과 유통 모두에서 성공을 거둔 40년 경영 인생이 탄탄대로만 걸은 건 아니다. 홍 회장은 “지금이야 ‘아울렛의 대부’라는 명예를 얻었지만, 여기까지 오는 데 이루 말할 수 없는 허들을 넘어야만 했다”고 토로했다. 좋은 제품을 가장 싸게 팔겠다는 정도경영 의지만으로는 부딪쳐야 할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았다는 하소연이다. 대표적인 게 법적 규제다. 애초 구로공단에서 출발한 가산디지털단지는 1960년대 제정한 국가산업단지법의 적용을 받는다. 제조업이 아닌 유통업이 들어설 수 없다는 규제는 홍 회장에게 두고두고 피를 말리는 족쇄였다. 처음 아울렛 문을 열었을 때는 법적 규제를 피하기 위해 쇼핑몰 한쪽에 제조 설비를 들여놓기도 했다. ‘공돌이·공순이’로 상징되던 옛 공단이 첨단 IT산업단지로 변신해갔지만 수십 년 묵은 낡은 법이 발목을 잡는 일은 수시로 이어졌다.

“산업단지공단이 우리와 거래 중이던 시중은행에 ‘마리오와의 입주계약이 해지되니 거래를 중단하라’는 공문을 보낸 적도 있어요. 산업부가 고시를 바꿔 양성화를 추진했다가도, 감사원 지적을 받아 담당 공무원이 징계를 받는 일까지 있었죠. ‘마리오 문을 닫고야 말겠다’는 협박에 자다가도 등줄기에 식은땀을 흘리곤 했습니다.”

홍 회장은 “시행령이 바뀌어 이런 고민을 털어낸 게 불과 5~6년 전”이라며 “3~4년이면 끝냈을 1~3관 개관이 15년이나 걸린 이유”라고 털어놨다.

“좋은 옷 만들고, 유통마진 줄여 값싸게 팔겠다는 데 법과 규정이 뭐 그리 중요할까요? 수십 년 전에 만든 옛날 법에 묶여 15년을 고통받았습니다. 기업도, 기업인도 신나서 밤잠 설쳐가며 일했던 시기가 있어요. 지난 20년간의 성과에 보람을 느끼지만, 힘들고 지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 사이 손해 본 건 결국 애꿎은 소비자죠.”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말처럼 고난은 때로 쓴 약이 되기도 한다. 낡은 규제와 싸웠던 15년 세월은 패션과 유통의 본질을 진득하게 체화한 값비싼 수업이 됐다. 트렌드에 극히 민감한 패션·유통업이라지만 업의 본질을 꿰뚫는 홍 회장만의 경영 원칙이 정립된 시기였기 때문이다. 홍 회장은 한국의 유통산업이 포화를 넘어 과잉 상태에 접어들었다며 안타까워했다. 동네마다 마트와 백화점이 들어선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2·3관 개관에 앞서 시장조사에 나섰어요. 유통업체가 너무 많더군요. 동네마다 백화점과 마트가 몇 개씩 들어섰고, 그러다 결국 문 닫는 곳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영등포에 이미 터를 잡고 있는 백화점이 있다면, 경쟁사는 목동에 한 개 여는 식이 돼야 합니다. 현실은 어떨까요? 영등포~목동 사이에 있는 백화점만 5개가 넘어요. 마트는 더하고요. 이런 낭비가 없습니다.”

홍 회장은 최근 오프라인 유통 트렌드로 급부상한 교외형 대형 아울렛에도 박한 평가를 내렸다. 이미 차고 앉을 수 있는 입지가 포화된 상황이라 사업을 확대할 부지 자체가 부족해지면서 1시간씩 자가용을 끌고 가야 하는 외곽에 아울렛을 지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샐러리맨들이 제 차를 끌고 가서 뭐라도 건져야 하는 게 지금의 교외형 아울렛입니다. 대중교통으로는 접근할 수가 없어요. 땅덩이가 큰 미국 같은 곳이라면 모를까, 대중교통망이 발달한 한국에서 굳이 멀리 돌아갈 필요가 있을까요? 일본만 해도 역 근방에 마트와 백화점, 아울렛이 몰려 있어요.”

홍 회장은 대형 교외형 아울렛의 상품 구색에도 쓴소리를 던졌다. ‘프리미엄’ 아울렛이라는 간판에 걸맞게 명품 브랜드를 들여와야 하는데, 아울렛을 찾는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추려면 결국 몇 년씩 묵은 상품을 들여놓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막상 가보면 건질 게 별로 없다’는 평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게 현재 교외형 아울렛의 현실이에요. 마리오는 철 지난 명품 대신 ‘싱싱한’ 국내 브랜드를 들여놓습니다. 1관은 여성복, 2관은 스포츠·아웃도어, 3관은 쇼핑과 생활을 함께할 수 있는 몰개념으로 세분화한 것도 철저하게 고객 편의를 위한 결정이죠.”

남들과는 다른 차별화가 성공의 열쇠


▎1986년 까르뜨니트 제품의 일본 수출을 앞두고 포장 박스 앞에서 직원들과 기념 촬영에 나선 홍성열 회장(가운데).
철저하게 고객에게 맞춘 영업·판매 전략은 지금까지 국내에선 볼 수 없었던 머천다이징(MD, 상품화계획) 사례를 이끌기도 했다. 기업관이 대표적이다. 홍 회장은 국내 대형 쇼핑몰에선 처음으로 특정 브랜드를 주제로 한 MD 전략을 도입했다. LF관, 한섬관, 제일모직관 등을 만들어 관리를 일원화하는 방식이다. 기존 백화점이 남성존, 여성존, 영존 등으로 구분하던 천편일률적 방식에서 벗어난 획기적 시도였다. 패션회사는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고, 유통사는 인원과 관리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 그만큼 늘어난 수익을 고객에게 되돌려주는 윈윈 사례다.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대형 유통사들이 사력을 다하고 있는 온라인 비즈니스 역시 홍 회장은 남들과는 다른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패션에는 컴퓨터나 스마트폰 화면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고유한 영역이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일례로 마리오아울렛 온라인몰은 오프라인에 없는 브랜드만 입점시키는 게 원칙이다. 현장, 즉 쇼핑몰을 방문하는 사람을 만족시키는 것이 멀리서 매장을 찾은 고객을 대하는 최소한의 도리라는 게 홍 회장의 지론이다.

“화상회의도 좋지만, 현장 경영이 가장 중요하지 않겠어요? 마리오 역시 매장을 찾은 고객에게 최선을 다하는 게 원칙입니다. 요즘은 덜하지만 얼마 전까지 중국인 고객의 싹쓸이 쇼핑도 막았어요. 식당을 찾은 단골에게 재료가 없어 못 판다고 말하는 건 판매자로서 도의가 아니죠.”

홍 회장은 40년 전 까르뜨니트 시절에도, 20년 전 아울렛에 도전했을 때도 “남들과는 다른 차별화에 목숨을 걸어 성공했다”고 말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돈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 패션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을 위해 합리적인 쇼핑 공간을 제공하겠다는 원칙만큼은 변함이 없을 거라 강조했다.

“마리오가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꿋꿋이 성장할 수 있었던 건 고객 최우선이라는 정도경영과 서비스 정신 덕분이었습니다. 시대와 트렌드가 바뀐다 해도 결코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게 마련이죠. 업의 본질을 충실히 따르다보면 100년 기업의 꿈도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202009호 (2020.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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