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시하자마자 미국에 진출한 데 이어 3년 만에 해외 45개국에 수출하는 화장품 브랜드가 있다. 젖소의 초유로 만든 스킨케어 브랜드 ‘팜스킨’이다. “화장품을 만들어 국내산 초유를 최대한 많이 수출하는 게 목표”라는 곽태일 팜스킨 대표를 K뷰티 라이징 스타의 다섯 번째 주인공으로 선정했다.
젖소의 초유로 만든 화장품 브랜드 팜스킨. 국내에선 생소하지만 해외에선 이미 유명 브랜드다. 글로벌 마켓으로 꼽히는 월마트·아마존닷컴에 입점하는 등 45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2019 인도 코스모프로프 어워드’ 스킨케어 부문 대상, ‘2019 미국 산업디자인협회(IDEA)’ 디자인상 본상 등을 수상하며 세계 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올해도 포브스의 ‘아시아 30세 이하 리더 30인’의 유통&이커머스 부문에 선정되며 저력을 과시했다.론칭 3년 차인 신생 뷰티 브랜드가 해외시장에서 빠르게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건 탄탄한 기술력 덕분이다. 부패 속도가 빨라 보존 기간이 짧은 젖소의 초유를 가공·정제해 화장품 원료로 활용하는 기술이다. 팜스킨은 이와 관련한 특허를 9개나 보유하고 있다. 또 이 기술로 만든 초유 원료를『국제화장품원료집(ICID)』에 등재하기도 했다. 이 문헌에 수록된 원료는 세계적으로 화장품 원료 선택의 기준 지표로 통한다. 미국 안전시험기관의 ‘UL 인증’ 등 까다롭기로 유명한 해외의 안전성 관련 인증도 40여 개나 보유하고 있다.해외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곽태일(30) 대표지만 사실 그는 충북 청주의 한 시골 출신이다. 부모님이 운영하는 농장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전공도 축산학을 선택했다.“시골에서 나고 자란 덕분에 농촌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잘 알고 있어요. 이 중 가장 큰 관심을 가졌던 건 젖소에서 나오는 초유였어요. 매년 질 좋은 초유가 4만t씩 버려지는데, 그게 참 아깝더라고요. 건국대 재학 시절 지도교수님의 도움을 받아 수업이 끝나면 연구실에서 초유 관련 연구를 진행했습니다.”사업으로 발전시키거나 논문·특허를 내려는 목적보다는 초유가 버려지지 않게 할 방법을 찾기 위한 연구였다. 곽 대표는 “당시 초유 관련 논문을 검색하다가 의아한 점을 발견했다”며 “‘초유가 피부 개선에 좋다’는 내용이 많았지만 정작 초유로 만든 화장품은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초유로 만든 화장품을 목격했다.“농림축산식품부 지원으로 독일 농장에 연수를 가게 됐습니다. 농장 사람들이 젖소의 초유로 핸드크림을 만들어 쓰고 있더라고요. 써보니 매우 촉촉했고 효과가 오래 유지됐어요. 개인적으로 쓰기 위해 소량씩 만든 것이었지만 화장품으로서의 가능성이 보였습니다. 이후 3년 동안 초유를 화장품으로 만드는 방법을 연구했어요.”곽 대표는 우선 초유를 버려야만 하는 문제점부터 찾아 바로 잡기로 했다. 초유는 상온에서 하루만 보관해도 부패가 진행되고 악취가 심하다. 어미 소가 새끼를 낳으면 초유가 25kg가량 나오는데, 송아지에게 필요한 양은 3kg 남짓이다. 나머지 22kg가량은 보관이 어렵다는 이유로 버려지고 있었다. 초유를 활용하기 위해선 부패를 늦추는 발효 기술이 필요해 보였다. 연구를 거듭한 곽 대표는 관련 기술을 개발해 유통기한을 3년까지 연장했다.당시 학생 신분이었던 곽 대표는 창업보단 기술이전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레퍼런스가 없으니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 곽 대표는 “시제품을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좋았다”며 “그래서 직접 팔아보기로 했다”고 회상했다.
2017년, 팜스킨의 첫 번째 제품이 탄생했다. 초유로 만든 앰풀이었다. 면역과 관련된 단백질이 많아 자극받은 피부를 원상태로 복구하는 데 효과적이고, 보습·미백 효과도 좋았다. 곽 대표는 곧바로 해외 바이어들을 만나며 해외시장 공략에 나섰다. 해외시장을 먼저 노린 건 국산 초유에 대한 남다른 애정 때문이었다.
“우리나라는 매년 초유를 4만t씩 버리면서도 사료나 건강기능식품을 생산하기 위해 1500억원 상당의 분말 등 가공된 초유를 수입해요. 가공하면 되는 건데 너무 아깝죠. 질 좋은 국산 초유를 해외에 알리고 수출하겠다는 목표로 사업을 시작했어요. 그래서 곧장 해외로 간 겁니다. 바이어들은 초유로 화장품을 만든다는 아이디어가 신선하다는 반응을 보였고, 해외 진출 초기에 미국, 일본, 스페인 등 전 세계 20여 개국에 수출하게 됐습니다.”하지만 매출은 예상보다 저조했다. 바이어들의 관심도 줄어들었다. 곽 대표는 “지인들로부터 제품 디자인이 별로라는 지적을 받았다”며 “수많은 제품 사이에서 눈에 띌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만 했다”고 회상했다. 아이디어는 위기 속에 찾아왔다.“2018년 제품을 알리기 위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뷰티 박람회에 참가했어요. 자금 사정이 넉넉지 않다 보니 카페테리아 근처, 즉 구석 자리로 배정을 받았죠. 밥 먹으러 오는 사람들을 잡지 못하면 여기서 사업이 끝나겠단 위기감이 들더라고요. 이들을 공략할 방법을 찾다가 음식으로 착각할 만큼 음식과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자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나온 게 ‘슈퍼푸드 샐러드 포 스킨’이에요. 샐러드 용기에 마스크팩을 담아 샐러드와 똑같아 보이게 연출했죠.”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샐러드로 착각해 부스에 찾아온 손님들에게 ‘샐러드가 아니라 마스크팩’이라고 하자 재밌다며 관심을 보였다. 마지막 날에는 부스를 철수하지 못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디자인의 힘을 느낀 곽 대표는 제품 개발과 동시에 포장용기 대부분을 식자재 마트에서 파는 것과 비슷한 디자인으로 바꿨다. 망고스틴이 들어간 제품은 ‘과일 망’에 포장했고, 재료들을 직접 섞어 사용해야 하는 클레이 마스크는 맥도날드 아이스크림 ‘맥플러리’처럼 만들었다. 이후 곽 대표는 해외시장에 다시 도전장을 던졌다. 아직 인지도가 없던 탓에 여느 스타트업 대표들이 그렇듯 제품을 들고 두 발로 뛰어다녀야만 했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바이어들을 만났고 그 결과 대형 오프라인 스토어를 비롯해 지난해엔 월마트, 아마존닷컴 등에 입점했다.이후 창업 첫해 3000만원이었던 매출이 30억원(2019년 기준)까지 껑충 뛰었다. 곽 대표는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올해 예상 매출액은 100억원이라고 밝혔다. 제품군도 점점 다양해져 지금은 대표 제품인 마스크팩, 스킨 에센스, 앰풀 등을 비롯해 70여 종에 달한다. 최근엔 유아용 화장품 브랜드 ‘프롬맘’도 론칭했다. 제품군이 많아지고 판매량이 늘며 팜스킨이 소비하는 국내산 초유량도 늘고 있다.“지금까지 총 10t 정도의 국내산 젖소 초유를 사용했습니다. 아직 적은 양이지만 고무적이라고 생각해요. 사용량을 대폭 늘릴 수 있도록 화장품 사업에 이어 사료 사업 등으로 사업군을 확장해나갈 계획입니다.”- 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