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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바이오·헬스케어’ 기업 | 전통과 혁신-바이엘] 김현철 바이엘 컨슈머헬스 북아시아 대표 

1899년부터 이어온 연구개발의 자존심 

제1차 세계대전 중 대유행한 스페인독감으로 1899년 만든 ‘아스피린’은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2020년 또 다른 감염병 코로나19로 글로벌 제약사 바이엘(BAYER)은 다시 주목받고 있다. 130년 전부터 연구개발에 투자하지 않았다면 어려웠을 일이다.

▎바이엘의 피부질환 치료제 비판톨(왼쪽)과 아스피린 제조 과정. / 사진:바이엘
“시간이 지날수록 효능이 새롭게 밝혀지는 약이 있습니다. 세기의 명약이라 꼽히는 ‘아스피린’입니다. 처음에는 해열·진통제로, 1970년대엔 뇌졸중과 심근경색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고, 이제는 암 예방, 알츠하이머병 개선 효과 등이 밝혀지며 진화했습니다. 바이엘의 전통과 혁신을 상징하는 이 약은 전 세계 인류가 하루 1억 알을 복용하는, 가정상비약이 됐습니다.”

6월 10일 바이엘코리아 사무실에서 만난 김현철(52) 바이엘 컨슈머헬스 북아시아 대표가 말했다. 1863년 독일 바르멘에서 염료회사로 출발한 바이엘은 30년 뒤 아스피린 탄생을 기점으로 세계적 제약사로 발돋움했다. 아스피린 연구는 지금도 매년 1500건 이상 나온다.

코로나19 위기에 바이엘은 다시 한번 진가를 발휘한다. 언택트 문화로 ‘컨슈머헬스’ 분야의 제품이 특수를 누리면서다. 아스피린을 탄생시킨 컨슈머헬스 사업부는 건강 유지와 면역력 강화에 도움을 주는 일반의약품, 건강기능식품, 영양제를 아우른다. 의사 처방전이 없어도 약국이나 쇼핑몰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제품들이다. 바이엘은 1899년 아스피린을 개발하면서 컨슈머헬스 사업부를 꾸린 뒤 급만성피부염 치료제 비판텐, 멀티비타민 베로카 등 대표 제품을 선보이며 세계 상위 컨슈머헬스케어 기업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올해 상반기 아스피린은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7% 늘었고, 마스크 착용과 소독제 사용이 늘면서 피부질환 치료제 비판텐은 41% 성장했다.

인터뷰 내내 김현철 대표는 바이엘의 연구개발에 대한 집념을 강조했다. “치료약을 비롯한 헬스케어 제품은 사람의 몸에 직결되기 때문에 품질에 완벽을 기할 수밖에 없다”며 “제약 시장에서 제품만으로 승부를 보려면 압도적인 연구개발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기업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보통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이전투구에 가까운 경쟁을 한다. 평균 13년 정도의 시간을 들여 10억 달러(약 1조2000억원) 정도를 투자한다. 그래도 출시에 성공할 확률은 5% 남짓이다. 그런데도 바이엘은 제약사 평균을 웃도는 돈을 쏟아부어 연구개발에 몸을 사리지 않았다. 2009년부터 10년간 바이엘의 연구개발 투자는 매해 늘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한해 매출의 약 12.3%나 되는 53억 유로(약 7조1900억원)를 연구개발에 투자했다. 바이엘은 2016년부터 3년 연속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제약 회사’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김현철 바이엘 컨슈머헬스 북아시아 대표. / 사진:김현동 기자
“최대한 많은 아이디어를 빌려라.” 바이엘의 문어발식 연결고리 또한 강점이다. 바이엘은 기술개발 아이디어를 내부에서만 찾지 않는다. 사내 과학자만 1만6000명, 세계 90개국 420개 지사의 네트워크로 튼튼한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바이엘은 제품 연구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다양한 경로로 협력한다. 본사가 있는 독일 레버쿠젠 인근에 자체 연구소를 두고 외부 병원·대학·연구소·벤처기업, 환자, 경쟁사까지 모두 협력 파트너로 삼는다. 김현철 대표는 “우리가 제일 잘 안다는 자만심을 버리고, 확실한 전문성이 보인다면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는다”며 “본사는 창의적인 잠재력을 발굴하고 바이엘이 보유한 전문지식과 결합하는 것을 혁신의 중요한 요인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디지털 분야를 활용한 지원도 확대했다. 웹 기반 크라우드소싱 기술개발 투자 프로그램 ‘오픈 이노베이션’이 대표적이다. 바이엘의 사업 분야별 기술에 활용할 프로젝트를 사내 전문가뿐 아니라 외부 개발자, 스타트업, 학계 등에 지원해 아이디어를 공유하게 한다. 현재 60여 개국 직원 1만5000여 명이 300여 개 프로젝트를 지원한다. 예를 들어 바이엘의 그랜츠포앱스(Grants4Apps)는 업계 최초로 시도한 디지털헬스케어 분야 스타트업 지원사업이다. 건강 진단, 치료 관리, 예방 프로그램이 주요 내용이며 프로젝트 개발자와 스타트업이 아이디어를 실제 구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바이엘의 디지털 혁신은 제품의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전략에서도 빛을 발했다. 특히 전자상거래(이커머스)가 발달한 한국 시장에서 돋보였다. 종전에는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었던 일반의약품 멀티비타민 베로카를 지난해부터 건강기능식품으로 전환해 유통 채널을 온라인으로 넓혔다. 바이엘코리아 측에 따르면 온라인 매출은 상반기에만 2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는 “유일하게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는 컨슈머헬스 온라인 채널은 효과적으로 피드백을 수집하고 아이디어를 개발할 수 있는 창구”라며 “독일 본사에서도 한국 이커머스 유통망에서 나오는 데이터를 관심 있게 살펴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현철 바이엘 컨슈머헬스 북아시아 대표는 “R&D 분야에서 바이엘의 최우선 과제는 시장의 수요가 있는 한 한계를 두지 않는 것”이라며 “19세기 혁신적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전통 헬스케어 기업 바이엘은 앞으로도 혁신 문화를 기반으로 리더십을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사진 김현동 기자

202007호 (2020.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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