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년간 환자의 치료 환경을 개선하고 삶의 질을 높이자는 회사의 원칙을 고수해왔다. 하나의 원칙을 정하고 이를 오랜 기간 유지해온 프레지니우스카비(Fresenius Kabi)의 스토리를 들여다봤다.
▎박주호 프레지니우스카비코리아 대표 / 사진:신인섭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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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어느 날. 독일 뒤스브르크에서 사는 앤서니 바우어는 갑자기 심한 복통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장이 꼬여 생기는 희귀병인 장폐색 볼부루스(volvulus)를 진단받은 그는 겨우 8살이었다. 장 일부에 혈액이 공급되지 못해 소화기관 일부를 응급수술로 제거해야 했다. 겨우 생명은 건졌지만 삶은 바뀌었다. 음식을 제대로 소화할 수 없었다. 혈류에 직접 투여하는 정맥영양 공급에 의존하는 삶을 살아야 했다. 병원에만 있을 수 없었던 앤서니에게 의사는 휴대용 영양수액 카테터(체내삽입 도관)를 어깨 아래에 이식했다. 그는 현재 헬리오스 세인트 요하네스 병원 영양 클리닉에서 인턴십을 하고 있으며, 영양의학을 공부하고 싶어 한다.영양수액이 없었다면 바우어는 의학도의 꿈을 버려야 했을지도 모른다. 이 영양수액은 독일 기업 프레지니우스카비가 세계 최초로 개발했고, 시장점유율 상위권을 놓치지 않고 있다. 지금도 음식 섭취가 어려워 ‘링거’를 꽂고, 정맥주사로 수액을 투여받는 환자 10명 중 7명은 프레지니우스카비 제품을 쓴다. 프레지니우스카비는 환자 영양식·수액제, 수혈, 임상영양 등 환자 삶의 질을 개선하는 영역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서 있다. 이 회사가 개발한 제품은 이제 중중·만성질환자 치료엔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됐다.존재감만큼이나 규모도 세계적이다. 독일 바트홈부르크포어데어회에(Bad Homburg vor der Höhe)에 본사를 둔 프레지니우스 그룹은 임직원 30만 명, 매출은 350억 유로(약 46조원)의 유럽 대형 제약사 중 하나다. 지난 6월 18일 서울 송파구 사무실에서 만난 박주호(61) 프레지니 우스카비코리아 대표는 “560년 전 환자의 더 나은 삶을 고민했던 한 약사의 헌신이 지금의 세계적인 제약사를 일궈냈다”고 말했다.프레지니우스카비의 역사는 146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레지니우스 가족은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서 약국을 운영했고, 1912년 약사이자 소유자 에두아르트 프레제니우스 박사가 제약사를 설립했다. 지금의 제약사 모습을 갖춘 지는 100년이 좀 넘었다. 이 회사가 유럽에서 존경받는 회사로 꼽히는 까닭은 긴 역사 때문만은 아니다. 오로지 환자 삶의 질을 높이는 제품 개발에 올인한 덕분이다. 프레지니우스카비는 치료하는 과정에서 환자에게 제대로 된 영양분만 공급해도 치료 예후나 결과가 훨씬 좋아진다는 것을 알아냈다. 박 대표는 “전 세계 입원환자 중 약 40%가 영양실조로, 의료 수준이 꽤 높다고 알려진 유럽에서도 환자 3300만 명이 영양실조를 앓고 있다”며 “우리는 다수의 임상 환경에서 환자의 질병 치료에 집중하지만 환자 삶의 질이 간과되는 현실에 주목해왔다”고 말했다.
당연히 프레지니우스카비의 제품에 ‘최초’란 수식어가 붙는 것이 적지 않다.
▎프레지니우스카비의 정맥수액 제조 과정. / 사진:프레지니우스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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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두유 기반 정맥주입용 지질유제는 포도당이나 아미노산만으로 열량 공급이 어려운 환자에게 장시간 높은 열량과 필수지방산을 공급하는 길을 연 제품이다. 미숙아(이른둥이)와 신생아에게 주입할 수 있는 수액 스모프리피드도 연달아 개발했다. 특히 ‘3 체임버 백(영양수액팩)’은 영양성분을 3개의 방에 담아 시술 전 혼합 후 환자에게 투여할 수 있는 수액 제품으로, 공전의 히트를 쳤다. 박 대표는 “정맥 수액은 나이, 연령, 중증 정도에 따라 모두 달라 정확한 수치로 주입하는 고난도 기술이 필요하다”며 “본사가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영양수액보다 훨씬 더 큰돈을 벌 수 있는 치료제 개발에 열을 올렸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말했다.회사는 중증환자 중심에서 일반 소비자들도 이용할 방법을 고민했다. 먹는 영양수액제 ‘프레주빈’은 환자뿐 아니라 실버층과 바쁜 직장인들이 몸을 회복하는 균형 영양식으로 탈바꿈했다. 1970년대부터 이미 독일 시장에서 판매 1위를 기록한 프레주빈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국내 판매를 시작했다. 프레주빈은 단백질, 비타민이 다량 함유돼 있어 건강기능식품에 관심이 많은 한국 소비자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박 대표는 “인구 고령화와 만성질환자의 증가로 ‘고단백 고열량’ 식품 수요가 커지는 추세”라며 “내년부터 암환자와 당뇨 환자 등 특정질환 환자를 위한 제품도 보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환자에겐 영양 보충만큼이나 시술 후유증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프레지니우스카비의 정맥마취제 ‘2%프로포폴(propofol)’은 빠른 마취와 회복을 도모하는 정맥주사용 마취유도제로 유럽 시장 점유율이 40%를 넘겼고, 한국 내 점유율은 97%에 이른다. 프레지니우스카비코리아의 성장세도 무섭다. 지난해 순이익만 117%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박주호 프레지니우스카비코리아 대표는 “환자의 치료 환경을 개선하고 삶의 질을 높이자는 게 회사의 원칙”이라며 “환자, 더 나아가 인류까지 생각하는 ‘인간 존중’ 철학을 가지고 한국 시장에서 많은 의료기관, 제약사와 협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사진 신인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