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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디 럭 브랭섬홀 아시아 국제학교 총교장 

여성 인재의 힘을 키우다 

브랭섬홀 아시아는 117년 역사를 자랑하는 캐나다의 명문 여자 사립학교 브랭섬홀 캐나다의 자매학교다. 탐구학습을 통한 실질적 문제 해결과 자기 주도적 성장을 추구하는 교육과정 체제로,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IB 교육과정을 기반으로 한다. 브랭섬홀 아시아는 제주도에 설립된 지 불과 8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전 세계 여느 국제학교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상위의 교육 환경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1월 세계 250개 국제학교를 평가하는 ‘ISC 인터내셔널 어워드 2020’에서 ‘미래 혁신가 양성 교육기관(Initiative to support student as futurethinking innovators)’ 부문을 수상했다.

신디 럭 총교장 약력 : 캐나다 퀸즈대 화학/수학과 졸업, 동대 교육학 석사, 교육/수학 박사(커리큘럼 및 평가 전문) 캐나다, 트리니다드, 모로코,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소재 국제학교 교사 및 관리자.
“17살 자녀를 둔 부모라고 가정하고 자녀에게 바라는 가치를 3가지만 골라보세요.”

제주도에 자리한 국제학교 브랭섬홀아시아에서 만난 신디 럭 총교장은 기자에게 카드 20장을 내밀었다. 5가지 색으로 분류된 카드에는 ‘세계시민의식, 열린사고, 자신감, 리더십, 호기심, 창의력, 문제해결능력, 기술지식, 다국어, 학업성취, 세계유수대학으로의 진학’ 등이 적혀 있었다. 글로벌 최고 인재가 갖춰야 할 주요 가치 20개는 5가지 대분류로 집약돼 브랭섬홀 아시아의 교육 이념 ‘SPICE’를 각각 지지한다. SPICE는 ‘봉 사정신(Service Learning)’, ’기회의 경로(Pathways of opportunity)’, ‘혁신과 디자인(Innovation)’, ‘배려하는 문화(Culture of care)’, ‘리더십(Empowerment)’으로 체계적으로 구성돼 있다.

“우리의 미션은 매일 교육 현장에서 각각의 주요 가치들을 학생들에게 불어넣는 것이에요. 우리의 교육을 차별화하는 이 5가지 이념은 학생들의 지적 도전을 권장하고 그 누구와도 협업할 수 있는 배려 문화와 리더십을 길러줄 수 있도록 설계돼 있어요. 또 혁신과 디자인싱킹을 추구함으로써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방법론과 인류애적 헌신을 학생들에게 심어주죠. 이와 같은 5가지 교육 이념은 브랭섬홀의 교육이 무엇에 집중하는지, 학생들이 미래 어떤 인재로 성장할지를 쉽게 설명해줍니다.”

지난 2012년 개교한 브랭섬홀 아시아는 아시아 유일의 전 과정 IB(국제 바칼로레아, International Baccalaureate) 여자국제학교다. 캐나다 본교의 117년 전통과 유산을 계승했다. 자선단체로 설립된 브랭섬홀은 현재도 그 명맥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고, 세상의 실제 문제를 연구하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능력을 배양하는 데 교육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중요한 것은 사회문제를 책으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외부 실제 이해관계자와 논의하며 실전적으로 문제에 깊숙이 접근한다는 점이에요. 이것이 IB 교육의 본질이며 다른 점이에요. 실제로 제주의 부속 도서 가파도에서 진행되는 대체에너지 프로젝트에 우리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어요. 탄소제로를 목표로 하는 프로젝트에서 엔지니어들이 학교에 와서 학생들과 풍력발전기 터빈을 함께 개발해요. 어떤 방식이 더 에너지 효율적인지 논의하고 학생들의 아이디어와 제작 모형을 평가합니다. 그 외에도 스마트농업, 마이크로 플라스틱 대책, 인구이동, 뇌과학 등과 관련된 프로젝트도 진행되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학교 구석구석에는 기존 통념으로는 여학교에 어울리지 않을 법한 드릴과 공구들, 디자인 장비와 3D프린터, 도자기 제작 가마, 분해한 오토바이, 로보틱스 운행 경로, 미니온실 등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학생들이 제작한 풍력발전기 터빈들도 복도 하나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교육이 강조되는 가운데, 브랭섬홀 아시아의 2019년 졸업생 중 STEM 전공 진학자가 37%에 이른다.

“여학생들의 이공계 진출이 전통적으로 적은 상황에서 여학교 교육 환경 특성상 성고정관념은 없는 게 장점이에요. 남녀공학의 경우 실제 남학생이 이공계 학습에서 우위를 점하고 여학생은 상대적으로 위축되는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우리 학교에서는 여학생들에게 컴퓨터, 건축, 환경과학, 디자인, 화학 등 이공계 지식을 자연스럽게 경험케 하고 익숙해지도록 하고 있어요. 커리큘럼에 문제 해결을 위한 디자인 등이 필수 과정으로 포함돼 있어요. 초등(PYP), 중등(MYP), 고등 프로그램(DP)에서 융합교육 프로젝트를 통해 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하는 자기주도학습, 협력, 테크놀로지, 전문가와의 교류 등이 커리큘럼에 녹아 있어요. 한편, 여학생의 강점인 이중언어도 100% 갖출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습니다.”

경쟁보다 협업이 경쟁력


▎브랭섬홀 아시아는 서로 다른 교과과정을 재구성하고 통합해 과목간 핵심개념을 연관해 사고하는 훈련에 초점을 맞춘 IB교육과정을 기반으로 한다.
럭 총교장은 지식근로의 시대, 업무의 복잡성이 증대되고 협업이 강조될수록 여성 인재의 활약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남성은 경쟁에 주력하는 한편, 여성은 협업에 가치를 두고 있기 때문에 고효율의 팀워크에 상대적으로 적합하다는 것이다. 한국 교육 환경에서는 더 강도 높은 경쟁을 요구하는 압박이 있을 수 있지만, ‘배움을 즐기는 아이들에게 경쟁을 강요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와 학교의 철학이다. 그는 “특히 한국은 고경쟁사회이기 때문에 많은 고등학생이 좋은 학교만 좇아 달리다가 대학생이 되서는 방향성을 잃고 방황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며 “중·고교 시절부터 배우는 것을 즐기고 자신이 왜 이것을 왜 공부하고 그 목적이 무엇인지 아는 경우, 성공적이고 행복한 대학생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학교는 학생들이 학습 자체에 매력을 느끼고 다양한 관심사로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도록 자양분을 공급한다는 개념이다.

이러한 교육 개념을 지원하는 교사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브랭섬홀 아시아의 모토는 ‘높은 기대에 걸맞은 최고의 지원’이다. 럭 총교장은 우수한 교사진을 확보해 매우 자랑스럽다며 행운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우리 교사들은 워커홀릭”이라며 “학생들을 지원하는 일에는 중독 정도라 할 만큼 적극적, 열정적”이라고 전했다. 약 120명으로 구성된 교사진은 80%가 석사 이상이며 10%가 박사학위자다.

럭 총교장 역시 캐나다 퀸즈대학에서 화학, 수학, 교육학 학부 및 석·박사를 취득했고 브랭섬홀 아시아로 오기 전에 캐나다, 트리니다드, 모로코,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의 국제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한 28년 경력의 교육 전문가다. 경험과 통찰력을 갖춘 그에게 한국 학생들의 특징과 잠재력, 부족한 점에 대해 물었다.

“기본적으로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인을 존경하는데, 그 이유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이겨내려는 집념을 높이 사기 때문이에요. 역사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한국인들은 그 경험을 충분히 학습하고 극복했으며 더 많은 것을 지향하고 스스로 채찍질해 세계 무대로 스케일을 확대해왔어요. 할아버지 세대부터 학습되고 각인된 탄력성(Resilience)을 학생들에게서도 볼 수 있어요. 이는 분명 강력한 글로벌 경쟁력입니다. 다만 한국 학생들에게 자신감이 부족해 보이는 게 안타까워요.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을 부끄러워하죠. 그래서 학생들에게 누구와 이야기하더라도 위축되지 않고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대화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어요.”

예를 들어 학교 수업에는 사회활동가, 엔지니어, 농부, 난민, 전문가 등 다양한 분야 관계자가 참여한다. 학생들은 대화 상대의 영역에 관해 어떤 질문이든지 던질 수 있으며 어떻게 관여할 수 있는지를 배워나간다. 상대방의 전문성을 존중하는 동시에 학생 스스로도 동등하게 존중받으며 대화할 수 있는 방법론을 훈련하고 자신감을 키워나간다. 럭 총교장은 “사회에 나가면 전 세계 모든 부류의 사람과 다양한 영역에서 함께 일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의사소통 기술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학생이 일탈행동 등 문제에 직면했을 때 누가 피해와 상처를 입을지, 이를 회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등을 롤플레잉으로 예행연습을 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자신의 의견을 상황에 맞게 피력하는 동시에 이해관계자와 관계에서 발생한 문제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한다. 더불어 수업 과정에서 상시적 프레젠테이션과 교내 테드토크 등을 통해 대중 커뮤니케이션 스킬도 키워준다. 이 모든 것은 학생들의 자신감 성장을 겨냥하고 있다.

한편, 브랭섬홀 아시아의 학생들이 얻는 큰 효용 중 하나가 방과후 프로그램인 CASE(창의활동: Creativity, 신체활동: Action, 봉사활동: Service, 자기계발: Enrichment)다. 학생들은 매일 2시간씩 카테고리별 130개 프로그램을 관심사에 따라 참여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관심 영역을 확대하고 스스로 잠재력을 발굴하고 재능을 개발한다.

브랭섬홀 아시아는 개교한 지 수년밖에 안 됐지만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IB DP점수를 보유한 상위 그룹이다. 만점자도 배출했다. 그리고 졸업생들은 속속 세계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고 있다. 2020년 현재 브랭섬홀 아시아의 첫 졸업생이 대학 과정을 마치고 사회에 진출할 준비를 하고 있다. 캐나다 브랭섬홀의 유산을 계승하고 제주가 키워낸 여학생들이 어떤 글로벌 인재로서 활약할지 기대된다.

- 이진원 기자 lee.zinone@joongang.co.kr

202008호 (2020.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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