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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TECH POWER] 최성환 인랩 대표 

日 반도체 원재료 기업 정조준한 스타트업 

삼성전자가 7나노 기반 시스템 반도체에 ‘3차원 적층 패키지 기술’을 적용한 테스트칩을 생산했다는 소식에 시장은 열광했다. 위로 쌓기 때문에 전체 칩 면적을 줄이고도 고성능을 낼 수 있다. 그러려면 여러 칩을 잘 붙여야 한다. 인랩은 여기에 주목했다.

▎최성환 인랩 대표는 “반도체 패키징엔 웨이퍼(혹은 패널) 뒷면을 갈고 이를 관통하는 미세한 구멍을 뚫어 접착 필름을 붙이는 과정이 필수”라며 “일본 기업이 전 세계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우리도 이미 해외 기업에 납품할 정도로 기술에서 밀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소재 기술개발 최전선에 선 스타트업이 있다. 바로 반도체 공정용 고분자 점접착소재, 쉽게 말해 접착용 필름을 만드는 인랩(Ihn Lab)이다. 인랩은 반도체 패키징에 주목했다.

“반도체 패키징은 실리콘 기판(웨이퍼), 금속선이나 범프, 솔더볼, 리드프레임, 몰딩 컴파운드 등을 한데 결합하는 과정입니다. 반도체가 고도화될수록 집적도를 높이기 위해 3차원으로 칩을 쌓습니다. 일종의 적층 구조죠. 웨이퍼(혹은 패널) 뒷면을 갈고 이를 관통하는 미세한 구멍을 뚫어 접착 필름을 붙여야 합니다. 웨이퍼 절단(칩 제조), 칩 선별과 접착, 몰딩, 검사 등을 끝으로 반도체가 완성될 정도로 접착은 중요한 과정입니다. 공정 장비를 만드는 한국 기업은 많았지만, 접착제 같은 소재를 만드는 곳은 별로 없더군요. 그래서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지난달 대전 유성구 문지동 카이스트 캠퍼스에서 만난 최성환(46) 인랩 대표가 창업 동기를 설명했다. 지난해부터 한일 무역전쟁과도 맞물린다. 일본 수출규제 품목 가운데 웨이퍼 위에 도포하는 감광액인 포토레지스트, 불순물 제거 과정에 쓰이는 기체인 초고순도 불화수소(HF)는 거의 전량 일본산에 의존했던 원재료들이다. 최 대표가 택한 고분자 점접착소재 분야도 국산화율은 2%에 불과해 98%를 일본산 제품에 의존하고 있었다.

국산화도 중요한 과제지만, 반도체가 진화하기 위해선 패키징 기술도 중요하다. 기술적으로 진화하기 위해서도 삼성전자의 위로 쌓아 올리는 3차원 적층 패키징 기술이 필수다.

지난 8월 13일 삼성전자가 극자외선(EUV) 공정을 쓰는 7나노 시스템 반도체에 ‘엑스큐브’(X-Cube, 연산 처리하는 두뇌 부분인 로직과 캐시메모리인 SRAM 칩을 위아래로 쌓는 형태)를 적용한 데 이어 미국 IBM의 차세대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 ‘파워 10’도 삼성전자의 7나노 공정에서 생산한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글로벌 1위인 대만 TSMC도 7나노 공정 기술은 확보했지만, 3차원 적층에도 성공하지 못했다. 삼성전자는 2018년부터 삼성전기의 PLP(패널레벨패키지) 사업을 인수하고, FO-PLP(팬아웃-패널레벨패키지)를 개발했다. 팬아웃은 입출력 단자 배선을 칩 바깥으로 뺀다는 뜻인데, 패키징 기술이 한층 더 진화했다고 이해하면 된다.

결국 패키징 기술은 반도체 안에 다양한 시스템을 얹는 핵심 기술이다. 생산방식은 누구나 주목하지만, 접착 소재는 관심사에서 빠져 있다. 품질이 뛰어난 일본 제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대학에서 고분자필름 분야 박사학위를 받고, 도레이첨단소재에서 고기능 재료응용그룹을 이끌던 최 대표는 여기에 사활을 걸었다. 정부도 그의 노력을 인정해줬다. 지난 7월 인랩은 중소벤처기업부가 앞으로 3년간 집중적으로 육성할 BIG 3(시스템 반도체, 바이오헬스, 미래차) 분야 기업에 선정됐다. 최 대표의 얘길 더 들어봤다.

점착 필름이 왜 필요한지 대충은 알겠다.

한일 무역분쟁이 아니었다면 업계 밖에서 관심조차 없었을 사업이다. 그만큼 힘들고, 이해하기 어려운 기술이다. 대만 TSMC의 FO-WLP(팬아웃-웨이퍼레벨패키지)나 삼성전자의 FO-PLP 모두 생산방식이 다를 뿐 패키징 기술이란 측면에선 줄기가 같다. 적층 구조로 쌓을 때 200~400℃ 수준에서 견디면서 균일하게 도포할 수 있는 필름형 점착 소재가 필요하다. 우린 이걸 만드는 회사다. 상당히 까다로운 제품인데 내열성에 문제가 생기면 이걸 붙였던 웨이퍼나 기판을 통으로 버려야 한다. 맨눈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라도 몰딩 불량이 생기면 최종 단계에서 불량 처리돼 손실이 더 커진다.

일본 기업이 독점하다시피 하는 분야라고 들었다.

그렇다. 기술개발 투자도 그렇지만,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 분야다. 인랩은 2015년 4월에 차렸지만, 이 분야에서 연구하고 일해왔다. 박사학위도 박형 고분자필름, 표면제어기술 논문으로 받았다. 학업을 마치고 2008년부턴 도레이새한(현 도레이첨단소재)에서 반도체 공정 소재 분야 업무를 전담했다. 도레이재팬과 합병하면서 개발팀 다수가 일본으로 이전했지만, 하던 연구를 계속하면서 제품 출시까지 해보고 싶어 창업을 결심했다. 수십 년 된 일본 기업을 어떻게 뛰어넘겠냐는 얘기도 있지만, 공동 창업인들은 짧게는 15년, 길게는 23년 이상 쌓아온 연구개발 경험과 기술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다.

시장에서 인정해주던가.

투자받는 것도 어려웠다. 반도체 소재 분야를 설명하는 순간 투자자들은 고개부터 절레절레 흔들었다. 일단 어려운 분야이고, 곧장 시장 진출이 쉽지 않으니 엑시트가 어렵겠다는 계산에서다. 부인하진 않겠다. 하지만 인랩의 경쟁자는 전 세계 시장을 독점하는 히타치케미컬, 니토덴코, 린텍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인랩의 반도체 패키징용 마스킹 필름의 경우 말레이시아의 글로벌 메이저 패키징 기업들에 이미 납품하고 있다. 국내 반도체 기업은 워낙 대규모라 소재 하나 바꾸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일단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달리고 있다.

국내에도 대형·중견 화학소재 기업이 많은데, 인랩이 나선 이유가 뭔가.

경제성과 구조적 한계,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 매출이 연 400조원 정도 되는데 제조원가가 60%이고 그중 1%가량이 특정 소재 구매에 쓰인다. 약 2조4000억원 정도 되는 셈이다. 큰 기업 입장에선 경제성 면에서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있다. 또 하나는 조직의 한계다. 이미 큰 기업은 관료화된 조직문화 탓에 특화된 연구개발 집단이 집중적으로 육성되기 힘들다. 화학소재 연구를 시작한 팀들이 2~3년 후 다른 부서로 통폐합돼 재배치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연구개발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일본산 제품 못지않다는 건가.

그렇다. 먼저 고분자 점접착소재의 액 성분 자체를 디자인할 수 있다. 다음으로 화학적, 물리적으로 다층 박막을 쌓을 때 잔사가 남지 않고, 기판에 안정적으로 전류가 흐를 수 있도록 점착력이 다른 액을 다층구조로 입히는 레이어링 기술을 가지고 있다. 이건 사실 방탄유리가 갖는 구조역학적 특성에 착안했는데 최대 400℃에 달하는 고온에도 점성이 깨지지 않는 힘이 됐다. 마지막으로 반도체 패키지에 손상이 가는 점착 파괴를 막는 기술도 인랩만의 노하우다. 나와 심창훈 CTO가 보유한 특허만도 40개가 넘는다.

척박한 환경에서 어떻게 해외 고객사를 잡았나.

가격경쟁력이 있었고, 기술도 인정받았다. 글로벌 반도체 회사의 테스트 결과 일본 회사가 95% 접착 수율이 나왔는데 우리는 98% 이상이었다. 또 가격도 반으로 낮춰 공급했다. 영업망도 도레이첨단소재에서 일할 때 쌓았던 네트워크가 큰 힘이 됐다. 사실 도레이첨단소재 퇴사 후 연락할 일이 없었는데 해외 고객사에서 무슨 일을 하며 지내는지 먼저 물었다.

특히 200여 개가 넘는 글로벌 패키징 업체에 장비나 소재를 납품 중인 에이전트가 인랩에 큰 관심을 가졌다. 덕분에 인랩의 테이프 형태인 필름형 제품을 RF, 파워 디바이스, MEMS 센서, 자동차 등을 비롯한 전장용 디바이스를 생산하는 동남아, 중국 내 글로벌 패키징 업체에 공급할 수 있게 됐다.

반도체 고분자 소재로 범위 넓히면 시장규모만 50조원


시장 규모는 얼마나 되나.

약 4조원 정도다. 공정 마스킹 필름, 웨이퍼 가공용 테이프, 다이접착필름 시장을 합한 수치다. 하지만 반도체 패키징 공정용 유기 고분자 소재로 범위를 넓히면 시장 규모만 50조원이 넘는다. 인랩은 접착 필름을 만드는 회사라기보다는 고분자 소재와 접착 메커니즘의 고유 기술을 가진 원천기업이다. 필름이나 테이프는 구현 방법의 하나라고 보면 된다.

고객 입장에선 원재료를 바꾸는 일이다. 제품이 아무리 좋아도 현장에선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제조 공정 환경이나 인프라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맞는 말이다. 원재료를 공급하다 보니 이점이 있다. 글로벌 반도체 제조기업과 공급거래를 하려면 고객사의 연구개발부서나 생산공정기술팀과 꼭 만나야 한다. 일종의 엔지니어링 품질승인 과정이다. 아무리 좋은 필름을 납품해도 고객사마다 다른 환경에 따른 커스터마이징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최근 들어 고객사마다 반도체 기능이 점차 고도화되고 양산공정을 개선하려는 경쟁이 붙다 보니 원재료 소재에 맞춰 장비를 조율해주는 과정이 필수가 됐다. 그 덕분에 생산공정 컨설팅 노하우가 쌓였고, 제품 개발에도 반영했다.

장벽을 파고드는 전략이 될 수 있겠다.

그렇다. 마스킹 필름 하나가 반도체 공정 제조원가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크지 않지만, 이것부터 잘못되면 모두 폐기해야 한다. 매출 비중과 중요성이 비례하는 게 아니라 모든 과정이 정밀해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원재료에 대한 전문 지식과 공정 조율 노하우를 가질수록 고객사는 인랩에 더욱 의존하게 된다. 일본 업체들이 수십 년간 지위를 공고히 해온 비결이다. 우리도 고객사 공장에 들어가 엔지니어 컨설팅을 한 덕에 글로벌 고객사와 끈끈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적 컨설팅은 회사 몸집 불리기엔 불리하지 않나.

그런 생각도 든다. 처음엔 필름을 납품하고 우리가 주장한 접착 수율을 내기 위해 고객사 기계를 조정해주는 수준이었다. 사실상 사후처리, A/S 같은 개념이었다. 같은 고객사라면 한두 번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현실은 좀 달랐다. 라인별로 기계가 다를 수 있고, 기존 현장 엔지니어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공정 하나만 달라져도 그간 조정했던 수치를 모두 바꿔야 한다. 제품 연구개발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매번 해외공장을 누빌 순 없는 노릇이다.

대안은 뭔가.

소프트웨어적으로 풀어볼 생각이다. 원재료를 연구하면서 쌓인 데이터와 공정 과정에서 지금도 쏟아지는 빅데이터를 풀어낸다면 전 세계 반도체업계에 휘몰아치는 양산 수율 전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본다. 일일이 공장을 찾아다니며 하던 컨설팅도 온라인·모바일·사물인터넷(IoT)를 기반으로 한 클라우드 솔루션 개발까지 해보고 싶다.

인터뷰를 마치고도 최 대표는 소재 전문 연구개발 서비스를 사업화하겠다는 구상을 한참 설명했다. 소재별 특성을 고려한 일종의 공정 컨설팅 사업인데, 그걸 클라우드 솔루션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도 밝혔다.

하지만 인랩은 지금의 기술을 확보하고 글로벌 기업과 손잡기까지 험난한 길을 걸어왔다. 지금도 반도체 소재를 택했기에 투자를 받거나 고객사를 발굴하는 일은 배로 힘들다. 한국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기업이 처한 열악한 현실이 그랬다.

최성환 대표는 “한일 소부장 이슈는 단순히 사명감과 당위로 풀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며 “반도체 소재 분야에서 한국 기업이 기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당장의 매출 성과보다 기술을 인정해주고 제도적인 지원(투자)을 꾸준히 해줄 사회적 인내가 더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사진 김성태 기자

202009호 (2020.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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