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진호의 ‘음악과 삶’ 

BTS 단상 

방탄소년단(BTS)의 활약이 눈부시다.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를 비롯해 미국과 유럽의 음악 관련 유명 시상식에서 여러 차례 수상하거나 후보에 올랐다. 최근에는 그래미 어워드 후보로도 올랐고, 수상 여부는 1월 중순경에 알게 될 것이다. 많은 기사가 이 그룹의 성공을 보도한다. 소년들의 음악에는 어떤 특성이 있을까.

▎방탄소년단(BTS). / 사진:빅히트
우선 BTS의 음악은 대부분 속도(템포)가 적당히 빠르다. ‘4 O’CLOCK’과 ‘Blue & Grey’ 등 극히 일부의 곡들만 느리다. 적당히 빠른 곡들은 신나는 혹은 경쾌한 느낌을 유발한다. 덕분에 청자들은 사무치게 슬픈 감정이나 회한, 과격함, 분노, 좌절감과 같은 부정적 감정을 느끼지 않게 된다. 의외로 단조의 곡이 많지만(‘Filter’, ‘Stay Gold’, ‘Save ME’, ‘IDOL’, ‘Friends’, ‘DNA’, ‘ON’, ‘I NEED U’, ‘Boy With Luv’, ‘Fake Love’, ‘The Truth Untold’, ‘I am Fine’, ‘MIC Drop’, ‘Not Today’, ‘불타오르네’, ‘피 땀 눈물’, ‘Waste It On Me’, ‘Butterfly’, ‘대취타’, ‘Rain’ 등) 단조 곡에서 사람들이 흔히 느끼는 슬픈 감정을 이 곡들에서는 느끼기 어려울 것 같다. 이 곡들에서 자연단음계가 종종 사용됐다. 자연단음계는 가장 오래된 단음계이다. 단음계에는 자연단음계 외에 선율단음계와 화성단음계가 있는데, 슬픈 음악을 작곡하려면 선율단음계나 화성단음계를 써야만 한다. 자연단음계는 어떻게 써도 절절한 느낌을 주기 어렵다. BTS의 단조 음악들 중 꽤 많은 곡에서 자연단음계가 사용되는데, 이것은 많은 대중가요와 다르다.

속도가 빠른 BTS의 곡들은 발라드가 아니다. 앞서 언급한 ‘4 O’CLOCK’과 ‘Blue & Grey’ 등 극히 일부의 곡이 발라드처럼 들리지만 이 곡들의 중간에 사용되는 랩 때문에 온전한 발라드의 느낌은 유지되기 어렵다. 거의 모든 곡이 노래 반, 랩 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랩(rap)은 가사를 노래와 일상적 읽기(혹은 대화)의 중간쯤 되는 어떤 특성으로 부르는 방법이다. 랩이 없는 대중가요에는 선율이 있다. 송창식, 조용필, 이문세, 해바라기, 엘비스 프레슬리, 넷킹 콜, 비틀스의 노래에는 선율이 있다. 랩은 한국에서는 1990년대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이 시작했다. 이후 여러 래퍼에 의해 다양한 랩이 등장, 발전했고 BTS는 그런 맥락에서 성장했다. BTS의 음악에는 감상자의 음악지각을 위계적으로 조직화하는 요소로서의 선율이 분명해 보이지 않는다. 중년 이상의 어르신들은 선율에 익숙한데, 이분들이 BTS의 노래를 어렵게 혹은 생소하게 듣는다면, 그리하여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면, 이 소년들의 노래에 기억에 남을 만한 선율이 없거나, 선율의 단편만 암시되기 때문일 것이다.

BTS 음악이 차별화할 수 있었던 이유


▎그래미 어워드(Grammy Award)는 미국 음반 예술 산업 아카데미에서 음악 산업의 탁월한 업적에 수여하는 상이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음악 시상식으로 발전했다. / 사진:위키피디아
미국과 한국의 일부 래퍼들은 꽤나 공격적인 메시지를 빠른 속도의 랩과 결합했는데, BTS는 그 길로 가지 않았다. 이들은 선배 대중가수들의 일반적 특징과도 거리를 유지한다. 선배 대중가수들의 일반적 특징은 ‘절정을 향해 치닫는 음악’이다. 음악의 시작부터 굉장한 호소력과 강렬함을 보이고 음악이 끝날 때까지 그것을 유지하는 곡도 종종 있지만, 많은 경우 처음에는 (상대적으로) 잔잔하게, 조용하게, 절제된 상태로 시작해 조금씩 감정을 끌어올리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감정을 터트리는 경우가 많다. 조하문이 1987년에 선보인 노래 ‘이 밤을 다시 한번’을 떠올려보자. “아주 우연히 만나 슬픔만 안겨준 사람…” 낮은 음역에서 조용한 감미로움이 제시되다가 점점 에너지가 쌓이더니, “이 밤을 이 밤을, 다시 한번 당신과 보낼 수 있다면, 이 모든 이 모든 내 사랑을 당신께 드리고 싶어요”로 절정을 맞이한다. 짧은 간주가 연주되고는 앞서의 과정 전체를 한 번 더 반복한다. 그러고는 마지막 터트리는 부분을 또 한 번 반복한다. 이 마지막 부분을 ‘리프레인(refrain)’이라고 부른다. 반복되는 앞부분은 1절과 2절이며, 서로 다른 가사로 불린다면, 리프레인에서는 작곡가가 강조하고픈 노래의 주요 메시지를 같은 가사를 통해 반복하여 마치 귀에 걸리듯이 강렬하게 표현한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이 마지막 부분을 목청껏 질러대며 좋아한다. 이런 종류의 음악에서 감정은 기복이 있고, 절제와 응축과 쌓아 올림과 터짐이 있다.

이러한 구성주의적 전개는 고전음악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대표적 작곡가가 2020년에 탄생 250주년을 맞이한 베토벤(1770~1827)이다. [영웅 교향곡] 1악장이나 피아노 소나타 [발트슈타인]의 1악장 및 3악장 같은 곡들에서 놀라운 구축이 꽤 긴 시간 동안 치밀하게 직조된다. 그런 후에 맞이하는 후반부에서의 터짐/절정은 사람들의 마음을 확 사로잡는다. 이러한 베토벤의 음악에서 많은 음악학자가 ‘목적지향적 시간성’을 확인한다. 조하문을 비롯한 한국의 많은 대중가수도 이런 시간성을 선보였다. ‘(목적지향적 시간성’이라는 다소 어려운 용어를 의식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BTS의 음악에는 ‘목적지향적 시간성’이 없는 것 같다. 이들의 음악은 감정이 평탄하며 그것을 쌓아 올려 절정에 이르는 과정이 없다. 한 곡 전체에 동일한 감정 혹은 분위기가 퍼져 있다. 이런 점에서 BTS는 베토벤적이기보다 바흐적이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 S. Bach, 1685~1750)의 대부분 음악에서 음악의 절정은 베토벤만큼 분명하지 않다. 그 절정을 향해 상승하는 과정도 밋밋하다. 바흐가 더 훌륭한지 베토벤이 더 훌륭한지는 평가하기 어렵다. 두 사람은 다른 시대에 살았고 오늘날의 감상자들은 취향에 맞게 음악을 골라 들으면 된다. 마찬가지로 BTS가 더 훌륭한지, 다른 가수들이 더 훌륭한지 역시 판단하기 어렵다.

BTS의 음악은 비교적 단순한 화성 진행으로 쓰였다. 주요 화음 몇 개가 계속 반복된다. 한국 대중가요에서 고급스러운 화성학을 처음 선보인 사람은 신승훈이다. 그의 음악에서는 고전음악, 그것도 19세기에 빈번히 등장하는 연속적 부속화음의 사용을 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부속화음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만큼 전문적인 것인데, 신승훈과 그의 후배들은 그런 화음을 멋지게 사용한 바 있다. BTS는 신승훈의 후배가 아니다. 또 BTS의 음악은 매우 온음계주의적이다. 피아노 건반을 떠올려보자. 하얀 건반과 검은 건반이 있다. 하얀 건반만 침으로써 연주되는 음악은 온음계주의적이다. 하얀 건반과 검은 건반 모두를 침으로써 연주되는 음악은 반음계주의적이다. 반음계주의적인 음악은 연주하기도, 작곡하기도, 듣기도 어렵다. 음악을 많이 아는 이들은 반음계적 음악을 더 고급스러운 것으로 여길지도 모른다. 한편, 온음계주의적 음악은 쉽다. BTS의 음악을 만든 이들이 반음계주의적인 음악과 고급스러운 화성학에 대해 모르지 않을 것이다. BTS의 음악은 어떤 개념에 기초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나는 그것을 미니멀리즘이라고 부른다. BTS의 음악은 어려운 음악적 요소들을 의도적으로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단순하지만 세련된 미니멀리즘을 구현하고 있다. 어쩌면 고급스럽다는 요소들은 현학적이며 그래서 대중과의 소통을 어렵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BTS의 음악이 화성적으로 고급화되는 방식은 아마도 장단조성을 모호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Magic Shop’, ‘Spring Day’ 등은 장조인지 단조인지 모호하다. 이런 모호함이 세련된 것으로 들릴 수 있다.

BTS 노래의 반주는 어쿠스틱 악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컴퓨터가 생성해낸 전자음향이다. 전자음향은 음색적으로 혹은 음향적으로 무척 화려해질 수 있다. 어쿠스틱 음악에서도 화려한 음색의 음악과 단순한 음악이 있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스마트폰으로 들어도 좋고 최고 수준의 오디오 기기를 통해 들어도 큰 차이가 없다. 음향(색)적으로 단순하기 때문이다. 19세기 후반에는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동원한 화려한 관현악곡을 들을 수 있게 됐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나 구스타프말러 등의 오케스트라 곡들은 라이브로 들어야 한다. 최고 수준의 오케스트라가 최고 수준의 음악회장에서 연주하는 것을 들어야 의미가 있다. 아니면 최고 수준의 오디오 장비로 들어야 한다. 이들의 음악을 스마트폰으로 들으면 그 음향적 풍요로움의 진가를 알 수 없다. BTS는 이런 길로 가지 않았다. BTS는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즐겨 듣는 젊은 세대들의 친구다. 어쩌면 이 친구들에게 비싼 오디오와 화려한 음향의 음악은 위선이나 쓸데없는 현학일 수도 있다.

BTS는 비교적 좁은 음역에 음들이 퍼져 있는 음악을 선보인다. 젊은 친구들이 BTS의 음악을 같이 따라 하기에 큰 무리가 없다. BTS의 목소리는 김현식이나 전인권 같은 탁성이 아니다. 중성적인 예쁜 소리다. ‘IDOL’과 ‘Not Today’가 그나마 약간 거친 소리를 들려준다. 대부분의 한국 아이돌 그룹이 그러하듯이, 이 가수들의 음색은 크게 대조적이지 않다. 대부분의 한국 아이돌 그룹과 다른 점이 있다면 BTS의 음악이 복잡한 다성 음악과 단순한 제창의 중간쯤에 속한다는 것이다. 구성원 모두가 동일한 선율을 부르는 단순한 떼창은 지양한다. 대중음악치고는 꽤 정교한 다성 음악을 보여준다. BTS의 음악이 귀에 잘 들리지 않는다고 너무 낙담할 이유는 없다. 다만 BTS의 음악에 어떤 특성이 있는지를 알 필요는 있겠다.

※ 김진호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의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

202101호 (2020.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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