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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훈 산수음료 대표 

생분해 플라스틱, 생수업계 판도 바꾸다 

애써 분리배출한 생수병은 어떻게 재활용될까? 애석하게도 전체의 21%만 다시 생수병으로 돌아오고, 나머지는 대부분 소각된다. 이런 가운데 자연에서 완전히 분해되는 생수병을 국내 중소기업이 개발해 화제다.

환경부(2017년 기준)에 따르면 국내에서 한 해 출고되는 페트(PET)병은 28만6000톤에 달한다. 이 중 무색 페트병이 대부분인 생수병이 19만200톤가량이다. 한 병당 14~16g에 불과한 생수병 무게를 감안하면 매년 엄청난 양이 쏟아져 나온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비대면과 온라인이 일상화된 상황이라, 생수병 생산량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깨끗이 마시고 비워낸 생수병의 재활용률은 얼마나 될까? 정부 발표에 따르면 국내 페트병 재활용률은 61%에 달한다. 가정과 식당 등에서 열심히 분리배출에 나선 성과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실망스러운 수치를 마주하게 된다. 재활용률 61%에는 빈 병을 소각한, 즉 태워 없앤 실적이 포함돼 있다. 소각을 제외하고 온전히 재활용되는 페트병은 21%에 불과하다. 소각을 제하더라도 매년 땅에 묻는, 즉 매립하는 페트병만 100만 톤에 달한다.

페트병 소각 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미세플라스틱으로 인한 해양오염, 소각으로 발생하는 토양오염 등을 따져보면 페트병 재활용이라는 말 자체가 무색해진다. 국내 생수업계도 빈 페트병이 유발하는 환경오염을 줄이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용기 경량화, 친환경 소재 사용 등이 대표적이다. 김지훈 산수음료 대표는 생수업계의 친환경 트렌드를 주도하며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용기와 라벨은 물론 뚜껑까지 100% 생분해되는 소재를 세계 최초로 자체 개발하면서다.

세계 최초 100% 생분해되는 생수병

산수음료는 지난 1984년 설립됐다. 국내에서 최초로 상업용 생수를 시판하기 시작한 5개 기업 가운데 하나다. 1988년 서울올림픽 공식지정 음료로 선정돼 품질을 인정받은 것을 시작으로 2000년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 공식 공급업체, 2005년 KTX 일등석 공식 공급업체에 선정되는 등 품질 일등주의를 실천해오고 있다. 정식 인가를 받기 3년 전부터 시작된 미군 납품 경력까지 포함하면 국내 생수업계에서 가장 오랜 업력을 자랑한다.

친환경에 대한 산수음료의 고민과 고집은 창업주인 고(故) 김태룡 회장 시절부터 이어져온 DNA다. 김 회장은 창업 초기부터 재활용이 어려운 일반 페트병 대신 폴리카보네이트(PC) 생수통을 고집했다. 세척 후 재사용이 가능한 PC 소재는 건축 자재 등으로 재활용할 수 있다. 2010년에는 국내 중소기업 중 최초로 PET 플라스틱 사용량을 최대 20%까지 줄인 경량화 용기를 개발했다. 이로써 500ml 기준 18g이던 기존 생수병 무게를 14g까지 줄이는데 성공했다. 색상 염료 등 첨가제가 들어 간 경쟁사 페트병과 달리 단 하나의 첨가제도 넣지 않은 순수 PET 소재를 썼고, 제품 라벨도 수분리성(열알칼리성) 접착제를 사용해 분리배출을 쉽게 했다. 산수음료가 선보인 에코-PET 생수병은 이후 업계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환경에 대한 남다른 고민은 2018년부터 가업을 이어온 김 대표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불순물과 세균이 없는 깨끗한 물을 파는 기업이 환경을 오염시키는 용기를 대량으로 생산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단순히 실적을 올리려면 단가 싼 용기에 담아 팔면 그만이지만 지속가능한 경영, 나아가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선 과감한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죠.”

확고한 신념과 과감한 R&D 성과는 지난해 초 국내 최초로 선보인 바이오-페트(Bio-PET) 개발로 가시화됐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40% 이상 낮춘 ‘아임 에코(i’m eco)’ 패키지다. 전례 없이 떨어진 국제유가는 플라스틱 재활용보다 새로 만든 플라스틱 단가를 싸게 만들었다. 업체 입장에선 오히려 비용이 더 들어가는 재활용에 관심을 둘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김 대표는 “빈 페트병을 수거하는 재활용업체조차 쏟아지는 쓰레기 물량을 처리할 수 없어 두 손을 들게 된 형편”이라고 토로했다.

“쌓여만 가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고민한 끝에 생분해 소재 개발에 나섰습니다. 해마다 기후변화가 악화되고 환경은 오염되는 현실 속에서 작은 기업이지만 지속가능한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컸죠.”

김 대표가 취임 이후 처음 선보인 i’m eco 라인업은 세계 최초로 탄소배출량이 일반 페트병보다 40% 이상 낮은 친환경 제품이다. 미국 코카콜라가 병만 바이오-페트 재질로 선보인 데 비해, 병과 라벨, 뚜껑까지 사탕수수와 옥수수에서 유래한 친환경 저탄소 소재를 사용했다.

지난해 6월에는 또 다른 이정표를 세우는 데 성공했다. 18개월간의 R&D와 개발 비용 20억원을 들여 국내 최초로 생분해 플라스틱 제품을 선보였다. 옥수수와 사탕수수에서 추출한 원료로 만든 PLA(Polylactic Acid) 소재만 사용한 ‘아임 에코 고마운샘’ 라인업이다. 병과 뚜껑, 라벨에 모두 적용한 PLA는 180일 내에 완전 분해가 가능한 생분해성 소재다. 특정 조건하에 매립하면 물과 이산화탄소, 양질의 퇴비로 완전히 분해된다.

PLA 소재는 일반 페트병 소재에 비해 4배나 더 비싸다. 바이오-페트와 비교해도 단가가 1.5배 높다. 친환경을 중시하는 소비자가 타깃이라 해도 높은 판매가는 타사 제품에 비해 가격경쟁력 면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김 대표가 이러한 핸디캡을 감수한 건 플라스틱 재활용의 한계 때문이다.

물류 혁신으로 생수병 자가 회수


“분리배출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실상은 많이 다릅니다. 실제로 순수하게 재활용되는 페트병은 전체 21%에 불과해요. 그나마 재생플라스틱을 만드는 과정에 가성소다 같은 화학물질이 엄청나게 추가됩니다. 재생플라스틱을 식품용으로 쓰려면 10번 이상 세척해야 하는데, 플라스틱 1톤을 재활용하려면 오폐수가 10톤 이상 배출됩니다. 재활용하면 그만이라는 건 1차원적인 접근이죠.”

김 대표는 “빈 페트병의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선 분리배출만큼이나 회수 시스템 혁신이 필수”라고 말했다. 수거 과정에서 일반 플라스틱과 뒤섞여 불순물로 오염되면 재활용 자체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산수음료는 재활용률 제고를 위해 지난해 6월 환경부와 협약을 맺고 ‘자가 회수’ 시스템을 도입했다. 정기배송 고객을 대상으로 빈 병을 직접 회수하는 방식이다. 소비자에게는 회수된 병만큼 포인트를 제공해 재구매 시 할인 혜택을 준다. 그때그때 필요한 양을 구입하는 일반배송도 자가 회수 수량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차량 등 자체 물류시스템 도입이 필수다.

“기존 물류업체들과 협의해봤지만 산수 음료 제품만 따로 거둬들이는 건 불가능하다는 답만 돌아왔습니다. 차량 구입 등 설비투자에만 50억원 이상을 투입했죠. 이익 감소를 감수하면서까지 자가 회수를 확대한 건 ESG 경영을 위해서입니다. 친환경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가업의 가치를 올리고, 결국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가는 길이라고 확신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달라진 유통 환경은 오히려 재활용률 제고에 기회가 됐다. 편의점 등 오프라인 판매가 대폭 감소한 대신 온라인, 즉 이커머스 비율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현재 산수음료 전체 판매의 70%가 온라인에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생수 배달에 맞춰 빈 생수병을 문 앞에 내놓으면 그만큼 깨끗한 상태로 회수하기가 쉽다.

플라스틱 재활용에서 양을 늘리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질적 제고다. 김 대표는 이를 두고 “재활용의 다운사이클링이 아닌 업사이클을 이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법상 재생플라스틱을 다시 식품 용기로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다. 재활용 업체에 수거를 맡길 경우 깨끗하게 분리배출한 페트병도 불순물에 오염되게 마련이다. 재활용의 ‘하향평준화’를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김 대표는 분리수거만 제대로 이뤄져도 빈 페트병을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가공해낼 수 있다고 말한다. 고급 의류 소재인 장섬유(필라멘트 섬유)가 대표적이다.

플라스틱 재활용의 업사이클링 이뤄야

“현재 국내 의류업체들도 장섬유를 활용한 의류를 친환경 제품 라인으로 생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재생원사를 만들기 위해 일본 등 해외에서 쓰레기를 수입하고 있죠. 친환경 제품을 만들기 위해 남의 나라 쓰레기를 들여오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는 겁니다. 우리나라에도 플라스틱 쓰레기가 넘쳐나는데도요. 제대로 된 페트병 수거가 반드시 필요한 단적인 예죠.”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김 대표는 생체흡수성이 뛰어난 PLA 소재가 이미 의료용 봉합실이나 성형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에코 페트와 바이오 페트에 이어 PLA 소재를 생수병으로 개발한 건 국내를 넘어 세계 최초 사례다.

생체 독성이 없는 순수 소재인 PLA는 특정 조건하에서 매립하면 180일 만에 완전히 분해돼 환경오염을 원천 차단할 수 있다. 이에 더해 김 대표는 업계 최초로 PLA 재활용 기술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한 번 사용한 PLA 소재 용기를 화학적 처치를 통해 순수한 PLA로 다시 한번 재가공하는 과정이다.

“세계 2위 PLA 원료사인 토털 코르비온(Total Corbion PLA)과 공동으로 개발한 물리적 재활용 기술을 통해 재생 PLA(rPLA)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렇게 들여온 rPLA를 다시 생분해성 농업용 비닐로 만들 수 있죠. 농촌에서 많이 쓰는 기존 비닐은 토양오염의 주범입니다.”

김 대표는 rPLA를 활용해 친환경 용기 제조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해 말 자회사 ‘에코패키지솔루션’을 설립했다. 현재 국내 화장품 및 생수·식품 기업과 용기 개발을 협의 중이다. PLA 소재 재활용 자체가 고부가가치 기술이어서, 미국과 유럽의 글로벌 기업들과도 기술 제휴를 논의 중이다.

“PLA 소재 재활용이 산수음료의 새로운 먹거리가 될 것입니다. 올해 상반기 중 본격적으로 제품 납품이 이뤄지면 수익 개선에도 큰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대표이사 취임 직후부터 3년간 제품 개발에 몰두하면서 플라스틱 가공과 엔지니어링 전문가 다 됐습니다. 사출기사 자격증까지 땄죠. 애초 수익성 저하로 반대했던 직원들도 지금은 브랜드 가치 제고에 뜻을 같이하고 있어요. 단순히 깨끗한 물을 파는 회사가 아니라, 인류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뤄내는 파트너가 되고 싶습니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사진 임익순 객원기자

202102호 (2021.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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