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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기업에서 배운다 | 머크(Merck) 

한국 반도체 미래에 기대 건 머크의 투자전략 

353년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적인 최장수 과학기술기업 머크(Merck)가 한국의 전자 소재 부문에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 후 한국으로 제조 공장이 이전되며 아시아 허브로서 한국 머크의 역할은 더 커졌다. 지난해에는 한국 법인 설립 후 처음으로 한국인 대표가 취임했다.

독일 머크의 국내 행보가 심상치 않다. 1985년 첫 사무소를 연 한국 머크는 지난해 10월, 법인 설립 31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인을 대표로 선임했다. 올 3월 본사에서 ‘퍼포먼스 머티리얼즈’ 사업부를 ‘일렉트로닉스’로 바꾸며, 한국은 전자 소재 생태계에서 역할을 더 키우겠다는 의지도 다졌다. 특히 2019년 일본 수출규제 사태 이후 국내 반도체 업계에 설비 현지화 움직임이 뚜렷해지자 적극 뛰어들었다. 대표적으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소재와 LCD 테스트셀 제조시설 라인 증설이다. 머크는 지난해 10월부터 경기 평택에 관련 시설을 짓기 위해 약 250억원 규모 신규 투자를 단행했다. 앞서 같은 해 평택에 반도체 소재 개발과 생산을 위한 기술센터 K-ATeC도 문을 열었다.

세계 최장수 기업으로 알려진 머크는 350년간 전자소재(일렉트로닉스), 생명과학(라이프 사이언스), 헬스케어 등의 분야에서 매출 약 22조원을 기록하는 과학기술기업이다. 머크는 그간 한국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소재 분야 성장과 궤를 같이했다. 현재 한국 머크는 11곳에 이르는 사무소와 연구소, 생산시설에서 직원 1300여 명이 일하고 있다.

한국 생명과학 분야도 머크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다. 2019년 송도에 사업비 221억원을 들여 한국 생명과학운영본부를 건립하기도 했다.

거물 머크가 한국에 주목하는 이유는 뭘까. 김우규 한국 머크 대표는 “머크는 혁신적인 소재를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21세기 전자산업 고객에게 포괄적인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며 “한국은 머크의 차세대 소재와 기술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첨단기술 제조 국가”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델라웨어대학에서 유기금속·화학 박사학위를 받고, 1988년부터 반도체 산업에서 일했다. 23년 넘게 소재 연구개발, 마케팅 등 다양한 임무를 해온 정통 ‘반도체 전문가’이다. 3월 10일 서울시 강남 테헤란로에 있는 한국 머크 사무실에서 만난 김 대표에게 머크의 저력을 물었다.

머크에서 핵심인 전자 소재 사업 명칭을 바꿨다고 들었다.

머크 사업의 90%를 차지하는 전자 소재 사업부 머크 퍼포먼스 머티리얼즈에서 ‘머크 일렉트로닉스’로 바꿨다. 머크가 5G 기술, 인공지능(AI), 빅데이터와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같은 기술 트렌드 분야에 집중하려는 의지를 반영했다. 물론 일렉트로닉스에는 소재도 포함되지만, 머크는 소재 그 이상의 비즈니스 가치를 제공한다고 알리고 싶었다.

한국 시장에 어떤 도움이 되나.

한국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패널 부문에서 세계적인 제조사를 보유한 나라다. 머크의 최대 고객사나 다름없다. 2019년 일본 수출규제 사태 이후 한국에서 설비 현지화가 급속도로 이뤄졌고, 그 의지가 대단했다. 관련 업체를 돕기 위해 생산라인 증설도 추진 중이다. 올해는 EUV용 린스액 생산설비와 OLED 소재 증설 계획을 세웠다. EUV 린스액은 반도체 공정에서 찌꺼기를 씻어내는 액체이고, OLED 소재도 OLED 패널을 정제하는 라인에서 쓰인다. 그만큼 세계적인 화학 기술과 노하우가 필요한 분야다.

한국 주요 고객사에 납품하는 생산공장 아닌가.

그렇다. 물론 우리가 고객사에 납품하기 위해 공장만 증설하는 건 아니다. 지난해엔 한국 첨단기술센터(K-ATeC)도 설비와 연구 인력 투자를 늘렸다. 현재 주력 연구 분야인 화학기계연마(CMP) 소재 개발 외에도 반도체 전체 공정에 대응할 수 있는 연구 능력을 키우는 걸 돕고 있다. 국내 소재기업 솔립테크와 차세대 OLED 디스플레이 소재 개발에도 협력하고 있으며, 다른 한국 소재·부품·장비 기업과도 협업의 문을 열어 두고 있다. 한국의 첨단기술 제조 생태계 조성에 기여하겠다는 게 본사 방침이다.

전략적인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은 어떤 시장인가.


▎독일 머크의 혁신 센터.
한국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머크에 중요한 시장 중 한 곳이다. 특히 한국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헬스케어 분야에서 놀라운 기술과 생산력을 갖춘 곳이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인 특유의 호기심과 개척정신으로 일군 성과다. 머크도 그 성장 과정을 옆에서 지켜봐왔고, 기여했다. 1985년에 한국 첫 사무소를 열고, 50년 넘게 쌓은 전자산업 노하우를 지난 30년간 한국 업체들과 공유했다. 2000년대 초반 한국 디스플레이 업계가 태동할 무렵에는 소재 개발과 생산 시설에 필요한 기술과 노하우를 제공했다. 한국 내 11개 지점과 사업장에서 머크의 노하우를 전수 중이다.

한국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는 계속 성장할 수 있을까.

첨단기술 제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혁신과 생산력이다. 한국은 아태 지역에서 유일무이한 기술제조 허브 역할을 해왔다. 머크 평택 사업장에는 첨단기술센터 외에도 차세대 CMP 소재 연구소와 제조센터가 있다. 국내 고객사와 가까운 곳에 있어 실시간 지원이 가능하다. 평택 포승 사업장에서는 차세대 디스플레이 소재인 LCD 생산시설과 OLED 연구소가 있고, 앞으로 LCD 테스트 셀과 OLED 정제설비를 통해 생산을 늘릴 예정이다. 한국정보디스플레이학회와 협력해 디스플레이 분야 고급 인력을 키우는 데도 노력하고 있다. 그 덕분에 2020년 10월 한국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2월 경기도청에서 공로상도 받았다. 최첨단 기술 제조국 한국이 맞닥뜨리는 다양한 기술 난제를 극복하도록 기여했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성장이 멈춘 곳에는 투자하지 않는다.

머크는 인수합병의 귀재라 불린다.

미국 버슘 머티리얼즈(이하 버슘)와 인터몰레큘러를 인수하면서 그런 면이 부각된 것 같다. 실제 두 회사를 합병한 후 반도체 소재 분야 사업을 강화할 수 있었다. 버슘과 인터몰레큘러는 소재전문기업이다. 2019년 9월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인터몰레큘러를 6200만 달러(약 700억원)에, 같은 해 10월 애리조나 본사를 둔 버슘을 58억 유로(약 7조8000억원)에 인수했다. 특히 버슘은 반도체 7대 공정으로 꼽히는 주입, 패터닝, 증착, 평탄화, 식각, 세정과 백엔드 패키징에 이르는 거의 모든 공정과 닿아 있는 유일한 기업이다. 심지어 유도 자기 조립(DSA), 3D 낸드, DRAM 스케일링, MPU, 첨단 패키징까지 초미세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머크 입장에서도 기대가 크다.

버슘과 인터몰레큘러 인수 후 비즈니스에서 변화된 점은.

머크는 한국 반도체 및 소재 시장의 중장기적 성장의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한다. 버슘을 인수한 후 머크는 주입, 패터닝, 증착, 평탄화, 식각 및 세정과 백엔드 패키징에 이르기까지 7대 핵심 프런트 엔드 공정에 모두 참여하는 반도체 생태계 내 유일한 기업이 됐다. 한편 인터몰레큘러를 인수한 후에는 고객에게 독특하고 더욱 신속해진 소재 개발과 전기 테스트 역량을 제공하고 있다. 두 기업 인수로 머크 고객들이 직면한 차세대 반도체 디바이스에서 더욱 복잡해지는 로드맵 난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기술 리더가 탄생했다.

끊임없이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한 노력이 있어 지금의 자리를 지킨 듯하다.

그렇다. 350년 전에 전자산업이 있었겠나. 산업 태동기마다 변화를 빠르게 포착했고, 관련 기업을 인수하거나 기술 연구개발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앞으로 전 세계 시장에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첨단 정보사회가 본격화할 거란 생각에는 본사 어느 누구도 이견이 없다. 디지털 변혁은 막대한 반도체 수요를 낳았고, 공정과 생산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이 일어났다. 반도체 설계 기술뿐만 아니라 물리, 화학, 전자공학 등 기초분야 연구를 선행하고, 사업화에 성공한 노하우도 잘 갖추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머크 일렉트로닉스 사업부는 우리의 반도체 생산 솔루션이 5G, AI, 사물인터넷(IoT) 등의 기술이 발전하는 데 토대가 됐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머크가 꿈꾸는 기술혁신은 뭔가.


▎CES2021에서 혁신상을 수상한 스마트 윈도우 생산 시설.
우리의 삶을 바꾸는 일이다. 올해 1월 온라인으로 열린 소비자가전쇼(CES) 2021에서 머크는 기술이 5G, AI, IoT, 자율주행, 스마트 시티 등의 분야에서 어떻게 쓰일지 선보였다. 우리는 새로운 아이라이즈® 사생활 보호 윈도우(스마트 윈도우)로 CES 스마트 시티 부문에서 혁신상을 수상했다. 혁신 제품은 투명에서 반투명으로 즉시 전환이 가능하다. 아이라이즈 사생활 보호 윈도우는 사생활 보호 기능, 태양광과 유연성 중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으면서 비교할 수 없는 편안함을 선사한다. 머크는 항상 현재의 비즈니스 포트폴리오의 저 너머를 바라보고 있다. 또 인간의 뇌 모형을 기반으로 하는 ‘뉴로모픽’ 시스템용 반도체 소재를 비롯해 다양한 디지털 솔루션이나 양자컴퓨팅을 연구 중이다. 우리 생활 속 금융 서비스, 제약, 유통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용돼 기존 컴퓨터 활용 방식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뉴로모픽 칩 개발에 참여하고 있나.

그렇다. 머크는 가까운 미래에 기존의 컴퓨팅 아키텍처로는 최근 이슈가 되는 머신러닝을 구현할 수 없다고 본다. 데이터센터의 경우 프로세서와 메모리 간 데이터가 오가는 데 막대한 에너지가 소모된다. 인간의 뇌를 닮은 뉴로모픽 칩은 대규모로 병렬화된 컴퓨팅을 하면서 저장과 연산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다. 수많은 산업 고객이 현장에서 겪는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한국 기업들과 협업이 가능한 기술이나 산업 분야는.

한국은 일렉트로닉스 사업의 매출에서 아시아 최대 시장으로 부상했고 여전히 성장 일로에 있다. 최근 한국 회사 솔립테크와 맺은 파트너십을 통해 프리폼 디스플레이 제조의 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일련의 새로운 디스플레이 소재 출시를 앞당길 수 있게 됐다. 세계를 선도하는 OLED 제조업체를 위해 고성능 OLED 스택도 개발하고 있다. 머크는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에서 강건한 성장 토대를 쌓는 데 크게 기여했다. 2004년 머크 어워드를 제정하는 등 한국정보디스플레이학회와 인적 교류를 강화하고, 디스플레이 업계의 발전뿐 아니라 기술 전문가 풀 확대와 고급 인력 육성에도 크게 기여했다. 상생 협력의 좋은 예다.

기술혁신을 꾀하려면 조직문화도 남달라야겠다.

다양성과 포용성(Diversity & Inclusion, D&I)은 산업의 화두 중 하나다. 머크는 ‘성취, 책임감, 존중, 성실, 투명성’이라는 기본 가치 위에 임직원 모두가 잠재력을 발휘하도록 돕는다. 그 어떤 기업보다 리더가 될 수 있는 기회를 공정하게 마련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최근 머크에 여성 리더를 대거 기용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지난해 말 머크는 디지털&데이터 리더로 빅데이터 여성 전문가 이선우 박사를 지명했다. 또 평택 K-ATeC 연구 소장에 여성 과학자 유정윤 소장이 기용됐다.

목표와 각오를 말해달라.

코로나19 이후 한국이 전 세계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을 리드할 수 있는 때를 맞았다고 생각한다. 디지털화, 도시화, 소형화, 모빌리티라는 메가트렌드로 가속화되는 데이터 폭발은 앞으로 수년간 식을 일 없이 기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머크는 혁신 파트너가 되어 한국이 다양한 기술적 난제를 극복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는 점에 자부심을 느낀다. 머크는 디지털 리빙을 발전시키는 회사들이 기술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파트너 회사다. 머크는 앞으로 일렉트로닉스, 헬스케어, 생명과학 등 모든 분야에서 세계 기업들과 함께 성장하는 데 발판이 되고자 한다.

-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202104호 (2021.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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