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agement

Home>포브스>Management

담장을 둘러친 이민자의 나라 

 

구글에서 테슬라에 이르기까지, 이민자들이 창업한 스타트업들은 미국에서 가장 덩치 크고 가치 있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왜 미국은 외국인 기업가들의 창업을 어렵게 만드는 걸까?
모바일 앱과 웹사이트에서 실시간 채팅과 메시징 서비스를 제공하는 센드버드(Sendbird)의 공동 창업주 존 S. 김(40)은 5년 전 스타트업 경영을 위해 고국 한국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건너왔다. 야후와 레딧, 헤드스페이스를 비롯한 미국 고객사와 가까운 곳에서 사업을 하면서 실리콘밸리 벤처 투자를 받고, 미국 엔지니어들을 고용하고, 미국에서 회사를 키우기 위해서였다. 한국에서 창업했기 때문에 외국인 경영자를 위한 비이민 비자는 쉽게 얻었지만, 2019년이 되자 갱신 가능한 횟수가 한 번밖에 남지 않았다. 그는 합법적 영주권을 얻기 위해 그린카드를 신청했다. 그러나 영주권이 거절될 것이란 서한을 받았다. “거부 의사 통지서는 ‘마음이 바뀌었다. 당신을 쫓아낼 예정’이라는 메시지였습니다.” 그가 말했다. “1억 달러가 넘는 투자금을 모집했고, 매출이 수천만 달러였고, 고용을 창출하고 있는데 정말 뺨 한 대 맞은 기분이었죠.”

다행히 소프트뱅크와 타이거 글로벌 등 굴지의 투자사들에서 지원을 받고 기업가치가 10억 달러 넘게 성장한 상태였기 때문에 존 김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두 달간 회사 CFO, 인사부 최고책임자와 비상계획을 논의하며 한국 군복무 규정에 대한 번역본을 포함해 수많은 추가 문서를 제출한 끝에 그는 영주권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때의 경험은 트라우마로 남았다. “회사를 세우고 싶어서 왔는데 당연히 쫓겨나기 싫었죠.” 현재 샌프란시스코에서 아내, 두 자녀와 함께 살고 있는 존 김이 말했다. “시민이 아닐 때는 저승사자가 머리 위에 버티고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기업가정신의 중심지이자 이민자들에겐 희망의 불꽃이었던 미국이 지금은 정치화된 이민정책을 복잡하게 만들어 외국인 창업주들이 가는 길에 장애물을 세워놓았다. 그 결과 미국에서 창업을 하려는 이민자들은 수년 전부터 E-2(조약 체결국 출신의 투자자 비자)나 O-1(특기자 비자) 등 얼마 안 되는 비자 카테고리 중 하나를 찾아 억지로 조건을 맞추거나 딱히 자기 상황과 맞지 않는 다른 6개 비자 카테고리를 대충 꿰어 맞춰서 비자를 발급받고 있다. 현 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노골적으로 적대적인 이민자 정책을 이어가고 있지는 않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과 새로 구성된 의회 모두 뛰어난 기술과 역량을 갖추고 미국의 문을 두들기는 창업자들에게 좀 더 호의적인 정책을 제공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스타트업 비자의 필요성

근본적인 문제는 10여 년 넘게 계속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미국에 창업자들을 위해 마련된 스타트업 비자가 없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 미국은 최고의 인재들을 자석처럼 끌어당겨 왔다. 그러나 지금은 전 세계 기업가들에게 더 쉬운 길이 많이 열려 있다. 지난 10년간 스타트업 비자를 신설해서 기업가들에게 구애를 펼치는 국가는 싱가포르와 영국을 비롯해 약 25개로 늘어났다. “(스타트업 비자) 아이디어를 그들이 처음 낸 건 아닙니다. 우리가 먼저 낸 아이디어인데 우리는 실행을 못 한거죠.” 전미 벤처캐피털협회 법무자문인 제프 파라가 말했다.

“인재 확보를 위한 글로벌 전쟁이 치열하다”고 AOL과 투자사 레볼루션을 공동 창업한 억만장자 스티브 케이스가 말했다. 그는 스타트업 비자의 중요성을 논하며 계속 도입을 요구하는 중이다. “최고의 아이디어를 가진 최상위 인재들이 미국에 와서, 미국에 머물면서, 미국에서 창업하고 회사를 키우길 원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진취적인 국가라는 선두 자리를 놓치게 될 겁니다.” 이민자 출신 창업주들은 자신의 회사를 설립해 직접 고용을 창출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그들의 회사는 더 광범위한 지역사회에서 추가 고용을 창출하는 파급효과가 있다. “이민을 둘러싼 난제들을 무시하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이민에 대해, 특히 기업가 이민에 대해 지금처럼 힘들고, 혼란스럽고, 일관성 없고, 변동이 심한 방법을 고수한다면 우리는 최고 혁신 국가로 남지 못할 겁니다.”

외국인 기업가들은 미국의 성공을 위한 열쇠다. 미국에서 회사를 운영하는 외국인 창업자만 약 320만 명이다. 전체 인구에서 이들의 비중은 14% 정도지만, 사업가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2%다. 인구 대비 많은 수의 신기술 특허권을 보유하고 있고, 직원 800만 명을 고용하고 있으며, 데이터브릭스(Databricks)를 비롯해 이들이 창업한 스타트업들은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받은 유니콘기업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포브스 억만장자 순위에 포함된 부자 중 77명은 외국 출신의 기업가인데, 이들이 설립한 미국 기업의 매출을 합치면 5280억 달러에 달하며 고용은 77만5000명이다. 이민자가 창업한 회사 중 대어급으로는 구글, 테슬라, 야후가 포진해 있다. “내가 비자를 걱정해야 했다면 야후는 시작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야후의 공동 창업자이자 억만장자인 제리 양(Jerry Yang)이 말했다. 그는 어렸을 때 대만에서 이민을 왔기 때문에 야후를 창업할 즈음에는 이미 귀화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의 미래는 이러한 인재의 유치와 보유에 달렸다. 오바마 행정부는 임기 말에 ‘외국기업인 특별규정(International Entrepreneur Rule)’ 프로그램을 신설하고 투자금이 25만 달러 이상인 외국인 기업가들이 무비자로 미국에 머물 수 있도록 재가해줬지만, 이 프로그램은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무제한 연기됐다. 지난 5월 바이든 행정부가 이 규정을 되살리겠다고 발표했지만, 아직은 영주권이나 시민권 취득까지 갈 수 있는 분명한 경로를 제시하지 않은 미봉책에 머물고 있다. 이에 더해 트럼프 재임 기간 동안 반이민정책이 추진되고 고용을 기준으로 한 영주권 발급 대기 시간(현재 평균 5년 이상으로, 인도 등의 국가는 신청자가 많은데 추가 배정된 영주권이 없어서 시간이 더 걸린다)이 연장되면서 미국은 ‘창업자들이 몰려드는 국가’ 지위를 잃을 위험에 처했다. 이민 연구 및 권익증진 단체인 뉴아메리칸 이코노미 조사 자료에 따르면, 2019년 말까지 이어진 트럼프 행정부 3년(2020년 데이터는 아직 집계되지 않음) 동안 창업 이민자의 수는 총 4.1% 증가하는 데 그쳤다. 그 이전 3년만 해도 창업 이민자 증가율은 11.3%를 기록했다. 게다가 2019년 미국 내 외국인 기업가의 수는 4400명 감소했다. 2000년 이후 외국인 기업가 감소는 처음 있는 일이다.

“타이어에서 바람이 빠지듯이 미국은 조금씩 경쟁력을 잃고 있다”고 하버드 로스쿨 펠로이자 2012년 출간된 『이민자 엑소더스: 미국이 창업인재를 놓치는 이유(The Immigrant Exodus: Why America is Losing the Global Race to Capture Entrepreneurial Talent)』의 저자 비벡 와드와가 말했다. “최고 인재들이 더는 미국으로 오지 않는다는 것이 팩트입니다.”

오긴 했는데 창업을 못 하는 경우도 있다. “스탠퍼드 박사 학위를 받고 창업을 꿈꾸는 지인이 많은데, 그럴만한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다”고 포브스 ‘30세 이하 30대 리더’로 선정된 중국 출신 이민자 샤오인 쿠가 말했다. 그는 페이스북에서 근무하면서 영주권을 받은 후퇴사하고 온라인 행사를 주최하는 스타트업 런더월드(Run the World)를 창업했다. “창업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는데 비자가 없어서 못 하는 페이스북 동료가 20명은 넘습니다.”

비자에 발목 잡힌 창업자들

미국은 비자 취득 과정을 조금도 쉽게 만들어주지 않고 있다. 24명이 넘는 외국인 창업자와 이들이 경험했던 문제, 어쩔 수 없이 내린 어려운 결정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이민 자격 때문에 창업하기까지 수년을 기다렸다는 사례가 있는가 하면, 비자 취득 문제 때문에 다시 해외로 나간 사례도 있었다.

지니아 트로피모바(35)는 카네기멜론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온라인 코칭 플랫폼 인트로와이즈(Introwise) 창업을 위해 스타트업에 친화적인 고국 에스토니아로 돌아갔다. 2년 뒤 시애틀에 있는 테크스타즈(Techstars) 액셀러레이터의 지원을 받기 위해 미국 사업부를 설립하려고 돌아온 트로피모바는 (미국 내 취업이 금지된) B-1 단기상용 비자로 입국했다가 공항에서 5시간 동안 억류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제가 창업자처럼 안 생겼다고 하더군요.”

이란 출신의 페이만 살레히안(34)은 첫 창업을 하고 나서 미국 대학원 유학을 고려했지만, 대신 싱가포르 국립대학에 더 끌려 싱가포르 유학을 택했다. 그곳에서 화학과 생체분자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2019년 말 친구와 함께 합성생물학 기업 알로자임(Allozymes)을 창업했다. 미국에서 창업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스타트업 펀딩 제안을 싱가포르에서 받았기 때문에 싱가포르에 계속 머물면서 대형 투자자에게 투자를 받기로 결정했다. 현재 25만 달러를 모집한 알로자임은 이제 막 시작 단계다. “투자자는 우리가 당장 미국으로 가서 미국 법인을 설립하는 게 좋겠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고 살레히안은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변호사들과 논의했는데 미국에는 싱가포르의 엔터패스(EntrePass: 외국 기업가의 창업을 위한 무비자 패스) 같은 제도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비자는 종류를 막론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고요.”

닐레이 파리크(30)는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항공공학 석사 과정을 위해 9년 전 인도에서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가 지금은 H-1B 비자로 시카고의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H-1B 비자는 대기업 직원을 위한 3년짜리 근로비자다. 파리크는 인공지능을 활용해 공장 운영의 안전성을 개선하는 사업 아이디어를 가지고 미국에 왔지만, 이민 규정 때문에 미국에서 창업을 하지 못했다. 영주권을 받을 때까지 기다릴 마음이 없었던 그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일단 미국에서 직장을 다니면서 스타트업 비글로벌 세이프티(Be Global Safety)를 네덜란드에서 창업하기로 결정했다. “굉장히 복잡했습니다.” 그가 말했다. “캐나다, 두바이, 독일, 네덜란드를 다 알아봤습니다.” 결국 네덜란드가 최종 낙점됐다. 네덜란드는 AI 기업에 필요한 자원을 제공해주고, 코로나19로 인한 여행 제한 때문에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로테르담이 항공 허브이자 주요 항구도시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있는 바이오테크 벤처투자사로, 모더나에 투자해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방아쇠를 당긴 플래그십 파이오니어링(Flagship Pioneering)의 억만장자 창업주 누바 아페얀(58)은 비자 발급의 어려움 때문에 그가 투자한 스타트업 중 다수의 설립이 지연됐다고 말했다. “창업자가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보니 일이 늦어졌습니다.” 레바논계 아르메니아 난민의 손주로 태어난 아페얀은 2008년에 미국 시민이 됐다. “점점 힘들고 예측 불가능한 환경이 되고 있습니다.”

일어나지 않은 일이나 설립되지 못한 기업의 수를 추산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카우프만 재단은 2013년 분석을 통해 스타트업 비자 프로그램이 도입됐다면 억눌려왔던 창업 수요가 폭발해 10년간 신규 일자리 160만 개가 창출됐을 것이란 결론을 내놓았다. 2020년 전미경제연구소(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는 이민 규제가 미국 창업 활동을 저해하는 이유를 조사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이민자는 미국에서 태어난 국민보다 창업할 가능성이 80% 더 높으며, 이민자가 설립한 회사들은 미국인이 설립한 회사들보다 인구집단 대비 42%나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미국의 망가진 이민제도를 둘러싼 광범위한 논의에서 창업자 문제는 많은 이슈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이민자의 창업은 미국의 경제성장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으로 유입되는 창업 이민을 억제하거나 막으려는 것은 의도적으로 미국을 경쟁 열위로 몰아넣는 것과 같다”고 파운드리 그룹 전무이사이자 테크스타 액셀러레이터 공동 창업자인 브래드 펠드가 말했다. 다른 많은 국가가 스타트업 비자와 혜택을 제공하는 이유 중 하나는 뛰어난 창업가들을 데려오기 위해서다. 과거 미국은 인재 유입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미국 대학들은 해외 유학생으로 붐볐고, MIT와 스탠퍼드, 카네기멜론 등 명문대를 졸업한 유학생들은 미국에서 창업을 했다. 1990년대에는 소련 난민이었던 세르게이 브린이 구글을 공동 설립했고, 프랑스 이민자였던 피에르 오미디야르(Pierre Omidyar)는 이베이를 창업했다. 미 기업가정신센터(Center for American Entrepreneurship)가 발간한 조사 보고서를 보면, 글로벌 벤처 투자자금의 90% 이상이 미국 기업으로 향했다.

그러나 지금 실리콘밸리의 벤처투자사들은 글로벌 시장으로 투자를 확대하고 있으며, 해외 투자자들은 미국 외 다른 곳에서 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들려 하고 있다. 벤처캐피털협회 자료를 보면, 글로벌 벤처투자금 3210억 달러 중 미국 스타트업으로 향한 돈은 이제 절반이 살짝 넘는 1640억 달러 정도다. 거대 전자상거래 기업 스냅딜(Snapdeal)을 창업한 인도 기업가 쿠날 발이 와튼 졸업 후 H-1B 비자를 받지 못해 2007년 미국을 떠난 사실은 이미 유명하다. 스냅딜은 현재 4000명 가까운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데, 대부분이 인도인이다. “우리는 40년 된 이민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고 보스턴의 이민 전문 변호사 엘리자베스 고스가 말했다. “기업가들은 일자리를 안겨주는 사람들이잖아요.”

설상가상으로 미국 대학들은 코로나19 팬데믹의 타격을 입었다. 미국 대학이나 대학원 유학은 오래전부터 외국인 기업가들을 미국으로 안내하는 유입 경로였는데, 코로나19가 그 길을 막아버린 것이다. 국제교육원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 직접 와 있거나 온라인으로 강의를 수강하는 해외 유학생의 수는 2020년 가을 16% 감소했다. 코로나19가 끝나면 어느 정도 만회하겠지만,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미국에서 유학할 때 비자를 받지 못한 학생들은 그 후 창업을 하려 해도 여의치 않을 것”이라고 MIT 슬론 경영대학원의 피에르 아주레이 교수가 말했다. 창업 이민을 연구하는 그는 전미경제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조사 보고서의 저자 중 한 명이다.

벤처투자자 펠드는 테크스타로 들어온 많은 외국 창업자가 창업을 하지 못해 힘겨워하는 모습을 본 후 2008년부터 스타트업 비자 도입을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2010년 당시 상원의원이었던 리처드 루거(공화당, 인디애나)와 존 케리(민주당, 매사추세츠)가 최초로 스타트업 비자 법안을 제출했지만, 상원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2013년에 스타트업 비자가 들어간 포괄적인 이민자 개혁 법안이 제안됐다. 그러나 이 법안도 흐지부지됐다. 그 뒤에도 초당적 노력은 이어졌다. 상원에서는 제리 모란(공화당, 캔사스) 의원과 마크 워너(민주당, 버지니아) 의원이, 하원에서는 조 로프그렌(민주당, 캘리포니아) 의원과 루이스 구티에레즈(민주당, 일리노이) 의원이 스타트업 비자를 지원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모두 법으로 제정되지 못했다. 이민위원회를 감독하는 로프그렌 의원은 현재 새로운 비자 프로그램 법안을 준비 중이다.

지금은 미국의 이민정책이 빠진 악명 높은 수렁에서 스타트업 비자 이슈를 분리해내는 작업이 먼저다. “기업가정신을 억제해야 한다며 공격하는 괴물 같은 반대자는 없습니다. 기업가정신은 다들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그러나 전반적인 이민 논란에서 이 문제를 별개로 빼내지 못했습니다.” 벤처캐피털협회의 파라가 말했다.

연방법이 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땜질식 처방만이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 뉴욕시에 본부를 두고 2015년 설립된 글로벌 EIR 이니셔티브는 디트로이트와 피츠버그 등의 도시와 연합해 창업 이민자들을 위한 레지던스 프로그램(entrepreneur-in-residence)을 만들었다. 지금까지 창업자 100여 명을 받아들여 함께 일했는데, 이들은 총 5억 달러 자금을 모집하고 1000여 명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공식적으로 스타트업 비자 프로그램이 도입된다면 5억 달러와 1000명의 100배에 달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다. 미국은 지금 이런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희망적인 요소가 하나 있다면, 바로 ‘외국 기업인 특별규정’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5월에 되살린 이 규정은 25만 달러 이상을 투자한 외국 기업인들에게 허가(parole)를 내주는 재량권을 국토안보부에 부여한다. 특별규정에 따라 자신이 미국에 혜택을 가져온다는 점을 입증한 기업가들은 미국에 와서 2년 반 동안 자신이 창업한 스타트업에서 일할 수 있고, 이 기간은 1회 더 연장할 수 있다. 특별 규정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 처음 제안됐을 때만 해도 매년 3000명 가까이 신청하고 10년간 미국에 최대 43만 개 일자리를 안겨줄 것이란 예상이 나왔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사실상 이 규정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4년 후 신청자는 28명뿐이었고, 이 중 실제 승인을 받은 사람은 단 1명이다.

남은 과제

그 단 1명이 바로 이아니스 이아코우미스(39)다. 그리스에서 미국으로 유학 와서 스탠퍼드대학에서 전기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2017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네트워크 보안과 성능을 개선하는 셀피 네트워크(Selfie Networks)를 공동 창업했다. 당시 그는 O-1 비자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 비자로는 함께 온 아내가 일을 할 수 없었다. 이 후 국토안보부의 특별 허가를 받을 수 있음을 알게 된 그는 2018년에 허가 신청을 했다. “불리한 내용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아코우미스가 말했다. “저희는 누가 자세히 보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1년이 걸리긴 했지만, 결국 그는 승인을 받아냈다. 이 소식은 많은 사람에게 놀라움을 안겨줬다.

중국에서 태어나 시카고대학을 졸업한 글렌 왕(30)은 앨버타주 캘거리에서 부모님과 지내면서 국토안보부에 특별 허가 신청을 했다. 그는 2019년 말에 테이크아웃 단골 주문을 확보해 레스토랑의 사업 확장을 돕는 스타트업 더서드플레이스(The Third Place)를 샌프란시스코에 설립했다.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Y 컴비네이터의 검증을 통과한 회사였다. 그러나 그가 갖고 있던 H-1B 비자 때문에 이전 직장이었던 온라인 교육기관 칸아카데미를 떠날 수가 없었다. 그는 “스타트업이 제대로 서기 전에는 자기 스타트업에서 풀타임으로 일하는 것 자체가 법적으로 매우 까다롭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의 이민 변호사 소피 알콘은 국토안보부 허가 신청을 받아달라는 외국 기업인들의 의뢰를 여러 건 받고 있다. 그녀는 “현재 해외에 있는데 미국에 들어올 수 없는 사람이 있고, 미국에 들어왔는데 자기 회사에서 일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투자금 수백만 달러를 모집한 사람만 엄선해서 신청하고 있습니다.”

다시 살아난 외국 기업인 특별규정은 분명 큰 도움이 되고 있지만, 재량 허가는 비자가 될 수 없다. 인도주의적 사안으로 대통령의 승인을 받았을 뿐이고 행정부가 바뀌면 언제든 철회될 수 있다. 미국에 머물러야 하는 창업자들이 재량 허가에서 영주권으로 직접 옮겨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는 스타트업 비자가 도입되어야만 가능하다.

스티브 케이스는 “너무 늦기 전에 의회가 행동에 나서기 바랍니다”라며 “수년이 지나면 변화가 생길 수 있을까요? 그래야 할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혁신경제 1위 자리는 위협받을 테니까요”라고 덧붙였다.

이민 문제를 둘러싼 당파 정치 때문에 스타트업 비자는 오래전부터 교착 상태에 빠졌고, 해결은 항상 요원했다. 그러나 팬데믹 이후 경제 반등을 촉진할 방안을 모색하게 되면서 사안은 시급해졌다.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미국의 문을 두들기던 창업자들이 닫힌 문에 좌절하고 발길을 돌렸을 때 두 팔 벌려 이들을 환영할 나라는 많으니까.

[박스기사] 알파벳 잡탕

미국의 이민제도는 알파벳 약자들로 뒤죽박죽되어 있다. 스타트업 비자가 없는 상태에서 기업가들과 창업을 원하는 사람들이 신청하는 주요 비자 중 일부를 소개한다.

B-1: 임시 비자라서 B-1으로는 미국에서 고용되거나 일할 수 없다.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급여 없이 초기 시장조사를 진행할 때 이 비자를 이용한다.

E-2: 투자자를 위한 비이민 비자다. 미국과 무역조약을 체결한 국가 출신만 신청할 수 있다. 신청 가능한 국가는 많지만, 중국과 인도는 제외되어 있다.

H-1B: 대기업 직원들이 주로 받는 3년짜리 비자다. 기업가들은 자기 스타트업을 고용기업으로 내세워 신청한다. 그러나 회사의 피고용인 지위에 머물러야 하며, 소득 대부분을 해당 기업에서만 받아야 한다. 소유할 수 있는 회사 지분에도 제한을 둔다.

L-1: 미국 사업부로 발령받은 외국인 경영진을 위한 비자다. 해외에서 먼저 창업을 한 후 미국에 잠시 머물다 가는 기업인들이 주로 이용한다.

O-1: 특별한 능력을 갖춘 인재들에게 주어지는 비자다. 기업가적 자질도 ‘특별한 능력’에 포함되기 때문에 신청할 수 있다. 기준이 특히 까다롭기 때문에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통과하고 투자금을 확보하고 언론에도 보도된 창업자들이 주로 신청한다.

OPT F-1: 비자를 받고 미국에서 학위를 취득한 기업인과 졸업생들은 선택적 실습 교육(optional practical training)을 마치고 1년간 미국에 머물 수 있다.

[박스기사] 두 팔 벌린 국가들

지난 10년간 창업자들을 불러들이기 위해 스타트업 비자를 도입한 국가는 호주와 독일, 포르투갈, 영국을 비롯해 약 25개국에 달한다. 그중 5개국의 제도를 살펴본다.

캐나다: 신청 자격: 공인된 벤처투자사로부터 16만5000달러 이상의 투자를 받았거나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프로그램에서 6만2000달러 이상을 받은 기업인(영어 혹은 프랑스어 능통 필수)

칠레: 정부가 운영하는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 ‘스타트업 칠레’가 있다. 2010년 도입 이후 1960개 스타트업의 칠레 창업을 도왔다. 이 프로그램을 마친 스타트업들은 투자금을 받아도 지분을 주지 않아도 되고, 멘토링도 같이 받을 수 있다. 1년간의 취업 비자도 함께 제공한다.

에스토니아: 기술기업 창업 등 고성장기업 창업주들을 대상으로 비자 신청 후 영업일 10일 안에 승인 여부를 알려주는 스타트업위원회를 두고 있다. 2017년 도입된 이후 2750명 이상이 지원했으며, 추가로 창업자 750명이 작지만(인구 130만 명) 스타트업 친화적인 에스토니아로 본사를 옮겼다. 이들 중 다수는 러시아, 이란, 인도 기업가들이다.

아일랜드: ‘스타트업 기업가 프로그램’이 있어 ‘혁신적인 사업제안서’와 함께 6만1000달러(현재 환율 기준)만 있으면 EU 출신이 아니어도 비자를 받을 수 있다. 일단 비자를 받으면 추가 비자 신청 없이 가족들도 모두 데려올 수 있다.

네덜란드: EU 출신이 아닌 기업인들은 하이테크XL 액셀러레이터를 비롯한 약 30개 ‘조력자’ 기관 중 하나와 함께 일해야 한다. 소득 기준이 낮아서 현재 환율 기준으로 연 2만5000달러 정도만 벌어도 신청할 수 있다. 비자 유효기간은 1년이지만, 이후에는 창업자가 자영업자로 일하는 근로허가권을 신청하면 된다.

• 제리 양 | 순재산: 24억 달러/ 야후/ 대만
“이제는 전 세계에서 기업가정신을 환영하는 곳이 많아졌다. 그만큼 창업자들의 선택 범위가 넓어진 것이다. 우리의 이민정책이 이들을 반기지 않을수록 이들은 미국에서 멀어질 것이다.”

• 누바 아페얀 | 순재산: 22억 달러/ 플래그십 파이오니어링/ 레바논
“돈만 가져오는 게 아니라 사람을 고용할 능력이 있는 인재에게는 들어올 수 있는 길을 내줘야 한다. 미국은 이민자의 태도와 사고를 통해서도 혜택을 얻을 수 있다.”

• 에렌 오즈멘 | 순재산: 12억 달러/ 시에라 네바다/ 터키
“이민자 입장에서 보면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그러나 더 열심히 일하는 자세는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내 자산이 될 것이다.”

• 마크 존스 | 순재산: 10억 달러/ 구스헤드 인슈어런스/ 캐나다
“H-1B 비자로 있을 때 정말 많은 사업 아이디어가 있었지만 추진하지 못했다. (당시 고용주에게) 매여 있었기 때문이다. H-1B 비자가 만료된 후에는 그린카드를 얻기 위해 다시 2년을 기다려야 했다.”

※ 이민자 출신 억만장자들 외국에서 온 기업가들은 날을 세운 미국의 적대적 이민제도를 극복하고 억만장자가 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민 장벽이 더 높아지면서 다음 세대 기업가들은 그만큼의 행운을 기대하지 못하게 됐다.

- AMY FELDMAN 포브스 기자

위 기사의 원문은 http://forbes.com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포브스 코리아 온라인 서비스는 포브스 본사와의 저작권 계약상 해외 기사의 전문보기가 제공되지 않습니다.

이 점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202107호 (2021.06.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