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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문화를 논하다 

실리콘밸리 기업문화의 어두운 그림자 

꼰대질, 갑질 등으로 일컬어지는 직장 내 유해 문화의 주요 비판 대상은 기성세대였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최근 밀레니얼이 이끄는 스타트업에서도 종종 이런 사례들이 보고되곤 한다. 특정 연령대에 한정된 이슈가 아니라 빠르게 성장하고 실적을 입증해야 하는 스타트업의 구조적 특성은 기업가 자신뿐 아니라 조직문화 전체에 독성을 퍼뜨리기도 한다.

▎최근 국내 IT 대기업의 개발자가 괴롭힘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을 계기로 IT, 스타트업의 기업문화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카페 같은 휴게공간과 공용 탁구대, 빈백과 탁 트인 업무 공간을 갖춘 스타트업은 거의 유토피아적 일터로 비춰진다. 그들은 확고한 비전을 좇기 위해 수평적 질서와 투명성을 강조하고, 업무에 지친 직원의 정신 건강을 배려하는 시설들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런 단면만 보고 스타트업의 기업문화를 정의한다면 매우 피상적일 뿐 아니라 인지 편향에 빠지기 쉽다. 성공한 스타트업으로 추앙받던 기업들 가운데 일부는 어두운 기업문화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공유 오피스 글로벌 스타트업 A사는 지난 10년 동안 전 세계 100개가 넘는 도시에 이용자 수십만 명에다, 직원도 만명이 넘는 기업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젊은 이스라엘 기업가는 A사 회원들이 함께 일하고 네트워킹하는 ‘자본주의 키부츠(생활공동체)’를 지향하며 공유 오피스를 설계했고 전 세계에 빠르게 이런 공간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의 비즈니스적 이상과는 반대로 내부 문화는 성장 후유증을 호되게 앓았다. A사의 첫 번째 본사에서는 책상 수보다 두 배 많은 직원이 근무했고, ‘노예처럼 혹사당했다”는 증언들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IPO(기업상장)에 대한 장밋빛 약속은 직원들이 쉽게 퇴사하지 못하게 했고, 대표는 직원들에게 세상을 변화시키는 선구자의 일원이라는 믿음을 지속적으로 심어주었다. 특히 A사의 기업문화는 ‘가족’이라는 미명 아래 ‘새로운 작업방식과 삶의 방식’, ‘일은 연중 무휴’, ‘동료는 친구’, ‘사무실은 집’, ‘일은 삶’이라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주입했다. 그리고 VC(벤처캐피털)에서 받은 수십억 달러 투자는 대표의 메시아적 과대망상에 힘을 보탰다.

A사는 결국 IPO에 실패했고 결국 몇개월 만에 수백억 달러의 주주가치를 증발시킨 유니콘 멸종 사건으로 기록됐다. 가장 큰 피해자는 투자자뿐만 아니라 바로 직원들이었다. 그들은 창업자의 꿈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함께 전쟁을 하듯 정신없이 일했지만 종국에는 일자리를 잃었으며 믿음은 분노로 바뀌었다. A사의 전 고위 인사는 뉴욕타임스가 공개한 창업자의 서한을 기반으로 “이 회사는 모든 사람을 희생시키면서 불건전한 소수의 사람이 부자가 되도록 설계되고 관리됐다”고 증언했다.

비슷한 사례는 여럿 찾을 수 있다. 참신한 여행용가방 디자인으로 2015년 설립, 3100만 달러 투자를 유치한 B사가 보여준 기업문화의 실체는 참담했다. 업무 공유 메신저상에서 공개적으로 수치심 주기, 16시간 이상 근무, 휴가 없음, 직원 감시, 인종차별 문제를 제기한 유색인종 직원에 대한 괴롭힘 및 해고 등이었다. 또 생리대가 필요없는 속옷을 개발한 C사는 여성 중심의 기업문화를 표방했지만 이와는 달리 여성 직원에 대한 임금 차별, 성희롱, 보수적 출산·육아·휴직 정책 등이 언론을 통해 드러났다.

세계 30여개국 120만 개 객실의 저렴한 가격을 검색해주는 온라인 호텔 예약 스타트업 D사는 급성장 의 폐해를 보여줬다. 언론 인터뷰에서 증언한 전현직 직원들의 따르면 마감에 맞추기 위해 직원들은 밤낮없이 근무해 극심한 피로를 감수해야 했다. 성장에 대한 압박은 직원의 혹사뿐만 아니라 부실 서비스로 이어졌다. 새로운 객실을 끊임없이 추가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커서 에어컨, 온수, 전기가 없는 호텔까지도 온라인으로 가져왔고, 가짜 객실 사진을 게재하기도 했다. 그리고 일부 호텔은 D사가 계약한 최소 보장금액 미지급 및 가짜 손님 속임수 등으로 D사를 경찰에 신고했다.

위 사례의 공통점은 밀레니얼 세대가 경영하는 스타트업이고, 성장에 대한 중압감이 독성적인 기업문화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최근 국내 스타트업과 IT기업에서도 비슷한 사례나 직원의 극단적 선택 소식까지 들려오고 있다. 스타트업들은 성장에 대한 비전을 볼모로 직원들을 극한 근무 환경으로 몰아가고 있으며, 이를 좇아가던 직원들이 몇 년 만에 번아웃되고 다른 개발자로 곧바로 대체되는 게 일부 현실이다. 이런 문화는 이미 수년 전부터 실리콘밸리 기업문화에서 지속적으로 문제가 제기돼왔다.

'실리콘밸리가 직장 문화를 망쳤다'


▎미국 IT 벤처 업계의 현실을 디테일하게 고증했다는 평가를 받은 TV 시리즈 [실리콘밸리] 포스터. / 사진:위키피디아
글로벌 기술전문지 와이어드(WiRED)는 ‘실리콘밸리가 직장 문화를 망쳤다(Silicon Valley Ruined Work Culture)'는 독특한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기사는 실리콘밸리 IT기업들의 문화는 직원들이 회사에 와서 ‘쥐의 경주’처럼 부여된 목적하에서 일과 삶의 경계를 허물게 했다고 진단했다. 계층구조를 수평적으로 바꾸고 기존 직함을 하나로 통일하며, (현실적으로 쓸 수 없는) 휴가를 무제한 제공했다. 이를 통해 ‘일과 삶의 균형’을 깨고 ‘일과 삶의 통합’을 이뤄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침·마사지 서비스, 낮잠 시간, 무료 저녁 식사 등 직원들을 위한 제도가 널리 퍼졌다. 직원의 정신건강을 위한 복지 아이디어는 고된 업무에서 잠깐이나마 벗어나게 해주는 유인책에 불과했다. 이런 실리콘밸리 문화는 IT기업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퍼졌고 모두를 위한 근무 문화를 망쳤다고 와이어드는 비판했다.

역사가 오래된 기업들조차 실리콘밸리의 새로운 기업문화 규칙을 받아들이려 하고 있다. 155년 역사를 자랑하는 농산물 유통 회사 카길조차 최근 개방형 사무실로 재설계하고 실리콘밸리에서 선호하는 애자일 방법론으로 전환하며 실리콘밸리 기업들을 모델로 현대화를 시작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웰스파고 등과 일한 마이크 로빈스 수석 컨설턴트는 “많은 전통기업이 실리콘밸리 문화를 모방하고 싶어 한다”며 “캐주얼 복장, 무료 사무실 식사, 원격근무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실리콘밸리에 의해 주도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결국 실리콘밸리의 최대 수출품은 직원들의 일과 삶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넷플릭스가 널리 퍼뜨린 무제한 휴가 정책은 세이지 비즈니스 연구소(Sage Business Researcher)의 조사에 따르면 오히려 쉬는 날을 더 줄일 수 있었다. 무료 사무실 저녁 식사는 직원들이 사무실에 더 오래 머물게 장려할 수 있었고, 낮잠 시간은 직원들을 밤새 근무하도록 유도할 수 있기 때문에 필요했다는 것이다.

기자 출신으로 IT스타트업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댄 라이언즈는 이런 실리콘밸리 문화에 경악하고 바로 기술직을 관뒀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글로 써 TV드라마 [실리콘밸리]로 그려냈다. 드라마에서 터무니없는 상황들은 패러디가 아니라 실제 실리콘밸리의 초상화였다. 그는 2018년 저서 『실험실의 쥐(LAB RATS)』에서 실리콘밸리의 기이한 문화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라이언즈는 사내 무료 스낵, 맥주와 같은 특전은 핵심 기업문화를 썩게 하는 ‘잘못된 방향’이라며 “현대 IT 기업들은 직원들을 희생하고 투자자의 이익을 위해 성장과 이익에만 집착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운이 좋은 일부 직원은 스톡옵션을 가질 수 있으나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며 “이런 특전은 직원의 주의를 분산하고 그들이 희생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와튼스쿨 지식서비스(Knowledge@Wharton) 인터뷰에서 “최근 여러 전통 대기업이 밀레니얼 세대를 영입하려는 시도에서 실리콘밸리 문화를 흡수하려는 이상한 현상이 있다”며 “이런 시도는 불행히도 무료 사내 음식이나 탁구대 같은 피상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밀레니얼이 진짜 원하는 것들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들 중 많은 이는 계약직으로 고용됩니다. 이제 그들은 주어진 미끼에 대해 자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직장인들은 본질적으로 잘 대우받고 품위를 지키며 존중받기를 원합니다. 저는 제 책의 마지막 부분에 더욱 인간 중심적이고 직원을 위한 기업 사례를 다뤘습니다. 직원들을 잘 대우해주는 기업이 더 경쟁력을 갖춰가고 고객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례입니다.”

미국에서 조직문화 개선을 위한 가시적인 움직임이 눈에 띈다. 타임지, 포천지 편집자 출신 스티브 콥 대표는 직장문화를 위한 미디어이자 콘퍼런스 시리즈인 ‘프롬데이원(From Day 1)’을 미국 전역에서 열고 있다. 프롬데이원은 기업이 직원, 고객,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강화할 수 있는 혁신적 방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콥 대표는 밀레니얼이 중심이 되는 여러 스타트업 기업문화가 유해 요소를 갖게 된 배경을 4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빠르게 성장하지 않으면 실패한다.’ 밀레니얼은 불황 한가운데서 성인이 되었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 탁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기술과 인터넷에 무제한으로 접근할 수 있다. 모든 기술 자원과 정보를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뒤처져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것이 밀레니얼 리더들의 비전이 독이 되고 기업 사명이 훼손되며 스타트업 문화가 과로로 점철되는 이유가 될 수 있다.

둘째, ‘균형보다 목적을 중시한다.’ 일부 스타트업은 컬트에 가까운 낙관주의로 상황을 합리화한다. 이는 금전적 야망과 결부된다. 현실을 마주할 때 직원 사이의 환멸감은 상대적으로 훨씬 심각해질 수 있다.

셋째, ‘피드백이 무기로 작용한다.’ 피드백은 기업에서 급진적 투명성으로 인식되며 가감 없는 의견이 장려되고 있다. 리더들은 직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성과지표로 그들의 초인적인 노력을 요구함으로써 유해한 조직문화를 만들 수 있다. 직원들이 회사 전체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개발하도록 돕는 것 대신, 실수를 수정하거나 절차를 고수하는 데 피드백이 이용된다면 비생산적이 될 수 있다.

넷째, ‘벤처캐피털 펀딩은 빠른 수익을 요구한다.’ 스타트업의 모델은 간단하다. 벤처캐피털로부터 자금을 확보하고 투자금을 이용해 단기간에 공격적으로 성장한 후에 다음 단계의 투자 유치에 나선다. 대부분 스타트업이 실패하기 때문에 VC는 투자한 기업에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빠르게 성장하도록 압박을 가한다.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은 전반적 관리가 그에 따라오지 못하고 자주 전략을 전환한다. 또 공격적으로 투자금을 유치하는 스타트업은 유동성이 부족할 때 비즈니스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창업자는 직원들에게 불만을 표출할 가능성이 높다. 밀레니얼세대가 비즈니스를 성공을 이끌 수 있는 리더십 기술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최근 국내에서도 스타트업 문화가 재정비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들의 ‘성장’을 재정의하고 성공을 위해 필요한 것에 대해 직원들의 참여를 확대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리더와 직원이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열린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콥 대표는 “VC의 압박에 대한 반향으로 최근 창업자 중에는 더 안정적이고 인간적인 성장 속도를 추구하며 그 가치와 함께하는 투자자를 찾는 이들이 있다”며 “일부 밀레니얼이 경영하는 스타트업은 VC자금을 거부하고 리더부터 말단 직원까지 모든 사람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성장 속도로 회사를 경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2018년 포브스 ‘30세 미만 30명’에 선정된 밀레니얼 스타트업 터프트앤니들(Tuft & Needle)의 박대희 대표를 예로 들었다. 박 대표는 VC 투자를 거부하고 1억7000만 달러 매출 규모로 성장시킨 매트리스 회사를 일궜다.

[박스기사] 직장 내 유해 문화 만연

HR.com의 HR 연구소가 사회적 영향 교육 혁신 기업 에버파이(EVERFI)와 협력해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직장 내 유해 행동, 불신, 분노뿐만 아니라 괴롭힘, 차별 등 심각한 부정적 행동이 오늘날 만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경영진은 긍정적 기업문화를 만들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하지만 직장인 응답자 50%만이 ‘리더가 조직의 명시된 가치를 유지한다’에 동의했다. 44%는 ‘다른 사람들이 리더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때 분노한다’고 답했고, 38%만이 ‘건강한 직장 문화를 만들기 위해 주도적으로 조치를 취한다’고 답했다. 많은 조직은 현재 혹은 미래의 기업문화에서 유해 문화 문제를 해결할 계획이 없다.

에버파이의 엘리자베스 오웬스 빌리 기업문화 전문가는 “조직이 유해 문화의 해소에 나서지 않으면 조직에 광범위하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해 문화와 괴롭힘은 이직, 결근, 생산성 저하, 최고 인재 채용 어려움 등으로 이어질 수 있어 직장 내에 유해 행동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설문조사 주요 결과
• 부정적 스트레스가 직장 내 관계에서 발생하며 응답자의 54%는 ‘심각한 유해 문화와 스트레스가 만연하다고’ 답했다.

• 응답자의 38%만이 ‘조직 리더가 긍정적 문화를 위해 적극적 조치를 취한다’고 답했다.

• 53%는 ‘유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48%는 ‘정신 건강을 장려하기 위한 예산이 없다’고 응답했다. 40%는 ‘앞으로 조직이 수년 동안 유해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 ‘관리자가 팀원의 고민에 귀를 기울일 것’라는 기대에 관해 66% 응답자가 동의했지만, ‘리더가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조치를 취한다’는 20%, ‘갈등을 중재한다’는 25%, ‘어려운 대화 시도’는 28%, ‘코치해준다’는 31%에 불과했다.

- 이진원 기자 lee.zino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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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호 (2021.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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