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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현이 만난 아트 인플루언서(14) | 얼트 일렉트로닉 듀오 해파리 

“음악도 비주얼도 놓치지 않을 거예요” 

사진 신인섭 기자
따로 있을 땐 각각 국가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이수자, 전통 타악 기반 사운드 아티스트로 불렸다. 둘이 합쳐지자 종묘제례악과 남창가곡, 앰비언트와 테크노가 버무려진 ‘해파리(HAEPAARY)’가 됐다. 국악의 요소를 활용해 몽환적인 클럽음악을 하는데, 묘하게 잡아당긴다. 전통음악 연주자라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완전히 새로운 공연의 창작자가 된 얼트 일렉트로닉(ALT Electronic) 듀오 박민희(보컬)와 최혜원(인스트루먼트) 얘기다. 이들은 지난 3월 온라인으로 전환된 세계 최대 음악 마켓 ‘사우스 바이 사우스 웨스트(SXSW)’ 쇼케이스에 참여, 미국 공영 라디오 NPR의 프로그램 [올 송즈 콘시더드(All Songs Considered)]가 선정한 2021년 SXSW 기대주가 됐다.

해파리의 음악은 뭐라 딱 꼬집어 설명하기 힘들다. 자신들도 “정의를 내려버리면 거기 갇히게 될까 봐 조심스럽다”고 할 정도로, 여러 방향으로 오픈되어 있다. 아무튼 지루하기로 유명한 종묘제례악을 중독성 강한 클럽음악으로 만들어버린 것만큼은 분명하다.

이들은 국립국악고등학교와 서울대 국악과를 나온 ‘국악 엘리트’들이다. 영화음악 감독으로 유명한 뮤지션 장영규가 이끄는 이날치와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수궁가’가 최근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키긴 했지만, 국악 엘리트끼리 이렇게 미래적이고 중독성 강한 음악을 하는 건 본 적이 없다.

“딱히 방향을 정해놓고 시작한 건 아니에요. 뭐가 됐든 같이 음악을 하고 싶은데, 좋아하는 것 중에 종묘제례악과 남창가곡이 겹치고, 하고 싶은 것 중에 테크노와 앰비언트 장르가 겹치더군요. 그래서 종묘제례악과 남창가곡을 테크노와 앰비언트로 만들어보자고 해서 시작된 음악이죠.”(혜원)

이들은 지난해 7월 코로나19 한복판에서 ‘해파리’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했기에 네이버 온스테이지 등 온라인으로만 공연을 선보여왔다. 최근 국립극장에서 이틀 동안 열었던 여우락 페스티벌 ‘여우락 초이스’ 무대가 첫 번째 대면 단독 콘서트였다. ‘소무 독경’, ‘부러울 것이 없어라’ 등 최근 낸 데뷔 앨범 수록곡 위주의 레퍼토리를 들려줬지만, 음악만 들려주는 예사 콘서트가 아니었다. 종묘제례악과 남창가곡을 모티브 삼은 얼트 일렉트로닉 장르 음악을 하면서 ‘댄스 브레이크’에 궁중무용인 일무를 추고, 유리 조형예술가, 디지털페인팅·3D애니메이팅 아티스트와 협업해 야광 해파리가 둥둥 떠다니는 바닷속을 연출한 것이다.

콘서트 콘셉트가 독특했어요.

혜원: 비주얼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전시와 콘서트가 섞인 형태로 꾸며봤어요. 각 곡에 어울리는 비주얼까지 연출한 건데, 단독 공연이고 국립극장 여우락이라서 가능했죠. 여우락에서 원하는 무대를 잘 꾸며보라고 제안해주시고 제작까지 해주셔서 만들 수 있었어요.

민희: 댄스 브레이크는 오랜 로망이었어요. 더 만들고 싶은데 아직 ‘소무 독경’밖에 안무를 못 짜서, 이번 공연엔 아쉬운 대로 우리 모습을 3D 모델링한 아바타를 대동했죠. 그동안 작업하고 각자 활동했던 경력들을 녹여서 해파리가 비주얼적으로도 멋진 팀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음악을 넘어 시각예술까지 넘보는 건가요.

민희: 저희가 자라면서 들은 음악은 룩과 함께 가는 음악이었어요. 그런지 룩과 그런지 록이 함께 가고, 펑크 룩과 펑크 록이 같이 가잖아요. 그런 음악을 들으면서 자라서, 내가 하는 음악과 어울리는 룩에 대한 로망이 어려서부터 있었어요. 다만 패션만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무대 전반적인 비주얼이나 애티튜드, 여러 가지 활동까지 같이 가고 싶어요. 예컨대 요즘에는 아이슬란드 뮤지션 뷔욕처럼 앨범을 앱으로 만들어서 비주얼과 같이 가는 작업도 있고, 고릴라즈는 음악을 듣기 위한 게임도 만들죠. 그렇게 태도와 행동양식이 음악과 같이 가는 데서 영감을 많이 받았죠. 우리도 그런 흥미로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코로나19 한복판에서 듀오 결성


▎세계 최대 음악 마켓 사우스 바이 사우스 웨스트(SXSW) 온라인 공연 모습. / 사진:유튜브캡처
이들은 스스로의 음악을 ‘시류를 상실한 리스너의 소심한 클럽파티’라고 정의한다. 클럽음악을 지향하지만 대면 단독 공연이 처음일 정도로 시류를 상실한 코로나 시대 한복판에서 활동을 시작한 만큼 ‘클럽에 갈 순 없지만 집 안에서 내적인 댄스를 출 수 있는 음악’을 표방한 것이다. 예컨대 첫 싱글 ‘소무 독경’은 종묘제례악 정대업 중 일부를 샘플링한 테크노 음악인데, ‘빌리 아일리시 같은 몽환적 느낌을 받았다’고 하니 박수 치며 기뻐한다. “믹싱할 때 빌리 아일리시처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거든요. 딱히 롤 모델은 없지만 어떤 뮤지션은 유독 애티튜드가 멋있고, 어떤 뮤지션은 비주얼이 멋있고… 그렇게 멋있어 보이는 요소들을 골라서 닮고 싶어요.”(민희)

‘멋’에 너무 집착하는 것 아닌가요.

민희: 저흰 뭘 해도 국악 프레임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거든요. 그런데 국악에 뿌리 깊은 편견이 있잖아요. 국악 베이스의 팀 중에 멋있는 이미지가 있었나요? 재밌거나 발랄한 팀은 있어도 시크하고 도도하고 멋있는 팀은 없었던 것 같아요. 사실 대부분 음악인은 멋있고만 싶은데,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친절하게 망가지는 것이죠.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 중에는 그렇게 메이킹하는 분들도 있지만, 우리가 그렇게 했다가 원하는 이미지도 못 얻고 인기도 없고 음악도 멋져 보이지 않으면 다 잃는 거잖아요. 그럴 바엔 멋있는 것 하나만 파자, 이렇게 된 거죠.

혜원: 사실 모든 아티스트의 욕망이 그거예요. 대놓고 드러내지 않아서 그런데, 우리는 그냥 말하는 거죠. 멋있고 싶다고. 그 전제가 일단 우리 음악을 좋아해줬으면 한다는 것이에요. 멋있어 보이는 지점이 있으면 그 사람에 대해 궁금해지지 않나요. 그런 포인트를 갖고 싶어요. 궁금하고, 더 찾아보고 싶어지는 지점이요.

남자 노래를 여자가 부르는 콘셉트인데.

민희: 남창가곡과 여창가곡은 창법과 발성이 많이 달라요. 여창은 속소리와 겉소리를 다 활용하죠. 속소리라는 팔세토 창법과 진성인 겉소리를 오가면서 섬세하게 노래하는 여창에 비해 남창은 그냥 겉소리로만 노래하는데, 그 소리에 대해 주로 ‘꿋꿋하고 힘 있게’라는 말들로 수식하죠. 창법도 확연히 다르지만, 공연할 때 태도도 달라요. 여창은 한복 입고 다리 모으고 무릎 하나 세우고 불편하게 노래하는데, 남창은 책상다리로 앉아 편안하게 부르죠. 남창은 태도부터 발성과 창법까지 타인 시선을 의식한다기보다 자기가 재밌어서 하는 노래구나 싶더라고요. 부러워도 내가 할 노래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문득 저게 좋아 보이면 내가 안 할 이유도 없지 않나 싶어서 하게 됐어요.

종묘제례악이나 남창가곡은 감정이 절제된 노래라 태생적으로 대중성과 거리가 먼데.

혜원: 저희 둘 다 종묘제례악이 되게 멋있는 음악이란 것에 일단 동의했고요. 저희뿐 아니라 국악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곡을 좋아하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종묘제례악이라고 할걸요. 정확한 멜로디가 있다기보다는 어떤 것의 나열로 느껴지는데, 그게 더 매력적이에요. 아름답기 위한 멜로디가 아니라 여기에 이 음이 있어야 되기 때문에 있는, 관념적이고 개념적인 음악이라는 점이 쿨한 포인트죠.

민희: 노래하는 사람 입장에서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노래하는 게 아니란 점이 가장 매력적이었어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꽥꽥 그냥 부르는 거예요.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 진짜 쿨하지 않나요. 종묘제례악을 굳이 재해석하려 애쓴 게 아니라, 저희가 하고 싶은 음악을 만들면서 여기에 이걸 좀 샘플링해볼까 하는 태도였어요. 하지만 모르고 쓰는 사람과는 다르게 접근한다는 믿음이 있어요. 우린 애정이 있고 정보와 지식도 있으니 잘 가져와서 잘 쓰자고 한 거죠.

종묘제례악을 클럽음악으로

각각 정가와 국악 타악 연주를 전공한 두 사람은 뭉치기 전에도 각각 다원예술, 무용음악 등을 하는 창작자들이었다. 특히 혜원은 이날치 신드롬의 주역인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피버’, ‘춤이나 춤이나’ 등의 작곡가로도 유명하다. 눈썹까지 하얗게 탈색하고 스스로 “튀는 스타일”이라고 말하는 후배 다루기가 녹록지 않을 듯한데, 민희는 “혜원씨가 장난꾸러기인데 정말 착하다”며 웃는다.

이날치와 앰비규어스가 파란을 일으켰는데, 영향이 좀 있었나요.

혜원: 저와는 별로 상관없어요. 알음알음 무용인들과 작업을 계속하다 보니 앰비규어스가 전통 모티브의 작품을 만들 때 저를 찾아와서 협업을 한 거죠. ‘수궁가’ 이후 앰비규어스가 많이 바빠졌고, 저도 일이 좀 많아지긴 했네요.

민희: 혜원씨도 아이폰 광고음악을 만들 정도로 핫해졌어요. 국악 기반이라 이날치와 비교되기도 하지만, 이날치가 뉴웨이브 신스팝으로 읽히길 바라는 것처럼 저희는 테크노 앰비언트로 읽혔으면 해요. 이날치와 정말 친하지만, 둘이 같이 얽혀서 국악으로 읽히지 않았으면 해서 같은 공연에 섭외되면 서로 사양하곤 하죠.(웃음)

국악 전공자들은 연주자들이 대부분 창작자로 거듭나는 것 같아요.

민희: 연주자만을 위한 무대와 시장이 없으니까요. 서양음악은 연주만 해도 대중문화로 소비되는 시장이 큰데, 전통음악엔 이런 시장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창작을 하게 되죠. 음악가로서 사람들이 내 음악을 듣게 만들려면 창작을 해야 하는 환경인 거죠.

혜원: 테크닉만 연마해서 장인이 된 사람들이 들어갈 자리가 좁아 그냥 창작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이기도 하지만, 우린 전혀 아니에요. 애초에 창작을 하고 싶어서 이것저것 많이 시도해왔죠. 국악은 내가 하고 싶은 것들 중 하나였을 뿐이에요.

두 사람은 어떻게 팀이 됐나요.

민희: 몇 년 전에 혜원씨 솔로 공연을 보고 제가 메일을 보냈어요. 주변에 음악인이 많지만 별로 팀을 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잘 모르는 분야의 음악과 합을 맞춰도 화학작용이 일어나지 않으면 남들도 다 안다고 생각해서요. 근데 혜원씨 음악은 장단과 비트라는 전혀 다른 사고체계가 같이 있어 너무 흥미로웠어요. 같이 음악하면 되게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혜원: 저는 고3 때부터 팀 활동도 하고 객원으로 공연을 다녔는데, 저한테 남는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스스로 공연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에서 전통음악을 샘플링해 비트가 있는 음악을 만들어 무대화해봤는데, 시행착오가 많은 공연을 언니가 좋게 봐주셨어요.

‘청취용 음악’을 하고 싶다고 했었죠.

민희: 사실 저희가 해온 다원예술이나 무용음악은 음악이 주인공이 아니잖아요. 둘 다 음악만 듣는 음악을 해보고 싶었던 거죠. 애플이나 멜론에서 유통되는 음악이요. 그렇다고 모두가 들어주길 바라는 건 아니에요. 국악을 하면서 항상 음악이 좋아서 오는 게 아니라 내 얼굴을 봐서 와주는 관객 앞에서 연주해야 하는 상황이 불편했거든요. 굳이 안 볼 사람까지 와달라고 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마니악한 대중을 끌어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가 이제 생긴 것 같아서, 몇몇 사람이라도 재밌어해주면 좋겠어요.

혜원: 케이팝 좋아하는 사람에겐 케이팝을, 전통음악 좋아하는 사람에겐 전통음악을 추천하면 되지, 케이팝 좋다는 사람을 굳이 전통음악 공연장에 부르고 싶지 않은 거죠. 나를 알아서 보러 온 게 아니고, 얼터너티브라는 좁은 세계 음악을 좋아하는데 찾다 보니 해파리가 나와서 그 음악을 듣기 위해 공연에 와주시면 좋겠어요.

전통기반 레퍼토리가 지속가능할까요.

민희: 저희도 처음엔 전통과 무관한 걸 만들다가 종묘제례악과 남창가곡을 시도해본 거예요. 전통 레퍼런스가 많지 않다는 게 우리에게도 도전이 된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가는 방향도 이미 우리 안에 쌓여 있는 재료들을 가지고 뭐가 될지 모르는 장르를 해보자는 게 목표입니다.

혜원: 이번에 종묘제례악이니 다음엔 문묘제례악 하자는 건 아니고.(웃음) 어쩌다 보니 단독 콘서트를 할 만큼 전통으로 레퍼토리를 만들었으니 그걸로 활동하고, 다음번엔 또 그때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걸 할 거예요. 다음 달에 참여하는 인디음악 컴필레이션 작업에서는 전통 레퍼런스 없는 창작곡을 선보일 겁니다.

※ 유주현은…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일본의 다카라즈카 가극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학창 시절 백일장과 사생대회를 휩쓸던 영광의 기억을 품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며 살아왔다. 2010년부터 중앙SUNDAY에서 공연을 중심으로 영화, 문학, 음악, 미술 등 문화예술을 독자들에게 더욱 가까이 전달하고자 부단히 글을 쓰고 있다.

202108호 (2021.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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