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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게 쌓아온 신뢰와 전문성
시행착오를 거쳐 다시 창업으로치과용 소프트웨어 판매로 매출 성장을 이루고 있을 때, 이들의 3D 영상 분석 기술을 눈여겨본 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PACS) 전문기업인 인피니트 헬스케어가 인수합병을 제안해왔다. PACS는 기존에 필름 또는 테이프로 저장하던 의료 영상을 디지털 상태로 받아 진료기록을 데이터베이스로 보관·관리·조회·전송하는 통합 시스템이다. 병원 의료시스템을 통합하고 데이터를 클라우드화하는 데 꼭 필요한 핵심 기술이다.김 대표는 당시 인수합병을 결정하게 된 이유로 “기술개발도 중요하지만 우리 기술이 실제 의료 현장에서 많이 사용됐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면서 “기술력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PACS 전문기업의 네크워크를 활용하면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고 설명했다.2007년 인피니트헬스케어에 인수된 이후 세 사람은 기획, 연구개발, 해외 사업 등 각자의 분야에서 다양한 사업 경험을 쌓았다. 그러나 PACS 전문기업에서 3D 영상분석 기술의 역할이 주요 사업으로 성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이 CTO는 “5년쯤 일해보니 당장 매출을 올리는 일에 계속 매몰되면서 우리의 전문성을 키우긴 힘들겠다는 공감대가 생겼다”며 “나가서 다시 제로부터 시작해보기로 마음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최 대표 역시 “일이 평이하게 진행되는 것보다 도전하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세 사람이 가고자 하는 방향이 같았기 때문에 결정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나보다 잘하는 두 사람이 하는 말이니 설마 굶기야 하겠냐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고 웃으며 거들었다.세 사람에게 서로의 장점을 한 가지씩 말해달라고 했다. 이 CTO는 어려운 상황을 잘 분석해서 체계적으로 풀어내는 능력이 탁월하고, 최 대표는 가장 연장자이지만 개방적이고 유연한 사고방식과 넓고 깊은 인간관계를 자랑하며, 김 대표는 어떤 장애물이든 부딪혀서 해결해내고 마는 성실함의 소유자라는 답변이 나왔다.보수적인 의료 시장에서 신뢰를 쌓으려면 기술과 인적 네트워크를 축적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기술력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의료 솔루션 분야는 기술력만으로 열리는 시장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사람은 2012년 코어라인소프트를 설립하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김 대표는 “우리만의 의료 솔루션을 선보이기 전까지는 외부 의료기기 업체들의 소프트웨어 용역 개발을 3년여간 병행하면서 회사를 운영해나갔다”면서 “일감이 없어 어려운 시기를 버티면서 제품화를 고심하던 시기에 때마침 의료 현장에서 폐질환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말했다.기술개발에 앞서 이들은 서울아산병원의 폐 관련 임상연구팀으로부터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에 대한 진단 수요를 파악했다. 당시 서울대병원과 국립암센터에서도 폐암 조기 검진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하고 관련 기술을 보유한 회사를 찾던 참이었다.폐암은 전 세계 사망률 1위 질환이지만 특별한 증상이 없고 생존율이 낮아 조기 발견이 필수적이다. 저선량 흉부CT를 사용한 정기적 폐암 검진이 폐암 사망률을 낮추는 유일한 방법이지만, 의사마다 경험과 직관에 따라 영상 판독 시 편차가 생겨 100%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 어렵다.코어라인소프트는 2016년 세계 최초로 AI 기반 COPD 진단 솔루션을 출시했다. COPD는 폐가 굳어 호흡이 원활하지 못한 증상으로, 전 세계 사망률이 4위에 달하지만, 조기 증상이 없어 발병해도 알아차리기 어려운 병이다. 이듬해에는 환자의 폐 CT 영상데이터에서 폐 결절을 판독해 암 여부를 판단해주는 폐암 검진 AI 솔루션을 선보였다.코어라인소프트는 카이스트 시절부터 연구해온 3D 기반 의료 영상 분석 기술에 AI를 도입해 질병 발견과 분석, 예측이 가능한 알고리즘을 구현했다. 폐 결절 검출과 과거 영상 추적 등 진단에 필요한 모든 과정이 AI로 자동화되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진단 범위를 폐에서 흉부를 거쳐 전신으로 확장하면서 한국의 암검진을 비롯해 미국, 유럽, 일본, 대만에서 다양한 검진 사업을 수주하고 있다. 2019년부터는 국가폐암검진 본사업자로 선정돼 코어라인소프트의 솔루션이 국립암센터에서 시행하는 국가폐암검진 질관리 사업의 공식 솔루션으로 사용되고 있다.김 대표는 “2000년대 초 AI가 없던 시절부터 병원에서 사용되는 소프트웨어를 꾸준히 만들어오다가 AI 기술이 대중화되면서부터 의료 소프트웨어를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시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면서 “코로나19로 인해 당초 계획보다 늦어졌지만 기업공개(IPO)를 통해 글로벌기업으로 나아가는 초석을 다지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코어라인소프트가 한 단계 도약하는 데 IPO는 중요한 주춧돌이다. 글로벌시장을 공략하는 데 레퍼런스를 쌓으려면 충분한 자금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코어라인소프트는 이미 국내에서 국가폐암검진 사업을 진행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의료 기업들을 제치고 유럽 최대 폐암검진 프로젝트인 EU ‘포인더렁런(4-In the Lung Run)’과 독일 한세 프로젝트에 소프트웨어 공급자로 선정됐다. 지난해 말에는 이탈리아 최고 권위의 밀라노 소재 국립암센터에 솔루션 공급 계약을 확정했다. 이탈리아 전역에 있는 18개 병원 및 암·종양센터가 참여하는 이번 사업은 혈액분석에 의한 폐암검진과의 상관관계 분석에서 세계적으로 유수한 프로젝트다.김 대표는 “가장 중요한 것은 의사들의 사용성을 높이는 것”이라며 “더 많은 환자에게 사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하기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묻자 가장 말수가 적었던 최 대표가 입을 열었다. “우리의 네 번째 멤버이자 막냇동생 같은 존재라고 할까요.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나 사람이 있으면 자나 깨나 생각나지 않습니까. 우리도 항상 우리 막내가 잘 자라서 한국에서, 나아가 전 세계에서 자기의 역할을 잘할 수 있게 되기를 애정을 갖고 보살피려고 합니다.”- 김민수 기자 kim.minsu2@joins.com·사진 신인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