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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재극 더브이씨 대표 

한국 스타트업 투자 DB의 메카 

김영문 기자
창업자와 투자자, 미디어 관계자 등이 시도 때도 없이 들락거리는 사이트가 있다. 국내 벤처캐피털(VC)과 스타트업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는 ‘더브이씨’다. 온갖 스타트업 투자 정보가 집약돼 있어 어떤 VC는 아예 사내 상황판으로 쓰기도 한다. 이 DB 구축에 6년을 매달린 변재극 대표를 만나봤다

▎변재극 더브이씨 대표는 “한국 스타트업 시장이 커지면서 투자 경쟁까지 벌어지는 상황에서 기업, 투자자 정보량도 크게 늘어 탐색 비용이 늘고 있다”며 “더브이씨는 분산돼 있어 비교하거나 파악하기 어려운 스타트업 투자업계 동향을 모아 제공한다”고 말했다.
창업자와 투자자, 미디어 관계자 등 매월 20만여 명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드는 사이트가 있다.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는 스타트업 투자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한 ‘더브이씨(The VC)’ 웹사이트다. 지금 이 순간에도 궁금한 스타트업이나 벤처캐피털(VC)을 검색하면 상단에 뜬다. 어떤 경우는 해당 회사 사이트보다 더 위에 뜨기도 한다.

“우리 웹사이트는 2016년에 문을 열었는데 처음에는 정말 보잘것없었어요. 데이터 비즈니스는 ‘축적의 시간’이 중요하기에 자리 잡는 데 훨씬 더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았죠. 미국 글로벌 IT 미디어인 CB인사이트, 크런치베이스 등도 스타트업 전문 DB를 쌓는 데 오래 걸렸으니까요. 6년간 꾸준히 정보를 쌓아온 덕에 지금의 시장을 마주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지난 3월 14일 서울 마포구 한 사무실에서 만난 변재극(30) 더브이씨 대표가 말했다. 단지 스타트업 투자 시장이 커져서 더브이씨가 주목받는 건 아니다. 그는 “데이터 사이트에 정보가 많아야 하는 건 당연한 목표이자 과제”라며 “더 많은 정보를 원하는 동시에 어떻게 연결된 정보인지를 궁금해하는 수요에 주목했다. 자연스레 스타트업, 투자사, 액셀러레이터 등 산업 생태계 정보를 사이트에 모으게 됐고 차별화된 정보 창구로 주목받게 됐다”고 덧붙였다. 어떤 정보를 어떻게 보여준다는 걸까.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지난 3월 7일 롯데렌탈로부터 1831억원을 투자받은 쏘카는 그간 누구에게 얼마를 투자받았는지,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2000억원 넘게 투자를 집행한 KB인베스트먼트는 어디에 얼마를 투자했는지 등을 구체적인 수치와 그래프로 보여준다.

단 한 번도 광고를 하지 않았지만 정보가 쌓이자 이용자는 계속해서 늘고 있다. 오로지 입소문과 사용자들의 검색 결과 유입으로만 성장해온 것이다. 이용자만 끌어들인 게 아니라 데이터 사업을 병행해 꾸준히 수익을 내며 ‘축적의 시간’을 버텨왔다. 창업 초기에는 정책연구에 필요한 데이터를 구하는 정부나 한국개발연구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등 정부 산하 연구기관이 더브이씨의 주요 고객이었다. 지난해 11월부터 시작한 유료 구독 서비스에 가입하는 기관 이용자도 빠르게 늘면서 수익도 커지고 있다. 변 대표는 “이용자 20만 명을 분석해보니 수시로 드나드는 창업자와 기관투자자를 비롯한 업계 관계자만 6만 명이 넘었다”며 “초기에는 스타트업, VC, 자산운용사 관계자가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대기업, 법무·세무·특허회사, 각종 연구기관 관계자도 이용할 만큼 활용 분야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유료 가입자 기반 덕에 2019년 기술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블루포인트파트너스에서 투자를 받은 것 말고는 특별한 투자 유치 활동에 나서지 않았다.

더브이씨가 성장한 것은 정보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스타트업 관계자가 그만큼 많다는 뜻도 된다. 확실히 6년이란 ‘축적의 시간’은 꽤 위력적이다. 변 대표는 “공공데이터와 자체 스크래핑 기술을 가지고 신용평가사 DB와 차별화를 꾀했다”며 “지난 3월 기준으로 투자 관련 데이터 1만3000여 건, 사람 데이터 5만3000여 건을 비롯해 각종 펀드와 회사 데이터도 꾸준히 쌓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데이터의 질도 남다르다. 자체 스크래핑 기술을 고도화하면서 최신 데이터를 빠르고 오류 없이 수집하고 있다. 정보가 쌓이다 보니 창업가와 기관투자자들이 ‘제보’ 형태로 자신이 갖고 있던 내부 정보를 아예 더브이씨에 넘겨 업데이트를 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까지 생겼다. 이른바 ‘데이터 집적 효과’다. 실제 투자 관련 데이터 1만3000여 건 중 21%가 이런 ‘사용자 제보’로 채워졌다.

월 20만 이용자 중 6만 명이 업계 관계자


더브이씨의 현재 위상과 달리 창업 후 수 년간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변 대표는 창업 전에는 스타트업 투자 DB와 크게 인연도 없었고, 개발 전문가도 아니었다. 막연하게 창업하고 싶다는 생각에 대학에서 앱을 개발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거나 1년 정도 창업 동아리 활동을 한 것이 전부였다. 변 대표는 “군 제대 후 2014년 나름 배운 앱 개발 능력으로 뭘 할까 고민하던 중 캄보디아 여행 경험을 정보화하자는 생각이 떠올랐다”며 “당시 대전시 창업 프로그램 지원금에 노트북을 판 돈을 보태 배낭 하나 메고 비행기를 탔다”고 말했다. 하지만 1인 개발의 한계(?)를 실감하고 캄보디아 가이드 앱을 끝으로 동남아 국가별 가이드 앱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접었다. 이후 변 대표는 문화창업플래너 양성 프로그램을 이수하다가 또 다른 기회를 맞았다. 그는 “당시 교육 멘토였던 김진영 더인벤션랩 대표가 스타트업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의 하나로 펀드 정보를 모아서 제공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며 “교육 과정을 마치고 막상 창업하려고 보니 정보가 너무 없었다. 진짜 누군가는 정말 필요한 정보겠구나 싶어 2016년 6월 ‘진짜’ 창업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게 더브이씨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캄보디아 가이드 앱을 만들면서 한계라고 느꼈던 코딩 능력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혼자 매달린다고 될 일도 아니었다. 대학 친구에게 같이 앱을 개발해보자고 설득했고, 그를 2~3개월짜리 앱 개발 교육 프로그램에 무작정 밀어넣었다. 변 대표는 “자비로 초기 자본금을 마련하고, 시드(초기) 투자를 받아 한 명을 더 충원해서 셋이 더브이씨를 끌고 나갔다”며 “그렇게 1년을 끌어갔지만, 월급 주기도 벅찰 정도로 힘들어졌고, 혼자라도 더 버텨볼 작정으로 원룸 보증금을 뺐다”고 말했다.

운 좋게도 2017년 ‘서울창업허브 공덕’에 입주할 기회를 얻었고 원룸 보증금은 창업허브에서 먹고 자고 버티는 생존자금(?)으로 썼다. 그렇게 1년 반 동안 수기로 스타트업 투자 DB를 모으고 밤낮없이 업데이트에 매달렸다. DB를 쌓다 보니 연구용 데이터를 사겠다는 기관이 하나둘 나타나면서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물론 나름 쌓아온 개발 경험으로 사이트와 서비스 구축에는 성공했지만, 자체적인 데이터 스크래핑 기술은 없었다. 수천 건에 달하는 데이터를 일일이 수작업으로 업데이트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2020년까지 혼자 메일, 채팅에 응하고 전화를 받으며 회사를 꾸려나갔다. 변 대표는 “5년 전부터 거의 매일 스타트업에 관한 기사와 회사별 자료 등을 찾아보고 입력해서 DB를 구축했다”며 “묵묵히 데이터 작업에 매달리다 보니 서울시, 경기도, 각종 정부 산하 연구기관에서 스타트업 관련 데이터를 가공해 자료를 만들어달라는 용역이 들어왔다”고 했다. 변 대표는 이때 시장에 데이터 수요가 있음을 확신했다.

여기서 한 단계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 변 대표는 ‘자동화’에 주목했다. 아무리 우직하고 성실하게 데이터를 입력한다고 해도 사람이 직접 처리하고 정리할 수 있는 데이터 양에는 한계가 있었다. 자체 데이터 스크래핑 기술이 절실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개발 능력을 좀 더 갈고닦자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당시 변 대표는 창업 초기 함께했던 친구가 프랑스 혁신 소프트웨어 교육기관인 ‘에콜(Ecole) 42’의 미국 분교에 입학하자고 제안해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변 대표는 “에콜 42는 교수 없이 24시간 개방된 강의실에서 42가지 코딩 과제를 풀면서 IT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한다는 개념의 프랑스 학교로, 이 분야에서 유명했다”며 “미국 실리콘밸리 분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한 달간 혹독한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비록 난 입학하지 못했지만, 내 개발 능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고 했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더브이씨 서비스를 대대적으로 업데이트했다. 그렇게 1~2년을 매달렸더니 2019년 12월 기준으로 이용자 수가 4배 이상 늘었다. 데이터 수집에 ‘자동화’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등기부등본 같은 정부 공시 데이터부터 기업 웹사이트, 뉴스 기사, 사용자 제보 데이터 등을 클라우드상에서 분류해 집적해가는 과정에 자동화 기술을 하나씩 이식했다. 이후 데이터 축적에 속도가 붙었고 오류도 줄기 시작했다. 올해는 자체 인공지능(AI) 엔진을 구축해 DB 입력부터 이용자 문의 응대, 제보까지 자동으로 정리할 계획이다.

그래도 혼자는 역부족이었다. 변 대표는 초기에 함께했던 개발자를 포함해 총 5명을 채용한 후에 데이터팀과 서비스개발팀을 꾸렸다. 다른 팀이 없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웹서비스 내 기능이나 디자인을 표준화해 별도의 기획자나 UI·UX(사용자경험·사용자인터페이스) 디자이너 없이 기능 개발에만 매달릴 수 있게 만들었다”며 “일도 쪼개지 않아 개발자 개개인이 서비스 기획부터 개발, 관리, 데이터 구성 등 대부분 일을 독자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일종의 선택과 집중 전략에 따른 채용 ‘효율화’다. 지난 2년간 채용한 개발자 5명도 모두 ‘풀 스택 개발자(Full Stack Developer)’다. 이들은 웹 개발에 필요한 모든 역량을 갖춘 직군으로, 프로그래밍 능력부터 클라우드 서버구축 능력까지 두루 갖췄다. 변 대표는 “우리 서비스의 지향점에 대한 큰 틀에서의 합의만 이뤄지면 세세한 것은 자체적으로 끌고 나갈 수 있게 디자인, 시스템, 코트 형태도 다 규격화해뒀다”며 “누구 하나 빠지더라도 서비스가 멈출 리 없고, 업무 간 커뮤니케이션 비용을 최소화해 자기 주도적으로 개발하면서 의사결정을 내리는 식”이라고 강조했다.

그 덕분에 DB 집적 능력이 크게 향상됐다. 데이터가 빠르게 쌓이니 앞서 말한 ‘데이터 집적 효과’가 나타났다. 변 대표는 “최근 들어 VC나 스타트업에서 투자 정보를 미리 보내주거나 처음부터 세세한 정보를 보내 실어달라는 요구가 많아졌다”며 “지금도 메일이나 채팅창을 활용해 이런 요구를 빠르게 반영하고 있으며, 이것도 자동화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자체 스크래핑 기술로 투자 데이터 수집

최근 더브이씨가 화제가 된 덕분인지 비슷한 서비스를 하겠다는 업체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변 대표는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그는 “우리는 정확하고 포괄적인 기업 정보를 다른 신용평가사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제공하고 있어서 데이터가 중복되거나 업데이트되지 않을 일이 없다”며 “현재 투자 상황을 정확하게 알리고 싶은 창업자도 더브이씨를 많은 창업자와 투자 기관이 참고하는 DB 메카로 보고 있어 독점 정보를 넘겨주는 경우가 많다”고 강조했다. 이런 변 대표의 자신감 뒤에는 철저히 시장 데이터 수요를 따르겠다는 그의 의지가 자리하고 있다. 실제 더브이씨가 검색어 유입으로 성장한 만큼 특정 기업의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프로필 조회수를 실시간 랭킹으로 반영하고 있다. 지금 당장 창업자와 VC들이 찾는 곳이 어디인지를 실시간 검색어 순위처럼 보여줘 투자시장을 역동적으로 느끼게 해주겠다는 취지다.

변 대표의 올해 과제 역시 데이터 수집 능력을 키워 한층 고도화된 DB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는 “데이터 수집은 등기 임원, 유무상증자 등 기업 데이터와 공시 자료에서 매출, 부채 같은 재무 데이터를 추출하고, 실시간 뉴스 데이터 속 키워드를 분석해 딥러닝으로 주제와 감정을 분류하는 모델로 고도화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올해는 대대적인 투자 유치 IR 활동과 개발자 채용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더불어 다양한 사업도 하나씩 펼쳐볼 생각이다. 변 대표는 “6년간 사용자 데이터를 분석하다 보니 스타트업이 유상증자나 주주총회 등 자금조달 과정에 매우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적절한 투자자를 소개하는 것뿐만 아니라 각종 정부 지원금, 대출 등 자금조달 방법을 컨설팅하고 정보 수집 범위도 대폭 넓힐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다시금 초심을 다지며 인터뷰를 마쳤다.

“스타트업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시작한 일이에요. 과정은 험난했고, 아직 풀어야 할 과제와 펼쳐야 할 사업이 많지만, 초심은 그대로입니다. 한국은 아직도 스타트업 ‘초짜’들에게는 정보 불모지나 다름없어요. 기업과 투자 기관 정보가 공개돼 있다 해도 분산돼 있거나 정확하지 않아 참고하기 쉽지 않아요. 한국 투자 DB는 더브이씨가 제대로 모아보겠습니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gnang.co.kr·사진 김경빈 기자

202204호 (2022.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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