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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기식 리디 대표 

웹툰 플랫폼, 유니콘으로 날아오르다 

장진원 기자
리디가 ‘만타(Manta)’서비스 론칭 2년여 만에 글로벌 웹툰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12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 유치로 유니콘 대열에도 합류했다. 전자책에서 시작해 웹소설과 웹툰으로 진화한 과정에는 원천 콘텐트라는 업의 본질이 숨어 있다.

외계인의 침공에 맞서 지구를 구한 영웅의 피날레는 으레 휘날리는 성조기를 꽂는 장면으로 마무리되곤 했다. 우주복에 선명하게 새겨진 NASA 마크는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빌보드차트 정상을 독차지한 건 당연하게도 영미계 아티스트였고, 아카데미나 칸 영화제 시상대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외국 배우들이 설 영광의 자리였다. 프리미어리그를 누비는 최고의 선수들도 으레 유럽과 남미 출신 쟁쟁한 영웅들로 도배됐다. 그게 자연스럽고 당연했다. 아니 당연해 보였다.

떠들썩했던 뉴밀레니엄의 흥분이 가신 지 20년이 훌쩍 지난 현재, 영원히 ‘넘사벽’으로 남으리라 생각했던 글로벌 문화 권력의 이동은 지각변동이나 상전벽해 같은 말로는 모자랄 지경이다. 국경과 인종, 언어의 차이와 한계가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등에 업은 채 사라지고 있다. 산업혁명 이래 문화의 변방으로 밀려났던 아시아적 가치는 오리엔탈리즘을 넘어 글로벌 문화를 새롭게 주도하는 뉴커머로 부상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대한민국이 있다는 건 이제 상식이다.

조지프 나이(Joseph S. Nye Jr.) 하버드대 교수가 ‘소프트파워’의 힘을 역설한 이래, 문화는 군사·경제력에 이어 한 나라의 경쟁력을 가늠할 가장 중요한 잣대로 통용된 지 오래다. 비단 BTS나 봉준호, [오징어게임]과 손흥민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한국은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콘텐트 화수분으로 떠올랐다. 그야말로 ‘국뽕’의 시대다.

웹툰, K-콘텐트 이끄는 또 다른 주인공

K-콘텐트를 대표하는 문화 영웅들이 전 세계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풍경이 이제 더는 어색하지 않다. 몇몇 셀럽이 눈에 띄는 활약으로 K-콘텐트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면, 이들 못지않게 한국산 콘텐트의 글로벌 확장을 조용히 주도하는 문화상품도 있다. 바로 ‘웹툰’이다. 과거 종이책과 애니메이션이 전부였던 만화 생산·유통 플랫폼은 한국에서 창조된 웹툰이라는 장르를 통해 디지털 생태계에 안착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웹툰을 제대로 구현하는 나라는 원조인 우리와 뒤이어 뛰어든 중국 정도다.

지난 2월 싱가포르 국부펀드인 싱가포르투자청(GIC)은 국내 웹툰·웹소설 플랫폼 리디(RIDI)에 1200억원을 투자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산업은행과 엔베스터,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등 기관투자자·벤처캐피털도 함께했다. 네이버웹툰과 카카오페이지 등 국내 1세대 웹툰·웹소설 플랫폼의 아성에 도전한 리디의 출사표가 글로벌시장에서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특히 리디는 이번 GIC 투자로 국내 콘텐트 플랫폼 스타트업 중 최초로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 타이틀을 따냈다. 투자 유치 과정에서 추산한 리디의 기업가치는 1조6000억원에 달한다.

지난 2008년 배기식 대표가 창업한 리디는 전자책 플랫폼 사업으로 시장에 첫발을 디뎠다. 국내 유저들에게 ‘리디북스’라는 서비스명이 더 유명한 배경이다. 전자책을 모태로 한 스타트업답게 스마트폰과 태블릿PC 같은 모바일 디바이스 서비스는 물론, 아마존 킨들 같은 이북 리더기인 리디페이퍼도 자체 출시해 판매 중이다. 하지만 배 대표는 ‘리디가 어떤 기업인지’를 묻는 질문, 즉 리디의 아이덴티티를 묻는 말에 “글로벌 웹툰 서비스 회사”라고 정의했다. “좀 더 디테일하게 접근하면 책이나 웹소설 같은 텍스트 IP를 기반으로 웹툰을 만들어 국내외에 서비스하는 회사”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웹소설 서비스가 2017년, 웹툰은 그보다 늦은 2020년 들어 시작됐음을 고려하면 과감한 사업전환(피봇)이 빠르고 효과적으로 안착된 셈이다.

“창업 이후 오랜 기간 전자책 회사였어요. 그러다 책 한 권을 모바일에서 보기 좋게 쪼갠 것이 웹소설의 시작이었죠. 단순히 분량을 나눠 게재한다고 접근하니 아주 새롭거나 어려운 도전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우리만큼 좋은 콘텐트, 즉 원작 IP를 많이 보유한 곳이 없더군요. 텍스트 기반 원천 IP를 그대로 이식해 웹툰을 만들어보자는 데 생각이 미쳤죠. 현재 리디가 자체 보유한 웹소설 기반 웹툰만 수백 편이 넘습니다. 물론 앞으로 더 많은 작품이 나올 거고요.”

지난 3월에는 서비스명을 아예 리디북스에서 리디로 변경했다. ‘북스’에 전자책 느낌이 물씬 담겨 있었다면, 리디라는 이름에는 웹툰을 비롯해 웹소설, 만화, 전자책 등 다양한 콘텐트를 아우른 플랫폼이라는 정체성이 짙게 묻어난다. 배 대표는 웹툰 진입 초기엔 “전자책 업체가 갑자기 웬 웹툰이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텍스트 기반 IP를 웹툰과 영상, 심지어 음원(OST) 사업까지 확장하며 IP라는 원천 콘텐트의 힘을 실감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책이라는 장르의 본질이 콘텐트이니, 이를 확장해 다른 장르로 이식하는 실험이 생각보다 어색하지 않았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웹툰·웹소설도 결국 광의의 책이라고 생각해요. ‘독자가 시간과 돈을 써서 능동적으로 소비할 만한 가치가 있는 콘텐트’가 제 나름의 책에 대한 정의입니다. 고대 이집트 파피루스가 구텐베르크 이후 종이로, 지금은 디지털로 옮겨온 것뿐이죠. 만화나 소설도 다 종이에서 나왔잖아요. 결국 고객이 원하는 욕구의 관점은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아요. 사실 창업 초기부터 전자책 하나만 파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어요.”

웹툰과 웹소설 모두 광의의 책


네이버와 카카오, 레진코믹스 등 기존 콘텐트 공룡들이 선점한 시장에 한참 늦은 후발 주자로 뛰어들었지만, 리디가 던진 파장은 만만치 않다. 배 대표는 “밖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기존 사업과 완전히 동떨어진 모델은 아니었기에 짧은 시간 안에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결국 원천 콘텐트가 가진 힘이다. 현재 리디가 보유한 전체 콘텐트는 26만 종에 이른다. 이 중 누적판매액 1억원을 돌파한 작품만도 1000개 이상이다. 등록된 전체 작가 수는 무려 11만1000명 이상을 넘어섰다.

‘콘텐트 화수분’을 자처하는 리디는 웹툰 제작 과정도 경쟁사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을 취하고 있다. 등록 작가만 11만 명이 넘는다는 데 힌트가 있다. 인기 있는 유명 웹툰 작가와 그들의 히트작이 경쟁사 서비스의 기반이라면, 리디는 철저하게 자체 IP를 웹툰화하는 데 주력한다. 텍스트를 그림으로 옮기는 작화 작업은 리디 내부 작화팀이나 외부 업체를 활용한다. 작품 성격에 맞는 웹툰을 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하니 웹툰작가의 명성에 기댈 필요가 없었다. 대표적인 예가 웹소설로 출발해 메가히트를 기록한 작품 『상수리나무 아래』다. 김수지 작가가 2017년부터 연재한 로맨스 판타지 웹소설로, 현재까지 400화 넘게 연재된 대작이다. 리디가 선보인 웹소설 중 단연 최고 인기작이다.

리디는 2020년 8월 동명의 웹소설을 웹툰으로 내놓았다. 그해는 물론 2021년에도 웹툰 <상수리나무 아래>는 리디 웹툰 대상을 수상하며 웹소설과 웹툰 모두에서 메가히트작으로 자리 잡았다. 2021년 들어선 리디의 글로벌 웹툰 구독 서비스인 ‘만타(Manta)’에도 작품이 공개됐고, 다섯 달 만에 조회수 700만 건을 돌파하며 글로벌 팬덤을 끌어모았다. 2021년과 2022년에는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의 테마곡, 즉 OST까지 콘텐트 영역을 넓혔고, 각각 음원 사이트에서 1위에 오르는 등 폭발적인 관심을 모았다. 이뿐만 아니다. 올 2월에는 웹소설 영문본(Under the Oak Tree)이 아마존 5개국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잘 만든 원천 IP 하나가 얼마나 크고 다양하게 변주될 수 있는지 증명한 사례다.

“흔히 말하는 셀럽 작가들이 후발 주자인 리디에 오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어요. 그럼에도 리디에서만 볼 수 있는 스토리가 한 달에만 수백 편이 넘게 새로 유입돼요. 그걸 웹툰의 원천 IP라고 해석했죠. 재미있고 좋은 이야기가 수없이 쏟아지는데, 모두 텍스트 기반이니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가지 못한다고 판단했어요. 개인의 창작이 아닌 영화나 드라마, 게임을 만들듯이 웹툰에 접근한 겁니다. 어떤 천재 하나가 뚝딱 만드는 게 아니라, 집단창작물로 제작 패러다임을 바꿨고, 이를 가장 체계적으로 또 규모 있게 해낸 회사가 바로 리디입니다.”

배 대표는 “웹툰은 형식일 뿐 내용까지 정의하는 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의 말마따나 다양하고 풍성한 원천 스토리가 가진 힘은 웹툰 시장 진입 3년 만에 글로벌시장이 인정한 유니콘을 만들어냈다.

검증된 원천 IP의 무한 확장


한 달에 수백 편의 독점작이 나오니, 콘텐트 플랫폼 기업 입장에선 리디만큼 안정적인 사업 환경을 가진 곳을 찾기도 어렵다. 대중에게 먹힐 원작 IP를 확보하는 일은 최근 콘텐트 업계가 사활을 걸다시피 하는 작업이다.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휩쓸고, 넷플릭스가 한국 감독과 배우들이 만든 드라마로 글로벌 메가히트를 기록하면서 한국은 영미적 세계관에 머물던 글로벌시장에서 숨겨진 보물 창고로 떠올랐다. 더욱이 OTT와 케이블 채널이 공중파를 압도한 지 오래인 상황에선 검증된 콘텐트를 누가 더 많이 확보하느냐에 따라 사업의 성패가 결정된다. “원천 스토리를 찾고 확보하는 게 그만큼 중요해졌고, 리디만큼 독점적인 원작 IP를 많이 가진 회사가 글로벌시장에도 그리 많지 않다”는 배 대표의 말에는 자신감이 묻어난다.

리디의 사업 영역을 글로벌로 확장한 웹툰 애플리케이션 만타도 기존의 국내 서비스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택했다. 수익 창출의 핵심인 과금 체계를 기존 경쟁사들과는 완전히 달리한 것이다. ‘구독’ 서비스 도입이다.

“국내 모든 웹툰 서비스가 한 회당 과금하는 방식입니다. 작품 하나하나에 돈을 내는 거죠. 과거 리디도 그랬습니다. 이에 비해 만타는 한 달에 3.99달러만 내면 모든 작품을 무제한 즐길 수 있는 구독 서비스예요. 넷플릭스가 처음 한국 시장에 진출할 때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것과 비슷하죠. 서구권에선 이미 회당 구매가 아니라 구독 서비스가 일반적이에요.”

과감한 결정은 시장에 제대로 먹혔다. 2020년 11월 북미시장에 론칭한 만타는 올 4월 기준 누적 다운로드 500만 건을 기록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선 출시 넉 달 만에 만화(코믹스) 앱 1위에 올랐고, 올 5월 기준으로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16개 나라에서 1위를 차지했다. 5위 안에 올라선 나라는 71개국에 이른다. 애플 앱스토어에서도 지난해 8월 도서 무료 앱 4위에 올랐고, 올 5월 기준으로는 16개 나라에서 1위를 차지했다. 현재 만타는 북미 웹툰 시장에서 액티브유저 기준 2위에 올라섰다. 불과 론칭 열 달만에 거둔 성과다.

“미국이나 유럽에선 구독 서비스가 아니면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모르는 유저도 많아요. 만타가 처음부터 구독 방식을 선보이니 서구권 팬들에게선 ‘당연한 게 이제야 나왔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가령 500화가 넘는 작품을 일일이 구매하기는 어렵잖아요. 유저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바이럴 마케팅이 이뤄졌죠.”

시장에 새로 진입한 후발 주자의 불리함은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게 배 대표의 이어진 설명이다. 선행 주자들이 잘한 점을 캐치하고, 반대로 그들의 시행착오를 제대로 보완하면 늦은 출발을 상쇄할 메리트가 더 커진다는 뜻이다. 시장을 선점한 이들도 약점은 있게 마련이고, 사업 구조를 잘못 짜는 경우도 많다. 후발 주자로선 기존 경쟁자들의 오류를 걸러내고, 나름의 강점을 최적화할 기회가 더 크게 열려 있다는 뜻이다.

‘덕후’에서 주류로 떠오른 여성향 콘텐트


▎올 1월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등장한 웹툰 [상수리나무 아래] 광고 전광판.
선택과 집중은 리디의 또 다른 성공 전략이다. 메가히트작인 『상수리나무 아래』를 비롯해 리디 플랫폼에는 로맨스 판타지물이 가득하다. 이른바 여성향 콘텐트다. 물론 스릴러나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가 섞여 있지만 여성들, 특히 20~30대 MZ세대 여성을 타깃으로 한 작품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다. 마치 예전 순정만화를 전문으로 다루는 만화방에 들어선 듯한 느낌이다. 배 대표도 “여성향 웹소설과 웹툰에선 리디가 단연 톱티어”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리디에는 보이즈 러브(Boy’s Love)라는 뜻의 BL 장르가 주요 카테고리로 구성돼 있다. 여성 독자들이 주도하는 이른바 ‘덕후’ 콘센트가 리디의 주류인 셈이다. 전자책을 시작으로 15년간 콘텐트 업계에 몸담아온 배 대표는 이러한 과감한 전략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콘텐트를 모르는 사람이어서 가능했던 것 같다”는 뜻밖의 답을 내놓았다.

“전기공학 전공이에요. 공돌이 출신이죠.(웃음) 콘텐트 사업을 시작해 지금까지 왔지만, 스스로를 콘텐트 전문가라 생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장르나 내용에 대한 편견 없이 다양하게 바라보는 시각도 공학 전공자였기 때문일지 모르겠어요. 지금도 콘텐트 부문은 전문가의 의견을 경청하고 그에 맞게 개편합니다. 그러다 보니 광의의 여성향 콘텐트가 리디의 강점이 된 것 같아요. 추리소설 시초 격인 『셜록 홈스』도 그 시절의 덕후 콘텐트가 아니었을까요? 100년 넘는 세월이 흐르면서 클래식이 된 거죠.”

작품에 대한 열린 시각은 리디의 정체성을 콘텐트에 두되, 사업적 전략은 철저히 고객을 중심에 둔 데이터 기반으로 다져놓았다. 리디의 기업문화와 일하는 방식을 규정한 ‘리디코드’ 중 ‘가장 먼저 그리고 마지막엔 고객 관점에서 바라본다’나 ‘데이터와 직관을 동시에 활용한다’는 의사결정 원칙은 리디의 사업적 정체성을 잘 드러내는 단면이다. 배 대표 역시 “모든 사안을 고객과 데이터의 관점에서 냉철하게 바라보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현재 리디 이용자 중 여성 독자 비중은 3분의 2 이상이다. 이 같은 구조는 리디뿐 아니라 경쟁 웹툰 플랫폼도 엇비슷하다. 배 대표는 “실제 오프라인 서점에 가봐도 여성 고객이 훨씬 많다”며 콘텐트 시장의 주 소비층은 여성이라고 말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시장의 트렌드와 타깃, 즉 고객의 수요와 욕구에 발 빠르게 대응한 전략은 만타 출시를 계기로 글로벌시장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GIC의 대규모 투자 역시 리디와 만타의 사업적 목표와 전략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배 대표는 특히 이 과정에서 K-콘텐트의 영향력 확대를 주목했다. 주관적인 분석이라 전제했지만 “글로벌에서 문화 콘텐트를 수출하는 나라는 미국, 영국, 일본, 한국뿐”이라는 설명이다.

“프랑스 영화나 인도 음악을 다른 나라에서 대규모로 소비하는 경우는 드물죠. 디지털 플랫폼이 문화 소비와 향유의 주요 통로로 자리 잡으면서, 새로운 주류로 떠오른 한국의 문화적 파워가 투자자들에게 인정받게 된 것 같아요. 전 세계에서 콘텐트를 서비스하고 수출하는 나라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GIC는 특히 안정성과 혁신성을 모두 중시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리디는 15년 차에 이른 안정된 업력에 웹툰 플랫폼이라는 신사업을 지속하고 있죠. 이 점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습니다.”

국내 콘텐트 스타트업 최초의 유니콘

스타트업으로 출발해 로켓에 올라타기 위해선 재무구조의 안정도 필수다.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아 대규모 투자를 이끌어냈다 해도, 자생력이 없는 사업 구조는 지속가능한 성장으로 이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리디는 15년 차에 이르는 업력을 바탕으로, 국내 사업의 경우 유의미한 흑자 구조로 돌아선 지 2~3년째를 맞았다. 애니메이션 스트리밍 서비스 자회사인 라프텔도 지난해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2020년(연결기준) 매출액 1555억원, 영업이익 25억원을 기록한 리디는 2021년 들어 매출 규모는 2037억원으로 커졌지만 영업손실 191억원을 기록, 적자로 돌아섰다. 배 대표는 “만타 신규 투자로 인한 영향”이라며 “지속적인 투자 유치는 물론 자체 수익성이 크게 개선되고 있어 부담이 되는 수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히려 인력 등 기업 규모가 급격히 커지면서 그에 걸맞은 기업문화를 갖추는 일이 더 급했다는 설명이다. 배 대표의 이런 고민은 2년 전에 만든 ‘리디코드(RIDI CODE)’로 구체화됐다.

“뭐라도 인위적으로 만드는 걸 좋아하지는 않아요. 다만 스케일업 과정에서 조직문화와 일하는 방식을 구성원들과 공유할 필요성을 크게 느꼈죠.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리디의 일하는 문화 중 긍정적으로 살리고 싶은 것들을 뽑은 게 리디코드입니다. 일종의 문화헌법 같은 개념인데, 우리만의 특징과 강점, 일하면서 지켜야 할 원칙을 구성원들과 치열하게 고민하며 정하는 데만 1년 넘게 걸렸어요.”

리디코드는 의사결정을 위한 원칙(Decision making), 소통을 위한 원칙(Communication), 리디에서 필요한 업무자세(Work ethics)를 정하고, 각각의 원칙에 세부 행동기준 5개가 추가된다. 모든 회의와 의사결정 과정에 리디코드가 적용되는 것은 물론이고 채용, 직원 상호 평가까지 리디코드에 맞춰 이뤄지도록 노력한다.

배 대표는 특히 인재 영입 과정에서 리디코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리디는 최근 서가연 틴더 한국지사장을 CMO로 영입한 데 이어 구글 엔지니어 출신인 조성진 CTO도 한 식구로 맞았다. 올 상반기 경력직 공채에선 직전 연봉 대비 30% 인상 등 인재 확보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새로운 사람을 찾는 원칙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제일 중요한 건 리디코드에 얼마나 잘 맞는 인재냐는 것이죠. 또 다른 기준은 보상입니다. 보상이 불만족스러워 못 오는 사람이 없게 하자는 거죠. 반대로 보상만 보고 리디에 오는 사람도 구분하려 합니다. 그래서 리디코드라는 필터가 제대로 작동하는 게 중요해요.”

배 대표는 중장기 경영 목표를 묻는 마지막 질문에도 “생각보다 간단하다”며 “리디코드를 잘 지키는 대표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창업자이자 첫 CEO로서 장기적으로 성장하는 기업을 만든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RIDI CODE

리디가 일하는 방법과 원칙

1. 의사결정을 위한 다섯 가지 원칙(Decision making)
- 가장 먼저 그리고 마지막엔 고객 관점에서 바라본다
- 장기적인 관점으로 생각한다
- 개인이나 팀의 목표보다 전사의 목표를 우선시한다
-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결정하고 책임은 조직장이 진다
- 데이터와 직관을 동시에 활용한다

2. 소통을 위한 다섯 가지 원칙(Communication)
- 의도와 맥락을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 표준화된 용어, 정확한 숫자, 통일된 날짜 표기법을 사용한다
- 찜찜한 상황에선 반드시 먼저 이야기를 꺼낸다
-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 소통 상대에게 존중하는 자세를 유지한다

3. 리디에서 필요한 다섯 가지 업무자세(Work ethics)
- 의도를 명확히 정하고 일을 한다
- 도전적인 목표를 설정한다
- 탁월함을 위해 집요하게 파고든다
- 결정된 사항은 빠르게 실행한다
- 체력을 적극적으로 관리한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202206호 (2022.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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