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CEO가 조직문화와 인재 관리에 대한 고민을 토로한다. 임직원 개개인이 서로 ‘내 맘 같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글로벌 대기업들은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다름’에서 시너지를 찾으려는 노력으로 다양성과 포용성(Diversity & Inclusion)을 강조한다. 글로벌기업 BAT(British American Tobacco)그룹 영국 본사의 경영이사회에서 한국인 멤버로 활약하는 김혜인 최고인사책임자(Chief Human Resource Officer)로부터 조직문화에 다양성·포용성을 심어가는 구체적 실행 방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BAT그룹은 세계 175개국에서 비즈니스를 하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고객·이해당사자의 니즈를 반영할 수 있는 임직원 기반을 갖춰야 해요. 다양한 인재 확보를 우선시하고 다양성을 갖추지 못하면 성장도 없다는 개념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인재 다양성을 확보한 후에 이들에게 전문성과 자율성을 보장해 다양성의 시너지를 조직 역량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조직문화가 바로 포용성입니다.”김혜인 BAT그룹 최고인사책임자(CHRO)는 최고경영진 중 한 명으로, 그룹 내 인사, 문화 및 포용성을 총괄한다. 지난 2019년 1월 BAT그룹 이사회 13명 중 한 명으로 발탁됐으며 이사회에서 유일한 여성이자 동양인이다. 참고로 BAT그룹은 소비자들과 하루에 약 1억5000만 건 넘게 접촉하고, 175개국 이상의 시장에서 1100만 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5만2000명 이상의 다국적 출신 임직원들이 BAT그룹에서 근무하고 있다.김 CHRO에 따르면 BAT가 영위하는 담배산업도 대대적인 시장 전환기를 맞아 기존 생산방식과 경쟁 구도에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전자담배 출현 등으로 다양하게 제품 포트폴리오를 확대해야 하고, 제품 연구개발에 IT를 도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 CHRO는 “전자기기 개발, 지식재산권, 판매 방법 등에서 다양한 스킬셋의 인재가 합류해야 한다”며 “인재들이 원하는 전문성 활용 방안, 일하는 방식을 모두 전환해야 하고 다양성이 더욱 강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다양성의 스펙트럼이 확대될수록 기업이 추구하는 공통의 가치관 규정은 더욱 명확해야 한다. 김 CHRO가 말하는 BAT그룹 조직문화의 핵심 가치는 ‘모든 사람의 관점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이다. 각각의 역량, 전문성, 마음가짐이 하나의 시너지로 승화하기 위해 무의식적인 편견과 선입견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열린 도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BAT그룹은 지난 120년 동안 다양한 국적의 시장 전문가가 서로 교류하고 순환근무를 하며 다른 생각을 학습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왔어요. 일례로 현재 한국 지사 직원 26명이 8개 국가에 나가서 근무하고 있죠. 다양성을 확보하려는 전사적 노력은 구체적으로 목표가 설정되어 있고 성과를 측정·관리하고 있습니다.”BAT그룹의 진보를 위한 다양성 액션플랜은 다음과 같다. 2025년까지 여성의 비중을 관리자의 45% 이상, 고위관리자의 40% 이상으로 확대, 디지털·지식재산권·데이터과학 등 산업교차 인재 2배 증가, 지역리더십 국적 다양성 50% 이상 등이다. 각 지역 리더들은 이런 계획 아래 매년 액션플랜을 설정하고 대시보드를 통해 조직문화의 다양성을 통합 관리한다. 단기 목표에 달성하지 못하면 그 원인을 파악하고 솔루션을 모색하는 방식으로 목표에 접근한다. 이 과정에서 인사관리 영역에서 최근 확대되고 있는 ‘구성원 경험(employee experience)’이나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 등의 방법론을 적극 반영한다.“목표 추진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다른 산업의 인재들을 영입하는 일이에요. 특히 디지털 기술 인재들을 확보하는 데 있어 실패율이 높게 나타나요. 그래서 인재들이 웹페이지에서 채용공고를 접하거나 서치펌을 통해 제안을 받을 때 어떤 점들이 불만족 사항(pain point)이었는지 데이터분석을 진행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지원절차를 더욱 간소화하거나 우리 회사로 이직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긍정적 요인 등을 파악해 강화하죠. 또 개인별로 커리어 플랜이나 승진 과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거나 채용절차에서 이직 도전의 흥미 요소를 강조해요. 일련의 이런 노력들로 채용 실패율을 낮추고 채용 소요 시간을 대폭 줄여나가고 있습니다.”국적별, 세대별, 커리어별로 인재들의 생각은 천차만별이지만 김 CHRO가 인사 전문가로서 본 좋은 인재의 공통점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욕구가 크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그는 “기업은 이런 그들의 바람이 조직 내에서 거침없이 발현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대다수의 젊은 인재는 책임과 권한을 통해 재미와 동기를 느껴요. 따라서 기업은 조직 구조에서 계층별로 어떤 가치를 부여할지, 불필요한 절차를 어떻게 최소화할지를 고민해야 해요. 그래야 젊은 인재들이 스스로의 결정력을 강화하고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생산적 학습을 할 수 있어요. 이 과정에서 궁극적으로 조직 효율성이 높아집니다”일례로 BAT그룹의 인재 관리 프로그램 중 하나인 글로벌 그레듀에이트(Global Graduate)는 18개월 내에 달성할 미션을 부여하고 그 성과에 따라 포상을 약속하는 것이다. 즉, 관리직으로의 승진을 보장해주고 전적으로 권한을 부여한다. 만일 목표에 도달하지 못해도 해당 직원은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업무를 총괄하면서 다양한 직무를 경험할 수 있다. 김 CHRO는 “현재 BAT 조직의 핵심 가치와 구조가 빠르게 전환하고 있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을 통해 디지털 기술, 혁신, 벤처 등 새로운 도전을 유도하며 무궁무진한 기회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신감과 자기객관화의 균형김 CHRO는 BAT그룹에서 일하는 글로벌 임직원 5만2000명의 인사와 조직문화를 최종적으로 관리하는 최고책임자다. 구체적으로 경영이사회에서 그가 하는 일은 전략적으로 어떤 인재 전략을 구사할지 결정하고, 조직 운영을 효율적으로 설계하고 포상체계를 정비하는 것이다. 그리고 조직문화의 방향성을 정하고 이를 유지·발전시키기 위한 이니셔티브를 이끈다.그에게 글로벌 대기업의 최고경영진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자질을 묻자 “자신감과 자기객관화의 균형이 주효하다”고 답했다.“무슨 일이든 스스로 한계를 짓지 않는 자신감이 중요해요. 그리고 자신이 어떤 일에 경쟁력이 있는지, 반대로 약점이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있어야 해요. 그래야 어떤 상황에서 무슨 일을 하든 유연하게 대처하며 프로페셔널로 성장할 수 있어요.”그가 석사를 마치고 구직활동을 시작한 때는 1998년 IMF 외환위기 상황이었다. 평생고용 시대도 끝났고 철밥통이라 여겼던 금융권도 더는 안전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는 ‘조직의 명성과 직함을 떼더라도 개인의 스킬과 노하우가 있어야 노동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컨설턴트를 택했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도맡아 추진했다.“당시에 소속 기업에 안주하며 승진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어요. 대신 중장기적으로 30~40년 후에도 지속성이 있는 스킬셋을 습득할 수 있는 프로젝트에 주력했어요. 프로젝트를 하나둘 성공시키고 새로운 업무에 반복적으로 도전해가며 저의 스킬 포트폴리오를 형성해나갔어요.”김 CHRO가 중요시했던 호기심, 학습 기회, 리스크테이킹 등의 가치는 전반적으로 커리어 개발에 큰 도움이 됐다. 그는 인사 및 조직문화 분야에 자신의 커리어 승부수를 던진 배경에 대해 “어떤 일이든 결국 리더십과 사람이 결정짓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기계는 일정한 인풋이 있으면 아웃풋을 예측할 수 있어요.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은 똑같은 업무라도 리더십과 담당자에 따라 그 성과가 극과 극으로 갈리죠. 인재들이 가진 책임감, 재능,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 활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가장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그는 마지막으로 대전환과 불명확성 시대의 리더십에 대한 철학을 전했다.“리더십의 여러 유형은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르게 적용돼요. 과거에는 지식과 경험을 기반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리더십이 적합한 반면, 상황이 빠르게 변하고 예측이 쉽지 않은, 요즘과 같은 복잡성의 시대에서는 긍정성이 가장 중요해요. 즉,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최종 성공을 위해 지속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해나가는 긍정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 실제 성공할 가능성이 가장 높아요. 그 과정에서 단계별 작은 성취를 추구하고, 도전을 재미로 여기며, 불확실성에 괴로워하지 않고 견뎌낼 수 있는 능력은 모두 긍정성에서 나와요. 현대사회에서 가장 중요하죠. 실제 저희 관리직급 1만3000명을 평가해본 결과에서도 이런 유형의 리더십이 가장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나타났어요.”그가 언급한 긍정형 리더십을 포함한 가치들은 실제 김 CHRO가 스스로 추구해온 그의 성공 비결인 동시에 최고인사전문가가 말하는 이 시대가 원하는 인재상이다. 그는 국내 리더들과 커리어 개발자에게 “무엇을 맡겨도 스스로 해결 방법을 찾는 인재들이야말로 결국 큰 역할과 성취를 획득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 김혜인 CHRO는… 연세대 영어영문학·경영학 전공,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 노사관계·조직행동학 석사, IBM BCS·PWC 컨설팅·휴잇 어소시에이츠 인사관리 컨설턴트, BAT 코리아 기업지원 인사관리 파트너, BAT 재팬 인사총괄 디렉터, BAT 아시아태평양 지역본부 인사총괄, BAT그룹 최고인사책임자·인재 문화 및 포용성 총괄(현)- 이진원 기자 lee.zinone@joongang.co.kr·사진 최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