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동안 기업과 공공기관을 상대로 컴퓨터, 사무기기 등을 렌털(rental)하며 시장 최강자에 올랐지만 늘 ‘자체 브랜드’에 목말랐다. 연구개발 끝에 대용량 공기청정기에 이어 올해는 버스형 공기청정 살균기를 선보였다. 렌털 비즈니스 강점을 살려 틈새시장을 제대로 공략하고 있는 것. 박관병 이지네트웍스 대표를 ‘G밸리(구로·가산디지털산업단지) 혁신가’ 첫 주자로 꼽은 이유다.
▎박관병 이지네트웍스 대표는 20여 년 동안 렌털사업으로 몸집을 키우더니 이제 자체 대용량 공기청정기 개발 등 사업다각화를 이뤄 신성장동력을 만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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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전에 태국 바이어가 회사를 방문했어요. 태국 쇼핑몰 몇 곳에 우리 회사 대용량 공기청정기를 시범 운영하고 있는데 ‘상인들과 관광객의 반응이 상당히 좋다’며 굉장히 만족해하며 돌아갔어요. 2020년 일본에 200대를 선적하며 수출을 시작했는데 올해 말엔 태국에도 진출이 예상됩니다. 태국을 거점으로 동남아 지역 판로를 개척할 계획입니다.”지난 10월 12일 서울 구로디지털산업단지 내 사무실에서 만난 박관병 이지네트웍스 대표의 목소리에서 자신감이 느껴졌다. 2000년 설립된 이지네트웍스는 렌털업계의 최강자로 꼽힌다. 컴퓨터·복합기 등 전자기기를 시작으로 음향·영상·텐트 등 행사 장비, 책상·쇼파·파티션 등 사무가구까지 품목을 더해가며 기업과 공공기관 등 거래처 9000여 곳을 확보했다. 그렇게 ‘남의 물건 사다가 빌려주던’ 회사는 2018년 자체 상품 개발과 생산을 시작했다. 렌털사업 성공을 발판으로 ‘이제 우리 것으로 지속가능한 미래 먹거리를 찾자’는 도전이었다. 시행착오 끝에 대용량 공기청정기를 개발했고, 올해는 버스형 공기청정 살균기를 시장에 선보였다.사업다각화, 자체 브랜드 강화 의지는 2020년 사명을 이지렌탈에서 이지네트웍스로 바꾼 것에서도 드러난다. 이와 함께 사업 줄기를 대용량 공기청정기 등 친환경제품을 개발·생산하는 친환경사업 브랜드 ‘에코버(ecover)’와 정보기기·사무기기·가구·행사 등을 지원하는 종합렌털 서비스 브랜드 ‘이지렌탈’로 구축했다.
렌털 영역 넘어 ‘우리 것’ 개발로 수출까지이지네트웍스의 시작은 용산전자상가였다. 1999년 대위로 전역한 박 대표는 당시 조립PC 판매업체 ‘터보정보통신’을 운영하는 형 밑에서 사업을 준비했다. 외환위기를 겪고 조금씩 경기가 살아나면서 창업 열풍이 불던 2000년 그는 렌털회사를 세웠다. 박 대표는 “형님의 도움을 받아 다양한 컴퓨터 제품군으로 렌털시장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며 “신용관리가 어려운 개인보다는 기업과 관공서를 대상으로 한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초창기 노트북으로 시작해 데스크톱과 모니터·프린터·복합기 등으로 소비자들의 니즈에 맞게 렌털 상품을 다양화했다. 이어 사무용가구, 가전, 냉난방기 등 300여 개 품목을 추가하면서 종합 렌털사의 면모를 갖추었다. 창업 3년 뒤 대구에서 열린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대규모 PC를 납품하면서 매출 증대는 물론이고 시장의 신뢰라는 큰 자산을 얻었다.이후에도 2015년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와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의 물자 부문 공식 렌털사로 선정되었고, 가깝게는 2020년 총선과 2022년 대선·지방선거 시기 노트북 1만3600대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렌털했다. 박 대표는 “매년 교육과정평가원의 렌털업체로 선정되어 수능 출제, 초중고 임용고시 출제, 교과서 검정 등에 필요한 장비도 지원하고 있다”며 “B2G, B2B 전문 렌털업체로 성장했다”고 말했다.그러나 렌털시장은 진입 문턱이 상당히 낮다. 돈이 된다 싶으니 대기업 제조사들이 렌털 계열사를 속속 설립했고, 자금과 물량에서 밀린 중소 렌털사의 폐업이 늘었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수익률도 점차 떨어졌다. 사업다각화와 함께 차별화한 서비스가 필요했다.“대기업에서 취급하는 제품으로 중소 렌털사들이 경쟁하기는 쉽지 않죠. 틈새시장을 공략할 필요가 있었고, 그때 찾은 것이 대용량 공기청정기였어요. 공기청정기는 50평대 이하가 주류인데, 우리는 최소 73평형에서 최대 1000평형까지 커버할 수 있는 초대용량으로 개발했어요. 대용량에 대한 인증 방법이 없어 조달청 등록까지 1년이 걸렸지만 때마침 미세먼지 문제가 이슈화되면서 공공장소에 꼭 필요한 제품으로 주목받았죠.”현재 생산하는 ‘에코버 대용량 공기청정기’는 최대 400평(1322㎡)까지 커버가 가능하다. 4단계 공기정화시스템에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 개발한 항균·항바이러스 성능의 광촉매 공조필터를 추가 장착해 공기정화능력을 향상했다. 사물인터넷(IoT) 솔루션, 중앙관제시스템 등 다양한 스마트 기술이 탑재된 것도 차별화한 경쟁력이다.대용량이니 주로 다중이용시설에 설치된다. 현재 서울지하철 9호선과 부산지하철 2호선, 김포골드라인 전 역사와 병원·보건소·체육관·도서관 등 공공시설, 서울코엑스와 제주 한화아쿠아리움 등 쇼핑몰에도 들어섰다. 73평형, 240평형, 340평형이 주력상품이다. 박 대표는 “넓은 면적, 높은 공간에 최적화된 제품으로 작은 평형 공기청정기를 여러 대 설치하는 것보다 비용이나 생활 환경적인 측면에서 효과적”이라고 말했다.“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수출길도 열렸어요. 2020년 일본에 200대를 첫 수출 후 지난해엔 100대를 추가로 선적했고 미국의 쇼핑몰과 프랑스의 군병원, 중동지역과 동남아시아 등에 샘플을 보내 반응을 타진 중입니다. 태국에서 980대 견적이 들어와 검토하고 있는데, 현지 수요를 봐서 태국을 완성품 조립 거점으로 삼아 동남아 시장 진출도 구상하고 있습니다.”
‘자체 브랜드’ 론칭 원동력은 기술력
▎대용량 공기청정기 설치 이미지와 버스형 공기청정 살균기 설치 이미지. / 사진:이지네트웍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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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하반기에 개발을 시작해 올해 6월 출시한 ‘버스형 공기청정 살균기’는 이지네트웍스 자체 개발 2탄인 셈이다. 3단계 청정필터와 살균장치(UVC LED) 기술을 결합해 버스 내부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와 악취, 각종 부유 바이러스 세균을 제거 및 살균한다. LED 색상으로 5가지 초정밀 센서의 작동 상태와 실내 공기질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이 제품 역시 중앙관리시스템으로 모니터링 및 제어가 가능하다.박 대표는 “광역버스는 많은 시민이 이용하지만 창문이 없는 밀폐된 공간으로, 에어컨이 오히려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취약한 환경”이라며 “이 또한 틈새시장 공략”이라고 말했다. “경기고속과 대원고속이 합병한 국내 최대 운수회사 KD운송그룹이 700대를 주문해 10월 말이면 설치가 완료돼요. 승객 동선에 방해되지 않는 슬림하고 둥근 디자인과 에코버의 정화시스템을 기본으로 탑재해 붐비는 출퇴근 시간 시민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이지네트웍스는 향후 여유 공간이 없는 협소한 장소를 위한 벽걸이형 공기청정 살균기도 출시할 예정이다. KT가 전국의 노인정, 복지시설 등에 통신망을 설치할 때 결합상품으로 좋을 것 같다고 제안을 해온 상태다.이지네트웍스의 친환경 브랜드 에코버가 틈새시장을 공략할 수 있었던 데는 회사의 기술력이 큰 역할을 했다. 우선 IoT 기능을 활용한 관제 시스템이 꼽힌다. 지하철 9호선에 대용량 공기청정기가 384대, 그러니까 역마다 10여 대가 들어가 있는데 이를 컴퓨터 한 대로 간편하게 관제할 수 있다. 공기청정기 위치별로 유해한 물질을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으며 유동인구와 오염 정도에 따른 필터 교체 시기도 체크할 수 있어 비용절감 효과도 있다는 설명. 박 대표는 “공기청정기에 관제시스템을 적용한 것은 우리가 유일하며 이 시스템을 판매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강조했다.공기청정기의 살균력 강화에 대한 연구개발도 현재진행형이다. 공기청정기에는 광촉매가 들어가는데 살균력이 약하고, UVC는 살균력은 강하지만 인체에 유해하다. 이를 무해하게 설계하는 게 어려운데, 이지네트웍스는 이 기술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금형만 제외하고 연구소에서 제품 설계에서 디자인, 부품 제작까지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것도 경쟁력이다. 지난 2020년에는 경기도 파주 공장에 연간 10만 장 이상의 공기청정기용 헤파필터를 생산할 수 있는 라인을 갖추어 직접 생산함으로써 소비자에게 저렴하게 소모품을 제공하고 있다.“우리 직원이 80명 정도인데 그중 연구원이 20명입니다. 중소기업치고는 연구인력 비중이 상당하죠. 대용량 공기청정기나 버스형 공기청정 살균기 모두 연구개발센터에서 연구원들이 밤낮없이 연구에 매달린 성과입니다. 이전엔 남의 물건을 가지고 렌털사업을 한다는 습성에 젖어 있었는데 공기청정기를 개발하면서 ‘우리 브랜드’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대용량 공기청정기 개발·생산에 뛰어들면서 매출도 크게 늘었다. 2019년 130억원에서 2020년과 2021년 각 207억원으로 늘었고, 올해는 최소 300억원을 예상한다. 영업이익률 또한 렌털만 할 때는 7~8% 수준이었지만 자체 제품을 개발한 이후로는 15%를 상회했다. 고물가 탓에 올해는 12~13% 정도를 예상한다.“우리 회사의 전통적인 업인 렌털은 꾸준한 고객관리를 통해 지속적으로 성장시킬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브랜드 제품의 개발·생산을 강화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드는 것이죠. 지금까지 B2B, B2G에 주력했지만 새롭게 B2C 렌털을 시작하려고 해요. 단, 아이템을 특수한 것으로 한다는 게 전제조건입니다. 그래야 대기업과 경쟁해도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요.”
렌털 강점 살려 헬스케어 분야도 진출그 첫 번째는 헬스케어 분야로, 통증완화치료기다. 값비싼 물리치료를 대체할 수 있는 휴대용 통증완화기기로, 현재 위탁 개발 중이다. 박 대표는 “A4 용지 크기로, 인증만 받으면 11월에 출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렌털도 하고 판매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렌털 비즈니스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협업도 구상 중이다. 우수한 중소기업의 제품을 발굴해 판매뿐 아니라 렌털을 함으로써 수익을 극대화한다는 전략이다.이를 위해 박 대표는 지난 2월 안진수 전 AJ셀카 대표를 전문경영인으로 영입했다. 안 대표는 2009~2014년 AJ네트웍스 대표를 역임하며 기업공개(IPO) 준비, 신규 성장동력 발굴, 렌털 매출 성장 등을 주도했다. 2015년엔 AJ토탈, 2016~2021년 AJ셀카 대표를 역임하는 등 유통·물류 분야 전문가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현재 이지네트웍스는 안 대표가 신사업을 포함한 회사 영업 전반을 책임지고, 박 대표는 재무·인사 등 내부 경영을 맡은 각자대표 체제다.“22년간 회사를 경영하다 보니 울타리 안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업계에서 명망 있는 안 대표를 삼고초려하여 영입했습니다. 8개월이 지난 지금 회사에 많은 변화가 있고 저도 새롭게 많이 배우고 있어요. 과감하게 경영 전반에 걸쳐 권한을 위임했으니 저는 또 혁신적인 ‘우리 제품’을 구상해봐야죠.”- 조득진 선임기자 chodj21@joongang.co.kr·사진 임익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