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진호의 ‘음악과 삶’ 

사람들은 화음, 음악 작품, 옷의 색깔 등을 저마다 달리 지각한다 

사람들은 모두 다르다. 우리가 객관적이라고 생각하는 현실은 각자가 저마다의 고유한 방식으로 생산해낸 환상일 수도 있다. 그리하여 여러 현실이 존재하는 것일 수 있다.

▎[헤어질 결심] 포스터. 여배우의 옷 색깔이 어떻게 보이는가?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뭘까?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은 모호필름이라는 영화제작사가 만든 모호한 영화다. 탕웨이가 분한 여주인공 송서래의 캐릭터는 묘하다. 영화가 끝나기 전까지 그녀가 남편을 죽인 살인범인지 아닌지는 알기 어렵다. 어떤 이들은 그녀가 남편을 죽인 살인범인지 아닌지에 대해 확신하겠지만, 영화에서 그녀가 남편을 죽였다는, 혹은 죽이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가 제시된 것은 아닌 듯하다. 박해일이 분한 남자 주인공이 그녀를 어떻게 판단했을 뿐이다(이것 역시 필자의 주관적인 판단일 수 있다).

여주인공의 실체를 모호하게 하려는 여러 장치가 동원되었다. 이를테면 그녀가 사는 집의 벽지는 산처럼 보이기도 하며 바다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의 몇몇 장면에서 등장하는 안개도 그런 장치 중 하나로 보인다. 영화 여러 곳에서 들리는 정훈희의 노래 ‘안개’는 영화의 이러한 모호한 오라를 상징적으로, 그리고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것 같다. 그리하여 ‘안개’라는 노래가 적절한 순간들에서 잘 사용되었다는 평가가 있고, [헤어질 결심]이 선곡을 잘한 영화라는 평가도 있다.

영화 속 탕웨이는 원피스를 종종 입는데, 그 옷의 색도 모호하다. 일단 등장인물들이 그 색을 다르게 본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조명 상태의 차이다. 영화 속 환한 햇빛 아래서는 파랑으로 보이고, 어두운 곳에서는 녹색으로 보인다. 그녀에 관한 판단의 차이도 색깔을 달리 보게 하는 원인이 되는 것 같다. 그녀를 의심하는 이들은 파란색이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그녀를 믿는 남자 주인공은 처음에는 녹색이라고 강하게 주장하다가, 그녀의 무죄를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청록색이라고 부르다가 드라마가 막바지로 치달으며 그녀의 범죄가 드러나는 것 같을 때는 청색으로 판단하게 된다. 그녀가 남편을 죽인 살인범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수영장 장면에 대해 영화의 작가인 정서경과 박찬욱은 “원피스의 청록색이 햇빛 아래서 거의 파랑으로 보인다”라고 적었다.(『헤어질 결심 각본』(2022), 을유문화사, 142쪽)

‘모호한 색깔의 옷’이라는 설정을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탕웨이는 촬영장에서 실제로 파란색 옷과 녹색 옷을 번갈아 입었다고 한다. “청록색 원피스를 (먼저) 제작하고, 그다음에 블루 원피스와 초록 원피스를 별도로 제작해서 세 벌을 번갈아 입으며 촬영했다.”(조명현, ‘탕웨이 청록색 원피스의 진실’, Pickcon, 2022.07.06.) 제작진의 이런 노력 때문에 많은 영화 관객이 탕웨이가 파란색과 녹색 중 어느 색의 옷부터 입었는지, 어느 순간에 어느 색의 옷을 입고 있었는지를 헷갈렸다고 한다. 감독의 모호한 전략이 잘 먹힌 것이다. 탕웨이 옷의 모호한 색이라는 장치를 생각해냈을 때 박찬욱 감독과 정서경 작가는 미국에서 발생했던 ‘드레스 사건’을 알고 있었을까.

2015년, 미국의 어떤 여인이 딸의 결혼식에 입을 드레스를 사러 가서 마음에 드는 옷을 찾았다. 그녀는 스마트폰으로 그 옷을 찍어 딸에게 보내고는 의견을 물었다. 모녀의 대화는 그 옷의 색깔에 관한 논쟁으로 발전했다. 한 사람은 옷의 색을 파란색과 검은색 줄무늬라고 보았고, 다른 사람은 흰색과 금색이라고 보았다. 엄마의 판단이 자신의 그것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워했던 딸이 옷 사진을 SNS에 올려서 사람들의 의견을 구했는데, 놀랍게도 사람들 역시 판단을 달리했다. 무려 천만 명이 넘는 사람이 두 그룹으로 나뉘었고, 자신들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했으며, 다른 판단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흰 줄 vs. 파란줄


▎‘드레스 사건’의 원본 드레스. / 사진:위키피디아
색채의 지각이라는, 비교적 단순한 사안에 대해서조차 사람들은 통일되어 있지 못한 것이다. 아직도 두 판단 중 어느 것이 맞는지는 분명하게 판정되지 못했다.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는 “이 드레스는 흰 줄인가요 아니면 파란 줄인가요”(Jonathan Corum, “Is That Dress White and Gold or Blue and Black?”, 2015.02.27.)라는 기사를 내보내며 문제가 된 드레스 사진의 흰색 혹은 파란색 부분과 금색 혹은 검은색 부분을 각기 떼어내어 확대한 뒤 보여주었다. 따로 떨어지자, 흰색 혹은 파란색이라는 응답을 불러온 부분은 어두운 푸른색(steel blue)이며 금색 혹은 검은색이라는 응답에 해당하는 부분은 탁한 겨자색(goldenrod)에 가까운 색으로 드러난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러한 판단 역시 최종적인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과학자들은 이 사건과 관련해 왜 하나의 대상에 서로 다른 색채 지각이 발생했는지를 여러 가설을 제안하며 설명하려고 했는데, 아직도 완벽한 설명이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여러 연구자 중에서 권위 있는 학술지에 이 주제로 논문을 게재한 이들도 있었다.(Karl R. Gegenfurtner et al(2015), The many colours of “the dress”, Current Biology 25(13), 543~544)

어떤 현상에 대해 사람들이 서로 다른 지각(perception)을 가진다는 보고는 많다. 지각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원인은 여러 가지다. 지각 주체가 살아가는 사회적·물리화학적 환경도 원인이고, 지각 주체가 가지는 생물학적 특징들이나 정신적 경험들로서의 기억이나 신념도 원인이 된다. 당연히, 그런 기억과 신념을 가지게 된 데는 사회적 요인들과 생물학적 요인들이 영향을 준다. 미국 과학자 한나 크리츨로우는 이렇게 말했다. “개개인이 가진 현실에 대한 감각은 구성된 것(construct)이다. 서로 다른 개인이 경험하는 현실에서 차이가 생길 수 있는 잠재력은 막대하다. 당신이 매일 경험하는 하루는 모든 감각을 통해 뇌로 쏟아지는 막대한 정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이 모든 정보는 당신이 기존에 세상을 어떻게 당신만의 방식으로 이해했느냐는 색안경을 통해 처리된다. 간단히 말하면 인간은 어떤 주어진 상황에서도 자기가 예상한 것만 보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되먹임 고리로 작용해서 미래의 지각에 영향을 미쳐 당신의 평가와 의견을 강화한다. 그래서 현실은 계속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인간의 관점에 맞춰지게 된다.”(『운명의 과학』, 2020, 로크미디어, 166~167)

사람들이 가지는 관점 중에 센 것, 사람들 마음속에서 강경하게 꽤 오랫동안 자리하는 것을 신념이라고 부를 수 있다. 신념은 세상을 달리 보게 만드는 강력한 원인 중 하나이다. 탕웨이가 분한 송서래가 살인범이냐 아니냐도 신념들일 수 있다. 사람들이 가지는 지식의 상태와 수준도 그들이 세상을 달리 보게 만드는 원인이 되며, 그들이 서로 다른 신념을 가지게 만드는 원인도 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의 한 연구자는 진화론에 대한 사람들의 지식을 측정했고 그들이 진화론을 사실로 받아들이는지도 알아보았다. 연구자는 진화론을 잘 이해하는 이들이 진화론을 더 잘 받아들이고, 진화론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은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을 확인했다.(Amanda Montañez(2018), Views of Evolution Shaped by Knowledge, Scientific American 318(5), 24)

동시에 두 개 이상의 음이 울려 퍼질 때 우리는 그것을 화음이라고 부른다. 화음들은 잘 어울리거나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음악가들이나 음악을 듣는 세상 사람들은 잘 어울리는 화음을 협화음, 어울리지 않는 화음들을 불협화음이라고 불렀다. 어울린다는 것이 정확히 무얼 의미하는지에 대해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사람들이 의견을 개진해왔다. 옛날 사람들의 의견은 주로 음향학적인, 즉 물리학적이거나 수학적인 설명에 기초했다.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나 근대 화성학을 창안하고 거의 완성했던 프랑스 작곡가 장 필립 라모(1683~1764)가 그런 이들이었다. 이들은 어떤 화음을 구성하는 음 간의 수학적 비율에 주목해 협화음과 불협화음을 구분했다. 이들의 접근 방식을 요약하면 어떤 화음들은 “객관적으로” 어떤 특성을 가져서 협화음이거나 불협화음이라는 것이다. 다분히 절대주의적인 이런 관점이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 근대에 와서는 좀 바뀌었다.


▎원본 사진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였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담은 뉴욕타임스 기사를 참조하면 서로 다른 색으로 보이는 다음의 사진들을 볼 수 있다. 왼쪽은 원본이 그늘져 있는 곳에서 볼 때 보이는 사진으로 추측되며, 가운데는 뉴욕타임스 기사가 제공한 원본 사진이고, 오른쪽은 환한 곳에서 보일 것으로 추측되는 사진이다. / 사진:2015년 2월 27일 자 뉴욕타임스 기사
19세기 사람들은 화음의 객관적인 특성도 중요하지만, 사람들 스스로가 어떻게 듣는지도 중요하다는 데 눈을 떴다. 아주 조악하게 말하자면, 과거 학자들은 물리학과 수학만으로 음악을 설명하려 했다가, 현대에 와서는 심리학의 중요성에도 관심을 두게 되었다. 아주 최근에는, 사람들의 음악에 대한 심리는 그들의 사회적 특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알게 된 학자들이 등장했다. 영국의 젊은 공학자들인 해리슨과 피어스는 화음의 협화 정도를 측정할 수 있다고 하면서 - 화음들이 협화음과 불협화음 두 범주로만 나뉘는 것이 아니라, 화음의 협화/불협화 정도가 있고, 그것을 측정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주장은 현대에 와서 제기되었다. - 협화/불협화는 여러 요인을 통해 도출되는 복합적 현상이라고 주장하며 그 근거들을 제시했다. 복합적 요인에는 문화적 요소들도 거론되었다. 간단히 말해, 서로 다른 문화 속에 사는 이들은 어떤 화음의 협화 정도를 다른 문화 속에 사는 사람과 다르게 지각한다.(Peter M. C. Harrison, Marcus T. Pearce(2020), Simultaneous Consonance in Music Perception and Composition, Psychological Review, 127(2), 216~244)

이들은 공학자들답게 음악의 여러 요소 중 상대적으로 단순한 실체인 화음으로부터 연구를 수행했다. 음악가인 필자 같은 이들 중에는 화음과 같은 단순한 요소가 아닌, 화음을 비롯한 여러 요소가 총동원되어 조직화된, 음악적 현상 중 가장 상위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복잡한 음악 작품 그 자체에 관한 사람들의 사회적 지각 방식의 차이를 연구하고자 했던 이들이 있다. 필자는 이런 관점에서 최근 몇 년 동안 사람들의 철학적 신념과 음악을 듣는 방식 간의 상관관계를 알아보는 연구를 수행해왔다. 스코푸스(Scopus)급 국제학술지에 실린 필자의 연구에 따르면 서로 다른 철학적 신념을 가진 이들은 같은 음악을 다르게 들었다. 서로 다른 사회적 위치에 있는 이들 역시 같은 음악을 다르게 들었다.(Korean way of perceiving the determinism of French spectral music and concrete music since 1970(2022), Rast Musicology Journal, 10(2), 183~214) 기회가 되면 이 연구 결과를 언젠가 간단히 소개할 수 있을 것이다.

※ 김진호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의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

202211호 (2022.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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