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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선주 센터장의 메타버스 로드맵 짚어보기 

가상 세계에서의 폭력 

“나 지금 되게 신나.” 요즘 넷플릭스에서 방영하고 있는 [더 글로리]가 핫이슈다. 만나는 사람마다 본인이 목격했던 혹은 경험했던 학교폭력에 대한 기억을 되짚어가며 묻어뒀던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듯하다. 전에 비해 많은 사람이 폭력의 의미와 그 후유증에 대해 한층 더 깊이 논의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요즘 소수민족과 소외된 사회취약계층에 가해지는 폭력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는 중이다.

▎메타버스는 현실 세계에서 이룰 수 없는 꿈들을 완성해줄 수 있는 공간임과 동시에 현실 세계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종류의 폭력도 경험할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는 곳이다.
넷플릭스와 같은 미디어에서 자주 보는 폭력은 대부분 가시적이다. 욕을 하는 언어적 폭력도 더러 있지만 많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확실하고 직접적인 신체적 폭력을 보여준다. 살이 터지고 피가 흐르는 폭력은 누가 봐도 잔인하고 피해자가 명확해서 사회에서 이 부분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해도 반대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폭력이 가시적이지 않거나 피해 사실이 명확하지 않을 때이다. 가령, 비디오게임을 하다가 다른 아바타가 내 아바타를 가격했다고 치자. 다른 게이머가 현실의 내 몸을 직접적으로 친 것도 아니고, 단지 화면 안에서 픽셀들끼리 부딪친 정도로 볼 수도 있겠다. 아바타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폭력이 과연 현실 세계 유저들에게도 의미가 있을까?

어느 사회든, 많은 사람이 모이게 되면 폭력이 발생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수 있다. 2023년 현재, 메타버스에 대한 기대와 비전이 매우 활발하게 제시되고 있는데, 의외로 수많은 유저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폭력에 대한 고민과 논의는 드문 편이다. 일단 많은 이에게 메타버스는 여전히 만화 캐릭터처럼 항상 즐겁고 명랑해 보이는 아바타들이 등장하는 게임에 불과하다. 게임은 놀이인데, 누군가와 즐거운 마음으로 놀기 위해 만난 장소에서 심각한 폭력에 노출된다는 생각을 하기 어려울 수 있다. 또 메타버스는 가상의 세상 아닌가. 전원 스위치를 눌러 꺼버리고 현실 세계로 다시 나오면 그만인데 웬 걱정인가 싶은 이도 많을 것이다.

픽셀로도 때리지 말라

그런데 누군가에게 신체적으로 상해를 입히지 않더라도 충분히 폭력적일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례에서 입증됐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40년 전, 린지 반 겔더(Lindsy Van Gelder)가 미세스매거진(Ms. Magazine)이라는 잡지에 기고한 사례를 보자. 모뎀을 통해 인터넷으로 접속하여 채팅방에서 대화를 나누던 조앤이라는 여자가 채팅 상대방이 남자인 줄 모르고 또래 여자 친구와 수다를 떨듯 사생활은 물론이고 성적 취향까지 밝힌 이야기를 적고 있다. 나중에 젊은 여자인 줄 알았던 채팅방 유저가 50대 후반의 남성임을 알게 된 조앤은 자신도 모르게 본인의 치부를 드러내게끔 조종당한 것이 마치 원치 않은 성폭력을 당한 느낌과 흡사하다고 밝혔다.

이후 1990년대 초반, 줄리안 디벨(Julian Dibbell) 기자가 람다무(LamdaMOO)라는 초창기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사이버공간의 강간’ 사건은 좀 더 명확한 폭력의 형태를 띠고 있다. 1993년 3월, 유저 중 한 명(아이디 Mr. Bungle)이 ‘부두 돌’이라는 서브프로그램을 돌려 서버 안의 아바타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게 된 일이다. 비록 초창기 아바타들 특유의 부자연스러운 몸짓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아바타가 민망한 유사 성행위에 가담하는 걸 목격한 후 많은 유저가 충격을 받고 컴퓨터를 끈 이후에도 한동안 그 이미지를 잊지 못해 괴로워했다고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특수를 누리며 큰 인기를 끌었던 게임 로블록스(Roblox)에서도 유사한 성추행 문제나 비방 및 욕설, 아이템 사기 등이 종종 회자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타버스상의 폭력이 크게 이슈화되지 않는 것을 보면, 많은 사람이 그 폭력의 심각성이나 지속성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일지 모른다. 가장 큰 문제는, 메타버스 내에서의 폭력은 영화나 드라마상의 폭력만큼 단순하지 않다. 로블록스 아바타들처럼 명랑해 보이는 만화 캐릭터가 아직 채 자연스럽지 못한 몸짓으로 움직이며 가상 환경에서 내 아바타를 공격하는 것이다. 그 움직임 자체는 우스꽝스럽기 때문에 얼핏 봤을 땐 폭력처럼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많은 유저에게 이런 상황은 혼란스럽기 마련이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아직 사회성이 완전히 발달하지 못한 어린이들, 다양한 이유로 인지 능력이 일반인들보다 떨어지는 사회취약계층은 밝게 웃고 있는 사람들이나 외모가 잘생긴 사람들을 도덕적으로도 좋은 사람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외적인 특성들을 내적인 특성과 같은 선상에 두고 판단하는 것이다. 또 위에서 소개한 사례들에서도 엿볼 수 있듯, 설사 뒤늦게 그 아바타의 나쁜 의도를 깨닫고 서둘러 메타버스에서 탈출하거나 전원 스위치를 껐더라도 내 아바타를 통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움직임으로 체감했던 그 순간의 폭력은 머릿속에 생생하게 각인되어 현실 세계에서도 쉽게 잊기 힘들다. 픽셀로도 때리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메타버스에도 보호 장비가 필요하다

현실 세계에서 우리는 스노보드나 축구 같은 격렬한 스포츠를 배운다거나 전동드릴이나 전기톱 같은 파워툴을 사용해야 할 때 반드시 보호 장비 착용을 권고한다. 건설회사 직원이 공사 현장을 방문할 때도 반드시 안전모를 착용하고 운전자가 자동차를 운행할 때 안전벨트를 매는 것은 법으로 정한 보호 조치들이다. 생각해보면, 이런 보호 조치들이 사고 확률을 낮춰주는 것은 아니다. 사고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사고가 일어났을 때 받을 수 있는 피해를 줄이기 위함이다.

메타버스라는 개념은 게임 및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초석을 다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교육, 의료, 경제, 환경 등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일상생활로 진입하고 있고, 이에 따라 그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 등 정부 단체는 현재 무법지대인 메타버스 환경 내에서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 등을 검토 중이다. 또 메타의 호라이즌 월드는 버튼 조작만으로 나와 상대방의 아바타 사이에 보호막을 세워 상대방의 아바타가 일정 거리 이상 접근할 수 없도록 하는 기능 등을 베타 테스트 중이다. 밝게 웃고 있는 아바타들이 만화에서처럼 명랑한 동작들로 서로 교류하는 메타버스는 현실 세계에서 이룰 수 없는 꿈들을 완성해줄 수 있는 공간임과 동시에 현실 세계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종류의 폭력도 경험할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는 곳이다. 다양한 유저가 안전하게 메타버스의 장점들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정부 정책과 기업의 기술적 보호 장비의 도입이 시급하다.

※ 안선주 센터장은… 조지아대 컴퓨터-인간 생태계 발전 센터(Center for the Advancement of Computer-Human Ecosystems) 센터장이며 광고홍보학과 교수다. 가상현실, 증강현실 등 뉴미디어와 이용자 행동 변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특히 의료, 소비자심리학, 교육과 연계한 가상현실 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해 대화형 디지털 미디어에 의사소통 및 사회적 상호작용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집중 연구하고 있다. 2022년 초 TED talks에서 ‘일상생활에 가상현실 통합’이란 주제로 발표한 바 있다.

202302호 (2023.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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