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균 자산 39%씩 증가한 저축은행업계 ‘메기’한국에 진출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현재 페퍼저축은행은 자산 7조1949억원(2022년 3분기 기준)으로 국내 저축은행 ‘빅 4’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대출금 운용 규모도 2013년 1300억원대 수준에서 2022년 3분기 현재 5조500억원으로 커졌다. 한국 시장 진출 이후 페퍼저축은행의 자산 규모는 연평균 39%, 대출금액은 연평균 52%라는 놀라운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멈추지 않는 고도성장의 배경에는 2013년 이후 지금까지 자리를 지켜온 장매튜 대표의 공이 크다는 게 업계 안팎의 한목소리다. 1967년생인 장 대표는 10살 무렵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1.5’세대다.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1990년대 초부터 미국에서 프라이빗뱅킹, 신용카드 세일즈 등 컨슈머뱅킹 부문에서 실력을 갈고닦았다.한국으로 유턴한 건 2002년 들어서다.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에서 한국소매금융 대표를 역임한 그는 PB본부장, 지점총괄상무 등 리테일 분야에서 업계 대표 전문가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데이터분석을 활용한 직장인 신용대출 모델을 국내시장에 안착시키며 세일즈 능력을 인정받았다. SC 재직 당시 그가 이끈 신용대출 조직이 대출모집인 9명, 본사 직원 20명에서 출발해 2년 만에 대출모집인 900명, 본사 직원 120명으로 확대된 사례는 지금도 은행권에서 회자된다.데이터를 활용한 정교한 고객 신용분석은 업계에선 꺼리는 중신용·중금리 대출 사업의 가능성을 확인해 준 과정이었다. 고신용자 위주의 제1금융권, 저신용자 대상의 저축은행이란 공식을 깨고 페퍼저축은행이 중금리 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데도 장 대표의 이력이 한몫했다. 장 대표는 “PF로 인한 대출 부실이나 코로나19 팬데믹 같은 외부 변수에도 별다른 리스크가 없다”며 “데이터 기반, 즉 외부 변수에 흔들리지 않는 사업구조를 갖춘 것이 우리의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장 대표는 영업 초기부터 저신용자 중심의 고금리 대출을 철저히 지양했다. 1~10등급으로 나뉘는 고객 신용등급 중 은행이 1~3등급을, 기존 저축은행이 7~9등급을 커버한 반면, 페퍼저축은행은 그간 소외돼 있던 4~6등급을 대상으로 하는 니치마켓에서 더 큰 가능성을 발견했다.“우리가 포커싱하는 중금리 대출이 사실 금융권에선 제일 어려운 시장입니다. 신용이 높은 사람에게 낮은 금리로 큰 금액을, 반대로 저신용자에게 높은 금리로 영업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죠. 빅데이터에 기반해 신용분석을 제대로 해내고, 이에 맞는 고객 프로파일링과 맞춤상품을 내놓아야만 중신용·중금리 영업이 가능합니다. 그동안 시장이 놓쳤거나 외면했던 니치마켓을 파고든 게 페퍼저축은행의 성장 비결입니다.”
중신용·중금리 니치마켓 개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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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배구단 창단 등 스포츠·ESG 경영 활발장 대표는 페퍼저축은행 출범 이후 줄곧 다섯 가지 기업 목표를 향해 달려왔다고 말했다. 영업순익 1000억원 달성, 한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저축은행,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저축은행, 가장 디지털화된 은행, 직원들이 가장 행복한 은행이라는 슬로건이다. ‘가장 잘 알려진 저축은행’이란 비전에는 업계 후발 주자로서의 현실적 고민이 담겨 있다. 자산 규모 면에서 업계 대표 주자로 올라섰지만 대중적 인지도 면에선 아직 부족하다는 게 현실적 판단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2021년 창단한 여자배구단 AI페퍼스는 페퍼저축은행의 인지도를 단박에 올려놓은 일등 공신이다.“디지털뱅킹에선 금융사에 대한 인지도와 이미지가 크게 작용합니다. 금리가 좋아도 신뢰도가 낮으면 고객 입장에선 거래를 망설일 수밖에 없죠. 그런 면에서 배구단은 완벽히 차별화된 마케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어요. 국내 여자배구 발전에 이바지하면서도 페퍼라는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으니 최고의 선택이었다는 생각입니다.”장 대표는 프로배구단을 꾸리는 것 자체가 웬만한 기업 하나를 운영하는 것만큼 쉽지 않은 일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럼에도 효과는 분명하다. 현재 여자배구는 프로야구 다음으로 인기 있는 종목이다. 매 시즌 36경기가 TV에서 모두 생중계되고 재방송까지 이뤄진다. 최약체 신생팀이 이기기라도 하는 날엔 톱뉴스가 된다. 배구를 모르던 사람도 페퍼라는 이름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는 효과다. 금액으로 추산한 PR 효과가 1000억원 대에 이른다는 게 내부 평가다.프로배구단 운영에는 매년 수십억 원 넘는 비용이 소요된다. 장 대표는 “단순한 스포츠마케팅 차원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고객과 함께 성장하는 은행처럼, 배구단 역시 신생팀이라는 약점을 극복하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의지다. 경기 관람을 원하는 직원과 가족들에게는 단체버스도 제공해 언제든 즐길 수 있게 배려했다. 그사이 회사를 대하는 직원들의 자부심과 로열티도 함께 높아졌다.스포츠를 이용한 사회공헌은 장 대표가 꾸준히 실천하고 있는 주요 경영활동이다. 2021년에는 국내 민간기업 최초로 장애인 양궁 실업팀인 ‘부천 페퍼저축은행 장애인양궁팀’을 창단했다. 메인 스폰서 역할을 맡은 장애인양궁대회 개최도 준비 중이다. 이 밖에 KLPGA 선수 5명과 후원 협약을 체결하는 등 ‘가족과 건강(Family & Health)’이라는 가치를 잇는 스포츠마케팅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취임 이래 지켜온 장 대표 특유의 ‘사람 중심’ 경영이 스포츠 지원으로 이어진 셈이다.“2019년 18만 명이었던 고객 수가 2023년 현재 퇴직연금 포함 200만 명이 됐습니다. 그사이 직원도 370명에서 560명으로 늘었죠. 직원 한 명 한 명, 고객 한 분 한 분이 행복한 은행이 되겠다는 다짐은 출범 초나 지금이나 변함없죠.”-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사진 지미연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