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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매튜 페퍼저축은행 대표 

‘매운맛’ 좀 보여준 페퍼저축은행 돌풍 

장진원 기자
저신용·고위험 비즈니스로 분류되던 저축은행의 비즈니스 모델에 반기를 든 곳이 있다. 2013년 처음 한국 시장을 두드린 호주계 페퍼저축은행이다. 10년 만에 국내 4위권 저축은행으로 발돋움한 데는 장매튜 대표 특유의 니치마켓 전략이 숨어 있다.

지난 1월 13일 금융감독원은 저축은행중앙회, 시중 저축은행과 함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고 발표했다. 금감원이 새해 벽두부터 저축은행 관계자들을 불러 모은 건 증가세를 보이는 금융사고를 예방하고 이를 위해 저축은행업계의 내부통제 개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최근 저축은행업계는 위기를 맞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급락하면서 관련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개인사업자 대출 등에서 부실 징후가 드러나면서다. 정부당국과 저축은행업계가 함께 꾸린 TF는 고위험 대출이라는 저축은행 특유의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관리하기 위함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2022년 3분기 기준, 국내에서 영업중인 79개 저축은행의 대출금 운용액은 116조원에 달한다. 저축은행중앙회가 정리한 가계신용대출의 평균 대출금리는 15.95% 수준이다. 몇몇 저축은행의 경우 가계신용대출 평균 금리가 19%대를 넘겨 법정 최고금리인 20%에 육박한 곳도 있다. 제1금융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신용자 중심의 고금리 영업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저축은행업계로서는 유례없는 기준금리 인상과 부동산 경기 급락 등 관련 리스크가 더 크게 와닿을 수밖에 없다.

업계가 잔뜩 몸을 사린 가운데 공격적인 영업전략으로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는 곳이 있다. 장매튜 대표가 이끄는 페퍼저축은행이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명확한 고객 타깃팅과 신용평가 모델, 이를 통한 ‘중신용·중금리’ 신용대출 강화가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이다.

2001년 호주와 뉴질랜드를 중심으로 한 모기지 전문 금융사로 출발한 페퍼그룹은 지난 2013년 늘푸른저축은행을 인수하며 한국 시장에 처음 진출했다. 인수 당시 업계 50위권에 총자산이 1857억원 수준에 불과했던 기업의 M&A에 관심을 두는 이는 많지 않았다. ‘페퍼’라는 외국계 금융사의 이름 자체도 생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연평균 자산 39%씩 증가한 저축은행업계 ‘메기’

한국에 진출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현재 페퍼저축은행은 자산 7조1949억원(2022년 3분기 기준)으로 국내 저축은행 ‘빅 4’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대출금 운용 규모도 2013년 1300억원대 수준에서 2022년 3분기 현재 5조500억원으로 커졌다. 한국 시장 진출 이후 페퍼저축은행의 자산 규모는 연평균 39%, 대출금액은 연평균 52%라는 놀라운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멈추지 않는 고도성장의 배경에는 2013년 이후 지금까지 자리를 지켜온 장매튜 대표의 공이 크다는 게 업계 안팎의 한목소리다. 1967년생인 장 대표는 10살 무렵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1.5’세대다.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1990년대 초부터 미국에서 프라이빗뱅킹, 신용카드 세일즈 등 컨슈머뱅킹 부문에서 실력을 갈고닦았다.

한국으로 유턴한 건 2002년 들어서다.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에서 한국소매금융 대표를 역임한 그는 PB본부장, 지점총괄상무 등 리테일 분야에서 업계 대표 전문가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데이터분석을 활용한 직장인 신용대출 모델을 국내시장에 안착시키며 세일즈 능력을 인정받았다. SC 재직 당시 그가 이끈 신용대출 조직이 대출모집인 9명, 본사 직원 20명에서 출발해 2년 만에 대출모집인 900명, 본사 직원 120명으로 확대된 사례는 지금도 은행권에서 회자된다.

데이터를 활용한 정교한 고객 신용분석은 업계에선 꺼리는 중신용·중금리 대출 사업의 가능성을 확인해 준 과정이었다. 고신용자 위주의 제1금융권, 저신용자 대상의 저축은행이란 공식을 깨고 페퍼저축은행이 중금리 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데도 장 대표의 이력이 한몫했다. 장 대표는 “PF로 인한 대출 부실이나 코로나19 팬데믹 같은 외부 변수에도 별다른 리스크가 없다”며 “데이터 기반, 즉 외부 변수에 흔들리지 않는 사업구조를 갖춘 것이 우리의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장 대표는 영업 초기부터 저신용자 중심의 고금리 대출을 철저히 지양했다. 1~10등급으로 나뉘는 고객 신용등급 중 은행이 1~3등급을, 기존 저축은행이 7~9등급을 커버한 반면, 페퍼저축은행은 그간 소외돼 있던 4~6등급을 대상으로 하는 니치마켓에서 더 큰 가능성을 발견했다.

“우리가 포커싱하는 중금리 대출이 사실 금융권에선 제일 어려운 시장입니다. 신용이 높은 사람에게 낮은 금리로 큰 금액을, 반대로 저신용자에게 높은 금리로 영업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죠. 빅데이터에 기반해 신용분석을 제대로 해내고, 이에 맞는 고객 프로파일링과 맞춤상품을 내놓아야만 중신용·중금리 영업이 가능합니다. 그동안 시장이 놓쳤거나 외면했던 니치마켓을 파고든 게 페퍼저축은행의 성장 비결입니다.”

중신용·중금리 니치마켓 개척


▎장매튜 대표(오른쪽 두 번째)가 올 시즌 첫 승을 거둔 AI 페퍼스 배구단과 기념촬영에 나섰다.
페퍼저축은행의 고객 데이터 분석은 업계에서도 최상위 수준으로 꼽힌다. 데이터 분석과 운용을 전담하는 팀은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장 대표와 함께 SC 등에서 합을 맞춰온 인재들이다. 지난 2021년에는 그동안 쌓아온 고객 데이터 분석 툴 위에 고객행동(behavior)과 리스크를 분석한 자체 스코어카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도 했다. 머신러닝 기술을 활용해 더욱 파워풀한 고객 신용평가와 분류가 가능해졌다는 설명이다.

디지털채널 강화도 장 대표가 꾸준히 다져온 페퍼저축은행의 강점이다. 2022년에는 디지털채널만 분석하는 디지털뱅킹 스코어카드를 새로 구축하기도 했다.

“신용평가기관에서 쌓아놓은 고객 데이터를 기반으로, 우리가 타깃팅한 고객 데이터 수십만 건을 분석해냅니다. 이를 활용해 자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거죠. 고객별로 대출 한도와 금리가 모두 다른 맞춤형 여수신상품이 가능한 배경입니다. 은행권 전체가 디지털화되면서 고객분석 툴이 대동소이해졌다지만, 20년 전부터 해당 업무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어요. 분석 능력과 스킬 면에서 압도적이라 자부합니다.”

인터넷전문은행 출범, 간편결제 애플리케이션 등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디지털뱅킹은 페퍼저축은행도 놓쳐서는 안 될 시장이다. 이미 지난 2019년 모바일뱅킹 애플리케이션 ‘페퍼루’를 선보인 장 대표는 지난해 새로운 모바일·디지털뱅킹 앱 ‘디지털페퍼’를 업그레이드해 내놓았다. 이전보다 상품군은 훨씬 다양해졌고, 처리 속도와 고객 편의성도 크게 높였다. 웬만한 핀테크 공룡들과 견주어도 경쟁력에서 전혀 뒤지지 않는다는 게 장 대표의 설명이다. 디지털채널 강화는 실적으로 이어졌다. 2019년 온라인 비대면 대출이 전체의 5%에도 미치지 못한 데 비해, 2023년 초 들어선 45% 이상으로 올라섰다. 대출상품(여신)뿐 아니라 새로운 수신 고객 확보도 비대면 모바일 채널 도입 이후 크게 늘고 있다.

“달라진 패러다임을 절감합니다. 얼마나 많은 지점을 보유했느냐가 은행 영업 경쟁력의 척도였던 시절이 있었어요. 지금은 어떤가요? 지점에 가서 계좌 하나 개설하려면 수십 분씩 앉아 도장을 찍어야 했는데, 모바일에선 몇 분 안에 해결됩니다. 금융사들에게 지점은 이제 영업거점이 아닌 비용으로 인식되고 있어요. 페퍼저축은행도 10년 전 작은 도전자로 시작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오프라인 지점은 전국에 5개뿐입니다. 지점 수, 직원 수, 창구 수는 이젠 의미 없어요.”

‘페퍼 그린 파이낸싱’이라 이름 붙인 녹색금융 강화도 저축은행은 물론 국내 금융사에선 보기 드문 ESG 경영 사례로 꼽힌다. 전기차·수소차 같은 친환경 자동차나 녹색건축물(녹색건축 그린등급이나 건축물 에너지효율등급 충족 건물) 등을 대상으로 한 금리우대 프로그램이다. 페퍼저축은행의 그린 파이낸싱 전략은 국내 금융권에서 첫 사례로, 각종 사회공헌과 ESG 관련 수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린 파이낸싱 관련 대출금액은 2022년 말 기준 1500억원 수준으로, 장 대표는 올해 2000억원 수준을 넘어설 것이라 전망했다.

여자배구단 창단 등 스포츠·ESG 경영 활발

장 대표는 페퍼저축은행 출범 이후 줄곧 다섯 가지 기업 목표를 향해 달려왔다고 말했다. 영업순익 1000억원 달성, 한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저축은행,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저축은행, 가장 디지털화된 은행, 직원들이 가장 행복한 은행이라는 슬로건이다. ‘가장 잘 알려진 저축은행’이란 비전에는 업계 후발 주자로서의 현실적 고민이 담겨 있다. 자산 규모 면에서 업계 대표 주자로 올라섰지만 대중적 인지도 면에선 아직 부족하다는 게 현실적 판단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2021년 창단한 여자배구단 AI페퍼스는 페퍼저축은행의 인지도를 단박에 올려놓은 일등 공신이다.

“디지털뱅킹에선 금융사에 대한 인지도와 이미지가 크게 작용합니다. 금리가 좋아도 신뢰도가 낮으면 고객 입장에선 거래를 망설일 수밖에 없죠. 그런 면에서 배구단은 완벽히 차별화된 마케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어요. 국내 여자배구 발전에 이바지하면서도 페퍼라는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으니 최고의 선택이었다는 생각입니다.”

장 대표는 프로배구단을 꾸리는 것 자체가 웬만한 기업 하나를 운영하는 것만큼 쉽지 않은 일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럼에도 효과는 분명하다. 현재 여자배구는 프로야구 다음으로 인기 있는 종목이다. 매 시즌 36경기가 TV에서 모두 생중계되고 재방송까지 이뤄진다. 최약체 신생팀이 이기기라도 하는 날엔 톱뉴스가 된다. 배구를 모르던 사람도 페퍼라는 이름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는 효과다. 금액으로 추산한 PR 효과가 1000억원 대에 이른다는 게 내부 평가다.

프로배구단 운영에는 매년 수십억 원 넘는 비용이 소요된다. 장 대표는 “단순한 스포츠마케팅 차원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고객과 함께 성장하는 은행처럼, 배구단 역시 신생팀이라는 약점을 극복하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의지다. 경기 관람을 원하는 직원과 가족들에게는 단체버스도 제공해 언제든 즐길 수 있게 배려했다. 그사이 회사를 대하는 직원들의 자부심과 로열티도 함께 높아졌다.

스포츠를 이용한 사회공헌은 장 대표가 꾸준히 실천하고 있는 주요 경영활동이다. 2021년에는 국내 민간기업 최초로 장애인 양궁 실업팀인 ‘부천 페퍼저축은행 장애인양궁팀’을 창단했다. 메인 스폰서 역할을 맡은 장애인양궁대회 개최도 준비 중이다. 이 밖에 KLPGA 선수 5명과 후원 협약을 체결하는 등 ‘가족과 건강(Family & Health)’이라는 가치를 잇는 스포츠마케팅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취임 이래 지켜온 장 대표 특유의 ‘사람 중심’ 경영이 스포츠 지원으로 이어진 셈이다.

“2019년 18만 명이었던 고객 수가 2023년 현재 퇴직연금 포함 200만 명이 됐습니다. 그사이 직원도 370명에서 560명으로 늘었죠. 직원 한 명 한 명, 고객 한 분 한 분이 행복한 은행이 되겠다는 다짐은 출범 초나 지금이나 변함없죠.”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사진 지미연 객원기자

202302호 (2023.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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