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터널, 폐교, 폐광산 등 세상의 후미진 곳에서 가장 신선한 작물을 재배하는 기업이 있다. 2017년 설립된 넥스트온은 스마트팜 중에서도 가장 고도화된 수직형 실내 농장을 구축해 작물 재배기간을 단축하고 단위면적당 생산효율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 맛과 영양도 놓치지 않았다. 빛, 온도, 습도 등 작물이 성장하기에 적합한 환경을 조성해 영양소가 풍부한 작물을 수확하고 있다. 2018년에는 충북 옥천에 세계 최대 규모 터널형 실내 농장을 마련해 업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역 지하 3층에는 막다른 곳에 자그마한 철문이 있다. 그 문을 열고 들어서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어두컴컴한 길에서 새하얀 빛을 향해 걸어가자 ‘NEXTON(넥스트온)’이란 간판과 함께 자그마한 사무실이 보였다. 그곳에 있는 또 다른 문을 열고 계단을 따라 한 층 올라가니 자줏빛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아래 각종 채소가 즐비했다. 지하철역은 쾨쾨한 냄새가 나기 마련이지만 이 공간만큼은 꽃집인 듯 신선한 공기를 내뿜고 있었다.86종에 이르는 잎채소와 허브 등을 수경재배하고 있는 인도어팜(Indoor Farm·실내 농장)의 모습이다. 10여 년간 유휴 공간으로 방치됐던 곳이 농업회사법인 넥스트온의 손을 거쳐 농장으로 재탄생됐다. 넥스트온은 햇빛 역할을 하는 특수 LED와 온습도, 바람을 제어하는 사물인터넷(IoT) 시스템, 유속·유량을 조절하는 자동 관개 시스템 등 인도어팜 인프라를 개발하는 종합 솔루션 스타트업이다. 자체 개발한 특수 LED는 서울반도체 사장을 지낸 최재빈 대표(52)의 주도하에 국내 광반도체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댄 결과물이다.넥스트온은 ‘세계 최초’와 ‘세계 최대’라는 타이틀을 모두 거머쥔 곳이다. 2017년 혜성처럼 등장해 이듬해 충북 옥천터널을 세계 최대 터널형 인도어팜으로 개조하면서 업계를 놀라게 했다. 2020년에는 세계 최초로 저온성 작물인 딸기를 인도어팜에서 양산해내는 데 성공했다. 남부터미널역 인도어팜은 2021년에 문을 열었다. 서울반도체 조명사업본부장(사장), 포스코LED(현 글로우원) 대표 등을 지낸 최 대표는 오래전부터 전통 농업에 주목했다. 유독 정보기술(IT) 도입이 더딘 전통 농업에서 사업 아이템을 발견한 것이다. 경작 면적은 나날이 줄어들고 경작 인구도 감소하는 상황에서 환경 의존도가 높은 전통 농업 방식으로는 생산 효율성을 높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하지만 아무리 내로라하는 LED 업체 수장일지라도 특수 LED를 활용한 인도어팜을 구현하기는 쉽지 않았다. 대다수 LED 업체는 TV나 모니터, 모바일기기, 자동차 내부에 들어가는 반도체 양산으로 수익을 창출한다. 그는 시장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외면받는 인도어팜 LED 개발에 집중하기 위해 넥스트온을 설립했다. 자칫 IT 업체처럼 보이는 사명 ‘넥스트온’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예측하기 힘든 환경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6차 산업으로 불리는 푸드테크 시대를 앞당기자는 의미입니다. 넥스트온은 LED를 비롯해 인도어팜에 들어가는 종합 솔루션을 제공합니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생산 일정을 예측하는 등 IT 업체와 다를 바가 없어요. 온습도, 바람, 수온 등 재배 환경에 따른 식물 성장 속도 등을 데이터화해 분석하고 있습니다.”
터널은 농사짓기에 최적의 장소
▎충북 옥천터널에 조성된 넥스트온의 인도어팜은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현재 넥스트온은 강원도 태백의 폐광산에 새로운 인도어팜을 구축하고 있다. / 사진:넥스트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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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후 최 대표는 가장 먼저 인도어팜을 설치할 장소 물색에 나섰다. 2017년 2월부터 폐터널, 탄광, 기찻길 등 다양한 유휴 공간을 직접 찾아가 작물 재배에 적합한지 검증 작업을 진행했다. 후보지는 폐터널 100여 개로 좁혀졌고 그해 12월 충북 옥천터널이 최종 낙점됐다. 이듬해 8월 세계 최대 터널형 인도어팜(약 6700㎡)이 문을 열었다. 폐터널을 택한 이유에 대해 최 대표는 “인도어팜의 최대 단점인 비용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고 말했다.“LED를 활용한 인도어팜은 설치뿐 아니라 운영상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찮습니다. 특수 LED를 설치하고 온습도와 이산화탄소 농도 등을 제어하는 공조 시설을 갖추려면 비닐하우스나 유리온실 같은 그린하우스와 비교해 3~5배가량 많은 비용이 듭니다. 하지만 폐터널을 이용하면 전기사용량을 3분의 1로 줄일 수 있죠. 터널은 거대한 열 저장소입니다. 연평균 15도를 유지하기 때문에 난방비와 냉방비를 줄일 수 있어요.”이에 더해 최 대표는 식물 재배기를 수직으로 쌓아 올렸다. 면적 대비 생산량을 높이기 위한 방안이었다. 그는 “인도어팜 중에서도 ‘인도어 버티컬팜(Indoor Vertical Farm·수직형 실내 농장)’에 속한다”며 “옥천터널의 경우 식물재배기를 14단으로 쌓아 재배면적을 획기적으로 늘렸다”고 설명했다. 남부터미널역 인도어팜(약 1400㎡)도 옥천터널처럼 연평균 15~20도를 유지한다. 식물재배기는 5단까지 쌓아 올렸다.최 대표는 넥스트온 인도어팜의 최대 장점으로 짧은 생육기간을 꼽았다. 최 대표는 “노지나 그린하우스에서 모종부터 수확까지 100일 정도 걸리는 엽채류가 이곳에서는 20일이면 충분하다”며 “특히 연간 4모작이 기본인 상추는 이곳에서 연간 17모작까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곳에는 현재 이자트릭스, 이자벨, 크리스피아노 등 다양한 엽채류와 허브류, 딸기, 바이오 소재용 작물들이 재배되고 있다. 고급 채소들은 대형마트를 비롯해 비행기 1등석 기내식과 호텔 식당, 샐러드 매장 등에 공급된다.작물의 빠른 생장 속도는 자체 개발한 특수 LED 덕분이다. 그는 “다른 스마트팜 업체들은 기존 LED를 사용하지만 넥스트온은 가시광선을 발산하는 광합성용 고효율 LED를 새롭게 개발했다”며 “특히 식물 종류에 따라 광합성에 필요한 빛 파장이 다르다는 점에 주목해 맞춤형 파장으로 식물을 재배하고 있다”고 말했다. 넥스트온 LED가 자줏빛을 띠는 이유는 광합성을 활발하게 일으키는 빛 파장만 사용하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여기에 IoT 기술을 더해 넥스트온만의 독보적인 경쟁력을 구축했다.“1년 내내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주는 공조 시스템을 독자적으로 개발해 IoT 기술에 접목했습니다. 온습도, 이산화탄소 농도, 기류, 수온 등 환경적 요소를 자동으로 제어할 수 있어 식물재배기를 몇 단씩 쌓아 올리는 스케일업이 가능했어요. 인도어 버티컬 팜 중에서도 대량생산이 가능한 것은 넥스트온의 차별화된 기술력 덕분입니다.”
재배 작물과 솔루션 모두 수출하는 글로벌기업중견기업 사장에서 스타트업 창업자로 변신에 성공한 최 대표는 “늘 위기”라며 하소연했다. 창업할 때만 해도 대중에게 생소했던 인도어팜이 이제는 미래 유망 산업으로 손꼽힌다. 그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나니 넘어야 할 산이 또 생겼다. 바로 경쟁자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그들 사이에서 우위에 서야 하는 게 숙제다”라며 “예상하지 못했던 기술적 난제들도 돌출하고 있다. 스타트업은 매일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고 토로했다.어떻게 극복해나갈지 물으니 “넘볼 수 없는 압도적인 경쟁력”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넥스트온의 단기 과제로 저온성 작물인 딸기의 대량생산을 꼽았다. 그는 “딸기는 가장 연약하고 바이러스에 취약한 작물이라 인도어팜에서 재배하기에 난도가 높다”며 “딸기는 제철인 1월이 지나면 맛이 없어져 상품성이 떨어지는데, 넥스트온 인도어팜에서는 계절에 상관없이 항상 최상의 퀄리티로 양산해내 해외로 수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5월 무렵 강원도 태백에 있는 폐광산에서 딸기 생산을 본격화할 방침이다.하지만 인도어팜의 낮은 가격경쟁력은 여전히 난제로 남아 있다. 최 대표는 “가장 큰 허들”이라고 솔직하게 답했다. 그러면서 기술 고도화, 유통과정 단축, 세척·살균·가공단계 제거 등을 통해 가격경쟁력을 높여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특히 남부터미널역 인도어팜을 기점으로 도심 곳곳에 있는 유휴 공간에 인도어팜을 설치해 갓 수확한 채소를 소비자에게 곧바로 전달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엽채류 유통의 D2C(Direct to Consumer)를 선점하겠다는 계획이다.남부터미널역 인도어팜은 올해 7월쯤 복합체험공간으로 거듭날 방침이다. 넥스트온은 남부터미널역 지하상가에서 약 5629㎡ 규모의 공간을 이용하고 있다. 최 대표는 이 공간에서 건강한 식문화를 알릴 수 있는 다양한 문화 콘텐트를 선보이겠다는 구상이다. 인도어팜에서 재배한 작물을 신선한 먹거리로 판매하는 카페, 마트, 식당 등을 조성하는 한편, 식문화 관련 전시와 강연, 교육 콘텐트를 마련해 낙후된 남부터미널역을 복합체험공간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버려진 터널과 지하철역 유휴 공간, 방치된 폐광산에 이어, 최 대표가 점찍어둔 다음 농장은 어디일까? 그는 “글로벌 시장”이라고 답했다.“넥스트온의 인도어 버티컬팜 종합 솔루션을 세계 각국에 이식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딸기만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솔루션 자체를 수출해 전 세계의 농업 수준을 업그레이드하고 싶습니다. 아울러 넥스트온 솔루션이 각국에서 잘 운영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관리할 계획입니다. 이와 함께, 식물 원료를 활용해 고부가가치 제품을 개발하고 바이오 소재용 작물도 연구해 나갈 방침입니다.”
※ 최재빈 넥스트온 대표는···1993년 노틸러스효성(현 효성TNS) 프로그래머2000년 서울반도체 대리2011년 서울반도체 조명사업본부 사장2016년 포스코LED(현 글로우원) 대표2017년 넥스트온 설립- 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사진 최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