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뷰 트레일(Grandview Trail)의 그랜드뷰 포인트(Grandview Point)에서 보는 그랜드캐니언의 장엄한 경관은 감탄을 자아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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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행기 파일럿이 “벨트를 단단히 매고 정신을 집중해서 좌우의 ‘공자의 문(Confucius Gate)’ 경치를 즐기세요!”라고 말한다. 그 순간 비행기가 굉음을 내며 거대한 돌기둥 사이를 통과한다. 입이 떡 벌어지는 풍광이 펼쳐지는 그랜드캐니언(Grand Canyon) 비행이다. 그야말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장관이 눈앞에 펼쳐졌다. 지구의 한쪽이 거대한 절벽으로 꺼져 내린 자연의 모습은 신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그랜드캐니언을 처음 찾았을 때는 비행기 편으로 도착했다. 이튿날 경비행기를 타고 웅장한 대협곡 사이 상공을 비행했다.오랜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저녁, 별 생각 없이 소파에 기대어 TV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헬리콥터가 사막 위를 날아가다 장면이 바뀌면서 거대한 절벽 위로 솟구쳐 올랐다. 절벽 바로 위에 날개를 돌리며 착륙한 헬리콥터에서 선글라스를 쓴 주인공이 007가방을 들고 내렸다. 드라마 속 배경도 바로 그랜드캐니언이었다. 달에서도 보인다는 천하의 자연경관이다. 드라마 [올인(All In)]을 보며 문득 멋진 생각이 스쳤다. 직접 운전을 하고 사막을 가로질러 그랜드캐니언을 찾겠다는 계획이었다.여행을 위해서 라스베이거스행 비행기에 올랐다. 라스베이거스에서 그랜드캐니언을 다녀오는 코스는 워낙 장거리인 데다 사막을 관통하는 경로라서 안전을 고려해 지프 체로키를 렌트했다.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출발해 주 경계인 후버댐(Hoover Dam)을 지나자 애리조나주에 들어섰다. 콜로라도강의 블랙 협곡을 막아 건설한 후버댐은 높이 221m, 길이 411m 규모다. 이 댐을 완공하면서 미드호(Lake Mead)가 만들어졌는데 길이 180㎞, 최고 깊이 162m에 달하는 거대 호수다. 이곳의 물은 미국 서부 지역의 주요 상수원이다.끝없이 펼쳐진 애리조나 황무지 사막에는 오고 가는 자동차도 거의 없었다. 커브 길도 없이 곧게 뻗은 도로에서 최고속도로 질주했다. 주변에 통신 중계소도 없는지 휴대폰도 먹통이다. ‘타이어에 문제라도 생기면 사막 한복판에서 연락 수단도 없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내심 들었다. 그랜드캐니언 도착을 1시간 정도 남겨둔 상황, 3월인데도 불구하고 갑자기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근처 주유소를 찾아 들어가 차량을 점검하고 필요한 물품도 사면서 챙이 근사한 카우보이모자도 하나 구매했다. 그랜드캐니언에 거의 도착할 즈음 숲을 지나는데 눈 속에서 이방인을 환영하듯 야생 여우가 나타났다. 스칠 듯 가까이 다가온 여우를 지나쳐 겨우 그랜드캐니언 빌리지에 도착했다.
상상이 현실이 된 과거의 미래
▎그랜드캐니언 근처 숲 눈 속에서 이방인을 환영하는 듯 야생 여우가 나타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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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장을 푼 다음 날, 기대했던 대협곡 관광에 나섰다. 그랜드뷰 트레일(Grandview Trail)의 그랜드뷰 포인트(Grandview Point)를 찾았는데, 안개와 구름이 낀 탓에 경관 일부만 보여 안타까웠다. 실망감이 더해지는 순간 멀리서 온 고생을 보상해주듯 하늘 한쪽이 맑아지며 거대하고 웅장한 대협곡이 눈앞에 펼쳐졌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관에 ‘와!’ 하는 감탄사를 연신 쏟아냈다. 직접 방문하여 눈으로 보지 않으면 그 감동을 그대로 전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애리조나주 고원지대를 흐르는 콜로라도강에 의해서 깎인 그랜드캐니언은 계곡 깊이가 1600m에 이르고 폭은 넓은 곳이 30㎞나 된다. 사막을 가로지르며 장거리 운전을 한 보람이 있었다. 평생에 꼭 한 번 방문할 곳으로 ‘강추’한다.다시금 시간이 흘러 콜로라도 덴버에서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로 가는 여객기를 탔다. 중간쯤 오자 기장이 “잠시 후 그랜드캐니언 상공을 비행한다”고 안내 방송을 했다. 눈 아래에 협곡이 나타나기 시작하자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본격적으로 대협곡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영상 모드로 전체를 찍고 또 줌을 사용해 가깝게 당겨서 그랜드캐니언 항공촬영(?)을 마쳤다. 지금도 가끔 이 영상을 보곤 하는데, 볼 때마다 너무도 멋진 경관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2000년을 얼마 앞둔 시점, 덴마크에서 출장 온 그런 포스그룹의 브랜딩 디렉터 킴 컬래스트롭 이사가 그림 한 장을 화면에 띄웠다. 1950년의 미국인들이 50년 후인 2000년의 생활상을 상상해 그린 그림이었다. 지금은 누구나 어디서든 사용하는 휴대전화와 평면TV가 등장하고, 고층건물 옥상 정류장에서 이륙하는 헬리콥터도 보였다. 지금은 신기할 것도 없는 사물과 주변 환경이 50년 전에는 오직 상상의 세계였을 뿐이다. 지나고 보면 그리도 뚜렷하게 보이는 과거에 비해 미래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상의 세계일 뿐이다.
▎멀리 온 고생을 보상해 주듯이 하늘 한쪽이 맑아지며 거대하고 웅장한 대협곡이 눈앞에 펼쳐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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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국가미래전략원 김병연 원장은 ‘글로벌 한국의 비전과 전략’이라는 강의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는 화두를 꺼냈다. “첫째, 우리나라가 얼마나 잘사는 나라인지를 잘 모르고, 둘째는 우리가 얼마나 위험한 곳에 사는지를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오늘날 우리가 처해 있는 ‘경제’와 ‘안보’ 상황에 관한 무척 함축적인 견해였다. 국가의 미래 전략에 관한 소중한 내용의 강의는 “50년 후 우리는 지금처럼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끝났다. 국가미래전략원 원장으로서 나라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예견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문득 두바이 프레임(Dubai Frame) 타워를 방문했을 때 기억이 떠오른다. 두바이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이 영상관에서 상영되고 있었다. 특히 두바이의 미래를 상상한 영상이 흥미로웠다. 물속에 집을 짓고 살고, 로봇 이웃이 왕래하고, 로켓을 타고 다른 위성으로 여행도 가는 내용이었다.얼마 전에는 1000만 관객을 넘긴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아바타: 물의 길]을 관람했다. 그 후 얼마 안돼 우연히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에서 카메론 감독의 강의를 들었다. 영화 테크놀로지에 관한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다. 그는 현재 가용한 기술을 응용해 활용하면서도, 이 세상에 없는 신기술을 개발해 접목하면서 영화를 제작한다고 했다. 계속 이어질 아바타 시리즈도 이미 구상해놓았고, 미래에 촬영할 4편의 일부를 아역배우들의 빠른 성장에 대비해 이미 촬영해두었다고 한다. 강의 제목인 ‘미래에서 온 영화’와 같이 카메론 감독은 미래를 상상하고 호기심을 자극하며 이미 앞날을 개척하고 준비하는 사람이었다.
스마트폰 세상이 된 지 불과 15년
▎지구의 한쪽이 거대한 절벽으로 꺼져 내린 대자연의 모습은 신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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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가 실제로 겪고 경험한 지난 과거 50년을 반추해본다. 고층 건물이 가득 들어선 지금 서울의 강남 땅은 50년 전엔 집 한 채도 없는 곳이었다. 집과 건물을 짓기 위해 토지 정리를 해놓은 거대한 평지였다. 1972년 여름, 한강 모래사장이 홍수에 잠기는 바람에 공수훈련을 하다 비행기에서 낙하산을 타고 내린 낙하지점(Drop Zone)이 한강 모래사장이 아닌 바로 지금의 강남 지역이었다. 50년 전에는 생각조차 못했는데, 지금의 강남은 마천루가 들어찬 거대 도시로 자리 잡았다.지금은 가정, 회사, 식당 등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면 컬러 TV도 필자가 어린 시절에는 상상조차 못 했던 물건이었다. 1966년 금성사(현 LG전자)가 처음 흑백 TV를 만들어 시험 방송했는데, 당시에는 텔레비전이 있는 가정집이 많지 않았다. 커다란 통처럼 생긴 브라운관 흑백 TV에 익숙해져 있다가 1978년 뉴욕에 주재원으로 나가게 됐다. 당시 미국은 이미 컬러 TV 방송을 하고 있었다. 귀국할 때 컬러 TV를 가져왔는데, 그때도 국내에선 흑백 방송뿐이었다. 미8군에서 하는 AFKN 방송을 가끔 컬러로 보곤 했다.우리나라에서 컬러 TV 방송은 1980년 12월 1일 KBS1 TV가 첫 시작이었다. 1980년 12월 22일부터 KBS2 TV와 MBC도 뒤를 이었다. 완전한 컬러 TV 방송은 1981년 1월 1일부터 시작됐다. 뚱뚱하고 커다란 텔레비전이 지금처럼 얇고 슬림한 형태로, 더군다나 한 집에 몇 대씩 보유하고 채널 수도 수백 개가 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는 50년 전에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지금은 누구나 지니고 다니는 휴대폰도 상상조차 할 수 없던 물건이기는 마찬가지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전화기가 있는 가정이 별로 없었다. 너무 비싸서 아무 집이나 갖지 못했던 백색·청색 전화 서비스 시대도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웃음이 나온다. 공중전화를 이용하기 위해 미리 동전을 준비해 부스 앞에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던 장면이 자연스러운 시대였다. 전화기도 동그란 다이얼을 번호에 맞추어 오른쪽으로 차르륵 소리를 내며 돌려야 했다. 처음 회사 생활을 시작했을 때, 무역을 위해 국제전화를 하려면 전화국에 신청을 하고 1~2시간씩 기다려야만 통화를 할 수 있었다. 뉴욕 현지 법인장을 하던 1980년대 중반에야 카폰이 출시되었고, 미국에서 자동차에 전화기를 고정하고 긴 안테나를 차량 뒤에 장착한 뒤에야 장거리 출장 때도 불편함이 없이 통화를 할 수 있게 됐다.귀국 후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중반에는 삐삐라고 불리던 무선호출기를 착용하고 다녔고, 카폰을 차에 장착해야 이동통신이 가능했다. 이후 아날로그 휴대폰을 거쳐서 지금은 남녀노소 누구나 디지털 스마트폰을 지니고 다닌다. 통신은 기본이고 엄청난 컴퓨터 기능에 오디오·비디오 기능까지 더해져 수많은 앱이 가동된다. 1세대 아이폰은 애플의 공동 창립자 스티브 잡스가 2007년 1월 9일 발표했고, 제품은 그해 6월 29일 출시됐다. 겨우 15년 정도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전 인류가 스마트폰에 중독돼버렸다. 요술방망이 같은 휴대폰 없이는 잠깐이라도 못 사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모두가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변화다.
과거보다 미래를 바라보는 관점
▎그랜드캐니언의 단층은 유구한 역사의 시간 동안 쌓여온 자연의 변화를 그대로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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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실제로 경험한 과거 이야기는 자동차, 비행기, 건축 방식, 우주선 개발 등 수없이 많다. 경험적이고 사실적인 역사를 기반으로 이제는 미래에 대한 상상을 어떻게 현실화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미래를 현실로 앞당기는 속도 경쟁에서 이긴 개인, 기업, 국가만이 살아남을 수 있고 선두 자리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휴렛팩커드 본사 로비에는 ‘Future belongs to the fast(미래는 속도가 결정한다)’라는 표어가 전광판에서 쉴 새 없이 돌아간다. 지금의 디지털 시대는 모든 것을 속도가 결정한다. 우리의 미래는 속도감을 갖고 ‘내일 할 일을 어제 하라!’는 개념으로 관리해야 한다.‘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속담으로는 디지털·글로벌 시대의 발전과 변화 속도에 발맞출 수 없다. 미래에 필요하고 해야 할 일을 지금 시점보다도 더 전인 과거에 준비해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좋은 예가 있다. 1973년과 1979년 두 차례에 걸친 석유 공급 부족 및 가격 폭등으로 세계경제가 큰 혼란과 어려움을 겪은 석유 위기(oil crisis)가 그것이다. 당시 우리나라와 덴마크는 대부분의 원유를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다. 약 50년이 지난 지금 덴마크는 풍력시스템을 발전시켰고 베스타스(Vestas)라는 세계 최대의 풍력시스템 기업을 선두로 해 가까운 장래에 에너지를 거의 자급자족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에너지를 거의 전량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덴마크의 리더들이 ‘내일 할 일을 어제 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미래에 대한 준비를 어제 해야 한다는 개념으로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한 예로 30~50년 후의 미래에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영어, 중국어, 일어, 독일어, 프랑스어 중에서 3~4개 외국어를 자유로이 할 수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렇게만 된다면 탁월한 국제 정보 역량을 통해 대단한 국력 신장을 이룰 것이다. 전 국민의 외국어 소통 능력은 글로벌 무대에서 영향력 있는 협상력과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한 필수 요건이다. 바로 지금 어린아이들의 어학 역량을 30년 이상 미래를 내다보면서 교육한다면, 그것이 바로 ‘내일 할 일을 어제 하는 실천’이 될 것이다.사회적으로 작금의 현상을 보면 미래보다는 과거에 대한 토론과 비판에 더 많은 비중으로 매몰돼 있는 것 같다. 이제 방향을 바꾸어 역사에 대한 학습과 냉철한 분석을 토대로 멋진 미래를 개척하는 방향으로 사회적 관점을 승화해야 한다. ‘내일 할 일을 어제 하라’는 개념으로 더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미래에 무게를 더하자. 그리하여 미래를 준비하고 꿈을 실현해나가는, 희망찬 사회와 나라를 이루자. 내일 할 일을 어제 하자!
※ 이강호 회장은… PMG, 프런티어 코리아 회장. 덴마크에서 창립한 세계 최대 펌프제조기업 그런포스의 한국법인 CEO 등 37년간 글로벌기업의 CEO로 활동해왔다. 2014년 PI 인성경영 및 HR 컨설팅 회사인 PMG를 창립했다. 연세대학교와 동국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고, 다수 기업체, 2세 경영자 및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경영과 리더십 코칭을 하고 있다. 은탑산업훈장과 덴마크왕실훈장을 수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