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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부 KCGI 대표 

한국형 지배구조 혁신의 조건 

장진원 기자
“고인 물은 썩고, 견제받지 못한 권력은 쉽게 부패한다.” 우리 기업의 후진적 지배구조를 지적하는 강성부 KCGI 대표의 일갈이다. 한국 자본시장의 메기가 되겠다는 그의 다짐은 잘나가던 애널리스트 시절이나 행동주의 펀드의 수장인 지금이나 변함없다.

“사모펀드(PE)라는 게 뭡니까. 지배구조 개선이니 뭐니 해도, 결국 돈을 댄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안겨줘야 하지 않겠어요? 기업 경쟁력 제고는 그럴듯한 명분일 뿐, 실상은 투자수익을 극대화한 후 빠져나가는 게 목적이겠죠.”

사석에서 만난 한 기업 관계자는 ‘행동주의 펀드’라는 말을 꺼내자 기다렸다는 듯 푸념부터 쏟아냈다. 그가 다니는 회사는 실제로 최근 한 행동주의 펀드의 타깃이 돼 뉴스에 오르내리는 중이다.

“사모든 공모든 투자자에게 수익을 돌려주는 게 펀드의 기본 아닌가요? 당연한 걸 욕할 순 없죠. 그 과정에서 지배구조가 건전해지고 재무구조도 탄탄해진다면 일거양득이고요. 적대적 인수합병(M&A)이 아니라면, 수익을 내면서 기업경쟁력까지 강화하는 행동주의 펀드를 마냥 부정적으로 볼 건 아닌 거 같아요.”

투자에 열심인 한 개인투자자의 말이다. 실제로 이 투자자는 앞서 소개한 행동주의 펀드가 관여한 기업의 주식을 보유 중이다. “시스템반도체 산업이 유망해 보여 ○○사의 주식을 샀다”는 이 개미투자자는 “행동주의 펀드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 주가가 오르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같은 기업과 투자를 놓고 극명하게 엇갈리는 시선은 한국 자본시장에서 행동주의(Activism) 펀드가 갖는 양면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해외에서도 행동주의 펀드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유독 국내에선 이들을 단기 차익 실현만 노리는 헤지펀드쯤이라 여기며 눈 흘기는 이가 많다. 기업사냥꾼으로 유명한 칼 아이칸의 KT&G(2006년) 공격,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의 현대자동차 지분 매입(2018년) 등으로 인한 학습효과가 컸기 때문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비판받던 한국 기업 특유의 낮은 배당성향과 낡은 지배구조는 해외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 앞에 ‘국부 유출’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그 지위를 유지해갔다.

해외 행동주의 펀드의 ‘먹튀’가 잦아들 무렵인 2018년 말, 국내 자본시장을 뒤흔든 역대급 이슈가 터졌다. 토종 행동주의 펀드를 표방한 KCGI의 등장이다. 그해 11월 14일 KCGI는 자사 특수목적법인(SPC)인 그레이스홀딩스가 한진칼의 지분 9%를 보유 중이라고 공시했다. 이로써 KCGI는 단숨에 대한항공과 한진 등을 거느린 지주사 한진칼의 2대주주 자리를 꿰찼다.

한국 자본시장 뒤흔든 토종 펀드의 반란

당시 한진그룹은 ‘땅콩회항’ 등 지배주주 일가의 갑질과 전횡으로 기업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였다. KCGI는 지분 취득 직후인 2019년 1월 들어 ‘한진그룹의 신뢰회복을 위한 프로그램 5개년 계획’을 공개하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지배구조 개선, 기업가치 제고, 고객 만족도 개선, 사회적 신뢰 제고 등을 내걸며 기존 지배주주를 압박했다. 이 같은 요구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KCGI는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지배구조위원회’ 설치,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된 ‘임원추천위원회’ 도입, 유휴자산 매각 등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 등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그간 단기 차익 실현에 급급했던 해외 헤지펀드의 공격에 익숙했던 금융투자업계는 토종 사모펀드 최초의 행동주의 투자에 놀라움 반, 의심 반의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업계의 시선과 관심이 펀드를 이끄는 수장에게 쏠린 건 당연했다. 어느새 투자자들은 KCGI라는 낯선 이름 대신 ‘강성부 펀드’라는 닉네임에 익숙해졌다. 국내 증권가를 대표하던 애널리스트가 사모펀드 대표로 변신해 행동주의 투자에 나섰다는 사실도, 그가 애널리스트 시절부터 기업의 지배구조에 천착해왔다는 이력도 다시 한번 화제가 됐다.

한진칼 이후로도 강성부 펀드는 대림과 이노와이어리스, 오스템임플란트 등에 투자해 두 자릿수 수익률을 기록하며 엑시트(exit)에 성공했다. LIG넥스원, 윈스 등도 KCGI의 포트폴리오에 담긴 기업들이다. 올해 안에 금융당국의 적격성 심사를 마치는 대로 메리츠자산운용을 인수해 공모펀드 시장에도 뛰어들 예정이다. 한국 자본시장에서 강성부라는 이름 석 자는 곧 주주행동주의, 기업 지배구조 개편과 동의어가 됐다.

증권가에서 이름을 날리던 애널리스트가 왜 토종 행동주의 펀드 수장으로 변신했을까. 강 대표는 “증권사에서 일하던 때부터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진짜 이유가 뭔지 탐색했다”며 “한국 기업의 낙후된 지배구조를 깨뜨리겠다는 신념이 일생의 화두가 됐다”고 밝혔다. 그의 이력을 조금 더 따라가보자.

“연세대에서 경제학을, 서울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재무관리 석사를 마쳤습니다. IMF 외환위기 직격탄을 맞은 91학번들이 으레 그랬듯 대학원으로 도피한 거죠. 서울대 투자 동아리인 스믹(SMIC) 초기 멤버로 함께하면서 증시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기업과 투자를 더 빨리 알려면 증권사 리서치센터에 지원해 애널리스트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운 좋게 대우증권에 입사했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오래지만, 당시 대우증권 리서치센터는 애널리스트들의 사관학교로 불릴 만큼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춘 명문 하우스로 꼽혔다. 주식투자와 업종 분석이 전부인 줄 알았던 초짜 애널리스트에게 회사는 크레디트(credit) 분석이라는 생소한 롤을 맡겼다.

“한마디로 기업의 부도 확률을 계산하는 게 크레디트 애널리스트의 역할입니다. 재무제표 같은 정량적 지표와 기업탐방 등 정성적 지표를 종합해 기업경쟁력을 평가하는 거죠. 업종별·사업군별로 천차만별인 주가수익 비율(PER)에 비해, 채권 평가는 부도율이라는 동일한 잣대가 적용돼서 매력적이었어요. 자연스럽게 기업 펀더멘털을 파악하고 신용평가를 공부하게 됐죠.”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진짜 이유


경력이 쌓일수록 크레디트 애널리스트로서의 명성도 높아졌다. 언론사가 선정하는 베스트 애널리스트 평가 상단에는 항상 강성부라는 이름이 빠지지 않았다. 애널리스트가 ‘증권가의 꽃’으로 불렸던 호시절 덕에 연봉도 최고 수준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정확한 기업 정보에 대한 갈증도 커졌다. 국내 신용평가사들이 펴낸 보고서들이 성에 차지 않기는 매한가지였다.

“30페이지 넘는 보고서 중 29페이지에 안 좋다고 분석해놨다가, 마지막 페이지에서 AA를 매기는 거예요. 왜? 삼성그룹 계열사니까. 유사시에 그룹의 지원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렇게 어영부영 넘어가는 보고서가 숱했습니다. 그룹 전체 평가는 물론이고, 계열사 하나하나를 파고들었어요. 지금은 공정위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볼 수 있는 기업집단 지배구조도 조차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없으면 내가 그린다’는 오기가 발동했다. 답답한 마음에 직접 나서, 2005년 국내 100대 그룹의 지배구조도를 완성했다. 내친김에 이듬해부터 매년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를 분석한 책을 펴냈다. 2013년부터는 글로벌 200대 그룹의 지배구조도까지 완성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의 지배구조 현황과 변화 시나리오, 산업구조와 기업별 이슈를 깊이 있게 담아낸 책은 투자업계 종사자와 경제 기자들의 필독서가 됐다. 크레디트 애널리스트가 고육지책으로 시작한 일은 어느덧 ‘지배구조 전문가’ 강성부라는 이름을 업계에 더 깊이 각인했다.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를 파면 팔수록 또 다른 문제의식이 도드라졌다.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였다. ‘질 좋은 제품, 탄탄한 영업력, 이익도 매년 느는데 주가는 왜 이 모양일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의문은 2012년 뜻하지 않은 기회로 답을 찾았다.

“그해에 북한 김정일이 사망했습니다. 주가가 폭락하는 듯하더니 3일 만에 바로 원상회복하더군요. 시장이 생각하는 것처럼 지정학적 리스크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그럼 뭘까. 해외투자자와 만나 세미나에 참석하고 국내외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결국 문제는 지배구조였습니다. 터무니없이 낮은 배당, 자사주 매입과 소각이 전무할 만큼 주주환원의 불모지라는 게 한국 자본시장의 현실이었어요.”

뼈를 깎는 혁신으로 글로벌기업 반열에 올라섰지만, 이들의 미래를 바라보는 시장의 평가는 냉혹하기 짝이 없었다. 기업의 미래 가치로 평가받는 주가가 그 근거다. 미국에 비해 주가순자산비율(PBR)은 3.5분의 1, PER은 1.6분의 1 수준으로 저평가되고, 코스피지수는 20년째 ‘박스피’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계열사 전체 지분의 평균 3%도 갖지 못한 ‘오너’ 대주주들은 경영권 방어라는 명목 아래 일감 몰아주기, 인위적 합병·분할, 주가 하락을 통한 지분율 확대에만 혈안이 돼 있었다. 주가 하락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개미들의 몫이었고, 그사이 한국 주식은 장기투자 대상이 아니라는 외국인의 평가만 남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문제의식이 안 생기는 게 이상할 지경이었죠. 낙후된 지배구조라는 고질병을 고치고 싶다, 관련 펀드를 만들어 시장에 균열을 내고 싶다는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베스트 애널리스트 다음은 리서치센터장일 텐데, 그래봤자 후배들을 다독이거나 반대로 열심히 하라고 갈구는 그림밖에 떠오르지 않더군요. 결국 15년 애널리스트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뉴턴의 운동 제3법칙 ‘작용-반작용’을 인용한 선배의 말도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로켓이 연료를 버리지 않고 어떻게 우주로 가겠나, 가진 걸 버려야 뭔가를 이뤄낼 수 있다”는 조언이었다. 업계 최고 연봉에 취해선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때마침 신설 사모펀드(PEF)에서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제안받았다. 연봉이 3분의 1이 깎여 나갔지만 결국 로켓에 올라타기로 마음먹었다.

베스트 애널리스트에서 행동주의 펀드 수장으로

2015년 4월, 채권분석팀장 대신 대표이사 직함이 새겨진 새 명함을 집어 들었다. LG그룹 방계 인사가 오너로 있던 LK투자파트너스에서 전문경영인으로 새 출발에 나섰다. 15년간 애널리스트로 일해오면서 한 번도 놓지 않았던 지배구조 이슈, 그리고 그동안 얻은 지식과 이론을 현실에 적용해볼 천금 같은 기회였다.

“눈에 보이는 지배구조뿐만 아니라 재벌 간 혼인관계 등 정성적인 부분까지 공부해가며 인사이트를 쌓았습니다. 나중에는 해당 그룹사에서 지배구조 개편이 필요하다며 찾아와 조언을 구할 정도였어요. IB 관련 딜을 맡길 테니 컨설팅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죠. 그러면서 소위 ‘회장님’들과 친밀한 관계를 쌓을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이 제 휴먼캐피털이 됐죠. 소셜·휴먼캐피털이 파이낸스 캐피털보다 중요하다는 걸 갈수록 더 절실하게 느낍니다.”

최고 의사결정권을 가진 이들과 맺은 인연은 무엇보다 펀드레이징에 큰 도움을 줬다. LK 시절 첫 투자처였던 요진건설산업 지분 투자도 평소 탄탄히 쌓아온 인연들이 발 벗고 나서 성사될 수 있었다. 2014년 요진건설 공동 창업자인 정지국 회장이 갑자기 별세하자 900억원가량의 상속세 납부가 수면 위로 떠올랐고, 강 대표가 백기사로 나서 지분을 인수했다. 2년 뒤에는 공동 창업자인 최준명 회장이 LK의 지분을 재매입했다. 기업은 경영권을 유지했고, 투자사(LK)는 투자원금의 3배 가까이를 회수해 투자자들에게 돌려줬다. 승계와 지배구조 문제로 위기에 처한 기업과 투자자 사이의 윈윈구조가 가능함을 업계와 스스로에게 증명해냈다.

강 대표는 이후로도 LK에서 현대시멘트, 대원, 풀잎채, 극동유화 등에 투자해 높은 수익률을 내고 엑시트하는 데 성공했다.

2018년 7월 1일, 강 대표는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KCGI(Korea Corporate Governance Improvement) 창업이다. 사명에서 드러나듯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기업가치 증대를 처음부터 사업 목표로 못 박았다. 요진건설산업 투자 당시 강 대표의 철학에 공감한 ‘회장님들’이 이번에도 흔쾌히 투자자(LP)로 나섰다. 그렇게 1550억원에 이르는 실탄을 확보했다.

“자본금 5억원 남짓 되는 돈으로 독립에 나섰으니 두려움도 컸습니다. 투자 약속을 받았지만, 돈이야 진짜 받아야 받는 거 아니겠어요. 10명 남짓한 LP가 초기 투자금을 댔는데, 중국계 자금이라느니 심지어 대통령 비자금이 섞여 있다는 억측까지 나오더군요. 어쨌든 첫 투자처로 한진칼을 정하고 8.3% 지분 확보를 세상에 알렸습니다.”

기존 가치 부숴 잠재된 가치 찾는다


파장은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강성부가 누구인지, 갑질 비난이 거셌던 한진그룹 오너들의 경영권이 넘어가는 건 아닌지, 토종 행동주의 펀드의 느닷없는 등장에 연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보도가 쏟아졌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저 역시 놀라고 두려웠다”는 게 강 대표의 회고다.

“지분을 더 확보할 예정인데, 언론에 자꾸 제 말이 노출되면 시장 교란이 일어나지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가격에 영향을 주는 발언으로 법적 송사에 휘말리지나 않을까 무섭기도 했고요. 심지어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뉴스룸] 출연도 고사할 지경이었죠. 행동주의 펀드는 시장과의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지금 돌이키면 쓸데없는 걱정이었어요. 요즘엔 오히려 소통 기회를 더 넓히려고 노력합니다.”

한진칼은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해 투자 대상 회사의 ESG를 개선하고, 이것이 기업가치 상승으로 이어지게 한다는 KCGI의 투자 철학을 증명하려는 첫 시도였다. 단순한 가치투자를 넘어선 ‘밸류 크래킹(Value Cracking)’ 전략이다.

“농부가 씨 뿌린 후 가만히 있는 게 아니죠. 피도 뽑고 약도 치지 않습니까. 좋은 기업이지만 이상한 대주주를 만나 나쁜 주식이 되어버린 투자처를 발굴한 후, 회사의 시어머니가 되는 거예요. 기존 가치를 부수고 숨겨진 가치를 찾아내 극대화하는 게 KCGI 행동주의 투자의 기본입니다.”

강 대표는 2022년 3월 보유 중이던 한진칼 주식 1100만여 주를 주당 6만원에 우호 주주에게 팔고 엑시트했다. 약 5000억원의 투자금으로 거둔 내부수익률(IRR)은 18.2%에 달한다. 그사이 오너 갑질의 대명사로 전락했던 한진칼의 지배구조는 기존 대주주 외에도 산업은행(KDB), 델타항공, 호반건설 등 주요주주 체제로 전환됐다. 오너가의 독단을 견제할 감시 체제가 자리 잡게 된 셈이다. 유휴자산 매각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도 단행됐다. 2019년 말 1487%에 달했던 한진칼의 부채비율은 2022년 9월 현재 257% 수준으로 급감하며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확보했다.

한진그룹 신뢰회복을 위한 프로그램 5개년 계획 제안, 불필요한 단기차입금 조달에 대한 주주대표소송 제기,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주주연합 결성,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대한 신주발행금지가처분 제기 등은 KCGI가 등장하기 전까지 국내 사모펀드에선 볼 수 없었던 적극적 관여이자 ‘행동’이었다.

“해외에선 ESGGG라고 표현할 만큼 지배구조를 강조합니다. E(환경)와 S(소셜)를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선 G, 즉 거번넌스가 제대로 작동해야 해요. 우리는 스스로를 단순 투자자자 아니라 회사와 경영의 동반자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기업인데 주가가 엉망이다? 문제가 뭘까요? 극단적인 경우겠지만, 지배주주가 문제면 주인을 바꿔야 합니다. 하지만 대개는 성장 동력에 대한 아이디어 제공, 사업부 재편, 유휴자산 매각 등이 KCGI의 투자전략이죠. 10개를 던져서 하나라도 먹히면 기업가치가 오르지 않겠어요. 그게 밸류 크래킹이죠. 잠재된 가치를 분출하게 만드는 게 행동주의 펀드입니다.”

기후변화에서 찾은 새로운 기회

꽁꽁 언 얼음을 깨뜨리는 ‘행동파’ 이미지가 강하지만, LK 시절부터 지금까지 꾸린 15개 펀드 중 실제 액티비즘을 추구한 펀드는 4개 남짓이다. 나머지 11개 펀드는 행동주의와 거리가 멀다. 오히려 기존 대주주와 우호적인 관계로 윈윈한 사례도 많다. 지주사 전환과 사업구조 개편을 함께 이끌어낸 대림, 바이아웃 투자로 지배구조 개선과 승계를 지원한 이노와이어리스 등이 대표적이다. 강 대표는 “지배구조 개선으로 기업가치를 올리는 게 목적이지만, 기본적으로 가치투자, 즉 투자 기업의 지속가능 경영을 꾀하는 것이 KCGI의 투자 ”라고 강조했다.

지난 3월 30일 지분 7.05%를 확보한 DB하이텍 투자에 대해서도 강 대표는 “기본적으로는 반도체산업의 턴어라운드를 예상한 가치투자”라고 밝혔다. DB하이텍은 지난해 매출 1조6753억원, 영업이익 7687억원을 기록해 영업이익률이 46%에 달한다. 제조업체 이익률로는 보기 드문 호실적이다. 10여 년의 적자를 감내한 끝에 파운드리 반도체 호황을 딛고 세계적인 생산시설로 거듭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주가는 지지부진이다. 이에 대해 KCGI는 독립적 이사회 구성과 내부통제 강화를 통한 경영 투명성, 효율성 제고를 요구 중이다. DB하이텍 경영진과의 만남이 계속 불발되자 감사위원인 사외이사 1인 지명권 보장, 해당 이사를 이사회 내 위원으로 참여, 자사주 매입 후 소각 의무화 등을 요구하는 주주서한도 공개했다. 특히 김준기 창업 회장의 퇴사와 김남호 회장의 책임 경영이 필요하다는 게 KCGI의 입장이다.

“전력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 겁니다. 회사도 탄탄하죠. 사재 털어서 파운드리에 투자하고 살리려 애썼던 오너 경영인들의 공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밸류에이션으로는 힘들어요. 상장사임에도 지배주주 일가가 개인회사처럼 운영해왔기 때문입니다. 주주들과 소통 없이 이뤄진 물적분할 결정이 대표적이죠. 누군가는 감시해야 합니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투자수익 창출이라는 꿈을 실현해온 지난 5년. 강 대표는 “올해가 KCGI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공모펀드 시장 진출과 기후변화 투자 확대에 나서면서다. 먼저 메리츠자산운용을 인수해 사명도 KCGI자산운용으로 바꿀 예정이다. 금융당국의 적격성 심사만 남겨놓은 상황이다.

“KCGI 창업 후 5년간 워런 버핏의 수익률을 달성했어요. 우리의 투자 경험과 수익을 개인투자자들에게 돌려주고 싶습니다. 돈 있는 기관이나 대기업만 돈 버는 게 아니라 개미들의 노후를 윤택하게 하고 싶어요. 30종목 이상 담는 소극적 투자 말고, 주주서한 같은 적극적인 관여를 통해 우리의 투자 노하우를 공모펀드에서도 실현해낼 겁니다.”

기후변화 관련 투자는 강 대표가 생각하는 KCGI의 두 번째 챕터다. 메리츠자산운용 인수가 마무리되는 대로 사명을 아예 기존의 ‘Korea Corporate Governance Improvement’에서 ‘Korea Climate & Governance Improvement’로 바꾸기로 했다. 이미 블라인드펀드 조성을 위한 제안서를 연기금 등 기관에 돌리고 있다. 향후 기후변화 투자에서 얻는 수익의 5~10%를 기후변화 관련 단체에 기부할 계획이다.

지배구조에 천착했던 애널리스트가 행동주의 펀드 수장으로, 다시 자산운용사 인수와 기후변화 투자 리더로 변신하기까지 20여 년이 지났다. 한국 기업의 고질병인 낡은 지배구조를 혁신하는 에반젤리스트라는 평가 이면에는 단기 수익 실현에 급급한 ‘먹튀’ 같은 극단적인 이미지도 상존한다. 강 대표 스스로는 어떤 평가와 이미지로 기억되기를 원하는지 궁금했다.

“사람이 하는 모든 일에는 공과가 있어요. 당장 내 캠페인을 싫어하는 기업도 있고, 부정적인 언론도 있습니다. 다 이해합니다. 다만 작은 부분이라도 사회에 기여한 게 있다면 좋겠지요. 사실 행동주의 펀드라는 말보다 기업지배구조 펀드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또 하나, 펀드매니저로서 수익률이 ‘개판’이었다는 평가는 절대 듣고 싶지 않아요. 펀드매니저의 역량은 결국 수익률이라는 숫자에서 나오니까요.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기업가치를 올리겠다는 목적을 달성했다면 ‘먹튀’ 소리를 듣더라도 빠져나와야 합니다. ‘못먹튀’가 오히려 불명예죠.”

[박스기사] 강성부의 진단 | “자사주 소각만으로 코스피 40% 상승”


코스피는 흔히 ‘박스피’로 불린다. 박스권에 갇혀 상승도 하락도 없는 무미건조한 시장이라는 의미다. 이 같은 오명은 수치로 확인된다.

2002~2020년 사이 한국의 연평균 GDP 성장률은 5.5%, 미국은 3.7%를 기록했다. 반면 같은 기간 코스피가 7.3%, 코스닥은 0.5%의 연평균 수익률을 기록한 데 비해 미국 S&P500은 7.8%, 나스닥은 9.2%의 연평균수익률을 올렸다.

강성부 대표는 유독 높은 한국의 경영권 프리미엄과 낮은 배당성향을 지적하며 특히 자사주 소각을 통한 주가 상승 효과를 강조했다. 실제로 S&P500의 주주수익률을 살펴보면 주가상승분과 더불어 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 효과가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상장기업의 올 3월 기준 미소각 자사주 규모는 약 34억 주, 74조원에 달한다. 한국은 미국과 달리 자사주 소각 의무가 없고, 자사주를 지배주주의 지배력 확대에 남용하는 경우가 많다. 강 대표는 “3년 내 자사주 소각만으로 코스피지수 40% 상승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 _ 사진 최영재 기자

202307호 (2023.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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