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Cover

Home>포브스>On the Cover

김준섭 피엔티 대표 

혼을 담은 제조 혁신 20년 

노유선 기자
2차전지 붐 속 피엔티가 주목받고 있다. 2차전지 전극 공정에서 독보적 기술력을 갖춘 장비 기업 피엔티는 세계시장에서 선두 주자인 히라노를 제쳤다. 피엔티 창업주이자 CEO인 김준섭 대표의 뚝심이 거둔 결과다. 한동안 언론 노출이 없었던 김 대표를 포브스코리아가 만났다.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그는 7남매 중 농사를 가장 잘 지었다. 성실한 성격에 손재주까지 있었던 그에게 부친은 농업고등학교 진학을 권했다. 하지만 시골, 논밭보다 도시, 공장에 더욱 끌렸던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친의 뜻을 꺾었다. 농업고등학교 대신 공업고등학교에 들어가 엔지니어의 꿈을 키웠다. 그의 선택은 ‘신의 한 수’였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 농산물 대신 수많은 2차전지 장비와 디스플레이용 특수필름 장비를 만들어냈다. 동종업계에서 국내 최고 기술력을 가진 피엔티(PNT·People & Technology)의 수장인 김준섭(59) 대표의 이야기다.

2차전지가 미래 먹거리로 각광받자 2차전지를 만들어내는 장비업계에도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한 번 쓰고 버리는 1차전지와 달리 2차전지는 충전해서 다시 쓸 수 있어 에너지 고갈 문제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2차전지는 각종 모바일기기뿐 아니라 전기자동차와 ESS(에너지저장장치·Energy Storage System) 등에 적용돼 활용도가 높다. 이러한 시대 변화에 따라 2차전지 장비업체 피엔티는 국내 선두 주자로서 글로벌기업으로 도약을 꿈꾸고 있다.

2003년 12월 설립된 피엔티는 지난 20년간 국내외 투자자의 관심 밖에 있었다. 하지만 2021년 8월 13일 3.84%에 불과했던 외국인 지분율은 2년 뒤인 지난 8월 14일 17.37%까지 올랐다. 이날 피엔티 시가총액은 1조6010억원으로 코스닥시장 29위에 자리했다. 지난해 실적도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2022년 연간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4178억원, 777억원이며 영업이익률은 18.6%에 달한다. 올 상반기 달성한 수주금액 1조7428억원 역시 창업 이래 최고 기록이다.

2차전지와 소재 등 2개 사업 부문을 영위하는 피엔티의 캐시카우는 단연 2차전지사업부다. 지난해 전체 매출의 75%가량이 여기서 나왔다. 2차전지사업부는 2차전지의 핵심 요소인 음극재·분리막 생산 장비를 담당하며, 소재사업부는 전지박, 광학필름, 디스플레이용 연성회로기판(두께가 얇은 절연 필름 위에 동박을 붙인 회로기판)의 생산 장비를 다룬다. 2009년 피엔티는 롤투롤(Roll-to-Roll·모재를 회전롤에 감으면서 특수 물질을 도포) 공법 국산화에 성공하며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를 계기로 김 대표는 피엔티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전면 개편했다. 창업 초반 소재사업부 위주로 운영되던 피엔티의 무게중심이 2차전지 장비로 옮겨가는 시점이었다. 2차전지 생산공정은 크게 △전극 공정(전극판의 에너지밀도를 높이는 공정), △조립 공정(전극판과 원재료를 조립해 2차전지를 만드는 공정), △활성화 공정(충전과 방전을 반복해 2차전지를 작동하는 공정)으로 나뉘는데, 피엔티는 이 중 가장 난도가 높은 전극 공정을 적극 공략했다.

외산 의존도가 높은 장비 불모지 한국에서 피엔티가 내민 도전장은 결코 무모하지 않았다. 피엔티는 2010년 중반부터 주요 경쟁사를 제치고 국내시장 점유율 1위를 굳건히 지켜왔으며 경쟁업체와의 격차도 크게 벌렸다. 지난해 피엔티의 매출은 국내 2위 업체의 두 배 수준이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일본이 주도하던 글로벌 장비 시장 판도도 흔들었다. 한때 글로벌 1위였던 일본 히라노 테크시드(Hirano Tecseed)의 연간(2022년 4월 1일~올해 3월 31일) 매출은 424억2386만 엔(약 3909억원)으로, 피엔티(4178억원)가 이를 뛰어넘었다.

피엔티는 고객사의 요구 사항을 반영한 맞춤형 장비를 주문자생산방식으로 제작하며 급성장했다. 국내에서 생산 불가능한 장비를 국산화한 데다 장비 생산능력을 지속적으로 높였다. 지난 8월 9일 경북 구미에 있는 피엔티 본사에서 만난 김 대표는 ‘비즈니스 감각을 타고났다’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 “머리가 좋지 않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두뇌와 달리 끈기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축적된 노하우와 ‘손맛’이 중요한 제조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끈기입니다. 장비를 만들다 보면 예상치 않은 오류가 자주 발생하는데 그럴 때마다 문제해결을 포기하지 않았어요. 꾸준히 시간을 들인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 2차전지 장비 시장에 뛰어든다 해도 수십 년간 숙련된 피엔티 엔지니어를 따라잡진 못할 겁니다.”

장비에 ‘혼’을 담는 장인정신


▎피엔티 경북 구미 공장 전경. / 사진:PNT
김 대표는 피엔티 성장 비결로 고객사의 신뢰와 운을 꼽았다. 그는 “피엔티는 고객사의 최종 생산품이 명품이 될 수 있도록 장비 커스터마이징에 주력해왔다”며 “오랜 기간 쌓아온 신뢰가 이제 빛을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2차전지가 신성장동력으로 떠오른 것은 “운이 좋았다”며 “경기장에서 열심히 뛰는데 우연찮게 내 앞으로 굴러온 공이 발에 맞아 골대 안으로 들어간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사실 국내 2차전지 장비업계 1위인 피엔티의 창업 계기는 소박했다. 김 대표는 “몸담고 있던 회사가 문을 닫아 창업 외에 방법이 없었다”고 창업 당시를 회고했다. 금오공대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한 그는 썬파워 건전지로 알려진 서통테크놀로지에서 13년간 설계팀 엔지니어로 일했다. 하지만 회사가 폐업해 뜻하지 않게 실직자가 된 그는 한동안 방황했다. 재취업은 쉽지 않았고 주식투자마저 실패로 끝났다. 결국 2003년 겨울 그는 최후의 수단으로 창업의 길을 택했다. 직원이라고는 엔지니어 4명뿐이었다.

“앞날이 막막하던 차에 옛 고객사가 창업을 권유했어요. 제가 워낙 기계를 좋아하다 보니 회사 다닐 때 기계와 관련한 것이라면 고객사의 고민을 무엇이든 들어줬거든요. 처음부터 기업가로서 원대한 포부를 가진 창업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의 위기는 곧 기회였어요."

장인정신을 담아 사명도 피엔티로 정했다. 그는 “장비 제조업은 사람, 기술, 공간의 삼박자가 가장 중요하다”며 “피엔티는 사람의 혼을 불어넣어 장비를 만든다”고 말했다. 이어 “장인정신을 가진 사람만이 최고 품질의 장비를 만들어낼 수 있다”며 “피엔티의 인재상을 말하라면 첫 번째로 장인정신을 가진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고객사의 선택을 받으려면 장비 품질의 우수성은 기본입니다. 혁신적인 기술에 더해 내구성도 좋아야 하죠. 축적된 노하우와 장인정신이 없으면 이러한 장비를 만드는 건 불가능합니다. 피엔티가 국내에서 외산 장비 국산화에 연이어 성공하고 생산성을 업그레이드하게 된 비결입니다.”

그의 말대로 피엔티는 ‘국내 최초’ 기록을 써 내려왔다. 2007년 국내 최초로 특수박 도금기 기술과 LCD 폴리싱(연마) 장비 기술 국산화에 성공한 데 이어 2008년 연성동박적층판(FCCL·Flexible Copper Clad Laminate) 생산 장비를 국산화했다. FCCL은 스마트폰과 LCD 모니터, HDD 등 유연성을 요구하는 전자제품의 원재료로 사용되는 주요 부품이다.

이렇게 소재 사업 부문이 안정궤도에 오르자 김 대표는 2차전지 사업 부문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매년 직원이 늘면서 사업다각화로 매출 증대를 꾀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중에 2차전지 산업의 전망이 밝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평소 세상의 변화에 눈과 귀를 열어두면서 받아들일 만한 아이디어는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편이었어요.”

2차전지는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질, 기타 등으로 구성된다. 피엔티는 이 중 30%를 차지하는 음극재와 분리막 장비 사업에 뛰어들었다. 전극 공정은 ‘기능성 물질 도포·코팅▶강화·냉각▶건조·단련▶절단’ 등 여러 과정을 거친다. 피엔티는 전극을 회전롤에 감으면서 특수 물질을 입히는 코팅 공정에 독보적 기술력을 가졌다. 코팅 밀도를 높이면서 변형을 최소화하는 데 탁월하다는 평이다. 이후에도 생산성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2012년과 2017년 세계 최초로 광폭 전극 코팅 장비와 고속 코팅 장비(속도 80m/min)를 개발했다.

피엔티는 코팅 장비 외에도 프레싱(pressing·압연) 장비, 슬리터(slitter·절단기), 노칭기(notching·극판에서 필요한 부분만 잘라내는 장비) 등의 양산에도 성공하며 전극 공정에서 턴키 역량을 가진 국내 선두 주자로 우뚝 섰다. 국내에서 코팅, 프레싱, 커팅 등에 이르는 전극 공정을 턴키로 납품할 수 있는 업체는 피엔티를 포함해 2~3곳에 불과하다. 그중 피엔티의 기술력이 가장 앞서 있다는 평이다. 피엔티의 장비 국산화 이력은 6건, 세계 최초 개발은 15건, 특허는 127건에 달한다.

꼼꼼한 ‘매의 눈’… 꼰대라고 불러도 좋다


피엔티는 2012년 코스닥시장 상장 이후 미국과 중국, 헝가리 등에 해외 법인을 설립했다. 지난해에는 코스닥 글로벌 세그먼트에도 편입됐다. 이런 저력에 대해 김 대표는 ‘과감한 도전 정신’과 ‘디테일을 챙기는 꼼꼼함’을 언급했다. 그는 “과감하면서도 꼼꼼하라고 말하면 요구사항이 많아서 ‘꼰대’라고 하겠지만 어쩔 수 없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다소 이율배반적으로 보이는 두 개념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이러한 우문에 김 대표는 즉각 현답을 내놨다.

“기획 단계부터 디테일을 점검해야 개발에 확신을 갖고 도전할 수 있어요. 장비는 빠른 속도도 중요하지만 생산 퀄리티도 일관적이어야 합니다. 오랜 경험에 따른 축적된 노하우만 믿고 무작정 도전할 수는 없어요. 피엔티 연구소는 제품 개발 성공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돌다리를 수천 번 두드립니다. 디테일에 신경 쓸수록 실패 확률이 줄어드는 건 당연한 거예요.”

김 대표는 이러한 디테일의 힘이 고객사 신뢰로 직결된다고 봤다. 그는 “커스터마이징 장비를 만드는 피엔티는 고객사의 요구사항을 세세하게 파악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며 “고객사 특성에 맞는 장비를 생산하기 때문에 피엔티 장비 중 중복되는 건 하나도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피엔티 영업직원은 엔지니어 출신이 아닐 경우 3년간 사내에서 엔지니어 교육을 받는다. 전문용어를 모르면 고객사와 소통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영업 직원이 고객사의 개별적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면 고객사의 니즈가 연구실과 설계팀, 제어팀에 제대로 전달될 수가 없어요. 결국 디테일한 부분을 놓치고 말죠. 고객사의 신뢰를 잃는 지름길입니다.”

차별화된 사전·사후 서비스 역시 피엔티가 고객사와 신뢰를 쌓아나가는 비결이다. 피엔티는 고객사에 무상 컨설팅 서비스와 신속한 사후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삼성SDI, SK넥실리스, 롯데알미늄 등 국내외 여러 고객사와 지속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이유다. 김 대표는 “항상 직원들에게 고객사 규모가 크든 작든, 모두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라고 강조한다”며 “단순히 장비 납품에 그치지 않고 장비 개발부터 양산 단계까지 종합 솔루션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장비 커스터마이징에 특화된 피엔티는 고객사에 최적의 장비를 납품할 수 있도록 고객사 공장 상태를 면밀하게 점검한다. 공장 바닥의 두께와 기울기, 온도·습도, 청정도까지 체크한다. 고객사 직원의 작업 효율성을 높이고자 동선을 고려한 공간 구조 컨설팅도 제공한다. 또 피엔티는 장비에 영향을 미치는 코팅액 등 부자재에 대한 컨설팅도 마다하지 않는다. 김 대표는 “고객사와 확고한 파트너십을 유지하려면 이 같은 플러스알파 서비스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피엔티는 자사 장비가 아니어도 무상으로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장비는 주변 장비와의 융화가 중요한데 만약 ‘궁합’이 맞지 않을 경우 향후 오류 발생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 납품 후에도 빠르고 철저하게 대응합니다. 설사 고객사 잘못으로 장비가 고장 났더라도 말이죠. 고객사와 끈끈한 정이 생기고 협력관계가 오래 유지되는 이유입니다.”

2차전지 시장이 점점 과열되면서 경쟁도 치열해지는 추세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피엔티 설비가 아무리 좋아도 고객사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며 “가격경쟁력, 네트워크 등 다양한 요소가 고객사의 결정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어떤 경쟁업체든 두려움의 대상이다”라고 긴장감을 드러냈다. 그는 “피엔티는 2차전지 최전방 기업이 아니라 이들을 서포트하는 기업이기 때문에 고객사와의 협력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서구권과 동아시아권 모두와 협력하는 동시에 틈새시장 확보에도 매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증권업계에선 2차전지 관련 업계가 미국의 IRA(인플레이션감축법) 수혜를 톡톡히 받는다고 분석한다. 지난해 8월 발효된 IRA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40% 감축을 목표로 친환경 에너지 생산과 기후변화 대응 정책에 3690억 달러를 투입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특히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 구매자에 한해 최대 7500달러에 이르는 세금 공제 혜택을 준다. 김 대표는 “새로운 틈새시장인 미국의 2차전지 스타트업에도 맞춤형 설비를 턴키로 제공하기 위해 마케팅에 힘쓰는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전체 매출에서 수출 비중이 약 80%를 차지하는 피엔티는 물가상승과 환율 변동 위험에 늘 노출돼 있다. 김 대표는 “내부적으로 원자재 가격 인상과 외환 위험에 대해 토론을 자주 하는 편”이라며 “견적 기준점을 어떻게 잡을지, 기술적인 원가 절감 방안은 없는지, 원자재 대량 구매의 실효성은 없는지 등 다양한 의견을 나눈다”고 설명했다.

고생을 포개다 보면 행복에 닿는다


지금껏 승승장구해온 피엔티지만 우여곡절도 적지 않았다. 김 대표는 “크게 두 번 위기의 순간이 찾아왔다”며 “당시엔 정말 힘들었지만 지금 피엔티가 잘되고 나니 악재마저도 추억이 됐다”고 회상했다. 첫 번째 위기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억원 규모의 수주를 받았는데 작업을 마치고 보니 투입 비용이 무려 380억원에 달했다. 애초에 견적을 잘못 잡은 탓이었다. 김 대표는 “책임지고 조치를 취한 덕분에 고객사를 잃지 않았다”며 “오히려 피엔티에 대한 호평이 이어졌다”고 말했다.

두 번째 위기는 2000년대 IT 불황의 여파였다. 당시 2차전지 수요가 감소하자 피엔티 역시 실적이 저조할 수밖에 없었다. 2010년대 중반 영업이익률은 10% 안팎을 오가며 출렁거렸다. 그는 “경영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 국내 유명 CEO의 강연을 직접 찾아가기도 하고 주말마다 경영 서적을 읽으며 피엔티에 무엇이 부족한지 골몰했다”고 고백했다. 한참을 헤맸던 그는 해결의 실마리가 ‘소통’에 있음을 깨달았다.

“2015년 무렵 퇴사자를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퇴사 사유가 ‘일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직원과 소통하며 서로 원하는 바를 파악하고 접점을 찾아야 하는데 그 과정이 없었던 겁니다. 이때부터 소통의 물꼬를 트기 위해 매주 금요일에 1시간 동안 팀별 교육을 진행합니다. 이렇게 내부 관리 시스템을 새롭게 다진 덕분에 영업이익률이 눈에 띄게 좋아진 게 아닌가 싶네요.”

수년간 축적된 노하우를 신입직원에게 전수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노하우는 몸에 자연스럽게 축적되는 시간의 산물이다. 더구나 국내에 2차전지 장비와 관련한 참고 문헌이 아직은 부족한 수준이기에 사내 교육에 힘쓸 수밖에 없다. 김 대표는 “신입사원을 채용하면 입사 후 1년간 기계에 애정이 있는지 살피고 2~3년 동안은 엔지니어링 기술을 가르친다”며 “20년 업력으로 쌓은 노하우를 매뉴얼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창업 20년 만에 회사를 글로벌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한국을 대표하는 장비 소재 기업으로 키운 김대표는 자신이 워커홀릭이 아니라고 부인하면서 “균형감 있게 몰입한다”고 밝혔다. 하루 근무시간은 8시간 정도다. 대신 그 시간만큼은 일에 완전히 몰입한다. 그는 “일은 평생 함께 가는 동반자”라며 “인생은 일, 수면, 휴식(놀이)으로 구성되는데, 셋의 균형을 잘 맞춰가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천명을 지나 이순이 가까운 그에게 인생 철학을 물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가장 먼저 울지 않나요? 태어난 것 자체가 힘들어서 우는 겁니다. 인생은 고생의 연속이에요. 그러면 인생을 왜 살아야 하는지 반문할 수 있겠죠. 고생을 밑바닥부터 하나씩 포개서 올리면 행복에 가닿기 때문입니다. 단, 기준점이 지나치게 높으면 행복을 느끼기란 힘들어지겠죠. 고생이 있어야 기쁨도 느끼는 법입니다.”

김 대표는 지난해 경영난에 빠진 분리막 장비업체 명성티엔에스 경영권을 인수했다. 그는 “인수 당시 명성티엔에스는 자본시장에서 거래중지된 상태로, 기업 이미지가 상당히 실추돼 있었다”며 “하지만 피엔티의 분리막 사업 확장의 일환으로 과감하게 인수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명성티엔에스 이미지를 개선하고 경영 정상화를 이루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향후 주주총회에서 피엔티MS(PNTMS)로 사명을 변경하고 내년 상반기에는 재상장 실질심사를 받을 예정이다.

패스트팔로워 아닌 퍼스트무버


올 초 김 대표가 제시한 연간 매출 목표치는 약 5000억원. 하지만 국내 증권업계가 내놓은 매출 전망치는 6000억원 수준이며 2024년에는 98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어깨가 무겁지 않냐는 질문에 김 대표는 “갈 길이 멀다”며 “아직 국산화되지 않은 장비 위주로 새로운 포트폴리오를 구상하는 중이다”라고 밝혔다. 기존 장비 사업은 지속적인 기술 고도화로 매출 안정화를 꾀하면서 새로운 원천기술·장비를 개발해 신사업을 모색하는 투 트랙 전략이다.

김 대표는 “피엔티의 전망이 밝은 건 사실이지만 호황이 얼마나 갈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며 “단기적으로 고객사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공장 증설 투자를 늘려 캐파(생산능력)를 높이는 데 매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사업으로는 리튬인산철(LFP·이하 인산철) 배터리를 꼽았다. 최근 중국 업체가 만드는 저가형 인산철 배터리 수요가 급증하는 추세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방침이다. 인산철 배터리는 전동 모터, 전동 오토바이, ESS 등에 들어가는 부품으로 부가가치가 높다.

ESS는 평소에 저장해둔 잉여 전기를 피크시간대에 사용하는 에너지저장시스템을 말한다. 시간 제약 없이 전력 활용도를 높일 수 있어 전 세계의 주목도가 높지만 한국은 뒤처져 있는 모양새다. 앞서 12차 5개년 계획을 통해 ESS 개발을 적극 지원해온 중국은 올해 1분기 글로벌 ESS 출고량에서 1위부터 7위까지 휩쓸었다. 김 대표는 “내년 말부터 0.2GWh 인산철 배터리를 직접 생산해 납품할 계획”이라며 “0.2GWh 인산철 배터리 생산 노하우와 피엔티 최고급 장비를 접목하는 턴키 방식으로, 3년 안에 2차전지 시장에서 독보적 입지를 차지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또 폐배터리를 재활용하는 사업에도 진출할 방침이다. 미래에셋증권에 따르면 폐배터리 시장은 2025년부터 2040년까지 연평균 33%씩 성장해 시장 규모가 72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부터 피엔티는 폐배터리를 분해하는 작업에 인공지능(AI)과 협동로봇을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개발하고 있다. 김 대표는 “작업 효율성을 높여 동일한 시간에 더 많은 물량을 생산할 수 있도록 경쟁력을 확보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뷰 말미, 그에게 ‘100년 장수 기업’으로 향하는 로드맵을 물었다.

“300년은 가야 하지 않을까요?(웃음) 피엔티가 경쟁력과 자생력을 겸비해 300년 넘게 장수하는 한국의 대표적 제조기업이 되길 바랍니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유럽의 제조기업을 보며 항상 부러웠습니다. 피엔티도 그렇게 성장할 수 있도록 제가 기틀을 탄탄하게 마련해놓을 겁니다. 2025년에는 매출 1조 클럽에 들어가면서 한 단계씩 발전해나가겠습니다.”

- 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 / 사진 최영재 기자

202309호 (2023.08.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