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이강호의 생각 여행(43) 이름 없는 한국의 탐험가를 찬미하며 

 

전 세계를 누볐던 종합상사맨들, 중동 사막의 열기를 온몸으로 마주했던 건설인들, 남미의 정글을 헤쳤던 기업인들이 모두 우리 시대의 탐험가들이다.

▎특유의 빨간 머리에 물방울무늬 의상을 입고 있는 쿠사마 야요이 입상. 파리 루이비통 본사 건물에 여러 색의 점을 그려 넣을 듯한 모습으로 서 있다.
프랑스 파리가 붐비고 있다. 팬데믹이 완전히 끝나고 날씨가 좋은 5월 말을 지나 6월이 되니 전 세계에서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든다. 파리는 예전처럼 역사와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한 전통적 인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매력에 더해 새로운 변화가 계속 일어나는 도시라는 사실도 파리의 명성을 높이는 데 한몫한다. 세계 여러 나라의 방문객들이 파리로 몰려드는 이유다.

팬데믹이 시작되기 직전에 방문했던 파리에 비해 엔데믹에 다다른 지금은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수많은 인파가 몰려다니는 파리 시내는 팬데믹 당시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내년에 개최될 올림픽을 앞두고 시내 여기저기서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도 평소와 다른 모습이다. 파리는 국내 국적 항공사의 유럽 거점 도시라서 다른 유럽 국가들을 방문하기 위해 환승할 때도 하루 이틀 정도는 머물게 된다.

하루에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파리를 한두 번 방문해서는 그 역사와 문화의 깊이를 이해하기 어렵다. 쉬운 예로 루브르박물관 한 곳을 제대로 보려면 몇 주가 걸릴 것이다. 나 역시 수십 차례나 찾았던 파리에 들르게 되면 일정이 몹시 바빠진다. 보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아 조급해지는 마음을 숨기기 어렵다. 이번 방문에선 두 곳을 마음에 두고 찾기로 했다.

팬데믹이 끝난 파리의 활기


▎명품 거리로 유명한 생토노레와 방돔 광장 입구 코너. 루이비통 숍에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이 컬래버로 장식되어 있다.
먼저 루이비통 재단(Louis Vuitton Foundation)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앤디 워홀(Andy Warhol)과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의 컬래버 전시회다. 2014년 10월 20일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개관한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은 LVMH(루이비통 모네 헤네시: Moët Hennessy Louis Vuitton SE)와 그 자회사가 후원한다. 파리 개선문, 에펠탑, 루브르박물관, 노트르담사원 같은 역사적 건물과 달리 최근에 건설된 초현대식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은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월트디즈니 콘서트홀, 스페인 빌바오에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 등을 지어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캐나다 출신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Owen Gehry)가 건축했다.

파리 외곽의 거대한 불로뉴숲(bois de boulogne) 공원에 돛단배 형상을 하고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건축물은 외관을 보는 순간부터 그 독특함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건물 입구에는 앤디 워홀과 바스키아의 전시회를 보려는 관람객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오래 기다리지 않고 빨리 입장하려면 예약하고 티켓을 준비해 가면 된다. 파리의 다른 명소들을 방문할 때도 미리 확인해 티켓을 예매하면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어 여행 일정에 큰 도움이 된다.

건물 내부에 들어서서 이곳저곳을 오르내렸다. 상상하기 어려운 구조물을 보면 프랭크 게리의 천재성을 느낄 수 있다. 구조물 사이로 멀리 에펠탑이 보이고 다른 각도에서는 고층 건물들이 군집한 라데팡스(La Défense)도 보인다. 입구에 들어서면 앞쪽 벽면 위에 앤디 워홀과 바스키아가 복싱 글러브를 착용하고 서 있는 모습이 나타난다. 세계적인 두 거장의 컬래버를 자극적으로 전해주고 있었다. 인상적인 것은 이렇게 큰 전시회에 유치원생처럼 보이는 많은 꼬마 관객이 선생님과 함께 감상하며 질문하는 모습이었다. 전시실에서는 두 예술가가 협업해 제작한 대형 작품과 다양한 소재로 만든 여러 작품을 행복한 마음으로 관람할 수 있다.

무척이나 특이하게 구성된 두 사람의 작품들은 가슴을 자극하고 많은 생각과 영감을 떠오르게 했다. 바스키아와 워홀의 첫 번째 협업은 워홀의 그림을 바스키아가 단순하게 수정한 작품이었다. 그림 속엔 달러 기호, 게, 가재 등 다양한 주제가 묘사돼 있다. 바스키아는 달러 기호 안에 “나를 밟지 마십시오(DON’T TREAD ON ME)”라는 문구와 자유주의 슬로건이자 상징이 된 뱀을 추가했다. 그가 자본주의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가라면 워홀은 사업가로서 예술가의 상징을 완벽하게 구현한 인물이다. 상반되는 두 가지 세계관이 자연스럽게 만난 셈이다. 대형 컬래버 작품인 아프리칸 마스크(African Masks)와 의자(Chair)는 너무 거대해서 의자에 앉아 한참이나 시간을 들여서 감상해야 했다.

건물 밖으로 나와서 외관을 바라보니 거대한 돛단배 형상의 건물이 푸른 숲을 배경으로 우뚝 서 물 위를 항해하는 듯했다. 파리 시내를 다니면서 명품 거리로 유명한 생토노레(Saint-Honoré) 등 여러 거리를 다녔는데, 앤디 워홀과 바스키아가 복싱 글로브를 착용하고 서 있는 모습의 포스터가 이곳저곳에 붙어 있었다. 파리가 이 전시회에 들이는 노력과 비중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의 탐험가는 기업인이다


▎파리의 블로뉴숲 공원에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건축한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 돛을 활짝 편 배가 물 위를 항해하는 형상이다.
두 번째로 찾은 장소는 루이비통그룹이 일본의 쿠사마 야요이 작가와 컬래버에 나선 퐁네프 다리 인근이었다. 루이비통 본사와 사마리텐(La Samaritaine) 백화점으로 향하면, 높이가 7~8 층 정도 되는 거대한 쿠사마 야요이의 입상을 만날 수 있다. 특유의 빨간 머리에 노랑·빨강·파랑·초록색의 크고 작은 물방울무늬로 장식한 흰 원피스를 입고 서 있는 쿠사마 야요이의 모습이다. 작가는 오른손에 붓을 들고, 루이비통 본사 건물에 여러 색의 물방울무늬를 그려 넣을 듯이 바라보며 서 있다. 루이비통 본사 건물 전면에도 야요이 작품의 특징인 알록달록한 큰 점들로 장식돼 있었다. 독특한 분위기의 작품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고, 사마리텐 백화점에서 쇼핑을 즐기기도 한다.

150년 전통을 자랑하는 사마리텐 백화점은 리모델링에 1조원을 쏟아부었고, 이후로도 15년 이상의 공사 기간을 거쳐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기존 아르누보 및 아르데코 건축물의 복원 사업을 진행했고, 화려한 유리 파사드 외관을 도입해 현대적인 멋을 추가했다. 이 모든 게 2001년에 프랑스를 대표하는 럭셔리 기업인 LVMH그룹이 사마리텐 백화점의 지분을 매입하면서 이루어졌다.

이번 파리 여행에서는 예술적 컬래버에 대한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우연히도 두 곳 모두 명품시장 최고 기업인 LVMH가 그 중심에 있다.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이를 다시 문화와 예술로 승화하는 것이 거대 기업의 최고경영자이자 최상위권 부호가 가진 본능일까? 어쨌든 그들이 이뤄가는 예술 활동 덕에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도 다양한 예술 세계를 감상하며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으니, 결국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그 보람의 정점이리라.

언젠가 한 만찬 강연에 참석했는데, 연사가 “우리나라에 없는 직업이 무엇일까요?”라고 질문했다. 많은 답변이 나왔지만, 연사는 우리나라에 없는 직업을 ‘탐험가’라고 콕 집어 이야기했다. 대항해시대에 위험을 무릅쓰고 망망대해를 건너 전 세계로 떠난 탐험가들의 사례를 이야기하면서, 한국에는 도전을 해내는 탐험가가 없다고 설명했다. 물론 일리가 있는 말이다. 실제로 대항해시대 같은 역사적 배경이나 이름을 남길 만한 탐험가가 우리에겐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에 반론을 펼 수 있다. 70년 전 우리나라는 전쟁으로 피폐해져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였다. 그런데 근면함과 성실함으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2차 세계대전 이후 선진국에 진입한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과거 원조를 받았던 나라가 이제 다른 나라에 원조해주는 유일한 나라가 되었다. 어느 나라도 해내지 못한 이런 업적은 그저 공짜로 이루어진 게 아니다.

가난했던 나라에서 선진국에 이르는 과정은 우리나라에 수많은 이름 없는 ‘탐험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바로 그들이 한강의 기적을 써냈다. 예를 들어 1970년 대 후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만났던 수많은 ‘종합상사맨’이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지사에서 근무하는 삼성 종합상사의 젊은 상사맨을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그는 휴가와 휴일도 없이 아프리카 대륙을 훑고 다녔다. 그 젊은 상사맨에게서 받은 진한 감동과 신선한 자극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미국 플로리다 마이애미에 있는 선경 종합상사맨들은 미국과 남미 시장을 연결하며 열정적으로 일했다. 이들과 계약해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이 매월 수많은 컨테이너 차량에 실려 떠날 때는 정말 큰 보람을 느꼈다. 중동 사막을 누비던 상사맨과 건설인들이 얼마나 많은 땀을 흘리며 불모지를 개척했는지,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그 당시 신문에 ‘세일즈맨의 25시’라는 연재물도 게재됐는데, 그 장면의 주인공인 듯 불모의 사막에서 가스불이 타오르는 장면을 보면서 밤새도록 사막을 달렸던 기억이 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기업가들


▎에펠탑은 1889년에 건축된 이후 파리의 상징이 됐다. 매년 수백만 명이 에펠탑을 보기 위해 파리를 찾는다.
수많은 기업을 설립한 창업자들이야말로 진정한 탐험가다. 기술이 부족해 좋은 제품을 생산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면서 기업의 흥망성쇠 사이클을 넘나든 그들의 개척 정신과 도전 정신은 후손들이 꼭 본받아야 할 덕목이다. ‘한국에서 세계로’라는 의미로 회사명을 지은 ‘한세’, 세일즈맨의 신화를 일으키며 창업한 웅진그룹도 끊임없는 도전으로 성공과 실패의 사이클을 경험하면서도 훌륭하게 생존해 발전하고 있다.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승부를 걸었던 창업자들은 진실로 훌륭한 탐험가들이다. 아주그룹 창업자는 어려운 환경에서 기업을 크게 성장시키며 ‘인생도처유청산(人生到處有靑山)’이라고 말했다. 인생을 살아가고 사업을 경영하면서 수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철학을 갖고 난관을 극복해낸다는 철학적 메시지다. 긍정적인 사고에서 나온 개척 정신을 실현한 탐험가다.

대항해시대의 탐험가들처럼 기록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수많은 상사맨과 건설맨들이 전 세계 선진국부터 후진국까지, 사막에서 정글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탐험가로 뛰면서 땀 흘려 시장을 개척했다. 이 기업인들은 무에서 유를 창출해냈다. 감히 이런 우리의 선배 상사맨들과 건설인들, 기업의 창업자들을 우리나라의 탐험가들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휴가도 반납하고 휴일도 없이 희생한 세대가 있었기에 오늘날과 같은 선진국에서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척정신을 가진 기업 탐험가들 덕분에 우리나라는 훌륭한 선진국이 되었다.

지금 이 순간 프랑스 파리의 하야트 리젠시 에투알호텔 라운지에서 글을 쓰고 있다. 파리에서는 아주 드물게 높은 34층 건물이어서 시내가 거의 다 내려다보인다. 가운데 에펠탑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앵발리드가 있고, 더 왼쪽으로 눈을 돌리면 개선문이 들어온다. 오른쪽으로는 불로뉴숲에 프랭크 게리가 건축한 루이비통재단 미술관이 안겨 있는 듯하고, 그 오른쪽으로 라데팡스의 고층 건물들이 병풍처럼 서 있다. 옛날 젊은 시절, 개발도상국에서 온 젊은이가 해외출장비가 모자라 몽마르트 언덕 근처 여인숙에서 숙식하며 상품을 팔기 위해서 유럽 대륙을 뛰어다녔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제 선진국의 중년이 되어 고급 호텔 라운지에서 파리 시내를 내려다보니 감개무량하다.

이제 우리는 선배 탐험가들이 보여주었던 불굴의 탐험 정신으로 또다시 한 단계 더 도약해야 한다. 선진국 자리를 굳건히 지켜야 한다. 우리 사회에 던지고 싶은 메시지 하나가 떠오른다. 상투적인 구호 같지만, 결국엔 어려운 지난 시절을 겪으며 얻은 교훈이자 진리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 이강호 - PMG, 프런티어 코리아 회장. 덴마크에서 창립한 세계 최대 펌프제조기업 그런포스의 한국법인 CEO 등 37년간 글로벌기업의 CEO로 활동해왔다. 2014년 PI 인성경영 및 HR 컨설팅 회사인 PMG를 창립했다. 연세대학교와 동국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고, 다수 기업체, 2세 경영자 및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경영과 리더십 코칭을 하고 있다. 은탑산업훈장과 덴마크왕실훈장을 수훈했다.

202307호 (2023.06.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