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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우가 만난 예술계 파워리더(18) 조현민 피플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은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일 

정소나 기자
건축은 다른 예술 분야와 달리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실용성과 안정성이 강하게 요구되는 분야다. 사람들이 감탄하며 스쳐 지나가는 장식품이 아니라 실제 그곳을 사용하는 사람이 편리하면서도 한층 나은 삶을 꿈꾸게 하는 건축을 고민하는 조현민 대표를 만났다.

▎자신이 만든 공간에서 사람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건물을 설계하고 디자인하는 조현민 대표.
“건축은 시대정신의 산물이며 중요한 여러 예술의 종합이다. 건축은 형태이며, 색깔이며, 소리이며, 음악이다. 또 공간이며, 폭이며, 깊이이며, 높이이며, 부피이며, 동선이다. 건축은 많은 상상력과 아이디어가 수반되어야 하는 예술이다.”

세기의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말처럼 건축은 종합 감각의 체험이 담긴 예술과 기술의 복합체이지만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생활하기에 가장 효율적인 기능에 충실한 디자인으로 빈틈없이 계획되고 지어져야 한다.

정승우 이사장이 만난 이달의 주인공은 사람이 생활하고 경험하는 공간에 창의적인 디자인으로 가치를 덧입히는 피플건축사사무소의 대표 조현민 건축가이다. 그는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후 2002년부터 건축물의 설계, 디자인을 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대형 건축사사무소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에서 일하며 약 10년 정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부산 영화의 전당, 서울시립과학관을 비롯한 수많은 업무시설, 주거, 호텔 등의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독립 후에는 상업 시설과 민간 주택까지 영역을 넓혀 활동 중이다.

지금까지 참여한 프로젝트 몇 개만 소개해달라.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작은 아틀리에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한 초년 시절, 용산 파크타워, 삼성동 아이파크, 동탄 메타폴리스 등 지금은 각 지역의 랜드마크가 된 주상복합 아파트 건축에 참여했다.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에 입사해서는 주로 주거 건축과 관련된 굵직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중에서도 프로젝트 매니저로서 설계와 디자인을 주도한 송도의 주상복합 아트윈푸르지오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또, 3D 설계의 일종인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팀을 맡아 3D 설계도 안에 건축 자재의 생산지부터 단가 등 많은 데이터를 집어넣어 파일만 열면 프로젝트 기획부터 설계, 시공까지 모든 건축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계획하는 일을 주로 해왔다.

대형 건축사사무소라는 커다란 울타리에 있다가 독립을 결심한 계기가 있나.

오랜 시간 대형 건축사사무소에서 일하다 보니 나만의 디자인과 건축 철학을 담은 건축설계 디자인을 진행하는 데 한계가 많았다. 최종 결정권자가 아닌 건축가로서의 목소리는 쉽게 묻히기 마련이었고, 대형 사무실에 흔히 있는 파벌로 인한 갈등도 쉽지 않았다. 스스로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바라는 마음이 커지며 ‘내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독립을 결심했다.

보통 건축가 하면 건물 설계나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건축가는 생각보다 많은 일에 관여한다. 먼저 건축물이 들어설 대지를 선정하고 건축주와 상의해 건축물의 용도를 선정한다. 또 건설하게 될 건축물의 규모를 정하고 주변 환경을 고려하여 건축물이 들어서게 될 위치를 정한다. 이런 과정에서 건축물의 공간을 디자인하고, 사람들이 움직이는 동선을 계획하고, 빛이 들어오게 될 부분과 그림자가 드리우는 부분을 디자인한다. 그런 다음 시공을 할 수 있도록 건축법을 비롯한 여러 가지 법을 검토해서 건축 설계도를 만든다. 이때 구조설계, 조경설계, 토목설계, 설비설계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해 공정별로 도면을 만든다. 이 도면들로 여러 서류를 작성해서 구청, 시청 등 관공서에 건축허가를 접수하고 협의를 통한 대관 업무를 한다.

마지막에는 허가 완료된 건축물을 건설사가 허가 사항에 맞게 시공하는지, 건축가나 건축주의 의도대로 시공하는지 관리감독하고 보고하는 일을 한다. 이렇게 건축가는 설계부터 감리까지, 건축주와 소통하며 최종 건축물이 완성되어 사용할 때까지의 모든 과정에 참여한다.


▎정승우 유중문화재단 이사장과 조현민 대표가 종합예술로서의 건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건물을 설계할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먼저 사람들이 내가 만든 건물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상상한 모습 그대로, 최대한 상상에 맞춰서 계획하고 디자인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 건축물 안에서의 경험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 안에서 사용자들이 겪게 될 시각적 경험, 공간적 경험, 자연의 소리나 거리의 소음에서 느낄 청각적 경험,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빛의 경험 등 수많은 것을 상상하고 계획하고 디자인한다.

건축가가 직접 경험을 해봐야 온전히 사용자들을 위한 건축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술작품을 공부하며 관객 입장에서 좋은 갤러리 설계를 떠올리고, 합창단 활동을 하면서 무대가 어떤 식으로 만들어져야 음악적인 효과를 더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요리를 직접 배우며 셰프에게 효과적인 주방 동선을 연구하는 등 지금도 꾸준히 배워가며 다양한 욕구가 동시에 충족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건축주를 위한 건축을 병행해야 하니 건축가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건축을 하기는 꽤 힘들 것 같다.

보통 건축주가 개인이라면 만들어질 건축물이 어떻게 보여질지,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지 등을 상상하고 의뢰를 한다. 사업자라면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를 가장 궁금해한다. 어떤 경우든 건축주의 요구 사항이나 꿈, 희망 등을 최대한 반영해서 현실로 이루어지도록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이다. 건축주와 의견이 상충할 때는 다른 방향으로 해결책을 찾아서 합의점을 찾는 편이다. 하지만 내가 추구하는 바와 건축주의 의견이 완전히 다른 경우엔 건축주와 스타일이 잘 맞는 건축가를 추천드리고, 프로젝트에서 빠지는 쪽을 선택한다. 내 정체성이 완전히 빠진, 스스로가 책임질 수 없는 디자인을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는 판단에서다.

실용성과 심미성의 밸런스는 어떻게 맞추나.

건축물에서 기본 중의 기본은 기능에 충실한 디자인이다. 최초의 집도 사실 기능을 위해 만들어졌기에 실용성에 좀 더 집중하는 편이다. 건축물의 기능을 살리기 위해 A라는 형태와 B라는 형태가 있으면 그중 좀 더 나은 형태를 선택한다고 해야 할까.

그런 면에서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를 좋아하고 존경한다. 그는 재료가 갖고 있는 물성 자체를 디자인으로 해석했다. 이전에는 토목 재료로만 여겼던 철근 콘크리트를 마감재로 활용해 노출 콘크리트를 유행시키며, 모더니즘 건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건축가다. 건축자재만 활용해 화려한 디테일 없이도 기능 자체가 곧 디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기에, 그를 롤 모델 삼아 실용성과 심미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신경 쓰고 있다.


▎조 대표가 설계한 광주광역시의 주상 복합 시설의 주경 투시도.
건축가로서 풍수지리에 대한 의견이 궁금하다.

건축가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풍수지리와 사주에 많은 애착과 호기심을 갖고 있다. 풍수지리는 자연환경적인 부분만 보더라도 많은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을 ‘명당’으로 본다. 풍수지리에서 얘기하는 ‘좋은 곳’은 건축가의 눈으로 봤을 때도 ‘좋은 곳’일 때가 많다. 건축을 할 때 풍수지리 전문가의 도움을 받게 된다면 적극적으로 의견을 수용할 생각이다.

증축, 대수선 등 기존 건물의 재활용과 신축 중 어느 쪽을 선호하나.

증축은 말 그대로 추가로 건축물을 만드는 것이고, 대수선은 건축물을 수리해서 사용하는 리모델링이다. 신축은 새로운 건축물을 만드는 것이다. 모두 건축에서 꼭 필요한 행위이지만 굳이 선호하는 것을 고르라면 신축을 택하겠다. 아무것도 없는 흰 도화지에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것이 기존 작품을 수정하고 덧대는 것보다는 건축가로서의 만족감이 더 큰 것 같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어려운 일도 많았을 것 같다.

2년 전 광주광역시에서 주상복합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 시행사의 무리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여러 전문가가 힘을 모아 일정을 최대한 당겨 진행했던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갑자기 시행사에 여러 가지 일이 겹치며 더는 건축을 진행하지 못하게 됐고 프로젝트가 중간에 멈춰버렸다. 건축설계 분야는 먼저 일을 진행하고 나서 나중에 정산하는 구조이다 보니, 프로젝트가 멈추게 되면 그동안 진행했던 일에 대한 보수를 받기가 힘들어진다. 그 때문에 소송도 벌어졌고, 시간과 비용 면에서 큰 손해를 보았다.

워낙 큰 프로젝트였고 그만큼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기에 나의 커리어나 사업 운영에도 한동안 큰 어려움을 겪을 정도였다.

하지만 오랜 시간 고민하고 계획하며 디자인했던 건축물이 내 의도대로 시공되고 사용하는 분들도 만족해하는 모습을 볼 때면 ‘이런 순간을 위해 건축을 하는구나’ 할 만큼 보람을 느끼며 마음을 다잡게 된다.

자신만의 시그니처로 내세우고 싶은 건축 소재가 있을까.

적벽돌을 특히 좋아한다. 원래 벽돌이라는 소재 자체를 좋아했는데 붉은 벽돌을 건축 마감재로 많이 사용했던 김수근 건축가를 존경해서인지 적벽돌이 더 눈에 들어온다. 적벽돌과 금속제를 함께 사용했을 때, 두 가지 소재가 어우러진 느낌이나 묘한 컬러 조합이 마음에 든다. 작은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 육중한 덩어리를 만들어내는 느낌도 좋고, 한국인의 정서와도 잘 맞는 것 같아 즐겨 사용한다.

건축가로서 꿈꾸는 집은.

사람들의 생각과 성격, 일상을 바꾸는 공간의 힘을 믿는다. 높다란 아파트 숲 대신 땅을 가까이하며 살 수 있는 집을 만들고 자연을 벗 삼아 여유를 느끼는 삶을 많은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다. 서울 인근의 아파트 분양가 정도로 구매할 수 있는 작은 타운하우스부터 시작해볼 생각이다.

건축을 계획 중인 예비 건축주님들께 조언을 한다면.

많은 분이 건축물을 짓고자 할 때 소위 공사 좀 해봤다는 주변 사람에게 먼저 조언을 구하거나 부동산에 문의하는 경우가 많다. 이보다는 건축가에게 제일 먼저 문의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건축주가 목적하는 바에 가장 부합하는 대지 선택부터 사업성, 법적인 부분까지 검토해 좀 더 편리하게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정승우 - 고려대학교 법학과(학사), 동 대학원(법학 석사, 법학 박사) 졸업 후 2011년 공익재단법인 유중문화재단과 복합문화공간인 유중아트센터를 설립하여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정리 정소나 기자 jung.sona@joongang.co.kr / 사진 임익순 객원기자

202309호 (2023.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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