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소울의 삶과 미술심리(43) 

이분법적 사고 | 완전한 선과 악은 없다 

19~20세기에 활약한 핀란드의 상징주의 화가 후고 심베리(Hugo Simberg)는 인간의 이분법적 사고를 다양한 상징을 활용해 캔버스에 담았다. 다양성을 배척하는 오늘날, 그의 작품은 사회적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극단적 사고방식에 경종을 울린다.

▎후고 심베리 [상처 입은 천사] 1903
우리의 사고는 끊임없이 대립을 거듭하고 세상을 이분법으로 나눈 채, 양면의 진리를 탐색하려 애쓴다. 하나와 다른 하나 사이에는 늘 경계가 있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경계를 통해 선을 찾으려 한다. 복잡한 사회적ㆍ정치적ㆍ문화적 문제를 두 가지 극단으로 단순화하려는 이 방식은 현실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무시하며, 현상의 과장된 이해와 해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분법적 사고는 대립되는 두 개념을 강조하기 때문에 ‘우리 편 vs. 상대편’이나 ‘정상 vs. 비정상’과 같은 대립을 부추긴다. 그리고 이는 사회적 분열과 갈등을 조장한다.

이와 반대되는 방식은 변증법적 사고이다. 대립적인 두 극성을 별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연관의 맥락에서 생각하는 관점이다. 여성과 남성, 금수저와 흙수저, 자연개발과 보존 등 선을 긋고 바라본다면, 이 둘은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과도 같다. 세상을 둘로 나누어 바라보는 시선은 단순한 판단과 선택을 위한 도구로서 유용할 수 있으며, 어떤 상황에서는 효과적인 방법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다양성을 무시하는 이런 시선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나아가 사회에 상처 입히며, 이런 상처는 다시 나 자신에게 돌아오기도 한다.

죽음과 삶, 양극단의 화합


▎후고 심베리 [교차로에서] 1896
핀란드의 상징주의 화가 후고 심베리(Hugo Simberg) 자신의 작품에 극단적이고 이분법적인 사고에 대한 다양한 상징을 담았다. 작품 [죽음의 정원]에는 부자와 서민, 보수와 진보 같은 개념을 모두 하찮게 만드는, 삶과 죽음이라는 가장 근원적인 이미지가 담겨 있다.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칼 융은 삶과 죽음, 빛과 그림자 같은 양극단은 함께 존재하면서 화합해야 하는 대상이며, 그것이 한 개인 안에서 이루어졌을 때 진정한 자기와 만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렇기에 심베리의 그림 속 죽음은 무겁거나 우울해 보이지 않는다. [죽음의 정원] 속에는 검은 옷을 입은 해골들이 정원에 물을 주고, 꽃을 가꾸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죽음이 생명을 살리고 있는 모습은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두 개념이 완전하게 분리되지 않았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인지하도록 한다.

심베리의 대표작 [상처 입은 천사]는 각자의 기준으로 인식한 선과 악의 차이가 보여줄 수 있는 비극적인 결말을 설명하고 있다. 심베리는 자신의 그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아 관객의 해석에 높은 자유도를 주는 작가이다. 그렇기에 이 그림에 대해서도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지만, 그가 핀란드인임을 고려하면 다음의 이야기가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오래전 작은 산골짜기 마을에 사는 두 아이가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천사를 발견했다. 아이들은 들것을 만들어 마을로 급히 천사를 옮기고 있었다. 그런데 어른들의 관념 속 천사는 완벽한 존재이기에 피를 흘리고 있는 천사는 악마라 여겼다. 마을 어른들은 천사를 잡아 화형을 집행했다. 그러나 천사는 불길 속에서 타지 않았고, 원망의 피눈물을 쏟으며 하늘로 올라갔다. 이후 마을에는 전염병이 돌았고, 두 아이를 제외하고 화형을 집행했던 모든 마을 사람이 사망했다. 모두 불타버린 마을에 천사가 흘린 피눈물이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났는데, 그 꽃은 영원 불멸의 꽃이라 불리는 아마란스이다.

“천사는 왜 아프면 안 되는 거예요?” 오른쪽 아이는 화가 난 표정으로 관객을 바라보고 있다. 자신이 정한 기준에서 벗어나면 틀린 것이라고 설명하는 어른들에게, 분명 천사라고 말했지만 믿어주지 않는 어른들에게, 바로 관객인 우리에게 화를 내고 있는 것이다. 진실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상징하듯 천사는 눈을 가리고 있다.

사람들은 진실을 보지 못하기도 하지만, 외면하기도 한다. 사이비종교 신자들은 철저하게 세뇌를 당해 가짜 메시아를 존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신도가 그것이 거짓임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자신의 종교를 믿는 신자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을 합리화하며 스스로 눈을 가린다. 이미 바깥에서의 삶이 바닥이었기에, 이곳에서 나가는 것이 더 지옥 같기 때문이다. 천사가 손에 쥔 하얀 눈풀꽃은 치유와 생명을 상징한다. 자신이 정한 기준만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많은 사람이 조금은 따뜻하게 세상을 바라보기를 바라는 작가의 바람이 담겨 있는 듯하다.

선과 악의 기준은 개인의 경험이다


▎후고 심베리 [꿈] 1900
브라질 영화 [7명의 포로]에는 가난한 10대 소년이 등장한다. 소년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직업 브로커의 말에 속아 친구들과 함께 승합차를 타고 도시로 간다. 그러나 그들이 고철 수집장에 도착하자마자 순식간에 엄청난 빚이 생겼고, 인신매매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소년은 사장의 신뢰를 얻기 위해 6개월 넘게 착실하게 일했고, 새로 잡혀 온 소년들의 인신매매도 돕는다. 소년은 “어떻게 사람이 사람한테 이렇게 악할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사장은 대답 대신 자신의 가족들을 만나게 해주었다. 지독하게 가난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여유롭고 화목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장의 가족들은 소년이 그토록 바랐던 가족과의 행복한 모습이었다. 사장은 친구들을 고철 수집장에 버리고 소년과 소년의 가족을 위해 함께 돈을 벌러 떠나자는 제안을 한다.

이때 소년이 두 가지 선택을 두고 고민하는 마음은 심베리의 작품 [교차로에서]에 잔인할 만큼 잘 드러나 있다. 천사와 악마가 그림 속 주인공을 자신이 있는 쪽으로 이끌고 있다. 악마는 본능과 욕망을 대표한다. 소년이 자유를 얻고 돈을 벌기 위해 친구를 버리는 선택은 본능과 욕망의 반영이다. 악마는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하며, 현재의 욕구 충족에 초점을 둔다.

천사는 도덕적인 규범과 이상을 대표한다. 소년이 친구를 버리는 선택을 할 때, 천사는 양심과 도덕적인 판단에 호소한다. 그러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상황을 조금 다르게 보았다. 그의 명언 중 하나인 “우리 모두는 자신의 감성과 사고방식에 갇힌 죄수다”는 한 개인이 얼마나 개인적 경험에 의거하여 세상을 해석하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만약, 버리고 나오려는 사람이 친구가 아니라, 오늘 처음 본 이름도 모르는 노역자였다면, 소년은 같은 선택을 하면서도 더 적게 갈등했을 것이다. ‘오늘 처음 본 사람이 뭐가 중요해, 가족이 더 중요하지’라는 판단을 하면서 죄책감도 가지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인간 행위의 선함과 악함을 판단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언제나 감정적 해석을 하는 존재이다. 그렇게 믿음이 생기고, 확신이 생기며, 이는 행동으로 옮겨진다.

무엇을 통해 판단하고 있는가

심베리의 작품 [꿈]을 미술치료실에 방문한 내담자들에게 보여주고,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추측해보라고 했다. 첫 번째 내담자에게 “작가는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은 기억이 있다”는 가짜 정보를 주었을 때, “자신을 버린 어머니가 꿈에도 나오고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이 작가는 종교를 통해 구원받은 것 같아요”라는 설명을 들었다. 두 번째 내담자에게 “작가는 외도를 해서 이혼한 경력이 있다”는 가짜 정보를 주었을 때, “부인이 있음에도 젊은 여성에게 마음을 뺏겼던 자신을 반성하는 그림 같다”는 설명을 들었다. 나는 두 내담자에게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어떤 해석도 발표하지 않았고 관객이 자유롭게 그림을 감상하기를 기대했다는 설명을 했다. 그리고 한쪽으로 편향된 정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얼마나 다르게 만드는지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호해줄 수 있는 낙태에 찬성하나요?”와 “태아의 생명권을 빼앗는 낙태에 찬성하세요?”는 다른 결과를 만날 수 있는 질문들이다. 우리는 제공된 정보에 의지하여 판단하고, 그 판단의 배경은 ‘나’라는 한 개인의 경험과 감정이다. 자신의 입장에서는 분명히 옳다고 생각하는 무언가가 다른 사람에게는 틀릴 수 있음을, 당신과 나 사이에 그은 경계선을 조금만 흐리게 해도 우리가 덜 갈등할 수 있음을 기억하면 좋겠다. 모두가 좀 더 유연하게 사고하고 다양성을 인정한다면, 서로를 헐뜯고 비난하는 우리 사회의 목소리들이 지금보다는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 김소울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국제임상미술치료학회 회장이며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미술치료전공 겸임교수이자 가천대학교 조형예술대학 객원교수이다. 플로리다마음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치유미술관』 외 12권의 저역서가 있다.

202309호 (2023.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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