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출신 작가 밀란 쿤데라와 일본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여러 소설에서 야나체크에 관해 거론했다. 레오시 야나체크(Leoš Janáček)는 어떤 음악가일까.
▎1881년에 아내와 같이 찍은 젊은 야나체크의 사진. / 사진:위키피디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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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체크는 1854년에 체코 동쪽에 있는 모라비아 지역의 한 마을에서 태어나 1928년에 사망했다. 그의 대표 작품 [신포니에타]는 1926년에 작곡되었다. […] 어느 날 공원을 산책할 때, 야외음악당에서 연주회가 열리는 것을 본 그가 발을 멈춰 그 연주를 들었다. 야나체크는 느닷없는 행복감을 온몸으로 느끼며 [신포니에타]의 악상을 얻었다. 그 순간 자신의 머릿속에서 뭔가 폭발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선명한 황홀경에 휩싸였다고 술회했다. 당시 그는 큰 스포츠 대회를 위한 팡파르의 작곡을 의뢰받았는데, 그 팡파르의 모티프와 공원에서 얻은 악상이 하나가 되어 [신포니에타]로 태어났다. ‘작은 교향곡’이라는 뜻의 [신포니에타]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구성은 어디까지나 비전통적이다….”하루키의 유명한 소설 『1Q84』(2009) 제9장에 나오는 문장들이다. 주인공인 아오마메가 도서관에서 찾은 어떤 책 속 내용이다. [신포니에타]가 『1Q84』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는 것 같긴 하다. 구체적으로 어떤 기능을 하는지는 확인되지 않은 것 같다. 작가는 물론이고 하루키 연구자들 누구도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는다. 누마노 미쓰요시는 (이 소설에서 이 곡이 왜 소개되는지) 이해가 안 되는 상태에서 (곡에 관한) 여운이 남으며, [신포니에타]는 (소설에서) 지나치게 돌출된 느낌이라고(가토 노리히로 외, 『무라카미 하루키 1Q84 어떻게 읽을 것인가』, 예문, 2009, 203쪽) 말했다. 미쓰요시가 추측한, 하루키의 선곡 이유는 하나다. [신포니에타] 음향에서는 악기들이 개별적으로 잘 돋보이며, 이런 특성이 『1Q84』의 소설 플롯 구성법과 유사하다는 것. 『1Q84』 속 등장인물들도, [신포니에타]를 연주하는 악기들도 무리를 짓는 때는 있지만 개성을 잃지는 않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소설과 교향곡이 내면적으로 서로 닮았다는 판단인데, 하루키가 정말로 닮음을 고려해 선곡했는지는 미지수다.[신포니에타]는 『1Q84』의 벽두에 다음과 같이 소개된다. “택시의 라디오에서 FM 방송의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곡은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 정체에 말려든 택시 안에서 듣기에 어울리는 음악이랄 수는 없었다. […] 야나체크는 1926년에 이 작은 교향곡을 작곡했다. […] 아오마메는 1926년의 체코슬로바키아를 상상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오래도록 이어진 합스부르크가의 지배에서 해방된 이들은 카페에서 필젠 맥주를 마시고 쿨하고 리얼한 기관총을 제조하며, 중부 유럽에 찾아온 잠깐의 평화를 맛보고 있었다. 프란츠 카프카는 2년 전에 불우하게 세상을 떠났다. 곧이어 히틀러가 어디선지 불쑥 나타나 아담하니 아름다운 이 나라를 눈 깜짝할 사이에 덥석 집어삼켰는데, 그런 지독한 일이 일어날 줄은 당시 누구도 알지 못했다. 역사가 인간에게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명제는 ‘그 당시 앞일이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음악을 들으며 보헤미아 들판을 건너는 평온한 바람을 상상하고 역사의 존재 방식에 대해 두루 생각했다. […] 그녀가 눈을 감고 음악에 귀 기울였다. 관악기의 유니슨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음향이 머릿속에 들도록”(양윤옥 역, 문학동네, 2009/2022, 9~10, 12, 13쪽).『1Q84』의 이야기는 도무지 예측하기 어렵다. 1장, 심한 정체로 택시에서 내린 주인공 아오마메가 이상한 길을 통해 도달한 곳은 평행우주로 보인다. 평행우주(Parallel Universe)는 물리학 개념이지만, 대중문화에서는 지금 이곳과 다른 환경에서, 다른 사회적 신분을 가진 내가 살고 있다는 식으로 이해된다. [신포니에타]가 주인공을 이상한 세계로 인도한 걸까. 이상한 세계로 들어서게 될 주인공의 운명 비슷한 걸 [신포니에타]가 표현한 걸까.
이상하고 파격적인 세계를 상징하는 변칙적 교향곡?
▎하루키의 소설 『1Q84』에서 소개되어 소설과 함께 큰 인기를 끌었던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 음반. 하루키는 이 음반을 콕 집어서 소설에 적었고, 덕분에 일본과 한국에서 품절된 이 음반이 재발매되었다. [신포니에타]는 5악장이지만 연주 시간이 24분 정도로 짧다. 그래서 헝가리 작곡가인 벨러 버르토크의 다른 곡과 함께 수록되었다. / 사진:아마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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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가 [신포니에타]의 한 특성을 잘 알아서 그것을 이상하고 파격적인 세계의 상징 및 표현 수단으로 삼았던 걸까? [신포니에타]의 한 특성은 뭘까? 밀란 쿤데라는 『소설의 기술』(1986)에서 “야나체크가 교향곡의 전통적 형식을 파괴했”다고 적었다. 정말이지, [신포니에타]는 일반적이고 전통적인 교향곡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일단 금관악기 연주자가 22명에 이른다. 전통적 교향곡과 많이 다른, 흔치 않은 오케스트라 편성이다. 일반적인 교향곡을 구성하는 각 악장의 고전적 형식과 구성도 거의 따르지 않았다.쿤데라는 『소설의 기술』에서 야나체크의 음악과 비슷한 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다. 그가 생각하는 소설가는 (야나체크가 자신의 작곡에서 그렇게 했듯이) 소설기법의 자동성을 제거하고 소설적 장황함을 제거해 압축해야 한다. 쿤데라에 따르면 오늘날의 작곡가들은 머릿속 컴퓨터로 작곡의 천편일률적 규칙들을 전개하며 소나타 같은 걸 (쉽게도) 만들어내는데, 야나체크는 바로 그 컴퓨터를 깨뜨리려고 노력했다.야나체크가 컴퓨터를 깨트렸다면, 그 컴퓨터에는 독일적 생각과 미학이 프로그래밍되어 있었을 것이다. 독일적 컴퓨터는 대체로 변주와 발전, 전개의 원리로 작동한다. 쿤데라는 체코가 중부 유럽권의 나라였다고 보았다. 그는 체코와 체코 주변 중부 유럽 나라들이 가진 문화가 대단히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문화와 전통은 러시아에 의해 파괴되었다(김규진, 『밀란 쿤데라』, 북이십일, 2013, 223쪽). 차이콥스키 같은 일부 서구파·국제파 작곡가들을 제외한 러시아의 음악미학은 상기한 독일적 컴퓨터와 거리가 멀다. 밀란 쿤데라에 따르면 야나체크는 전개가 아니라 병치를 통해, 변주가 아니라 반복을 통해 작곡했는데, 이런 식의 작곡은 오히려 많은 러시아 작곡가, 특히 민족주의자들의 생각과 맞닿아 있다.밀란 쿤데라의 소설 자체가 한편으로 독일 음악적이다. 1990년에 프랑스에서 출간된 『불멸』 같은 소설에서 이야기는 ‘주제와 변주곡’이라는 음악 구성 원리에 따라 쓰였다. 음악 장르로서 ‘주제와 변주곡’은 독일인들이 가장 잘 만들며, 원리로서의 ‘주제와 변주’ 역시 독일인들이 가장 잘 실행한다. 합리주의적인 프랑스 작곡가들도 잘하는 편이다. 이 두 나라에서 멀리 떨어진 나라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잘하지 못하는 것 같다.야나체크는 반독일적이었고 반로마가톨릭적이었다. [신포니에타]와 같은 해에 작곡한 [글라골리트 미사]에 대해 당시의 체코 언론이 “늙고 신심 가득한 작곡가가 훌륭한 곡을 썼다”라고 평했는데, 야나체크는 사석에서 자신은 늙지 않았고, 신심도 없다고 말했다. 야나체크는 범신론자였고, 정통 기독교도가 아니었다. [글라골리트 미사]는 생계형 종교음악 작곡가의 작품일 것이다.야나체크는 이 곡에서 작곡가의 가톨릭교회에 대한 반감을 교묘히 표현했다. 많은 미사곡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알리는 메시지가 웅장하고 크게 표현되는 데 반해 여기서는 속삭임으로 전해진다. 교회 종소리가 경건히 울려야 할 부분에서는 양치기의 종소리가 들리며, 신에 대한 믿음을 표현하는 ‘크레도’에서는 독주 오르간이 매우 격렬한 곡을 시끄럽게 연주하고, 합창과 오케스트라도 원래 있어야 할 신앙고백적 분위기에 훼방을 놓으려는 듯한 느낌의 곡을 연주한다. 오르간은 시끄러운 정도를 넘어, 도발적이며 파괴‘적인 느낌마저 든다.‘글라골리트’는 초기 슬라브인들의 알파벳이다. 쓰이지 않아왔던 글라골리트 문자를 가사로 쓴 [글라골리트 미사]는 라틴어 가사로 불려야 할 정통 로마가톨릭의 미사곡과 많이 다른, 변칙적 미사곡이다. 야나체크는 미사곡과 교향곡 등에서 변칙을 보였던, 당대의 혁신가였다. 그가 시도한 음악적 변칙의 기저에는 그의 민족주의가 있었다.[신포니에타]가 혁신적이고 변칙적이라는 사실은 특이한 방식으로 증명되는 것 같다. 1970년대에 활동했던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인 ‘에머슨, 레이크 & 파머(Emerson, Lake & Palmer, ELP)’는 골드 앨범 9개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음반 4800만 장을 판매하는 등 상업적 성공을 거두면서도 매우 화려하고 혁신적인 사운드를 구사한다는 평을 받았다. 이 그룹의 데뷔 음반 명칭은 그룹 이름 그 자체였다. 그 음반의 세 번째 곡은 ‘칼날’이라는 뜻의 ‘Knife-Edge’인데,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 1악장의 주요 요소들이 여기서 사용되었다. 강력한 메탈 사운드로 탈바꿈된 [신포니에타] 1악장이 매우 인상적이다.
※ 김진호 -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의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