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이강호의 생각 여행(47) 세계인을 감동시킬 글로벌 매너 

 

팬데믹이 끝나자 세계 곳곳을 찾는 여행객들이 급증하고 있다. 한 나라의 수준과 품격을 좌우하는 건 모두 그 나라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다. 글로벌 수준의 매너와 에티켓을 지켜야 하는 이유다.

▎텍사스주 의회와 주지사 사무실이 있는 주청사(Texas State Capitol)는 워싱턴 D.C.의 미국 의사당보다 높다.
텍사스 대평원을 달린다. 알래스카를 제외하면 텍사스는 미국 본토에서 가장 큰 주(State)다. 우리나라의 거의 7배에 달하는 엄청난 면적이다. 텍사스에서 목격한 지구는 평평(平平)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저 멀리 지평선까지도 오롯이 평평하다. 달리고 또 달려도 지평선 끝까지 산세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고, 곧게 뻗은 고속도로 위로 각양각색 수많은 자동차가 저마다 목적지를 향해 계속 달려가고 있을 뿐이다.

오랜만에 텍사스 주도인 오스틴(Austin)에 도착하여 시내 중심부에 있는 톰슨 호텔(Thompson Austin)에 여장을 풀었다. 이 호텔은 오스틴의 유서 깊은 거리이자 엔터테인먼트 지구인 6번가(Sixth Street)와 가깝고 대부분의 시내를 걸어 다닐 수 있는 곳에 자리 잡았다. 호텔방 침대 머리 위에 ‘6번가는 결코 잠들지 않습니다: 6th Street never sleeps’라는 메모와 함께 귀마개가 놓여 있는 모습이 재미있다. 아니나 다를까 금요일 밤의 6번가는 모든 종류의 바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로 쿵쾅댔다. 경찰차가 막아놓은 차 없는 거리에선 수많은 인파가 주말의 열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오스틴에서 꼭 해야 할 일 10가지(10 Best Things to Do)’를 검색해보니 1위가 놀랍게도 박쥐 구경이다. 해가 질 때 오스틴 콩그레스 애비뉴 다리(Congress Avenue Bridge) 아래에서 100만 마리가 넘는 박쥐가 나타나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라고 안내돼 있다. 특이한 볼거리라고 생각해 해 질 녘에 맞추어 부지런히 다리에 도착했다. 다리 위에는 이미 엄청난 사람이 운집해 있었고, 다리 양쪽 공원에도 박쥐를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강 아래에는 다리 밑에 있는 박쥐를 구경하려고 카약 여러 대가 물 위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커다란 덩치의 유람선 여러 척이 다리 밑에 진을 쳤다. 두 시간 정도를 서서 기다리자 드디어 수많은 박쥐 떼가 무리 지어 휙휙 날기 시작했다. 특이한 구경거리였지만 100만 마리 넘는 박쥐가 하늘을 난다는 장관은 보지 못했다. ‘어떻게 이 다리에만 100만 마리 넘는 박쥐가 살고 있을까?’ 참으로 궁금한 마음을 품고 다음에는 이 멋진 장면을 배 위에서 보리라고 마음에 새겼다.

주말에는 오스틴 비지터 센터를 방문해서 버스 관광 안내를 받았다. 건물 앞에 재미있는 그림이 그려진 버스가 서 있어 물어보니 수륙양용 투어 버스라고 한다. 버스에는 ‘오스틴 오리 모험(AUSTIN DUCK ADVENTURES)’이라는 문구 밑에 ‘예, 우리는 물속으로 들어갑니다: YES, WE DO GO INTO THE WATER’라고 쓰여 있었다. 호기심이 발동해 버스를 탔다. 프로 가수라는 안내원과 기사가 너무나 재미있게 오스틴의 역사, 식당과 바, 건축물에 관해 설명한다. 버스가 드디어 ‘오스틴 호수’의 물 위로 오리처럼 둥실 떴다. 순식간에 배로 변신한 버스가 호수 위를 멋지게 달린다. 안내원이 들려주는 주변 풍경 설명도 놓치지 않는다. 탑승 시 나누어준 오리 주둥이 모양의 장난감에선 ‘꽥꽥’ 재미있는 소리가 난다. 안내원이 사람들을 놀래줘야 하니 오리 소리를 내라고 종용하는 모습, 이에 맞춰 소리를 내는 관광객들의 모습이 재미있다.

한국 기업, 미국 남부 발전의 일등 공신


▎2023년, 강물에 비친 보름달과 고층 건물들이 오스틴의 비즈니스 붐을 대변하고 있다.
테슬라, 구글, 델 등 글로벌 테크 기업들의 투자에 힘입어 오스틴 시내 곳곳에는 신형 건축물 건설이 한창이다. 텍사스 오스틴 주변을 비롯한 미국 남부 지역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많은 기업이 전략적 투자에 나서 공장을 짓고 있다. 이번에는 우리 고객사이기도 한 한국 대표 기업의 텍사스 현장을 찾았다. 평평하고 거대한 텍사스의 대지에 엄청나게 많은 크레인이 우뚝 서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이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활약하는 모습이 참으로 자랑스럽다.

여름이 되면 섭씨 45도가 넘는 황무지에서 땀 흘려 일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니 오래전 중동 사막의 건설 현장과 흡사하다. 그때의 추억이 떠오른다. 얼마나 많은 이가 땀 흘려 공장을 세우고 또 멋진 제품을 생산해낼까. 한껏 미래를 기대하며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텍사스에 오기 전 뉴욕에 들러 한 은행 지점장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미국 남부 지역에 많은 투자를 하고 공장을 건설하는 덕분에 좋은 사업 기회가 늘어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그 주변에 많은 협력 업체들도 함께 진출해 훌륭한 사업 기회를 갖게 됐다는 말도 이어졌다. 이 은행 지점장은 여러 차례 남부 지역으로 출장을 갔는데, 하루가 다르게 활기를 띠는 현장을 보면서 크게 감동했다고 한다.

다시 차를 달려 오스틴에서 댈러스(Dallas)로 향했다. 평탄한 평야에 곧게 뻗은 고속도로에는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수많은 자동차가 질주하고 있었다. 댈러스에서 가장 눈에 띄는 랜드마크이자 전망대인 리유니온타워(Reunion Tower)에 오랜만에 올라 파노라마 뷰를 감상하며 그간 도시가 얼마나 변했는지 돌아봤다. 입체적인 고속도로 인터체인지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자동차가 질주하고, 반대쪽으로는 댈러스를 상징하는 멋진 외관의 고층 건물들이 변함없이 병풍처럼 서 있다.

해외 출장과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오대양 육대주 나라나라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제각기 다르다. 어떤 나라 사람들은 행동하는 모습이 품격 있고 존경스러우나, 어떤 나라 사람들은 그와 반대로 행동한다.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며 선진국에 진입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글로벌 세계에서 존중받는 나라와 개인이 되기 위해서는 글로벌 상식과 매너를 점검하고 학습해두어야 한다. 누구나 다 잘 알고 있고 잘 행동할 것 같지만 실제 현실은 거리가 있다.


▎댈러스에서 가장 눈에 띄는 랜드마크이자 전망대인 리유니온타워(Reunion Tower).
초일류 유럽 기업의 글로벌 경영에 25년 넘게 참여하며 품격 있는 매너와 에티켓, 기업문화를 호흡하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 첫째, 배려와 존중의 문화를 소개하고 싶다. 30대 후반, 우리나라에 처음 진출하려는 글로벌기업의 한국 시장 CEO가 되기 위해 치렀던 면접 과정이 떠오른다. 마지막 관문인 회장단 면접을 위해 덴마크에 있는 그런포스(Grundfos) 그룹 본부에 초대됐다. 당시는 휴대폰은커녕 이메일도 없을 때다. 프랑스 파리를 경유해 덴마크 코펜하겐에 도착하니 이미 캄캄한 밤이었다.

그런포스에서 예약해준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여니 눈 아래 보이는 작은 호수에 백조가 노닐고 있었다. 참으로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다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아주 작은 공항에 내렸다. 군사용으로도 이용하는 카루프(Karup) 공항이다(지금은 레고그룹 본부가 있는 빌룬트(Billund) 국제공항을 주로 이용한다). 이윽고 엄청난 규모의 공장에서 생산 현장과 R&D 시설, 교육 시설 등을 돌아본 후 인사담당 수석부사장을 만났다.

회사와 인연을 맺기 위해 만나야 하는 첫 번째 사람은 대개 인사부서의 임직원이다. 이들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그 회사의 이미지를 결정하게 된다. 내가 처음 만난 그런포스 그룹 인사담당 수석부사장은 키가 거의 2m 가까이 되는 장신에 영화배우 같은 미남이었다. 멋진 신사가 무척이나 정중하고 친절하게 안내하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았다. 멀리 한국에서 덴마크를 찾아온 한 청년에게 보여준 세련된 매너와 배려심이 나와 그 회사가 인연을 맺게 된 첫 단추였다.

점심 식사 후에 그가 회장단 면접을 위해서 보드룸(Board Room: 이사회의실)으로 친절히 안내했다. 회의실에는 그룹 회장과 부회장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각 분야의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수석부회장들이 함께 자리했다. 한 나라에서 자사 경영을 책임질 사람을 면접하는 자리다. 그런포스 그룹이 사람을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는가를 잘 보여준 장면이었다. 면접은 자그마치 다섯 시간에 걸쳐 커피 브레이크까지 끼워 넣어 진행됐다. 한 사람을 면접하려고 그룹의 모든 경영진이 오후 시간 전체를 할애한다는 것 자체가 극히 드문 존중과 배려의 현장이었다.

그 후 한국 시장의 초대 CEO로 선임돼 정말 원 없이 일했다. 훌륭한 실적으로 ‘아름다운 유산’을 남기며 25년 넘도록 책무를 다했다. 첫 만남에서 느꼈던 강력한 존중과 배려의 분위기가 굳건한 동기부여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에피소드 하나가 떠오른다. 취임한 지 약 6개월 후에 덴마크에서 열리는 세계 사장단 회의에 참석했는데, 첫날 만찬 때 그룹 회장 옆에 내 자리가 준비돼 있어 조금 어리둥절했다. 처음 부임한 사장 자리를 회장 바로 옆에 마련한 것은 배려의 일환이었다. 또 한국인 CEO가 덴마크 그룹 본부를 방문할 때마다 항상 본부 광장에 대형 태극기를 게양해주었다. 이 역시 가슴이 따뜻해지는 감동 있는 배려였다.

세계를 선도하는 리더의 언행


▎오스틴에서 가장 유명한 박쥐 떼를 구경하려고 구경꾼들이 몰려들고 있다.
둘째, 사교상의 마음과 몸가짐인 에티켓(étiquette), 일상생활의 예의와 절차인 매너(manner)다.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본 요소인 의식주(衣食住)에 비유해보자. 사람들이 처음 만날 때면 의복(衣) 등 서로의 외모(appearance)를 보고 첫인상을 판단하곤 한다. 그러므로 의복은 관계 형성에서 중요한 첫 관문이라 할 수 있다. 덴마크에서 일주일 정도 머물며 세계 사장단 회의와 각종 행사에 참여했는데, 시간, 장소, 상황에 어울리는 드레스 코드(dress code)가 일정표에 항상 표기돼 있었다. 30대 초반에 뉴욕 주재원으로 일할 때는 드레스 코드가 무엇인지 잘 모른 채 행사에 참여해 몹시 당황했던 경험이 있었다.

때와 장소에 맞는 의복을 갖추는 것은 중요한 글로벌 상식이다. 평소에 관심을 두고, 필요하면 간단한 교육을 받아두는 것이 좋다. 예를 들면 만찬에 참석할 때는 어두운 색상의 양복인 다크 슈트(dark suit)를 입는 게 상식이다. 회의 시 가장 많이 착용하는 ‘스마트 캐주얼’은 비즈니스 정장과 캐주얼 사이 복장을 말하는데, 많은 사람이 캐주얼로 혼동하곤 한다.

다음으로 식사(食)하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를 대강 추정해볼 수 있을 만큼 식사 자리가 무척 중요하다. 국제사회에서도 식사 자리에서의 에티켓을 보고 품격을 가늠할 수 있다. 포크와 나이프, 물과 빵의 위치를 알고, 스푼이나 포크를 이용할 때 접시에 부딪치는 소리가 크게 나지 않게 하는 등 기본적인 상식부터 지켜야 한다. 세련된 식사 매너와 와인을 선택하고 마시는 모습 등을 보며 그 사람이 국제 무대에서 얼마나 큰 활약을 할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있다.

다음은 해외여행 시 호텔에서의 매너다. 주(住)에 비유할 수 있다. 호텔 복도나 로비에서 너무 크게 소리를 지른다거나 큰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은 주위 사람들에게 결례일 수밖에 없다. 한식이 먹고 싶다고 호텔방 안에서 냄새 나는 음식을 해 먹는 것도 바람직한 행동은 아니다. 잠을 자고 난 다음에도 침대보나 수건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나오는 게 좋다. 청소하는 사람이 볼때 어느 나라 사람인지 그 품격을 알게 해주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아침에 침대나 베개 위에 약간의 봉사료를 놓아두고 외출하는 것도 좋은 매너다. 유럽의 최고급 호텔에서 사람들의 의상이나 식사하는 모습, 호텔에서 생활하는 모습 등을 보며 세계를 리드하는 훌륭한 품격을 가진 이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금방 알 수 있다.


▎댐을 막아 형성된 레이크 오스틴(Lake Austin)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
마지막은 품격 있는 언행이다. 세계를 선도하는 기업의 리더들은 언행에 품위가 있다. 그들이 말하는 모습, 행동하는 모습, 약속을 지키는 모습은 그 나라의 품격을 드러낸다. 평생 관찰해온 바로는 성공한 사람들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품격 있는 언행을 한다. 스칸디나비아와 영국 국민은 글로벌 무대에서 품격이 훌륭하기로 칭찬이 자자한 이들이다.

최근 해외 경제 잡지를 펼쳐보니, 코로나 팬데믹 이후 급증하는 국제 여행객들이 비행기 안에서 지켜야 할 매너와 에티켓에 관한 기사가 실려 있었다. 비행기에서도 주위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품격 있게 행동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한 가지 예를 들면, 화장실을 사용한 후에 물을 너무 쏟아놓은 바람에 뒤에 들어간 승객이 사용하기 불편할 때가 있다. 세면대를 쓰고 나면 사용한 페이퍼 타월로 깨끗이 정리하고 나오는 것이 뒷사람을 위한 배려이고 예의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공항에는 세계 방방곡곡으로 여행을 떠나려는 관광객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세련된 매너와 에티켓을 지키자. 세계인에게 멋지고 품격 있는 한국인이라는 평가로 사랑받고 존경받도록 하자. K-에티켓과 매너를 세계 최고의 품격으로 승화하자!

※ 이강호 - PMG, 프런티어 코리아 회장. 덴마크에서 창립한 세계 최대 펌프제조기업 그런포스의 한국법인 CEO 등 37년간 글로벌기업의 CEO로 활동해왔다. 2014년 PI 인성경영 및 HR 컨설팅 회사인 PMG를 창립했다. 연세대학교와 동국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고, 다수 기업체, 2세 경영자 및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경영과 리더십 코칭을 하고 있다. 은탑산업훈장과 덴마크왕실훈장을 수훈했다.

202311호 (2023.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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