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동네 학원에서 시작해 연 매출 2500억원의 에듀테크 기업으로 성장한 데는 ‘디지털’과 ‘글로벌’이라는 키워드가 존재한다. 양태회 비상교육 대표는 사교육과 공교육을 넘나들며 ‘저비용·고효율 자기주도적 학습환경’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비상교육은 작은 출판사에서 시작해 국내 대표 에듀테크 기업으로 성장했다. 양태회 대표는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더 혁신적인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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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은 서울 마포구의 작은 보습학원 ‘길잡이학원’이었다. 한 학기 분량의 강의 자료를 묶어 책으로 냈는데, 학원가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1997년 국어 교재 전문 출판사 ‘비유와상징’을 설립했고, 과목과 학령층을 넓힌 끝에 2009년 ‘비상교육’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비유와상징’, ‘한끝(한 권으로 끝내기)’, ‘오투’, ‘완자(완벽한 자율학습서)’, ‘수박씨닷컴’ 등은 2000년대 중고등학교를 다닌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학습서와 온라인강의다.2008년 6월 증시에 상장한 이후 비상교육은 교과서, 참고서, 학원 교육, 홈러닝, 자기주도 학습에 이르기까지 공교육과 민간교육을 가리지 않고 모든 교육 영역에 걸쳐 혁신을 제시해왔다. ‘에듀테크’를 회사의 미래로 보고 역량을 집중했는데, 키워드는 ‘디지털’과 ‘글로벌’이다. 2021년 수출용 원격교육 플랫폼 마스터케이(Master K)를 오픈했고, 2022년에는 메타인지 기반 완전학습시스템 ‘온리원(OnlyOne)’을 론칭했다. 올해 선보인 ‘양방향 교실 수업 시스템(ICS)’에도 혁신 기술이 담겼다.11월 14일 서울 구로구 G밸리 비상교육 본사에서 만난 양태회 대표는 “학령인구 감소, 학습니즈 변화, 4차 산업혁명 등 급속한 변화에 따른 전략과 저비용·고효율에 맞춘 기획, 디지털화를 위한 지속적인 투자가 우리 비상교육의 경쟁력”이라며 “에듀테크를 기반으로 교육 시스템을 세계에 보급해 선진국과 후진국 간의 교육격차를 줄일 것”이라고 말했다.
에듀테크로 데이터 구축, 양방향 수업 진행양태회 대표는 지금도 가끔 ‘386 운동권 출신들의 학원행’류의 기사에 호출되곤 한다. 고려대 불문과 졸업 후 1993년 서울 마포구에 길잡이학원을 열었는데 그때 동업자 중 한 명이 정청래 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다. 양 대표는 “학원 교육이 비용 대비 효과를 내고 있는지, 수업 집중도는 어느 정도인지 등 문제의식이 많았다”며 “그런 부분을 시스템화하고 구체화하는 것, 그래서 ‘비용의 효과’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사교육시장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하지만 학원은 일부 지역에 국한된 시장이었다. 1997년 12월 국어 전문 출판사 비유와상징을 창업하면서 출판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학원용 교재가 전무하던 시기, 중등 국어 ‘한끝’이 학습 참고서 시장에서 대박을 쳤다. 과학학습서 ‘오투’, 수학문제집 ‘개념+유형’, 자율학습교재 ‘완자’ 등이 잇따라 성공하면서 비상교육은 사교육시장에서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지금까지 누적 1억 권 이상의 학습교재를 팔았는데, 1000만권 넘게 판매한 메가 브랜드가 6개나 된다.비상교육의 사업 분야는 출판 부문(국정교과서·검인정교과서·교재), 러닝 부문(스마트학습), 티칭 부문(학원·기관), 기타 부문(플랫폼·글로벌) 등으로 나뉜다. 현재 교과서·교재 콘텐트 사업이 주력이지만 양방향 수업 플랫폼을 활용한 글로벌 시장 진출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양 대표는 “사실 우리 사업은 공교육, 즉 학교교육 현장에 타깃팅이 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 교육은 수많은 예산을 쏟아부었음에도 여전히 고비용·저효율 환경이고, 교육 현장에선 교사의 일방적인 티칭이 중심이 되고 있다”며 “공교육이든 사교육이든 저비용·고효율 학습 환경을 만들고, 학생이 자기주도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공하는 것이 우리의 비전”이라고 말했다.일상적인 솔루션으론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 양 대표는 디지털전환에서 해법을 찾았다. 2019년 선보인 실시간 데이터 기반 양방향 수업 시스템 ‘올비아(AllviA)’가 대표적이다. 올비아는 교사의 전자칠판과 학생들의 태블릿PC를 양방향으로 연결해 수업 전·중·후 학생들의 학습과 행동 데이터를 수집한다. 실시간 소통과 피드백이 가능해 이전과 다른 새로운 교실 환경을 만든 것으로, ‘티칭’이 ‘코칭’으로 바뀌게 된다는 설명이다.그는 “교사가 수업 중 질문을 하면 학생들이 자신의 스마트기기를 사용해 답변하고, 교사는 제출된 답에서 도출된 데이터로 학생들의 수준을 파악할 수 있다”며 “수업이 한방향에서 양방향 소통으로 확장되는 것으로, 학생들의 수업 참여도가 올라가고 교실의 주도권이 다시 교사에게 돌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는 올비아 플랫폼을 기반으로 ‘양방향 교실 수업 시스템(ICS, Interactive Class System)’을 선보이기도 했다.이 같은 과정으로 만들어진 비상교육의 대표적인 에듀테크 상품은 유아 학교 ‘누뿔’, 유아 영어 학습 프로그램 ‘윙스(Wings)’, 초등 영어 프로그램 ‘엘리프(ELiF)’, 초중등 자기주도 영어학습 프로그램 ‘잉글리시아이(englisheye)’, 초등 수학 프로그램 ‘매스 얼라이브(Math Alive)’, 한국어 원격 교육 플랫폼 ‘마스터케이(master k)’, 옥스포드 디스커버 시리즈 등이다.
“혁신 기술 위해 R&D 투자는 계속된다”
▎비상교육의 혁신적인 도전과 성장에는 수평적인 조직문화도 한몫한다. 직원들이 스마트클래스에서 프로그램을 시연하는 모습과 사옥에 마련된 교육역사관과 휴담. / 사진:비상교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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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즈캠프, 수박씨닷컴 등 초중등 학습 브랜드를 통합, 업그레이드해서 출시한 ‘온리원’도 교육업계에서 화제다. 양 대표는 “기존 동영상 강의는 그림이나 영상을 ‘보여주는’ 수준으로, 학생들이 ‘공부 착각’에 빠져들게 했다”며 “메타인지 기반 스마트 학습 시스템 온리원은 학습 위치 진단을 시작으로 계획을 짜고 부족한 부분을 채운 뒤 마지막 피드백을 통해 공부를 완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말했다.지난해 9월 선보인 마음성장 프로그램 ‘피어나다(PIONADA)’는 사교육 시장의 범주를 넘어섰다는 평가다. 전문 심리상담과 1:1 학습 코칭을 결합해 학생들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디지털 대면 코칭 플랫폼으로, 8명으로 구성된 모둠 친구들과 함께 심리 학습전문 코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양 대표는 “사춘기 아이들의 정체성을 찾아주는 일인데, 학교나 교육부가 하지 않아 우리라도 하자는 생각에 개발했다”며 “아이들이 자존감과 효능감 등을 찾아 스스로 삶의 비전을 설계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말했다.비상교육은 지난해 매출액 2530억원, 영업이익 35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액은 17.37% 늘었으나 영업이익은 54.19% 줄었다. 올해 상반기에는 매출액 1147억원, 영업손실 13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0.28% 줄었고, 영업이익은 적자 전환했다. 특히 출판 부문만 영업이익을 내고 러닝, 티칭, 기타 부문에서는 모두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2017년을 기점으로 영업이익은 점점 하락세다.양 대표는 “우리의 화두는 디지털과 글로벌이다. 이를 위해서는 공격적인 투자, 가치 있는 투자가 불가피하다”며 “몇 년 새 프로그램 개발이 집중된 데다 2025년 정부가 도입 예정인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 개발도 병행하면서 투자가 늘었다. 앞으로도 연구개발비는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팬데믹을 겪으면서 전 세계가 비대면 시스템을 경험하게 됐고, 시장이 급속히 커지고 있다”며 “십여 년 전부터 기술개발에 노력해온 우리 회사는 지금 기술과 제품의 연결고리가 만들어져서 완성품 시스템이 구축되고 있다”고 말했다.양 대표는 “국내 에듀테크 기술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지만 ‘사교육’이라는 이유로 학교 시스템에 진입하지 못하면서 많은 기업이 여전히 소기업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교육부가 AI 디지털 교과서 제작부문에서 민간기업에 문을 열어준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며 “2025년 도입되는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가 에듀테크 진화의 모멘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비상교육은 에듀테크 해외사업을 적극 확대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인 홀론아이큐에 따르면 글로벌 에듀테크 시장은 2021년 2680억 달러 규모에서 2025년 4040억 달러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비상교육은 최근 한국어 통합 교육 플랫폼 ‘마스터케이’를 앞세워 베트남, 인도, 오스트리아, 일본 등에 수출하고 있다. 향후 국가별로 콘텐트를 자유롭게 탑재할 수 있는 플랫폼 시스템을 개발해 수출한다는 계획이다.
기업 비전 실현 위해 ‘직원 동의’ 과정 거쳐비유와상징 설립 25년 만에 비상교육은 비상캠퍼스, 비상교과서, 베트남 현지법인 등 3개 계열사와 테라북스, 팡스카이 등 2개 관계회사를 거느리게 됐다. 양 대표는 “우리의 비전은 ‘세계 모든 교실을 디지털화하는 것’으로, 내용적으로는 저비용·고효율 학습 환경과 자기주도학습 환경을 만드는 것인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내부의 동의가 중요했다”며 “우리는 살면서 급훈, 교훈, 사훈 등을 접했지만 그것들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기업에서도 쌍방향 소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창립 20주년에 앞서 일곱 가지 지향점을 담아 선포한 ‘우리의 믿음’ 선정 과정은 비상교육의 조직문화를 한눈에 보여준다. 양 대표를 포함해 600여 명 전 직원이 8개월 동안 개별 인터뷰와 분임토론을 거쳐 모두 111개 문장을 도출하고, 이를 7개 믿음으로 정리한 것. ‘당연한 것도 낯설게 본다’, ‘현장에서 시작해서 현장을 넘어선다’, ‘오늘 치열한 고민이 내일 최선의 결과가 된다’, ‘내가 즐기면서 하는 일이 우리를 성장시킨다’, ‘나는 동료가 나의 성장을 위한 동반자임을 믿는다’, ‘나는 성숙한 마음으로 경청하고 다름을 존중한다’, ‘나는 내가 선택한 이곳에서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등이다. 양 대표는 “자신이 하는 일에 가치를 부여하면 조직에 몰입하게 되고, 이는 성과로 이어져 결국 사회를 변화시킨다. 내가 선택한 노동의 가치를 잃지 않도록 회사와 직원 모두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비상교육은 2018년부터 임직원 모두 CP(Creative Planner)라는 직함을 쓰고 있다.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른 일을 하는 동일한 지위의 기획자’라는 취지다.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하는 문화를 만들려다 보니 여러 단계의 직급이 거추장스러웠던 것. 직급을 5단계로 줄였다가 ‘우리의 믿음’ 선포 당시 이마저도 하나로 통일했다. 양태회 대표 역시 회사에서는 ‘양 CP님’으로 불린다.- 조득진 선임기자 chodj21@joongang.co.kr _ 사진 최기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