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잘하고 똑똑한 이들이 전 세계에서 모여든다는 미국 실리콘밸리. 이곳에서 20년 넘도록 엔지니어로 커리어를 쌓아온 한국인이 있다. 한기용 Grepp CTO를 만나 실리콘밸리에서의 경험과 성장에 대해 경청했다.
실리콘밸리는 세계 최고의 인재들이 모이는 창업의 본산이다. 요즘은 실리콘밸리에서도 한국인을 많이 만나볼 수 있다. 한국 출신으로 현지에 진출해 혁신적 비즈니스로 창업하고 세계적인 기업에서 활동하는 이도 많다. 하지만 20년 전만 해도 실리콘밸리에 진출한 한국인은 많지 않았다. 무한 경쟁이 매일같이 펼쳐지는 정글 같은 이곳에서 성공은 고사하고 자리 잡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곳에 무려 23년 전에 진출한 한국인이 있다. 글로벌 IT 기업에서 디렉터 자리까지 올랐고, 창업과 실패, 성공을 모두 맛본 엔지니어다. 현재 Grepp에서 CTO를 맡고 있는 한기용 님을 만나 실리콘밸리에서의 경험과 성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상인: 반갑다. 이렇게 시간 내주어 고맙다.
한기용: 반갑다.
이: 첫 직장 생활을 실리콘밸리에서 시작했나?
한: 아니다. 처음엔 병역특례 요원으로 삼성에서 5년 조금 넘게 근무했다. 지금으로 치면 기업이나 관공서들을 대상으로 하는 B2B 소프트웨어 솔루션 작업을 했다.
이: 삼성은 당시에도 지금도 한국 최고의 회사인데, 어떤 계기로 미국 진출을 생각하게 됐나?
한: 삼성은 당연히 훌륭한 조직이다. 하지만 당시에 나와는 조금 안 맞는 부분이 있다고 느꼈다. 삼성에 들어간 지 1년 만에 특진을 했는데, 더 열심히 한다고 해서 1년 후 또 특진이 될 것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보다 시간이 지나야 승진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병역 의무 이행 후 이직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당시 고인이 되신 김정주 넥슨 회장과 연이 닿아 그분께 장학금도 받고 있었다. 삼성 이후에 넥슨으로 옮기기로 어느 정도 이야기가 돼 있었다.
이: 그때는 넥슨이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던 시기인데,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한: 그렇다. 그때 넥슨으로 갔다면 큰돈을 벌 수도 있었을 거다. 대학 동기 중 윤여걸이라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가 스탠퍼드 유학 후 마이사이몬(MySimon)이라는 회사를 창업했는데, 1999년에 CNET이라는 회사에 7억 달러에 매각했다. 이후 와이즈넛(Wisenut)이라는 검색 회사를 만들면서 내게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다. 선택지가 두 개가 된 것이다. 당시 아내와 나는 삼성에서 만난 사내 커플이었다. 아내와 상의한 결과 ‘지금 아니면 우리가 또 언제 실리콘밸리에 갈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 함께 미국행을 선택했다. 미국으로 가게 된 만큼, 김정주 회장께 받았던 장학금은 돌려드리려고 했는데, 미국에서 잘 살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같이 일하자며 받지 않으셨다.
이: 그렇게 가게 된 실리콘밸리 첫 회사는 어땠나?
▎한기용 Grepp CTO가 후배 엔지니어들과 디자이너들을 상대로 커리어 관리와 업무 노하우에 대해 강연하는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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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미국에서 처음 일하면서 생활하다 보니 정신없이 지냈지만 일 자체는 재미있었다. 그때는 검색엔진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던 시기였고, 프로덕트 자체도 나쁘지 않았다. 창업자가 감이 상당히 좋았기 때문에 애초에 프로덕트를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프라스트럭처 위에 만들어 트래픽을 확보하고, 이것을 그들에게 파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인터넷 버블이 꺼지며 경기가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9·11 테러가 발생해 시리즈 B 투자를 약속했던 이들이 모두 자취를 감췄다. 결국 룩스마트(Looksmart)라는 회사에 인수됐고, 월급 외에 지분으로는 사실상 거의 수익을 얻지 못했다. 처음 해보는 백엔드 엔지니어링 작업이나 검색엔진을 만드는 것 등은 모두 좋았다. 하지만 스타트업의 성공이라는 측면에선 안 좋은 경험이었다.
이: 시기상 나쁘지 않았던 비즈니스였지만, 외부 요인 때문에 아쉽게 막을 내린 케이스인 것 같다. 와이즈넛 이후에는 룩스마트를 따라갔나?
한: 그 회사로 가기보다는 와이즈넛 멤버 4명(엔지니어 2명, 비즈니스 1명, 마케팅 1명)과 힘을 합쳐 창업의 길을 선택했다. 인베리토(Inverito)라는 회사인데, SEC 파일링을 검색할 수 있는 검색엔진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 정보를 공짜로 접속할 수 있는 툴이 이미 있었고, 사용자들이 돈을 내고 쓰려는 의지가 크지 않았던 분야기도 했다. 시장 접근을 잘못한 거다. 또 내부 거래 정보를 편리하게 확인할 수 있는 인사이더스쿠프(Insiderscoop)라는 서비스를 만들어 판매해 어느 정도 사용자를 모았는데, 공동 창업자들끼리 사이가 안 좋아졌다. 모두가 동등한 지위를 갖고 있었지만, 서로의 역할 분담이 부족해 발생한 일이었던 것 같다. 모두 같은 회사에서 일했던 사람들이어서 합이 잘 맞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결혼과 연애가 다르듯, 실제 창업을 해보니 생각과 다른 부분이 많았다.
이: 적절한 비유인 것 같다. 연애 때와 달리 결혼 후에는 싸울 일이 더 많아질 수 있다. 싸우더라도 잘 화해하고 넘어가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말이다.
한: 그렇다. 그렇게 인베리토를 정리하고 와이즈넛을 인수한 룩스마트로 갔다. 그런데 회사에 조인한 지 9개월 만에 검색 사업을 접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래서 야후(Yahoo)로 자리를 옮겼다. 야후에 가기 전까지 미국생활 첫 4년은 꽤 힘들었다. 회사 상황이나 경기도 안 좋았을뿐더러 영주권을 받지 못해 체류 신분도 불안정했고, 당시 첫아이도 태어나 여러모로 정신이 없었다.
이: 격하게 공감한다.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 주로 스타트업 회사에 있다가 야후 같은 글로벌 IT 기업으로 갔을 때 느낌은 어땠나?
한: 창업을 해본 관점에서 보자면,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월급 제때 나오지, 해야 할 일들도 정해져 있지, 리소스도 모두 있지, 굉장히 감사한 마음으로 다녔다. 창업해서 망해본 경험이 없었다면 그 정도로 고마워하며 일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이: 야후에서도 검색 쪽에 있었나?
한: 그렇다. 야후에 다니면서 조직이 계속 성장했고, 배울 점이 많은 좋은 매니저들과 일할 수도 있었다. 이전에는 훌륭한 매니저와 일할 기회가 없어 몰랐는데, 어떤 사람과 일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경험인지 처음 느꼈다. 사람이 좋은 건 당연하고, 조직에서 힘을 갖고, 결정을 얼마나 명확하게 내리고 전달하는지가 좋은 매니저의 모습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이: 들어보니 대기업과 스타트업에서 했던 고민의 종류가 다른 것 같다.
한: 그렇다. 스타트업은 기본적으로 하루하루 생존에 신경 써야 한다. 부족한 인력과 리소스를 가지고 어떻게 하면 매일 살아낼 수 있을지를 치열하게 고민한다. 하지만 대기업에서는 생존에 대한 문제보다는 ‘어떻게 경쟁력을 유지하고 혁신할 것이냐’가 중요하다. 또 대기업은 아무래도 똑똑한 사람이 많이 몰려 있는 집단이다보니, 내부적으로도 항상 경쟁해야 한다. 그런 만큼 의사결정 과정도 느리고 정치적인 부분도 없지 않다. 야후에 다닐 때도 ‘대기업과 나는 안 맞는구나’를 계속 느꼈다.
이: 디렉터 레벨까지 올라간 분이 대기업과 맞지 않는다니 조금 의외다.
한: 하루하루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어야 하는데, 지낼수록 너무 지루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동료들이나 후임들도 시간이 지나 모두 Vice President 레벨까지 승진했고, 나도 계속 있었다면 그 정도까지는 올라갔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때 깨달음을 얻었다. 거창한 꿈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루하루 재미있는 일을 하는 것, 그 일을 하면서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에 대한 갈망이 내게 있다는 것이었다.
이: 2010년경에 접어들면서 검색엔진 경쟁에서 야후도 어려운 시기에 진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정확히 말하면 2008년경부터 대량 정리해고가 시작됐다. 6개월에 한 번씩 1000명, 2000명이 해고됐다. 회사 분위기가 이렇게 망가지기 시작하면 뛰어난 사람들이 먼저 다른 곳으로 이직하게 마련이다. 야후는 매년 3월에 보너스를 줬다. 회사를 관두기 1년 전쯤, 아내에게 내년 3월에 보너스를 받고 회사를 관둘 것이라고 말했고, 정말로 그 시점에 야후를 나왔다.
이: 야후 다음에는 어디로 갔나?- 다음 호에 2편이 이어집니다.
※ 이상인 - 이상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현재 Google 본사에서 YouTube 광고 디자인 시스템을 리드(Staff designer)하고 있다. Microsoft 본사, 클라우드 인공지능 그룹의 플루언트 디자인 스튜디오를 총괄했고, Deloitte Digital 뉴욕 오피스의 창립 멤버로 근무했다. 디지털 에이전시인 R/GA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했다. 저서로는 『디자이너의 생각법; 시프트』 외 세 권의 베스트셀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