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구성원 중 72%가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이고 2%만 기독교도다. 사우디아라비아는 5%에 해당하는 80만 명, 이집트는 10%인 900만 명이 기독교도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85살 나이에 나치의 탄압을 피해 오스트리아 빈에서 영국 런던으로 망명했다. 자유롭게 죽기 위한 망명이었다. 지그문트는 쇤베르크와 같은 현대 음악가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 사진:위키피디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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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이 유전적으로 같은 계통의 쥐를 서로 다른 어미가 키우게 했더니 공포 반응이 강한 쥐와 약한 쥐가 양육되었다(사마키 에미코 외, 『인간 유전 100가지』, 중앙에듀북스, 2010). 사회문화적 요인들은 아이들의 학업 성취도는 물론 비만 같은 육체적 특성에도 영향을 준다(Oulhote/Grandjean, Association Between Child Poverty and Academic Achievement. JAMA Pediatrics, 170(2), 2016; Datar/Nicosia, Assessing Social Contagion in Body Mass Index, Overweight, and Obesity Using a Natural Experiment. JAMA Pediatrics, 172(3), 2018). 이처럼 인간 특성이 만들어지는 데는 후천적 환경이 중요하다. 인간 특성 중 중요한 게 지식 상태다. 많이 잘 배운 이들이 성공할 가능성이 큰 현대사회에서 교육 환경과 방식은 매우 중요한 후천적 환경이다. 지구상 여러 인간 집단의 교육 방식 중 유대인의 방식이 특히 주목받고 있다. 성과가 있어서다.1901년 시작된 노벨상의 역사에서 2010년까지 상을 받은 개인 중 184명이 유대인이다. 노벨상 전체 개인 수상자의 1/4에 육박하는 수치다. 경제학 분야는 65%, 의학 분야는 23%, 물리학 분야는 22%가 유대인이다(안진태, 『역사적인 민족 유대인』, 새문사, 2011). 노벨상이 아니더라도 유명 유대인은 많다. 예수 그리스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레오나르도 다빈치,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 『돈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 철학자 스피노자,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 영국 총리 벤저민 디즈레일리, 카를 마르크스,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 프란츠 카프카, 화가 모딜리아니, 찰리 채플린, 경제학자 폴 사무엘슨, 미국 외교관 헨리 키신저, FRB 전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과 벤 버냉키, 재닛 루이즈 엘런, 놈 촘스키, 금융인 조지 소로스,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IMF 전 총재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프랑스 전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 등이 유대인으로 알려졌다(박재선, 『세계를 지배하는 유대인 파워』, 해누리, 2011).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유대인 파워가 매우 크다.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 로린 마젤, 유진 오르만디, 다니엘 바렌보임 등,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 바이올리니스트 야샤 하이페츠, 이츠하크 펄먼, 핀커스 주커만 등을 거론할 수 있다. 대중음악계에도 닐 세다카, 스티브 로렌스, 레슬리 고어, 밥 딜런, 레너드 코헨, 캐롤 킹, 빌리 조엘, 사이먼 & 가펑클,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올리비아 뉴튼 존 등 꽤 많은 유대계가 있다. 뮤지컬은 유대인이 개척한 장르다. 미국 7대 메이저 영화사 가운데 6개를 유대인이 설립했다(박재선, 문단·영화계·대중연예계·음악계에서 수없는 스타들 배출하며 영향력 행사, 월간조선, 2009). 이쯤 되면 우리는 무조건 유대인의 모든 걸 배워야 할 듯하다.하지만 배워도, 따라 해도 안 되는 게 있지 않은가. 역사에서는 조건도 중요하지 않은가. 일단 생물학적 조건이나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도 중요한 것 같다. 그런데 이것을 중시하지 않는 이들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17세기 영국 철학자 존 로크는 ‘비어 있는 테이블’ 혹은 ‘빈서판’(tabla rasa) 개념을 제안했다.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백지상태에 양육, 교육, 환경이 특별한 방식으로 정보를 채워 인간성이 만들어진다는 생각이다. 양육의 강조는 근대 유럽 주류 사회과학의 기조였다. 카를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 본성은 각 개인에 내재하는 추상물이 아니다. 현실에서 그것은 사회적 관계들의 총체이다.” 그의 관점에서 볼 때 사회적 관계들의 총체를 완전하게 변화시키면 인간 본성도 바꿀 수 있다(피터 싱어, 최정규 역, 『다윈주의 좌파』, 이음, 2011). 인간 본성을 부정하는 좌파들은 인간을 이해하는 데 생물학적 관점이 무용하다고 말한다. 러시아 혁명가 레닌에게 “생물학적 개념을 사회과학의 영역으로 들여오려는 시도는 아무 의미 없는 짓”이다(피터 싱어).
과연 그럴까. 미국의 물리학자이자 인류학자인 그레고리 코크란과 헨리 하펜딩은 아시케나지 유대인의 지능이 다른 인간 집단에 비해 높다고 말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대대로 지능이 높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아시케나지 유대인은 주로 독일과 폴란드에서 살았던 백인들이었다. 이들의 평균 IQ는 112~115로, 유럽인 표준 IQ인 100보다 높으며, 이것은 민족 혹은 인간 집단으로서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지능지수다. 저명한 과학자 중 유대인의 수는 미국과 유럽 인구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비율로부터 기대되는 수준보다 대략 10배쯤 많다(코크란 & 하펜딩, 김명주 역, 『1만 년의 폭발』, 글 항아리, 2010).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손자 루치안 프로이트의 [Three Studies]. / 사진:위키피디아 커먼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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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유대인, 특히 미국의 유대인은 사회적 조건도 남달랐다. 그들은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을 피해 미국에 이민 온 이들이자 그들의 후손들이었다. 히틀러가 이끄는 독일의 나치는 1933년부터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까지 민간인 유대인 600만 명을 죽였다. 앞에서 언급했던, 유명 유대인 중 20세기 이후 사람들은 이 학살을 피해 미국에 올 수 있었던 재력과 지력, 사회적 능력 등을 가지고 있었거나, 그런 이들의 후손들이다. 학살을 피하지 못했던 이들은 히틀러가 원했던 대로 멸종했다. 그들이 멸종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후손이 유대인으로 미국 등지에서 살아가고 있다면, 그들과 그 후손들도 위대해지고 유명해졌을까. 그들의 교육 방식에 우리가 관심을 가졌을까.1939년 8월, 히틀러는 개인적으로 받거나 공식 계통을 통해 올라왔던, 유대인 중 독일인들과의 혼혈로 인정받기를 원했던 2100여 건의 신청에서 12건을 인정했다. 이 12건에 혼혈인 신분을 부여하라는 그의 명령서가 내무부 장관에게 전달되었고, 장관은 베를린 계보학 연구소장에게 이것을 전했다. 8월 말, 소장은 살아남으려던 일부 유대인에게 혼혈인 증명서를 발급했고, 9월 1일 히틀러는 독일군 125만 명에게 폴란드로 가라고 명령했다.베를린 시프바우어담 거리에 있었던 독일 계보학 연구소에는 100여 명이 넘는 연구원이 부유한 유대인에게서 부탁받은 일들을 심사하고 있었다. 자신들을 아리아인 혹은 아리아인과 유대인 사이의 혼혈로 평가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여기서 살아남은 사람 중에는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누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국가재건과 재무장을 위한 4개년 계획을 추진 중이었던 히틀러에게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었다. 거금. 루트비히의 아버지였던, 세기 말 세기 초 세계 최고 부호 칼 비트겐슈타인의 자식들은 자신들의 엄청난 재산이 문제해결의 열쇠임을 오래전에 인지했다. 재산을 그냥 빼앗기지 않는 게 가장 중요했다. 현금뿐 아니라 보석, 오래된 그림과 악보, 고가의 오래된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 유명 예술가의 머리카락 등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구명줄이 되었다. 루트비히의 누이 그레틀은 1938년 6월, 영국으로 떠나면서 상자 2개를 밀반입했다. 케임브리지에 있던 동생 루트비히에게 전달할 상자 안에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작품번호 109번], 하이든의 [교향곡 90번 다장조],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가장조], [피아노 협주곡 K238], [피아노 협주곡 K467], 바흐의 초기 칸타타 [예수, 당신은 내 영혼의 전부입니다] 등이 있었다. 고가의 이 악보 원본들과 이 가문이 스위스 은행에 예치해두었던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자산을 얻기 위해 히틀러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세 누이를 살려주었다(알렉산더 워, 서민아 역, 『비트겐슈타인 가문』, 필로소픽, 2014). 그들은 히틀러가 패망할 때까지 그의 영토였던 오스트리아 빈에서 안전히 살았다. 아우슈비츠에 가지 않았고, [사운드 오브 뮤직]의 이야기처럼 도망갈 필요가 없었다.유대인이라고 다 같은 처지가 아니었다.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가진 자였던 유대인이 미국 등으로 이민 가서 여러 분야에서 성공했다. 1856년생이었던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자유롭게 죽기 위해 1938년 6월에 런던으로 망명했고, 이듬해 가을에 사망했다. 그의 자손들도 오늘날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가문의 이름을 드높여왔다. 그의 손자 루치안 프로이트(Lucian Freud, 1922~2011)는 20세기 사실주의 화가 중 최고의 한 명으로 인정받았고, 생존 당시 그의 작품 하나는 살아 있는 화가로 가장 비싼 가격인 350억원에 팔렸다(최익현, 대를 이어 탁월성 발휘: 유전자? 혹은 또 다른 무엇?, 대나무 모바일사이트, 2011). 오늘날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공한, 창조성이 있고 많이 배운 유대인은 그런 이들과 그들의 후손이지, 홀로코스트에서 죽어서 멸종된, 배우지 못한 유대인이 아니다. ‘우수한 유대인’ 관념은 샘플링에 문제가 있다. 유대인 모집단에 학살된 600만 명이 빠져서는 안 된다.유전자든, 가정환경이든, 개인의 자유의지이든 살아남고 번성하게 하는 게 무엇인지 우리는 제대로 알아야 한다. 유대인이 전체 국민의 70%에 이르는 이스라엘이 성공(?)한 데는 그 유대인의 IQ가 높기 때문일 수도 있고, 미국의 전폭적 지지 때문일 수도 있다. 그들의 강렬한 애국심도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높은 IQ도, 미국 같은 초강대국의 지지도 원한다고 얻어지는 게 아니지 않은가. 애국심도 강제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유대인 중에서도 아시케나지 유대인이 지능지수가 높다. 여기에는 역사적 이유가 있다.
※ 김진호 -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의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