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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YEAR ESSAY 2024] 다시, 초심(41) 이재한 한라식품 대표 

나의 초심? 다시 용감해지자 


▎이재한 한라식품 대표
갓 성인이 되었을 무렵, 여러 가지 사연과 함께 아버지의 사업인 지금의 ‘한라식품‘을 물려받게 되었다. 사업에 대한 준비 기간도 없이 하루아침에 나에게 닥친 현실이었다. 제품을 잘 만드는 건 아버지였고, 나는 이 제품을 소비자들에게 알려 팔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지원이 빵빵한 대기업도 아니고, 시장성이 큰 제품도 아니었다. 더구나 사업하기 가장 까다롭다는 식품회사였다.

첩첩산중의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정공법뿐이었다. 제품에 대한 확신 하나만 가지고 무작정 소비자들을 만나러 다녔다. 지금이야 팝업스토어나 각종 마켓 등 소비자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무궁무진하지만 그때만 해도 거의 없었다. 뜨거운 물에 참치액을 타서 들고 아파트마다 발로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부녀회부터 지나가는 주부들에게 일일이 맛을 보이고, 열 명이면 열 명, 백 명이면 백 명에게 제품에 대한 설명을 하고 다녔다. 요즘 직원들에게는 이 이야기가 그 옛날 꼰대의 추억이라고 치부될지 모르지만, 30년이 넘은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용감함이 지금의 ’한라식품‘을 이어가는 근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제품에 대한 확신이 마음속에 있는 것과 그 확신을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액션의 차이와 결과는 물론 나 스스로에게도 엄청난 비즈니스 자부심을 심어주는 훈련이었다. 지금의 ‘한라식품’은 그때의 ‘한라식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장했다. 하지만 기업이 성장하면서 대범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안정적인 것에 집착하고, 도전에 소심해지기 시작한다. 창조적 개성은 점점 사라지고, 안정감이 주는 나태함에 길들여진다. 기업가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포인트가 바로 이런 부분이 아닌가 싶다.

2000년대 초반, 중소기업인 식품회사에서 나는 용감하게도 매거진에 문을 두드렸다. 오뚜기며 CJ 등 잘나가는 대기업 식품 브랜드들은 그 당시 잡지를 통해 많은 홍보 활동을 해온 터라 그 시장이 얼마나 큰지도 모른 채, 무식한 용감함으로 찾아갔다. 대기업들만 한다는 매거진 독자 선물에도 참여해 ‘한라참치액’을 알리기 시작해 급기야는 유명 요리 연구가와 방송인을 모시고 태국 현지 공장을 오픈해 소개하는 과감한 기획 기사도 진행했다. 당시 에디터들을 지금도 만나고 있지만, 그들이 그 당시를 회상하며 해주는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다. ‘듣보잡’ 중소기업이 매거진에 소개되고 싶다고 찾아온 용기와 식품기업에서 겁 없이 자신의 공장을 오픈하겠다는 무모한 용기에 혀를 내둘렀다고. 그러면서 그들 역시 묘한 희열을 느꼈다고도 한다.

그런 용감함으로 ‘한라식품’은 지금까지 한 번도 후퇴하지 않고 전진만 하는 기업이 되었고, 수많은 대기업과의 경쟁에서도 꿋꿋하게 원조의 기품을 지키고 있다. 눈에 보이는 성적은 만족스러워 보일지 모르지만, 그 옛날 초심의 용감함이 온데간데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는 뜨거운 반성을 하게 되었다.

2024년은 기업의 성장도 물론 중요하지만,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용감한 시도들을 해볼 생각이다. 그것이 나 개인을 위해서도, ‘한라식품’ 기업을 위해서도, 소비자들을 위해서도 더 발전할 수 있는 이 시점에서의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202401호 (2023.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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