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정태남의 TRAVEL & CULTURE | 오스트리아 빈(WIEN)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신년 음악회 

빈 신년 음악회는 1939년에 처음 시작되어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끄는 음악회로 자리매김했다. 이 음악회에서 연주되는 곡 대부분은 활기차고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곡들인데,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가 통치한 기간에 작곡됐다. 특히 요한 슈트라우스 부자(父子)의 왈츠와 폴카가 주류를 이룬다.

▎무직페어아인. 이곳에는 세계 정상의 관현악단인 빈 필하모니가 상주한다. / 사진: 정태남
과거 합스부르크 왕가 시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은 매우 아름답고 품위 있는 도시이다. 이 도시는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음악의 성지’나 다름없는 곳이다. 빈만큼 그토록 많은 음악가들이 활동한 도시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으니 말이다. 사실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 말러 등과 같은 대음악가들을 제외하고도 빈을 거쳐간 유명 음악가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바로 이 음악의 성지에서 매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클래식 음악회’가 열린다. 즉, 매년 1월 1일 오전에 열리는 빈 필하모니의 신년 음악회이다. 이 음악회가 열리는 곳은 무직페어아인(Musikverein). 이곳에는 세계 정상의 관현악단인 빈 필하모니(Wiener Philharmoniker: Vienna Philharmonic)가 상주하며, 연중 내내 수준 높은 음악회가 열린다. 따라서 무직페어아인은 음악의 성지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이다.

오스트리아 음악 ‘사령부’ 무직페어아인


빈 신년 음악회는 90개가 넘는 나라에 방영되는데 이를 지켜보는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이 설레는 마음으로 빈을 동경한다. 세련되고 귀족적인 기품이 흐르는 도시 빈은 이탈리아·영어 명칭인 비엔나(Vienna)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어느 표기이든 달콤하고 우아함을 느끼게 해준다.

빈이 현재와 같은 모습의 도시로 기본 틀이 잡힌 것은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재위 1847~1917) 때이다. 그는 여러 가지 혁신적인 조치를 단행하여 빈을 현대적인 도시로 바꿔놓았는데, 구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던 중세 성곽을 허물고 그 자리에 약 5㎞ 길이의 순환도로 링슈트라세(Ringstrasse)를 건설하게 했다. 한편 당시 기존의 중세 성곽 철거 작업에 동원된 인부들을 ‘데몰리어(Demolier)’라고 불렀는데 이들은 보헤미아, 슬로베니아, 헝가리 등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의 일원을 이루던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중세 성곽 철거 당시 상황을 음악으로 증언하듯 1862년에 <데몰리어 폴카>를 작곡했다. 중세 성곽이 완전히 철거되고 1865년에 마침내 링슈트라세가 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자 빈 시민들은 열광했다. 개통식에는 카니발과 같은 대대적인 축제가 벌어졌으며, 제국 군악대가 연주하는 <데몰리어 폴카>의 경쾌한 선율에 맞추어 시민들은 흥겹게 춤을 추었다.

그 후 링슈트라세 도로 주변에는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취향에 맞게 모두 고대 그리스, 로마,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등 역사에 등장했던 옛날 건축양식의 복고풍으로 오페라극장, 미술 아카데미, 미술사박물관, 자연사박물관, 의사당, 궁정 극장, 시청, 빈 국립대학 등 많은 공공 건축물이 세워졌다. 그중 하나가 무직페어아인 건물이다.


▎빈 신년 음악회가 열리는 황금 홀. / 사진: 정태남
무직페어아인 건물 정면 상부에는 ‘Gesellschaft der Musikfreunde(게젤샤프트 데어 무직프로인데)’라는 큼지막한 글자가 뚜렷하게 보인다. 직역하면 ‘음악친구의 협회’, ‘음악동우회’이다. 이것을 ‘음악연맹’이란 뜻으로 간단히 ‘무직페어아인(Musikverein)’이라고 한다. 건물 정면 한쪽 벽에는 오스트리아 국기가 꽂힌 명판에는 덴마크 건축가 테오필 한센(1813~1891)의 설계로 1867년에 착공, 1869년에 완공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는 그리스 신전 형태의 오스트리아 의사당을 설계한 주인공이며, 빈으로 오기 전에 그리스 아테네에서 주요 공공건물 몇 개를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세운 경력이 있다.

현재 무직페어아인의 주요 업무는 도서관에 소장된 방대한 음악 자료 연구와 빈에서 열리는 주요 음악회 주관이니, 오스트리아의 음악 문화를 이끌어가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하는 사령부나 다름없다. 무직페어아인은 이 건물이 세워지기 훨씬 이전인 19세기 초반에 결성된 아마추어 음악가들의 모임이 기원이다. 당시 봉건사회에서 시민사회로 서서히 바뀌어감에 따라 일반 중산 계급도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주로 귀족들이 주관했던 음악 활동은 새로운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에 귀족들이 적극 참여하면서 무직페어아인이 설립됐다. 그 이전에는 독립된 연주 기획 단체가 몇 개 있었으나 그 활동은 음악회에만 국한됐고 또 오래 지속되지도 못했다. 반면 무직페어아인은 ‘오스트리아 제국 음악동우회’라는 이름으로 오스트리아 음악 문화의 민주화와 음악 전 분야의 발전을 목적으로 1812년에 음악 애호가들이 발기해 설립됐다. 초대 회장은 베토벤의 후원자였던 루돌프 대공. 회원 자격은 아마추어 음악가로 제한했다. 그 후 조직이 커짐에 따라 1817년에는 전문 연주가 양성을 목적으로 음악원과 도서관이 설립됐다. 이 음악원은 1909년부터 국가가 운영하게 되면서 현재의 ‘빈 국립음대’로 발전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풍이 섞인 무직페어아인 건물 정면. / 사진: 정태남
그 후 1858년과 1860년에는 아마추어로 구성된 합창단과 관현악단이 창단됐다. 처음에는 음악성이 뛰어난 아마추어 음악가들이 지휘를 하다가 마침내 대음악가 브람스(1833~1897)가 지휘를 맡았다. 독일 출신 브람스는 링슈트라세 공사가 진행되던 무렵인 1862년부터 빈에 본격적으로 거주하며 활동하다가 1872년 가을부터 무직페어아인 일을 맡아 관현악단과 합창단의 정기 연주회를 기획하고 지휘봉도 잡았다. 무직페어아인 건물 남쪽 바로 길 건너편에 브람스 기념상이 세워져 있는 것은 그와 무직페어아인 간의 끈끈한 관계를 말해준다.

황금 홀의 신년 음악회


▎무직페어아인 건물 길 건너편에 세워진 브람스 기념상. / 사진: 정태남
무직페어아인 안에는 브람스 홀, 대공연장 등 모두 7개의 크고 작은 콘서트홀이 있다. 그중 대공연장 그로서 잘(Grosser Saal)은 보통 ‘골드너 잘(Goldner Saal)’, 즉 ‘황금 홀’이라고 불리는데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콘서트홀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 홀은 세계적인 지휘자들이 감탄할 정도로 음향 시설이 좋다. 건축가 테오필 한센이 오늘날처럼 과학적인 음향 설계는 생각할 수 없었고 오로지 직관에만 의존해 건축했을 뿐인데도 말이다. 이 홀은 단순한 슈박스(구두상자) 형태로 무대와 객석 거리가 최대로 좁혀진 데다가, 금색으로 도금된 목재장식, 조형적 장신구, 원기둥, 여신상 등이 소리를 자연스럽게 반사하여 뛰어난 음향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빈 신년 음악회는 바로 이 홀에서 열린다.

빈 신년 음악회는 1939년에 의해 시작되어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끄는 음악회로 자리매김했다. 이 음악회에서 연주되는 곡 대부분은 활기차고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곡들인데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가 통치하던 기간 중에 작곡됐다. 특히 요한 슈트라우스 부자(父子)의 왈츠와 폴카가 주류를 이룬다. 본 프로그램이 끝나고 대미를 장식하는 앙코르 곡은 항상 두 곡으로 정해져 있다. 다름 아닌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1866년에 작곡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과 그의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 1세가 1848년에 작곡한 [라데츠키 행진곡]이다. 라데츠키(1766~1858)는 18세에 입대하여 나폴레옹 전쟁에 참전한 이래 평생을 전투와 전투 속에서 살다 간 군인으로, 오스트리아 군대의 개혁자이자 위대한 장군으로 추앙받는다.


▎세계적인 음악가들의 공연을 알리는 포스터. 그 위 오스트리아 국기가 꽂힌 명판에는 테오필 한센의 설계로 1867년에 착공, 1869년에 완공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 사진: 정태남


이 두 곡은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사랑을 워낙 많이 받기 때문에 오스트리아의 숨겨진 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 [라데츠키 행진곡]을 연주할 때 지휘자는 종종 뒤로 돌아서서 관객을 보고 지휘하고 관객은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 음악에 맞추어서 손뼉을 치는데 오케스트라와 관객은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서로 하나가 된다.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일생에 한 번은 빈 신년 음악회를 현지에서 직접 보기를 꿈꾼다. 다만 입장권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데다가 매년 경신되는 기록적인 입장권 가격 때문에 꿈이 깨어지지만.

※ 정태남 - 이탈리아 공인건축사, 작가 정태남은 서울대 졸업 후 이탈리아 정부장학생으로 유학, 로마대학교에서 건축부문학위를 받았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건축분야 외에도 미술, 음악, 역사, 언어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로마를 중심으로 30년 이상 유럽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동유럽 문화도시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외에 여러 권이 있다.(culturebox@naver.com)

202401호 (2023.12.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