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소울의 삶과 미술심리(47) 

경험 | 맥락이 있는 삶에서 찾는 질성 

영국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은 저서 『여행의 기술』에서 “아름다움을 만나면 그것을 붙들고, 소유하고, 삶 속에서 거기에 무게를 부여하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낀다. ‘왔노라, 보았노라, 의미가 있었노라’라고 외치고 싶어진다”고 했다. 이처럼 누구에게나 심미성이 찾아오는 순간이 있다. 에드워드 존 포스터와 구스타프 클림트, 클로드 모네의 작품 앞에서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해보자.

▎에드워드 존 포인터 [완두콩 꽃들] 1890
심미성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조각품이나 그림, 건축 등 눈에 보이는 미술품을 떠올린다. 그래서 심미성은 비싼 예술품이나 명화에서만 발견되는 요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심미성의 사전적 뜻은 ‘아름다움을 살펴 찾을 수 있는 성질’이다. 즉, 아름다움이 느껴진다면 어떤 형태의 대상이어도 괜찮다는 것이다. 15세기 문헌 『석보상절』에서는 아름답다를 ‘아(我)답다’고 표기하는데, 여기서 ‘아(我)’는 나를 의미한다. 결국 ‘나답다’는 것은 곧 아름다운 것이고, 내가 나다운 상황이 되었을 때 우리는 심미성을 느낀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이 개념을 더욱 구체적으로 언급한 사람은 미국의 교육 철학자 존 듀이(John Dewey)다. 듀이는 저서 『경험으로서의 예술』에서 인간의 경험을 일반적 경험과 ‘하나의 경험’이라는 개념으로 나누었다. 흩어지거나 멈추어지거나 잊히는 일반적 경험이 아니라, ‘지난주에 어머니 생신이라 온 가족이 모였는데 오랜만에 다들 만나니 참 좋았어. 그때의 경험은 반가운 시간들이었어’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즉 어딘가에서 시작하여 하나의 맥락에 따라 완성된 경험을 심미적이라 설명한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듀이는 ‘하나의 경험’이라는 말로 정의한다.

경험을 완성하는 ‘과정’

존 듀이는 책에서 파르테논 신전이 왜 아름다운가라고 물었다. 많은 사람의 관념 속에서 파르테논 신전은 아주 오래된 위대한 예술품이다. 그렇기에 왜 그것이 아름답고 예술적인가라는 질문은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사실 아테네 시민들이 파르테논 신전을 지었을 때를 생각해보면, 그때는 중요한 종교적인 건축물이었을 것이고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까지 사람들이 이 건축물을 대단하다고 여길지는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후대 사람들은 건축물 그 자체가 아니라 아테네 시민들이 신전을 통해 성취하려고 했던, 당시의 살아 있던 욕구를 가치 있게 생각했고, 그들의 삶과 경험에 주의를 기울였다.

영국 화가 에드워드 존 포인터는 내셔널 갤러리 관장을 역임하고 테이트 갤러리 개관식을 감독했던 작가로, 19세기 당시엔 동시대 작가 중 가장 저명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에는 많이 소개되지 않았지만, 대규모 역사화가 주력일 정도로 큰 스케일을 자랑하는 작가였다. 존 포인터가 그린 작품들은 대부분 화려했지만, <완두콩 꽃들>처럼 소박한 아름다움을 표현한 그림도 있다. 그리스 여신상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우아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소녀와 손에 가득 들고 있는 완두콩 꽃은 어딘가 닮은 듯하다. 소담스럽고 화사하다.

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심미성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꽃에 대해서 알지 못해도 꽃을 감상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 다만 꽃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꽃을 재배할 수 없다. 씨앗이 어떤 온도에서, 어떤 습도에서,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야 발아하는지, 성장 과정에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아야 꽃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꽃마다 필요한 흙도 다르고, 물을 주는 주기도 다르다. 이런 내용을 알아야 꽃을 피우는, 완성된 경험을 할 수 있다.

심리학에서 인간을 대하는 태도도 이와 같다. 예를 들어, 미술치료에서 상담차 방문한 내담자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고민거리를 쏟아내고, 이를 함께 풀어나가는 과정은 듀이가 말한 ‘하나의 경험’을 향하는 길이 된다. 내담자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어야 하고, 인간의 정신 구조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있어야 하며, 내담자가 하는 말을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고, 그림도 좋아한다고 미술치료사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식물의 토양, 공기, 빛과 같은 것, 즉 내담자의 가족, 내담자가 속한 집단, 자원 등에 대한 이해와 그림 속에 드러난 상징과 구조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경험 속에서 작용하는 요소들을 하나의 맥락으로 이끌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경험을 하나로 지각하게 만드는 ‘질성’


▎구스타프 클림트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 1907
질성(質性)이라는 말은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단어인데, 사실상 영문으로는 성질이나 질성, 모두 quality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그러나 다른 성질과 구별되는 제3의 성질인 질성은 인간이 지각하는 새로운 느낌으로서 완전히 구별되는 특징을 가지기에 별도의 단어로 표기된다. 그리고 질성은 흘러 지나가는 경험을 감각적으로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처음으로 성질을 이렇게 나눈 이는 영국 철학자 존 로크였다. 로크는 직접적 감각에 의해 받아들이는 제1 성질과 제2성질을 구분한다. 제1성질은 어떤 대상이 지각되는 조건과 관계없이 (지각되지 않더라도) 그 대상이 가지고 있는 자체적인 성질이다. 예를 들어, 높이 2m의 나무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아도 그 자체로 2m 높이를 가진다. 바람이 불면 갈대는 흔들리고, 불가사리는 언제나 별 모양이다. 민들레 씨앗은 가볍고 고래는 무겁다. 이것은 그냥 그 자체로 존재하며 과학의 영역에서 관심을 가지는 분야다. 제2성질들에 의해 규정되는 대상은 ‘인지’되며, 제2성질의 경험이 발생하게 된다. 여기에는 색, 맛, 소리, 촉감, 냄새 등이 포함된다. 초록색 나뭇잎은 보는 이에 의해 ‘초록색’이라는 색으로 규정되었다. 어쩌면 규정한 무언가와 닮아 있을 수도 있다. 제1성질은 문화적 배경에 상관없이 같으나, 제2성질은 인지하는 문화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키스]를 그린 오스트리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는 특정 시기에 금색을 상당히 많이 사용해 황금빛 화가라는 별명이 붙었다. 특히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에는 상당히 많은 금색 안료가 사용되었는데, 이 그림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우아해요’, ‘섬세해요,’ ‘찬란해요’와 같은 피드백을 주로 듣는다. 여기에는 제1성질이 보이는 물리적인 특징도 포함되지 않고, 제2성질인 색이나 감각적인 부분도 들어 있지 않다. 어떤 ‘느낌’을 이야기하는 이 부분이 바로 듀이가 설명한 제3성질, 즉 질성이다. 질성은 경험자가 대상을 직접 지각할 때 일종의 느낌으로 가지게 되는 것이며, 이런 느낌을 통해 어떤 사건이, 혹은 어떤 경험이 ‘재미있었다’, 혹은 ‘끔찍했다’라고 기억하게 된다.

환경과 섬세하게 상호작용 하기


▎클로드 모네 [카미유의 임종] 1879
경험은 누군가의 마음이나 감각 안에 갇힌 존재가 아니다. 경험의 기본적인 특징은 환경과 상호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듀이는 아무리 시시한 경험이라 하더라도 기쁨과 환희에 찬 인식이나 절망과 애통이 가득한 인식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한 개인의 경험에는 이토록 다채롭고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최근 심리치료 현장에서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자신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는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자주 보인다. 경험은 분명히 살아 움직이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들은 왜 감각이 차단되어 있는 걸까.

환경과 소통하면서 느껴지는 질성들은 참 아름답다. 감각기관들은 우리에게 제2성질을 느끼게 하지만, 세상과 접촉하며 경험한 질성들은 세상이 경이롭고 멋진 존재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하게 감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감각을 활용해야 한다고 듀이는 말한다.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모네가 그린 [카미유의 임종]을 살펴보자. 우리의 눈, 즉 감각기관(sensor)은 그림을 먼저 인지할 것이다(sensory). 이제 우리의 신경은 푸른색, 거친 붓 터치, 누워 있는 사람의 형상 등 즉각적으로 눈에 띄는 특징적 모습에 주의를 기울인다(sensational). 이 그림이 보는 이에게 주는 느낌은 모두 다를 것이다. 이 반응을 받아들이고 나서(sensitive) 그림의 지적 요소들을 파악해본다(the sensible). 화가의 붓 터치는 인상주의 기법의 전형적인 표현 방식이며,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는 빛의 움직임을 캔버스에 담았기에 30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안에 공간의 흐름을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아내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빛의 화가 모네는 아내의 손을 잡아주기보다는 사라져가는 생명의 색을 그리고 있었음에 안타까움이 들고, 동시에 마지막 순간을 자신의 손으로 남기고 싶어 하는 애잔함도 느껴진다(sentimental). 결국 이 모든 감각적 활동을 종합하여 자신에게 이 대상이 미적으로, 혹은 도덕적으로 좋은지 나쁜지를 결정하게 된다(sensuous). 이해를 돕고자 명화 작품에 이 방식을 적용해보았으나, 이런 감각적 확장은 자신이 속해 있는 공간과 교류하는 사람들, 경험하는 모든 곳에서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다.

충만하고 고양된 경험을 위해

‘지금’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 시간은 순간적인 별도의 사건처럼 보일 수 있지만, 모든 경험은 연속선상에 존재한다. 무언가를 겪고 있다는 것은 과거로부터 축적된 경험 속에 있는 대상의 의미를 확대하여 지금에 적용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삶을 대충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며, 당연히 불행한 삶을 기대하는 사람도 없다.

※ 김소울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국제임상미술치료학회 회장이며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미술치료전공 겸임교수이자 가천대학교 조형예술대학 객원교수이다. 플로리다마음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치유미술관』 외 12권의 저역서가 있다.

202401호 (2023.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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