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PJ살롱 박병진의 위스키 기행(11) 

가루이자와 위스키 이야기 

지금은 사라져버린 전설의 위스키인 가루이자와 위스키를 추억하며 홀린 듯 떠난 열한 번째 위스키 여행.

▎가루이자와역의 황홀한 선셋 풍경. 도쿄 위스키뮤지엄에 전시된 가루이자와 위스키. 이제는 가격표조차 붙어 있지 않는 귀한 몸이 되었다.(오른쪽)
현재 주임 교수를 맡고 있는 모 신문사 위스키 최고위 과정의 수료를 앞두고, 졸업 여행지를 가까운 일본으로 정했다. 구체적으로 증류소를 어디로 정할까 고민하던 차에, 일본 가나자와에서 진 증류소를 운영하는 처남에게서 특별한 제안을 받았다. 다음 달 가나자와에서 큰 위스키 컨벤션이 열리는데, 그곳에 일본 각지에 있는 위스키 증류소들이 많이 참석하니 직접 와서 정보도 얻고, 관련된 사람들도 만나보면 좋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즐거웠던 내 일주일간의 일본 중부 위스키 여행이 그렇게 시작됐다. 원래 가나자와를 가려면 인천-고마쓰 직항 편을 타면 됐지만, 코로나19 이후 직항 편이 없어졌다. 어떻게 가면 좋을지 고민 끝에 결국 일주일간의 철도 여행으로 판이 커져버렸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에는 방한하는 외국인이나 국내 여행을 원하는 청년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철도 패스를 판매하지만, 철도 강국인 유럽이나 일본에 비하면 아직 다양성도 부족하고 할인 혜택도 크지 않다. 하지만 일본의 JR패스는 이런 점에서 내국인 역차별 논란까지 나올 정도로 외국인에게 관대하다. 최근 이런 논란으로 JR패스의 가격이 큰 폭으로 인상되고 있어, 나도 더 늦기 전에 그 혜택을 누려보기로 했다. 내가 구매한 JR패스는 나리타 익스프레스와 호쿠리쿠 신칸센을 포함하여 도쿄, 도야마, 가나자와, 오사카 간사이 공항까지 가는 모든 특급 열차를 일주일간 이용할 수 있는 무제한 패스이다. 사실 그 경로 중간에 가고 싶은 곳이 많아 이번 여행의 목적인 가나자와 위스키 컨벤션은 그저 핑계가 되어버렸다.

일본 전역에서 현재 가동 중인 위스키 증류소는 76개라고 한다. 언젠가 때가 되면 일본 전역을 열차로 다니며, 우아하게 에키벤(열차 내에서 먹는 일본식 도시락)도 먹고 그 지역의 위스키를 탐방하며 우리가 아는 듯 잘 모르는 일본을 제대로 느껴보리라 다짐했다.

위스키의 잔향을 찾아 떠난 가루이자와

표면적인 목적지는 가나자와였지만, 사실 이번 여행의 주된 목적은 가루이자와였다. 일본 중부 산악지대인 나가노현에 있는 가루이자와는 여름 피서지와 별장지로 유명할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워낙 관광객과 체류자가 많아 재정이 튼튼하여, 일본 중앙정부가 주는 지방교부세를 받지 않는 부자 도시이기도 하다. 스코틀랜드와 비슷한 기후와 풍광 덕분에 북유럽 선교사들이 사랑했던 이곳은, 존 레넌이 오노 요쿄와 함께 자주 왔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이곳이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가장 힙한 곳으로 인정받고, 특히 도쿄의 여피족들은 가루이자와에 별장을 하나 가져야 성공했다는 행세를 한다고 한다. 이는 마치 성공한 뉴요커가 롱아일랜드에 별장을 하나쯤 갖고 싶어 하는 것처럼 그들만의 신분 상징이기도 하다. 멋진 레스토랑과 바, 카페, 유서 깊은 호텔뿐만 아니라 1964년 도쿄올림픽의 마술,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의 컬링으로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하계, 동계 올림픽을 모두 치른 매력적인 도시이기도 하다.

가루이자와는 이렇게 아름답고 멋진 도시이지만, 그보다 내가 이곳을 선택한 더 큰 이유는 지금은 사라져버린 전설의 위스키인 가루이자와 위스키의 잔향을 맡고 싶어서였다. 이제는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몇몇 마니아만 기억하는 가루이자와 위스키에 대한 내 기억이 그만큼 강렬했기 때문이다. 이 위스키를 기억한다는 일본인 중에도 이를 만들어낸 땅과 사람들을 이제는 기억하는 이가 많지 않지만, 나는 그 가루이자와의 테루아르를 찾아서 홀린 듯 이곳에 왔다.

20세기 중반 위스키 세계의 변방이었던 일본에서는 지금은 전설이 된 몇몇 사람이 재미있는 흐름을 만들고 있었다. 더 많은 사람이 합리적으로 위스키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들자는 철학을 추구한 산토리의 토리이 신지로, 그보다는 마니악한 순수성을 지키자며 스코틀랜드식 위스키를 교조적으로 홋카이도에서 만들었던 닛카 위스키의 타케츠루 마사타카가 있었다면, 이곳 가루이자와에는 그런 스타는 없지만 수많은 사람이 오직 제대로 된, 우아하고 품위 있는 위스키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왔다. 결국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그들이 추구했던 이상과 그 결과물만큼은 훌륭했고, 말 없는 그들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이 거쳐가고 계속된 인수합병으로 처음 품었던 이상이 희석될 법도 하지만, 이곳 가루이자와 땅의 매력일까? 계속되는 변화의 과정에서도 이상하게 그들은 여전히 계속 가루이자와라는 아이덴티티를 지켜나가며 최고의 위스키를 만들어냈다. 가장 슬픈 비극이 희극이라는 말도 있지만, 기린이 인수한 이후, 가루이자와 증류소 터가 단돈 500만 엔에 팔리며 미요타정 사무소(군청이나 면사무소쯤 된다) 부지가 되고 빚잔치라도 하듯 증류소 설비가 철거되었던 그해 말, 전 세계의 수많은 위스키 품평 리스트에서 가루이자와 위스키는 1위를 차지했다.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위스키이기에 더욱 애처롭게 느껴졌다. 분명 가루이자와의 DNA는 살아 있었고, 그 성과는 그저 사라진 증류소의 후광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가루이자와의 폐허로 가는 길은 조금 험난했다. 도쿄역에서 신칸센을 타고 가루이자와역에 내린 다음, 로컬 시나노선으로 갈아타고 세 정거장을 더 들어가야 나오는 곳이다. 당일 새벽에 서울에서 출발했지만 결국은 너무 먼 길이라 해 질 무렵에야 가루이자와에 도착해 난생처음 가보는 미요타정의 시골 료칸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다.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작은 시골 여관이었고 시설은 낡았지만 정갈한 온천탕도 있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정갈하고 화려한 카이세키 저녁과 아침을 진심으로 대접받고 나니, 친절한 주인 가족들에게 지불한 1만엔 남짓의 숙박비가 미안하기까지 했다.


▎루이자와 증류소 터에 자리 잡은 카페와 레스토랑이 있는 공원.
이튿날 대망의 가루이자와 증류소의 폐허를 찾아 출발했다. 구글맵을 켜고 걸어서 찾아간 내 꿈의 유적지는 우습게도 바로 료칸에서 300m 뒤쪽에 있었다. 낡은 증류기 한 대가 미요타정 사무소 입구에 떡 하니 자리잡고 있었고, 그 어디에도 전설의 위스키가 가질 법한 근사한 풍광과 숙성 창고를 포함한 멋진 증류소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1960년대 일본 에니메이션에서 나올 법한 레트로풍 증류기 외엔 아무것도 없어서 한참을 두리번거리며 건물 뒤쪽까지 모두 살펴보았다. 하지만 이곳이 가루이자와 증류소의 옛터라는 안내판과 함께 작은 지방자치단체가 쓰기엔 터무니없이 커다란 군청 건물만 위압적으로 서 있었다. 단순하면서도 개성을 잘 살린 이 스코틀랜드 증류기는 멋진 공학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전설의 위스키가 만들어진 심장이기에 한참 동안이나 이리저리 살피고, 만지고, 바라보고 사진을 찍었으니 내 나름대로는 사라진 전설에 경의를 표한 셈이다.

가루이자와 위스키가 맛있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그 시대에 가장 맛있었던 몰트 원액을 사 와서 섞었기 때문이고, 그다음은 몰트를 구할 수가 없어 어렵게 구한 몰트에 다른 곡물들을 섞어 쓴 것이 신의 한 수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좀 허무하다. 그 당시 가장 맛있었다는 요이치 위스키의 몰트 원액을 같이 사용했기 때문이라니 조금 허탈했지만, 뭐 그럴 수도 있다. 그때는 싱글몰트 위스키란 것은 사실 없었고, 블렌디드 위스키가 주류였기에 좋은 몰트 원액을 많이 구하는 것이 중요했으니, 음식점으로 치면 신선하고 맛있는 재료를 잘 구해 많이 사용하는 맛집인 셈이다.

두 번째는 재료의 수급인데, 당시 일본은 외화 부족으로 농산물 수입이 엄격히 금지되어 위스키 당화에 꼭 필요한 몰트를 수입할 수 없었다. 신생 증류소인 가루이자와는 위스키 카르텔로 꽉 짜여진 일본 내의 몰트 공급망에 낄 수가 없어 초기에 고전했다. 그런데 이게 전화위복이 되었다. 몰트 대신 사용한 다른 곡물들이 가루이자와 특유의 풍부하고 진한 맛을 내게 해주어 오늘날 가루이자와 위스키가 전 세계 리스트에서 수위를 차지하는 큰 이유가 되었다. 아일랜드에서 18세기 당시 식민 종주국인 영국의 몰트세 중과에 대응하기 위하여 몰트와 다른 곡물을 섞어 쓰는 스타일의 위스키를 만들었고, 이것이 결과적으로 오늘날 풍부한 맛의 아이리시위스키가 만들어진 것처럼 말이다. 역경은 도전하는 자에게는 성취를 만들어주는 법이다. 더불어 간접적인 관계사였던 아지노모토사에서 MSG 생산의 원재료로 비축해둔 옥수수를 언제든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다. 이는 블렌디드 위스키에 꼭 필요한 그레인위스키를 제약 없이 다양하게 원하는 만큼 생산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이로써 가루이자와 위스키는 큰 날개를 달게 되었다.

물론 가루이자와 위스키가 마케팅적으로 유명해진 데는 또 다른 스토리텔링이 있다. 현재 일본 텐노(천왕)의 아버지이자 전 텐노인 아키히토가 왕세자 시절 가루이자와 왕실 휴양지에서 휴가를 보낼 때 가루이자와 증류소에서 위스키를 선물로 보냈고, 아키히토 왕세자가 이에 반해 추가 주문을 하면서 유명해졌다는 것이다. 마치 영국의 찰스 3세가 왕세자 시절 경비행기를 몰고 가다가 비행기 고장으로 아일라섬에서 조금 더 머무르다 라프로익 증류소를 방문하게 되었고, 그 맛에 반해 곧 로열 워런트(왕실 지정 상품) 자격을 부여한 것처럼 두 스토리가 짜 맞춘 듯 똑같다. 하지만 이를 100% 모두 믿을 만큼 나는 순진하지 않다. 그저 ‘많은 이가 자기 자리에서 참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할 뿐.

사라진 우리 시대의 전설을 생각하며


▎미요타정에서 하루 묵었던 료칸. 마음에서 우러나는 대접을 받은 작은 시골 료칸이었다.
인생도 이와 같지 않을까? 가까이 있을 때는 공기처럼 그 존재를 망각하고 있다가 막상 떠나보낸 후,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깨닫기 시작한다. 그만큼 균형 잡히고 풍부한 맛과 향의 조화는 이제 다시 만나보기 힘들 것이다. 떠난 것이기에 더 아름다울 수도 있지만, 분명 그 완성도는 정말 훌륭했다. 상대적으로도 그 시절 경쟁자들이 만들어낸 조악한 품질에 비해 최초로 구리 증류기를 사용했고, 다양한 그레인위스키도 마음껏 만들고 블렌딩하여 한껏 독보적인 위치를 뽐냈지만 그 시절엔 그들만의 우월감이 너무 컸다. 좀 더 시장에 다가갔더라면,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자신들의 노력과 의지를 알렸더라면 달라진 결과를 얻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천재를 알아보지 못한 세상의 잘못이라 해야 할까? 피카소 같은 예외를 제외하고는 예술가들이 생전에 인정받은 경우가 별로 없었는데, 하여튼 가루이자와는 내게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십수 년 전 도쿄의 어느 바에서 마셨던 한잔의 마지막 기억이 이제는 어슴푸레하다. 묘한 나무 냄새와 바다 냄새가 뒤섞인 진한 맛이지만 거기엔 무언가가 더 있다, 아니 있어야만 한다.

아쉬운 이별과 새로운 시작


▎미요타역 바로 뒤, 메이지야 료칸 앞에서 주말에 열린 동네 가을 축제. 동네 중학교 밴드부가 나왔다.
아쉬움을 안고 폐허가 된 증류소를 떠나며 멀리서라도 전체 가루이자와 증류소의 흔적을 제대로 보고 싶었다. 미요타정 사무소의 뒤를 크게 돌아서 한참을 걸어가니 커다란 공원이 나왔다. 살짝 들여다보니 샛문이 있어 홀린 듯 따라 들어가니 맙소사, 여기가 바로 옛 가루이자와 증류소의 진짜 폐허였다. 지금은 말끔히 단장한 공원이 되어 작고 아름다운 카페와 레스토랑이 근사한 상점들과 함께 엄청나게 힙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다. 버블 시기에 정점을 찍었던 위스키답게 우리 시대에도 가장 멋스러움을 자연스럽게 뿜어냈고, 생활용품의 대표적인 명품 숍인 콘란숍이 가루이자와 옛 자리에 들어와 있었다. 콘란과 가루이자와의 조화는 내게는 낯설었지만, 이 또한 시대상이려니 생각하며 내 마음속에 고이 담았다. 그러고는 새롭게 가루이자와 증류소의 부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 다음 증류소로 발길을 옮겼다. 그곳에선 새로운 가루이자와를 만들고자 도전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실험정신을 함께할 수 있기에 시나노선 협궤철도의 다음 역으로 떠난다. 코모로역 앞에서는 누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 박병진 - 30여 년간 IBM, SAP, SK 등 국내 및 외국계 기업, 대기업과 중견기업을 망라하여 임원 및 CEO로서 대한민국 기업들의 경쟁력 향상에 기여해왔다. 최근에는 포브스를 포함한 각종 매체에 칼럼을 연재하는 위스키 칼럼니스트이자 동아일보사의 최고위과정인 ‘광화문살롱’의 주임 교수로서 위스키를 주제로 MZ세대를 포함한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소통의 지혜를 나누고 있다. 더불어, 요리서적 전문 출판사인 ‘북스 레브쿠헨’의 대표로서 이 시대의 대표적인 N잡러이다.

202401호 (2023.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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