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Cover

Home>포브스>On the Cover

2024 파워 셀러브리티 40 | 가수 김호중 

한 사람의 인생이 음악으로 물든다는 것 

신윤애 기자
‘트바로티(트로트+파바로티)’ 김호중 열풍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4월 4일 발표한 정규 2집 앨범 〈A Life〉의 초동 판매량은 80만 장을 넘어서며 음반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트로트로 이름을 알린 그이지만 클래식계에서 러브 콜이 빗발치고 있다. 그의 팬카페(트바로티)엔 15만여 명에 이르는 진성 팬이 가입돼 있다. 포브스코리아는 김호중을 직접 만나 ‘김호중 음악’의 원천과 대중을 움직이는 힘의 배경을 알아봤다.

힘들고 지친 나날을 음악으로 치유하던 어린 학생일 때부터 김호중에게 노래는 당연한 꿈이었다. 하지만 하늘의 별같이 좀처럼 닿기 어려운, 까마득한 꿈이기도 했다. ‘언젠가 내 목소리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을까’. 좀처럼 오지 않는 기회에 의문이 가시지 않았고 위축될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는 앙드레 말로의 명언을 가슴 깊이 새겼다. 꿈을 잃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와 이름 석 자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전 세계에 저렇게 소리를 내는 18세 학생은 찾기 힘들 거예요.” -[스타킹]에서 김동규 바리톤.

떡잎부터 남달랐던 성악가 김호중이 트로트를 하게 되리라 예상한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SBS 예능 프로그램 [스타킹]에 출연해 폭발적인 성량으로 ‘카루소’를 선보였던 18세 소년이 11년 후 [미스터트롯]에서 중후한 목소리로 ‘고맙소’를 부를 것이라고 말이다. 김호중 또한 방송에 출연하기 전 수없이 고민했을 터다. 오랜 시간 대중성을 갈망하던 그는 결국 도전했고, 원하는 결과를 얻었다. 사람들은 김호중이 선사하는 품격 있는 트로트에 놀랐고, 감격했고, 깊은 위로를 받았다. 순위는 최종 4위. 화제성만큼은 진·선·미(1~3위)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미스터트롯]이 끝난 지 4년이 흘렀지만 ‘반짝’할 거라던 트로트의 인기는 여전히 식을 줄을 모른다. 오히려 변방의 마이너 장르였던 트로트가 아무런 이질감 없이 음원 차트에 오르내리는 시대가 됐다. 그사이 트로트 열풍의 주역 김호중에겐 남부럽지 않은 팬덤이 생겼다. 천상의 목소리로 불리던 이탈리아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연상케 하는 ‘트바로티(트로트+파바로티)’에 매료된 사람들이다. 15만 명에 이르는 팬덤의 이름은 아리스(Ariss), 김호중의 노래를 사랑하는 별들이라는 뜻을 담았다.

인생은 참 아이러니하다. 기회를 찾기 위해 트로트에 도전했던 김호중인데, 이젠 그토록 목말라했던 클래식계에서 러브 콜이 빗발치고 있다. 그의 노래와 무대가 더 널리 알려진 덕분일 것이다. 그래서 최근엔 성악가로서의 진면모를 선보일 기회가 많아졌다. 클래식 곡으로 구성된 앨범을 발매하는 것은 물론 전국에서 클래식 콘서트 투어를 이어가고 있다(4월 20일~6월 2일까지 ‘트바로티 클래식 아레나 투어 2024’를 진행한다). 그리고 장안의 화제였던 KBS 교향악단과 함께한 클래식 단독쇼 ‘더 심포니’는 김호중은 물론, 그의 팬들에게도 빼놓을 수 없는 빅 이벤트였다. 국내 가수 최초의 협연이라는 부담감을 딛고 김호중은 무대에서 온 국민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했다.

김호중의 활약은 국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전 세계 클래식 거장들과 교류하고 협연하며 자신의 영향력을 전 세계로 확장하고 있다. 그는 2022년 ‘3대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의 요청으로 듀엣 무대를 선보였고, 오는 7월 열릴 세계적인 팝페라 가수 안드레아 보첼리의 30주년 기념 콘서트에 초청받았다. 이뿐인가. 오는 5월엔 세계 4대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하나의 악단으로 공연하는 세계 최초의 공연 ‘월드 유니온 오케스트라 슈퍼클래식’의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김호중은 러시아 출신 소프라노 아이다 가리풀리나와 노래하게 된다.

팬들은 자신의 색을 잃지 않은 김호중이 자랑스럽다. 그리고 클래식을 친근하게 소개해주어 감사하다고 말한다. 처음엔 트로트를 부르는 김호중을 좋아한 이들도 팬심으로 그의 노래를 듣다 보니 어느새 클래식을 즐기게 됐다고 고백한다. 실제로 김호중의 공연에선 팬들이 클래식 곡을 따라 ‘합창(혹은 떼창)’을 하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이제 사람들은 궁금해한다. 김호중은 성악가일까, 트로트 가수일까? 하지만 그가 파사지오(passaggio), 마스케라(maschera)라고 하는 성악 발성으로 시원하고 일정하게 고음을 쏟아낼 때, 그 소리는 장르에 관심을 두던 사람들에게 내놓는 우문현답이 된다. 트로트 고유의 맛을 살리면서 고급 성악 기술로 멋을 낸 ‘김호중의 장르’로 재창조되기 때문이다. 비단 트로트뿐이 아닌 클래식, 발라드, 오페라, 심지어 국악 장르의 곡에서도 같은 마법이 일어난다. 그런 그에게 굳이 장르가 필요할까. 그는 그저 장르를 넘나드는 ‘크로스오버 음악가’이자 ‘노래하는 사람’이다.

지난 4월 4일 김호중은 정규 2집 앨범 [A Life]를 발매했다. 3년 7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지만 그 반향은 생각보다 크고 뜨거웠다. 음반 판매량 집계 사이트 한터차트에 따르면 초동 판매량(발매 후 일주일) 82만6803장을 기록하며 자체 최고 기록을 달성했다. 또 역대 솔로 가수 음반 초동 8위에 올랐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가장 행복한 이유는 음악을 듣고, 노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제 머릿속은 늘 노래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마음껏 노래하는 지금 이 순간들이 너무 감사하고 소중합니다. 이제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갈 거예요.”

‘2024년 포브스코리아 파워 셀러브리티 40’ 명단에 오른 가수 김호중을 만났다. 인터뷰 내내 김호중은 노래, 감사, 꿈이라는 단어를 반복했다. 오랜 꿈을 마침내 이룬 그는 이제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군백기 이후 열일 행보가 인상적이다.

요즘 들어 꿈을 이루면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무대를 갈망했던 사람이어서 그런지 무대에 설 때면 더욱 그러하다. 무대에 오르는 순간, 잘 마치고 내려오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고 감사하다. 인생은 한 번뿐이니까 꿈꿔온 일들, 그러니까 무대에 서는 일을 계속하게 되는 것 같다. 오랫동안 기다려준 팬들을 위한 일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꿈을 포기하지 않고 이 자리에 오른 나를 보며 누군가가 같은 꿈을 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굵직한 클래식 공연 스케줄이 줄줄이 잡혀 있는데, 의도한 건가.

일부러 기회를 만들거나 클래식에 치우쳤던 건 아니다. 자연스럽게 기회들이 다가왔다. 어떻게 보면 ‘김호중과 함께해도 되겠다’라는 인정을 받은 것이기도 해서 기분좋게 제안에 응하고 있다.

세계적인 클래식 거장들과 교류가 잦아졌다. 이들과의 만남이 김호중씨의 인생 철학, 가치관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

거장들과 함께하는 작업은 늘 설레고 기대되는 일이다. 실제로 만나고 함께 무대에 서다 보면 ‘꿈인가 생시인가’ 할 정도로 어안이 벙벙하다. CD나 음원으로 듣던 연주, 목소리를 현장에서 듣고 거장들과 함께 노래한다는 사실만으로 자신감이 샘솟기도 한다. 동시에 내 곡, 노래를 소홀히 하면 안 되겠다는 다짐도 한다. 이분들의 매너에서 배우는 점도 많다. 플라시도 도밍고는 80세가 넘은 나이에도 악보마다 지휘자, 아티스트들과 쉴새 없이 소통한다. 나보다 몇 배는 더 열심히 하시는 것 같더라(.웃음) 또 그분의 스태프 대부분이 40년 넘게 함께한 사이라고 들었다. 사람의 인연에 대해 배우고 돌아보게 됐다. 더불어 나 또한 함께 작업하고 싶은 가수, 음악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나라 대선배 중에선 나훈아, 최백호씨를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팬들이 내게 ‘트바로티’라는 별명을 지어줬지만 그 선배님들이야말로 장르를 넘나들며 노래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최백호 선생님 공연을 많이 보러 다녔는데 재즈, 포크까지 장르를 불문하고 노래하셨다. ‘노래하는 가객’ 그대로의 모습이다. 선배님의 그런 인생을 닮고 싶다. 나훈아 선배님 또한 전 세계의 쇼, 콘서트에서 체득한 문화를 잘 접목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새로운 장르와 문화를 소개하신다. 나훈아 선배님 하면 우리가 트로트 가수라고 정의하긴 하지만 나도 아직 시도해보지 못한 굉장히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도전한다. 그 모습이 아름다워 보인다.

KBS 교향악단과 함께한 ‘더 심포니’를 마친 소회가 궁금하다. 부담감이 적지 않았을 텐데.


무대에서 ‘처음’으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그 처음이란 어린 시절 ‘네순 도르마’에서 파바로티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던 그 순간, 온몸에 전율이 느껴지던 그 순간이다. 굉장한 희열이 있었다. 다만 준비 과정은 무척 힘들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수준의 시간과 힘이 필요했다. 모든 무대는 항상 아쉬움과 후회가 남지만 ‘더 심포니’만큼은 한 번만 더 하면 좋겠다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럴 때면 팬들의 지지가 큰 힘이 되겠다.

아리스는 내가 가진 힘이자 무기이다. 아이돌의 팬덤과 비교하면 연령대가 높은 편인데, 그래서 그런지 아들이나 조카처럼 생각해주신다. 먼저 세월을 살고 풍파를 겪었던 입장에서 나와 내 음악을 공감하고 이해해주시니 얼마나 든든하겠나. 1년 9개월의 복무 기간에 그 사랑을 더욱 깊이 느낀 계기가 있었다. 팬들이 출연해 가수를 자랑하고 노래하는 KBS 프로그램 [주접이 풍년]에 우리 팬들이 나온 것이다. 항상 내가 출연하고 팬들이 시청했는데 그 입장이 바뀌니까 감회가 새롭더라.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에 대한 걱정을 아주 조금은 하고 있었는데, 팬들의 모습을 보고 울컥하더라. 참 많이 울면서 봤다. 그뿐만 아니라 어떤 음악을 만들더라도 그 범위를 확장해주는 존재이다. 예를 들면, 사랑이란 단어는 연령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10대보다는 인생을 좀 더 겪은 어른일수록 그 해석의 범위는 늘어날 것이다. 가사를 통해 전달할 수 있는 범위가 넓다는 생각에 글이 더 풍부해진다.

이제 김호중은 티켓 파워, 음반 판매 파워가 상당한 ‘파워 셀러브리티’가 됐다. 하지만 사람이란 궤도에 오르면 오만해지곤 한다. 그럴 때면 초심을 돌아보곤 하는데 김호중씨가 간직하고 있는 초심은 뭔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좁은 방에 앉아 ‘내가 TV에 나올 수 있을까’, ‘내가 앨범을 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살던 사람이었다. 그것도 꽤 오랜 기간을 말이다. 그때의 간절함과 뜨거운 열망이 내겐 초심이다. 아직도 내 마음속엔 무대에 대한 열망이 용광로처럼 활활 타오른다. 그래서 나는 지금이 가장 초심에 가깝다는 생각도 든다.

얼마 전 2집 앨범이 나왔다. 전곡을 작사, 작곡했는데 어떤 순간들을 담아냈나.

가수 선배님들 중 한 분이 이런 이야길 해주셨다. 어렵고 복잡한 곡보다 때로는 단순하고 익숙한 멜로디로 더 큰 감동을 줄 때가 있다고. 라흐마니노프의 어려운 교향곡은 대부분이 난해하다고 느끼는 반면 ‘학교종’이나 ‘꽃밭에는 꽃들이’라는 동요는 쉽고 친근하게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이번 앨범을 준비하며 이 부분을 염두에 뒀다. 너무 멋 부리기보다는 대중적으로 한국 정서에 잘 맞는 멜로디와 가사를 붙이려고 노력했다. 괜히 멋있는 말들을 늘어놓았다가 구겨버린 종이가 꽤 많다.

가사의 영감은 어디서 얻나.


내가 직접 겪었거나 간접적으로 경험한 일을 담기도 한다. 이건 처음 밝히는 사실인데, 사실 공식 팬카페(트바로티)에 올라온 팬들의 글에서 아이디어를 얻을 때도 많다. 카페 게시판에는 어머님, 아버님, 이모, 삼촌까지 어르신들의 인생 이야기가 늘 올라온다. 그 안에 담긴 희로애락을 느끼고 공감하며 글로 옮기곤 한다. 또 카페에 팬들과 편지를 주고받는 공간이 있는데 거기서 나온 내용들로 ‘빛이 나는 사람’이라는 곡을 만들기도 했다. 글은 생각날 때마다 휴대폰 메모 앱에 메모 형식으로 적어두는 편이다. 굉장히 많은 메모가 있는데 거의 다 곡으로 탄생해서 이제 남은 게 별로 없다(.웃음)

2집 앨범 수록곡 중 가장 애착이 담긴 곡은.

타이틀곡 ‘그대... 떠나도’이다. 이 곡은 굉장히 오래전에 떠올리고 휴대폰에 녹음해두었던 소스였다. 언젠가는 멋지게 완성해서 꼭 팬들에게 들려줘야겠다고 생각했던 노래다. 팬들이 전해주는 슬픈 이야기들, 인간이라면 필연적으로 맞이하게 되는 이별 이야기들을 가사로 엮었다.

슬픈 곡이 많은 듯하다. 힘들고 외로움에 사무칠 때 어떤 노래를 들으면 위로가 될까.

‘별 헤는 밤’을 추천한다. 이 곡은 몇 달을 고민하다가 결국엔 누군가에게 부탁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떠올랐다. 마지막 콘서트 장면과 그때의 모습들, 감정들을 떠올리자 기타를 잡은 지 한 시간 만에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팬들에 대한 마음을 많이 담게 됐다. 위로와 격려 등 많은 감정이 얽혀 있다. 얼른 무대에서 선보이고 싶다.

트로트와 클래식, 워낙 다른 지점에 있는 장르를 모두 섭렵한 가수로서 장르에 대한 고민이 많을 법한데.

당연하다. 예전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어중이떠중이가 되진 않을까 두려워하던 시간도 있었다. 그런데 [미스터트롯]에 출연하게 됐고, 방송이 끝난 뒤 아리스라는 팬들이 생기면서 클래식은 나를 특별하게 해주는 무기라는 자신감을 얻었다. 또 한 곡 한 곡 앨범을 발표하면서 대중과 팬이 어떤 음악을 원하는지, 내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방향성이 정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결론은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내 목소리로 표현하고 노래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저 노래하는 사람 말이다.

결론적으로는 [미스터트롯]으로 대중성을 얻었지만 처음엔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트로트를 선택한 계기가 뭔가.

[팬텀싱어]나 [싱어게인]이 아닌 [미스터트롯]이었던 이유를 많이 물어보신다. 당시 내 모습에서 변화를 주기보다는 내가 해왔던 음악과 가장 비슷한 음악으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다. 포크를 좋아했던 나에게 트로트는 익숙한 장르였고 또 선배님들의 노래가 나와 잘 맞는다고 느꼈다. 그리고 최신 유행가보다는 예전에 큰 사랑을 받았던 곡부터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대중성을 얻은 이제는 장르를 불문하고 많은 도전을 한다. 이번 ‘더 심포니’에서도 힙합 빼고는 다 소화한 것 같은데.


어릴 때부터 한 장르에 꽂혀서 집요하게 듣는 편이 아니었다. 국악부터 시작해서 해외의 유명한 밴드 음악, 악단의 경음악까지 고루 찾아 들었다. 그런 경험이 장르를 넘나들며 이것저것 해볼 수 있게 만든 것 같다.

김호중의 인생에서 음악은 어떤 존재인가.

많이 알려져 있듯이 나는 어린 시절 꽤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 시절 음악이나 노래가 없었다면 ‘큰일 날 뻔했겠다’라는 생각이 들만큼 소중한 존재였다. 음악에서 위로를 받으며 세상엔 감정을 치유해주는 음악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고, 사계절 내내 들어도 미처 듣지 못하는 음악, 미처 부르지 못하는 노래가 많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이 노래 저 노래 열심히 들었던 것 같다.

음악 마니아 김호중의 인생곡은 뭔가.

오페라 [투란도트] 속 아리아 ‘네순 도르마(아무도 잠들지 말라)’다. 이 곡을 부르는 파바로티의 목소리를 듣고 성악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 순간이 너무 짜릿해서 여전히 내 인생곡이다.

그렇다면 무대란 어떤 의미인가.

무대는 감정을 재충전해주는 곳이다. 내 직업은 배우나 모델이 아니라 가수이지 않나. 육성으로 내 앞에 있는 관객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감정을 선물해줄 수 있는 특별함이 있다. 반대로 관객의 표정을 보면서 나 또한 여러 가지 감정과 에너지를 얻게 된다. 가끔 노래가 아닌 다른 작업들을 할 때 감정이 메마른다고 느낀다. 그럴 때면 스트레스가 느껴진다. 무대는 내 인생에 꼭 필요한,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전 세계적인 K팝 열풍으로 아이돌이 많이 주목받는 시대다. 트로트 등 다른 장르도 한류의 주역이 될 수 있을까. 견해가 궁금하다.

K컬처에는 종류가 너무나도 많다. 아이돌, 드라마, 영화뿐 아니라 오케스트라나 댄스(비보잉)까지. 우리나라는 명실상부한 문화 강국이 됐다. 아직 세계화되지 못한 장르들도 언제든지 주목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트로트는 언제쯤 세계에 알려질까. 이런 걱정은 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앨범 준비, 공연으로 바쁜 중에도 틈틈이 기부와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유니세프와 함께 케냐로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힘든 상황에 놓인 어린 아이들을 직접 만나고 함께 물을 긷고 생활하며 많은 도움을 주고 왔다. 원래부터 사회공헌에 관심이 많았나.

나 역시 많은 이에게 도움을 받았던 사람이다. 누군가를 돕는 건 꼭 부유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삶을 공감하고 헤아린다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듯하다. 오히려 그들이 나보다 행복지수는 더 높을 수 있다. 다만 열악한 환경을 조금이라도 개선해줄 수 있다면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다음에 다시 갔을 때 더 나아진 모습을 보는 것 또한 행복하다. 당연히 내 인생도 다시 돌아보게 된다. 개인적으로 사회복무요원을 할 때 발달장애 12명의 도우미 역할을 담당하며 견해가 많이 바뀌었다. 그들을 보호해주고 생활을 도와주는 일이었는데, 인간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도움이 꼭 물질적인 게 아니어도 충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도 봉사의 일환이다. 지금도 피곤하고 지칠 땐 그들을 생각하고 만나면서 힘을 얻는다. 한 가지 더 보태자면, 이런 세상을 알게 해준 사람들이 바로 우리 팬들이다. 내가 봉사활동을 시작하기 전부터 아리스가 먼저 내 이름으로 기부를 하고 선행을 실천했다. 정말 자랑스럽다.

김호중은 어떤 사람, 어떤 가수가 되고 싶나.

예전엔 저 멀리서 반짝이는 스타가 되고 싶었다. 지금은 가까이에서 늘 지켜주는 동네 형 같은 푸근한 사람이자 가수이고 싶다. 누구나 함께 노래하고 무대에 서고 싶은 가수. 인생은 한 번뿐인 소풍이다. 소풍을 끝내고 돌아가는 그 날까지 늘 즐겁게, 내가 가진 달란트로 정진하면서, 음악하면서 살고 싶다.





- 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 _ 사진 박상무 작가

202405호 (2024.04.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