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동안 국내 미술시장이 호황을 누리며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건전한 미술시장 문화에 관심이 높아졌다. 옥셔니어, 갤러리스트 등 미술시장을 움직이는 사람들을 위한 전문적인 교육에 대한 필요성도 점점 커지고 있다. 주연화 교수는 한국의 1세대 미술시장 교육자로서 오랜 시간 현장을 누비며 몸소 체득한 경험들을 강단에서 풀어내며 한국 미술시장의 건강한 성장을 이끌고 있다.

▎오랜 시간 미술시장에서 활동한 경험을 살려 교육 현장에서 미술시장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는 주연화 교수.

미술시장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좋은 작품, 풍부한 자본, 효율적인 유통구조, 좋은 작품을 소개하는 중간 매개자, 튼튼한 구매층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미술시장을 만들기 위해 트렌드에 흔들리지 않고 작품 이면의 가치를 읽어낼 수 있는 미술시장 전문가 양성을 위한 전문적인 교육이 중요해지고 있다. 정승우 이사장이 만난 이달의 인터뷰이는 가격보다 가치를 우선시하는, 현명하고 준비된 미술시장 전문가 양성을 위해 소중한 경험과 지식을 나누고 있는 주연화 교수이다.

주 교수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동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석사를 마쳤다. 성균관대학교 국제경영대학원에서 MBA, 서울대학교에서 미술경영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아라리오 갤러리의 디렉터로 일했고, 독일 국가브랜드혁신회의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후 갤러리현대 전시기획 실장을 거쳐 아라리오 갤러리의 총괄 디렉터로 활약했다. 현재는 홍익대학교 문화예술경영대학원 교수로서 미술시장에서 활약할 후배를 양성하고 있다. 한국예술경영학회 대외협력위원장,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외부 위원과 중국의 유즈 뮤지엄 인터내셔널 디렉터로도 활동 중이다.

화려한 경력이 눈에 띈다.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현재 대학원에서 미술시장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아트랩 언리미티드(Art Lab Unlimited)’라는 이름으로 미술시장과 미술관 관련 자문을 제공하고,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미술 전문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다. 학교에 들어오기 전에는 미술시장에서 20여 년 정도 활동했는데, 아라리오 갤러리, 갤러리 현대 등에서 일하며 작가 관리, 국내외 전시 기획 등을 두루 담당했다. 특히 한국 갤러리나 한국 작가들의 해외 진출 프로젝트를 주로 진행했다. 미술관이나 기업 컬렉터, 기관 컬렉터들의 작품 구매를 관리하기도 했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전공과 다른 길을 걷게 된 계기는.

철학은 너무 사유와 언어에 매인 학문이라 실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그 사유와 언어가 시각화된 영역이 미술작품이라는 것을 알았고, 대학원에 진학해 미술사를 공부했다. 당시 교수님의 추천으로 천안에 있는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미술계에 발을 딛게 됐다.

오랫동안 해온 갤러리스트 활동을 정리하고 홍익대학교에서 새로운 출발을 시작했다.

예전부터 ‘20년 일하고 나면 갤러리를 떠날 거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딱 20년 되던 시기에 코로나로 인해 한국에 발이 묶이면서 해외 활동을 할 수 없게 됐다. 그동안의 활동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고, 때마침 대학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강단에 서게 됐다.

강의할 때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내용이 있다면.

미술품의 가치와 가격은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늘 강조한다. 미술시장을 가르치다 보면 작품의 가격, 시장전략, 마케팅전략 등을 다뤄야 할 때가 많다. 무엇보다 시장에서 주목하는 것이 가격이다 보니, 가격이 작품 퀄리티의 중요 지표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특히 미술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이 함정에 빠지면 미술 자체에 회의감을 가지게 된다. 미술시장을 가르치지만 시장전략에 휘둘리지 않는, 건전한 미술시장을 만들어나가는 매개자들이 되어야 하며 그런 매개자가 되려면 가치와 가격을 혼돈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가치와 가격을 혼돈하지 않고 미술시장을 정확히 꿰뚫어보는 안목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안목의 문제라기보다는 가격과 가치를 혼돈하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미술시장에서 일하다보면 작품을 볼 때 사람들이 주목하는 작품과 높은 가격을 우선시하는 시장의 테이스트를 따라가기 마련이다. 어느 순간 작품을 보는 재미도 없어진다.

작가의 이름이나 가격은 배제하고 오랜 시간 찬찬히 작품 이면의 가치를 들여다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만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고 다양한 작가와 작품들이 어우러진 균형 있는 미술시장을 만들 수 있다.

▎정승우 이사장이 주연화 교수를 만나 한국 미술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학회 활동을 통해서도 예술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다.

미술시장에서 활동하며 쌓은 경험과 지식을 기반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현장 경험과 지식을 학문적으로 정립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미술 경영 관련 학회들이 오랫동안 미술관 경영을 비롯한 비영리 기관의 관리와 관람자 분석 등에 중점을 두어 미술시장에 대한 연구는 부족한 편이다. 현재 미술계에서 미술시장은 굉장히 중요하다. 학회 활동을 통해 미술시장에 대한 연구가 늘어나도록 노력하고 있다. 또 미술시장에서 현장과 학계를 실질적으로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고자 한다. 최근에 화랑협회와 한국예술경영학회의 MOU를 추진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한국이 홍콩을 대체할 예술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의견이 많은데.

‘대체’하기보다는 먼저 우리 미술시장만의 강점과 차별화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친한 해외 기자가 아시아 미술계에서 홍콩과 서울을 두고 지나치게 경주마 식으로 비교한다는 언급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말에 공감한다. 미술계에서 비교와 경쟁은 무의미하다. 단기적으로 보면 그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할 수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장기적 생존 전략이다. ‘한국이 어떻게 아시아의 미술 중심 도시가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다른 도시와 비교하기보다 우리 스스로 생각해봐야 할 숙제인 것 같다.

지난달 열린 홍콩 아트바젤은 참여 갤러리 수가 역대 최고였지만 매출 실적은 기대만큼 폭발적이지는 않았다는 얘기가 들린다.

시장이 전반적으로 좋지 않다. 코로나가 끝나고 갤러리들은 다시 움직이고 있지만, 거시경제지표가 좋지 않기 때문에 구매자들의 움직임은 아직 미미하다. 하지만 이런 불황기에 바삐 움직이고 차별화된 활동을 만들어낸 갤러리들이 호황기에 결실을 맺는다.

이번 아트부산 2024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좋은 기회를 주셔서 오는 5월 9일부터 12일까지 부산에서 열리는 아트부산의 특별전을 디렉팅하게 됐다. 아트부산에서는 아트페어가 단순히 작품을 구매하는 장을 떠나 미술계의 흐름을 반영하는 곳이 되기를 원했다. 특별전 감독을 맡아 총 8개 프로젝트를 하나로 엮는 역할과 동시에 그 프로젝트 중 여성 작가 특별전, 존 지오르노 재단과 협업 프로젝트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갤러리, 경매사, 아트페어 간에 이상적인 역할 분담이 이루어진다면 어떤 형태일까.

갤러리는 작가 사이드, 경매는 고객 사이드, 아트페어는 갤러리와 고객이 만날 수 있는 장을 제공하는 곳이기에 각자의 역할이 분명하다. 물론 오늘날에는 그 경계가 조금씩 흐릿해지는 경우가 있지만,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할 때 정체성을 수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통적인 컬렉터가 수집 위주였다고 하면, 최근에는 작품의 수집과 판매를 함께 진행하는 소위 ‘딜렉터’가 등장하고 있다고 하는데.

작품 구매 동기 중 투자적 동기가 커지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고, 딜렉터의 등장은 그 결과인 듯하다. 자신이 구매한 작품을 재판매하는 것은 개인 컬렉터라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물론 작가 입장에서는 영원히 자신의 작품을 소장해주길 바라지만, 개인 컬렉터 입장에서는 공간적·재정적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개인 컬렉터가 새로운 작품을 구매하기 위해서, 혹은 개인적·재정적 사정, 취향의 변화 등으로 작품을 판매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봐서는 안 된다. 하지만 개인적 수익 창출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작품을 구매하는 컬렉터들이 주를 이루는 미술시장은 건강한 시장이 되기는 힘들다.

기억에 남는 컬렉터가 있나.

15% 할인된 가격의 작품 판매에 고마워하는 영국의 테이트 미술관, 아트페어마다 돌아다니며 자국인 필리핀 작가의 작품이 있냐고 물었던 필리핀 컬렉터, 그리고 나중에 태어날 아기에게 줄 선물이라고 임신 기간 중에 큰맘 먹고 작품을 구매했던 한 여성 컬렉터까지 기억에 남는 컬렉터는 참 많다. 무엇보다 좋은 작품을 알아보고, 그 작품을 구매함으로써 행복해하고, 작품을 통해 의미를 창출하고자 하는 컬렉터들이 존경스럽다.

개인적으로 소장 중인 작품, 꼭 소장하고 싶은 작품은.

1960~70년대 작품들을 좋아한다. 실험적인 작가들이 등장했던 시기고, 한국 1세대 실험 작가들의 초기 작품이기 때문이다. 많지는 않지만 한국 원로 작가의 작품들과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주로 소품이나 가격이 높지는 않지만 미술적 가치가 높은 작품을 선호한다. 몇 년 전만 해도 원로 작가들의 좋은 시기의 작품들을 구입하곤 했는데, 요즘에는 가격이 많이 올라서 가격 때문에 포기하는 작품이 많아졌다. 또 여성 원로 작가들의 작품도 선호하는 편인데, 최근에는 박래현 작가의 작품을 눈여겨보고 있다.

국제 아트마켓에서 한국 현대미술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미술시장이 좋아지려면 컬렉터가 좋아져야 한다. 좋은 작품을 선택할 줄 아는 컬렉터들이 있어야만 좋은 작품을 만드는 작가들이 계속 작업을 할 수 있다.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편견 없이 좋은 작품의 가치를 꿰뚫어보는 컬렉터가 많아질 때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성숙한 미술시장을 만들 수 있다.

미술계에서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학교 현장에 있는 만큼 학생들이나 후배들이 미술시장에 나가 건전한 비전을 가지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플레이어가 되는 데 일조하고 싶다.

※ 정승우 - 고려대학교 법학과(학사), 동 대학원(법학 석사, 법학 박사) 졸업 후 2011년 공익재단법인 유중문화재단과 복합문화공간인 유중아트센터를 설립하여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정리=정소나 기자 jung.sona@joongang.co.kr _ 사진 최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