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부산의 지역 행사로 시작한 아트부산이 어느덧 13회를 맞았다. 괄목할 만한 성장을 토대로 지난해 서울 진출에도 성공한 아트부산이 이제는 글로벌 시장을 내다본다. 손영희 이사장의 경영 노하우와 장남 정석호 이사의 추진력이 만나 아트부산은 새롭게 거듭나는 중이다.
▎손영희 아트부산 이사장과 그의 아들 정석호 이사는 손발이 맞는 편이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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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정말 고향의 문화 인프라가 개선되길 바랐어요. 또 예술을 막연히 어렵게 바라보는 사고방식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해답은 예술과 휴양의 결합에 있었어요.”10여 년 전 손영희(63) 아트부산 이사장은 고향 부산의 경제와 문화적 수준에 관심이 많았다. 평소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그는 탄탄한 문화 인프라를 토대로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이바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결과 2012년 손 이사장은 부산의 첫 아트페어인 아트부산의 문을 열었다. ‘예술과 휴양의 결합’을 주된 콘셉트로 삼아, 아트부산이 열리는 기간을 ‘부산 아트위크’로 지정하고 매년 새로운 여행 가이드북을 선보였다. 여느 안내서보다 알찬 내용으로 눈길을 끄는 이 책은 무료로 배포된다. 아트부산을 찾은 미술 애호가에게 부산의 특색이 살아 있는 예술·문화 공간과 식음료 매장, 숙박 시설 등을 제안함으로써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기 위해서다.아트부산의 시선은 이제 부산을 넘어섰다. 계기는 202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는 전년도 미술시장 거래액 규모를 유통시장별로 집계하는데, 통상 갤러리(화랑)와 아트페어를 1차 유통시장, 경매를 2차 유통시장이라 부른다. 2023년 문체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표한 ‘미술시장조사’에 따르면 2022년 국내 아트마켓(공공영역 제외)의 작품판매액은 총 9903억원에 달했다. 이 중 아트페어에서 판매된 금액은 3052억원으로 전체에서 약 30%를 차지했다. 손 이사장은 “이때 아트부산은 판매액 746억원을 올려 국내 아트페어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며 “단순한 지역 행사로 여겨졌던 아트부산이 어엿한 아트페어로 인정받고 나니 뿌듯했다”고 회고했다.하지만 국내에서 1위를 했다고 해서 곧바로 글로벌시장에 도전하는 건 시기상조였다. 우선 서울에 문을 두드렸다. 지난해 손 이사장의 장남인 정석호(35) 이사는 디자인과 예술을 결합한 새로운 아트페어 ‘디파인 서울(DEFINE: SEOUL)’을 론칭했다. 행사는 기대를 웃돌아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서울의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 성수동 일대에서 열린 행사에 총 5일 동안 6000여 명이 다녀갔다. 셀럽들이 다녀가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정 이사는 “아트부산이 서울을 찍고 글로벌로 나아가는 셈”이라며 미소 지었다.손 이사장과 정 이사의 동반 인터뷰는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아트부산 행사로 일정이 빠듯했기 때문이다. 제13회 아트부산은 지난 5월 9일 부산 벡스코에서 VIP 프리뷰를 시작으로 12일 폐막했다. 20개국에서 129개 갤러리가 참여한 올해는 7만여 명이 다녀간 것으로 집계됐다. 아트페어 홍수 속에서 나름 선방했다는 평이다. 두 사람에게 아트부산의 차별성과 글로벌 진출 전략, 정 이사가 가업을 잇게 된 배경 등을 물었다. 이와 함께 손 이사장의 경영 노하우와 정 이사의 열정이 만난다면 어떤 미래가 그려질지도 내다봤다.
앞으로 나보다 훨씬 잘할 것 같다
▎정석호 아트부산 이사는 “아트라운드를 2030년까지 글로벌 5대 아트 플랫품으로 키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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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정 이사는 틈틈이 모친의 사업을 돕다가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아트부산에서 일하게 됐다. 정 이사는 “내 성향에 맞으면서도 재능 있는 분야가 예술 경영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며 “유럽에서 아트나 디자인 관련 행사가 지역 축제로 발전하는 것을 보고 우리나라도 저렇게 문화를 자연스럽게 즐기고 향유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는 일이 즐거웠다”고 말했다. 손 이사장은 “당시 아들에게 ‘네가 잘하는 걸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며 “정치학보다 예술 경영에 잠재력이 있어 보였다”고 덧붙였다.미래를 막막해하던 손 이사장에게 아들의 합류는 한줄기 빛이었다. 손 이사장은 “설립 10년 만에 국내 아트페어에서 1위를 하고 나니 ‘그럼 이제 뭘 해야 하지?’라는 의문점도 있었다”며 허탈감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이때 정 이사가 새로운 방향과 가능성을 제안하며 추진력 있게 이끌었다. 디파인 서울은 정 이사가 전적으로 론칭을 주도한 아트페어다. 손 이사장은 “10여 년간 아트부산의 성장을 이끌어온 저의 경영 노하우와 트렌드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도전적인 정 이사의 열정이 만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고 기대감을 표했다.
정 이사의 열정이 걱정스럽진 않은가.손영희 이사장(이하 손 이사장): 정 이사가 디파인 서울을 총괄할 때 옆에서 지켜보면서 사실 걱정을 많이 했다. 한국에 입성한 글로벌 아트페어로 인해 국내 아트페어가 늘어나는 추세고 경쟁 구도는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헤쳐나가려면 굉장히 힘들 텐데. 아무리 열정이 넘쳐도, 즐겁게 일하려고 노력해도 고생길이 훤해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잘해냈다. 확실한 비전을 세우고 네트워크를 넓혀나가면서 투자도 유치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어쩌면 앞으로 나보다 훨씬 잘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에게 내 농축된 경험적 지식을 아낌없이 나눠준다면, 젊은 세대의 시각에서 이 지식이 잘 활용되지 않을까 싶다.
어떤 농익은 경험담을 전수해줬나.손 이사장: 아트페어의 최우선 고객은 갤러리다. 좋은 갤러리를 유치해야 좋은 작품이 들어오고 이를 관람하기 위해 컬렉터가 아트페어를 찾기 때문이다. 갤러리와 항상 좋은 관계를 맺는 일이 무척 중요하다. 좋은 갤러리를 유치했다고 끝이 아니다. 전시 현장을 자주 찾아 갤러리가 겪는 어려움은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또 아트부산은 ‘다시 오고 싶은 곳’이라는 콘셉트를 갖고 있다. 그러려면 관람객의 즐거움이 극대화돼야 하는데, 이는 작품을 사는 즐거움과 움직이며 관람하는 즐거움 등으로 나뉜다. 아트부산은 차별화를 위해 독특한 섹션을 마련했다. 아트페어의 홍수 속에 색다름을 선사하고자 준비한 특별 전시다. 3년 이상 개관, 기획 전시 6회 이상 이력을 보유한 갤러리가 참가하는 ‘메인(MAIN)’ 섹션, 새롭게 주목할 만한 갤러리와 신예 작가를 소개하는 ‘퓨처(FUTURE)’ 섹션, 오늘날 아시아 여성 아티스트의 작품을 다루는 ‘커넥트(CONNECT)’ 섹션 등이다. 또 편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하려면 휴식 공간과 함께 동선도 매우 중요한데, 이런 경험담을 자주 들려준다.
2030년 글로벌 5대 아트 플랫폼으로 도약부산 경제 활성화를 위해 시작한 아트부산이지만 아트부산만 성장한 듯 보인다. 부산상공회의소에 따르면, 2022년 부산의 산업활력지수는 모든 부문에서 80대(기준연도 2016년=100)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영활동성(84.5), 영업활동성(84.0), 활력지수(83.6), 고용활동성(82.2) 순이었다. 손 이사장에게 부산에서 시작한 걸 후회하지 않는지 물었다. 손 이사장은 “예술과 사람을 연결한다는 것이 아트부산의 비전이기 때문에 부산에서 이를 잘 이행해왔다고 본다”며 “부산에서 아트페어만 할 것이 아니라 공공미술 부문에서 기관에 먼저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시와 협력하는 구도로 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올해 아트부산의 특이점이 있다면.정석호 이사(이하 정 이사): 상당수 작품이 프리 세일(행사 기간 전)과 애프터 세일 기간에 판매됐고 구매자는 3040세대가 60.1%, 50대 이상이 33.2%를 차지했다. 특히 아트 재테크에 관심이 많은 3040세대가 적극적으로 아트페어를 찾았다. 3040세대는 작품에 확신이 있으면 과감하고 빠르게 구매를 결정한다. 이와 관련해 3040세대 트렌드를 분석해봤는데, 이들은 언어장벽이 낮은편이라 해외 갤러리와 직접 소통하고, 여행을 가든 외국 아트페어를 찾든 소셜미디어를 통해서든 다양한 루트로 작품을 구매한다. 큰손은 역시 50대 이상인 1세대 컬렉터다. 이들은 올해에도 억대, 수십억대 작품을 구매했다. 이들은 작품 구매 결정을 서두르지 않는다. 오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 해도 ‘나와 인연이 있으면 내게 오게 돼 있다’는 생각으로 숙고한다. 또 진정한 컬렉터라면 1차 시장에서 작품을 구매해본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휴식 공간(스퀘어)도 독특했다.정 이사: 갤러리 존 사이에 가벽 없이 뻥 뚫린 스퀘어 공간을 마련했다. 기획 의도는 쉬면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관심 있었던 작품을 계속 관람하라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갤러리와 간단한 미팅까지 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갤러리 관계자의 니즈는 고객과의 소통이다. 어떻게 해야 자연스럽게 소통이 이뤄질까 고민하다가 아예 가벽을 없애 공간 접근성을 높였다. 아트부산의 비전은 ‘커넥트 아트, 커넥트 피플(Connect Art, Connect People)’이다. 아트와 관련된 모든 사람이 아트부산의 도움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길 바란다.
최근 아트라운드를 론칭했다. 이것도 정 이사가 주도했나.정 이사 365일 상시 가동하는 온라인 아트페어 플랫폼(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이다. 이용자는 지역과 시간, 온오프라인 경계 없이 스마트폰으로 편하게 아트페어를 즐길 수 있다. 아트라운드(ART ROUND)는 온라인 뷰잉룸에서 갤러리·작품을 이용자·컬렉터와 연결하고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해 이용자 취향에 맞는 작품과 작가를 추천한다. 멤버십 기반으로 컬렉터 간 커뮤니티가 형성될 수도 있다. 아트라운드는 플랫폼에 누적된 데이터를 활용해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상하고 있다. 가령 플랫폼에는 작품 페이지를 방문한 인원수, 고객 한 명당 작품 페이지에 머무른 시간, 한 고객이 특정 작품 페이지를 재방문한 횟수, 작품 구매 문의의 구체적인 내용 등 양질의 데이터가 쌓인다. 이는 잠재고객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향후 UX(사용자경험)와 플랫폼 기능 등을 고도화해 플랫폼의 수익성을 높일 계획이다. 더 많은 갤러리가 플랫폼에 참여하게 하고, 더 나아가 해외 갤러리를 유치해 그들이 한국 시장에 진출하는 데 아트라운드가 교두보 역할을 할 방침이다. 이로써 2030년까지 글로벌 5대 아트 플랫폼으로 거듭나 아트라운드와 아트부산의 이름을 글로벌 시장에 알리고 싶다.- 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 _ 사진 최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