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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조 선일다이파스 회장 & 김지훈 대표 

경영은 기업을 오래도록 지켜내는 것 

노유선 기자
1980년대 초 정부가 대기업의 문어발식 경영에 회초리를 들자 대다수 기업이 계열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당시 선경그룹(현 SK)은 계열사 11곳 중 선경기계를 그룹 공채 1기였던 한 직원에게 넘겼다. 어렵게 인수한 회사를 41년간 지켜온 김영조 선일다이파스 회장은 “경영은 기업을 살려내고 오래도록 지켜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차남인 김지훈 대표도 함께 자리해 선일다이파스의 청사진을 들려줬다.

▎김영조 선일다이파스 회장은 옛 선경기계를 인수해 41년간 이어오고 있다.
1980년 초 정부가 ‘대기업 집단의 주력 기업 전문화 정책’을 본격화하자 선경그룹(현 SK)도 섬유와 석유 사업 외 나머지 계열사를 정리했다. 마침 선경그룹은 ‘섬유부터 석유까지’를 내세우며 계열사의 수직 다각화에 집중하던 때였다. 11개 계열사에는 선경목재와 선경식품, 선경기계, 워커힐여행사 등이 포함됐다. 그중 매각 대상 1순위는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선경기계였다. 자산가치 32억원이었던 선경기계를 사겠다는 기업은 줄을 이었다. T사는 45억원, D사는 48억원을 제시할 정도였다. 쟁쟁한 경쟁자들 사이에서 1968년 그룹 공채 1기로 입사한 김영조 공장장도 패기 있게 인수의향서를 제출했다. 김 공장장은 공장 부지 물색부터 가동 준비, 공장 안정화까지, 선경기계의 모든 것을 함께한 산증인이었다. 작업화를 신은 채 잠든 날도 많았고 폐결핵에 걸려 심하게 고생한 적도 있었다.

결국 1983년 고 최종현 회장은 여러 회사의 유혹을 뿌리치고 김 공장장에게 선경기계를 내주었다. 그의 노고를 인정한 것이다.

그로부터 41년이 흘렀다. 선경기계는 선일다이파스로 사명을 바꾸었고, 경영은 당시 공장장이었던 김영조(85) 회장과 그의 아들 김지훈(54) 대표가 맡고 있다. 지난 6월 14일 충북 진천에 있는 선일다이파스 1공장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김 회장은 “1980년대 선경그룹에서 독립한 11개 계열사 중 아직까지 살아 있는 곳은 선일다이파스가 유일하다”며 “40여 년 동안 숱한 위기가 있었지만 굳건하게 버틴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례로 선일다이파스는 1997년 IMF 외환위기에도 구조조정 없이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았다.

현재 선일다이파스는 한 달에 자동차 부품 500여 종, 1년에 1500여 종을 생산한다. 대표적인 부품으로는 엔진 볼트와 허브 볼트(바퀴를 고정), 안전시스템 부품(볼트, 파이프, 스페이서), 제어시스템 부품(부스터 볼트, 푸시로드, 가이드로드, 볼 스터드) 등이 있다. 수출 권역은 북미권 4개국, 유럽권 6개국, 아시아권 6개국 등 16개국에 분포해 있다. 제너럴 모터스와 포드, 폭스바겐, 현대·기아차, 혼다, 닛산 등이 주요 고객사다. ‘샐러리맨의 신화’를 쓴 김 회장, 가업을 이은 김 대표와 함께 선일다이파스의 발자취를 따라가봤다.

샐러리맨의 신화? 절박함이 나를 이끌었다


▎김영조 선일다이파스 회장과 그의 아들 김지훈 대표는 사람 중심의 경영방식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서울대 기계공학과 출신이 섬유회사인 선경직물(현 SK)에 입사했다.

김영조 회장(이하 김 회장): 1968년 입사할 무렵 선경도 종합무역상사 진출을 엿보던 때였다. 당시 나는 일본어를 잘했기에 종합상사 부문에서 일했다. 특히 볼트와 너트, 기계 톱날, 공업용 쇠줄을 생산하는 대구의 한 신생 공업 회사에 투자해 그 회사 제품을 해외로 수출했다. 그런데 회사 제반 상황이 악화되자 선경이 직접 기계 사업에 뛰어들기로 하고 1976년 선경기계가 탄생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대학 때 배운 [기계공작법] 1장 1절이 볼트와 너트였다. 현재 선일다이파스도 자동차용 볼트와 너트 등을 생산하고 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경영을 해왔나.

김 회장: SK가 연수원에서 임원급을 대상으로 경영을 가르쳤다. 최종현 회장이 “경영은 기업을 살리는 것”이라고 하더라. “인간은 영원히 살 수 없지만 기업은 영원히 살 수 있다”면서 “기업이 오래도록 살아남기 위해서 경영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동의한다. 돈을 좇으면 힘들다. 기업이 오래갈 수 있도록, 기업을 보존할 수 있도록 장기적인 관점에서 판단을 내려야 한다. 또 나는 선경기계 인수 후 구성원들과 함께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다같이 더불어 먹고사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기에 ‘사람을 사람답게 다룬다’는 인간중심 경영 원칙을 철저히 지키려 애썼다. 기업은 구성원들이 행복해야만 성장할 수 있다. 그래야 국가경제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

김 대표는 가업에 뛰어들 때 심정이 어땠나.

김지훈 대표(이하 김 대표): 선일다이파스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 건 1999년부터다. 미국에서 MBA 과정을 밟으며 도요타식 생산방식·생산관리, 품질시스템, 재무관리 등을 체계적으로 배운 입장에서 중소기업의 인력 수준에 눈높이를 맞추는 게 가장 어려웠다.

김 회장: 아들이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잘하고 있다. 기업이 오랜 기간 살아남도록 경영해야 한다는 올바른 원칙을 잘 지켜주고 있다. 또 선일다이파스의 경영철학을 고스란히 유지하며 직원들을 세심하게 잘 챙기고 있어 다행이다.

아버지의 경영 철학과 ‘혁신’에 대한 사견이 궁금하다.

김 대표: 아버지의 철학에 모두 공감한다. 현실을 감안하기로 했다. 아버지께서는 ‘51%만 만족스러워도 구성원과 함께 가는 것’, ‘제조업은 이익 5%만 남겨야 한다’, ‘돈보다 가치가 우선해야 한다’ 등을 강조하신다. 또 늘 제조업의 본질은 인간 존중과 가치 창출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를 계승해 조직문화, 사내 복지, 사규에 반영하고자 노력한다. 체계적인 멘토링 프로그램과 기능공 육성을 위한 선일트레이닝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구성원들과 다 같이 세상에 기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건강한 조직문화가 선일다이파스의 또 다른 경쟁력으로 손꼽힐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한편 혁신과 관련해서는, 혁신을 좋아하긴 하지만 거창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혁신이란 단어는 1990년대에도 자주 쓰였고 2000년대에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제조업에서 혁신의 정의를 내린다면, 주어진 조건에서 최적의 답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최적의 답은 결국 기본에 달려 있다. 혁신하고자 하면 특별할 것 없다. ‘백 투 더 베이식(Back to the Basic)’이다.

기업은 시대에 따라 해야 할 일 달라

1990년대에는 각종 부품 생산기술·설비 국산화에 성공했다. 이후 행보가 궁금하다.

김 회장: 1990년대에는 국내외 유수 기업과 기술제휴를 맺고 기술 확보에 집중했다. 1985년에는 일본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온도(Ondo) 공작소, 1996년에는 독일부품 제조업체 카막스(KAMAX)와 기술협력 제휴를 맺었다. 이후 IMF 외환위기가 찾아온 뒤 선일다이파스는 독일, 스위스 등 자동차 부품업체를 연구하며 시야가 넓어졌고 글로벌 스탠더드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일본만 바라보고 있었으니 우물 안 개구리였던 셈이다. 최근에는 디지털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나는 아날로그 경영인이었다면 아들은 디지털 경영인이라 할 수 있다.

김 대표: 스마트팩토리 전환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건 2021년부터다. 현재 1공장을 중심으로 생산·물류 자동화시스템, 제조·운영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원재료 입고, 보관부터 완제품 창고 이동까지 자동화 설비를 갖췄다. 자동 창고와 LGV(Laser Guided Vehicle), 무인자동화 로봇, 무인 운반 로봇(AVG)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따라 원재료가 입고되면 볼트 기본 형상을 가공하는 헤딩 작업이 진행된다. 이후 롤링(볼트에 나사산 형상 가공), 열처리(강도, 경도, 내마모성 부여), 표면처리(내식성·미관 향상), 검사·포장(제품 정량 확인) 등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 또 물류 흐름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제어시스템도 마련해 공장을 스마트하게 운영하고 있다.

올해 첫 ESG 경영 보고서를 발간했다. 회사 규모에 비해 다소 빠른 감이 있다.

김 회장: 기업은 시대에 따라 해야 할 일이 다르다. 경영의 바운더리가 점점 더 넓어진다. 예전에는 기술 국산화와 고품질 제품 생산에 집중했지만 오늘날 한국에서 품질은 기본이 되어버리지 않았나. 품질에 더해 그동안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부분에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선일다이파스는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35%가량 줄이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이후 단계적으로 감축해 2040년에는 80%를 줄이고, 2045년에는 탄소중립을 달성하고자 한다.

김 대표: 선일다이파스는 타사보다 더 적은 에너지와 더 적은 원재료를 써도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입증해 보이고 싶다. 그만큼 효율성이 높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다. 이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추구하는 가치와 일맥상통한다.

2026년까지 연 매출 3000억원 달성이 목표다. 어떤 전략이 있는지.

김 대표: 이를 위해 ‘미래 성장 모멘텀 부품 오더’를 확보하자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전략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전기차 트렌드에 대응해 전동화 부품 선행 개발로 매출을 늘리고자 한다. 배터리 시스템, 회생제동(운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변환) 시스템, 구동 모듈 시스템 등 전동화 부품 오더를 확보해 친환경 시장에서 입지를 확대할 계획이다. 둘째, 스웨덴과 일본 등 해외 고객사 신규 수주로 안전벨트용 부품 등 특화 부품 시장에서 입지를 확고하게 다지고 싶다. 마지막으로 경량화 부품, 구동부품 시장에서도 선일다이파스의 영역을 확대해 매출성장을 이뤄내고자 한다. 지난 3년간 선일다이파스는 연평균 성장률 15%를 기록했다. 영업이익도 매년 흑자다. 지속적으로 성장세를 이어간다면 2026년 매출 3000억원은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수치라고 생각한다.

- 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 _ 사진 최기웅 기자

202407호 (202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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