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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학 불가리코리아 대표 

헤리티지에 혁신을 더하다 

정소나 기자
지난 몇 년 동안 불가리코리아는 140년 동안 쌓아온 브랜드 고유 유산을 지키면서도 첨단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도전에 집중하고 굵직굵직한 글로벌 프로젝트를 연달아 개최하는 등 더 젊고 힙한 이미지의 불가리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그 결과 매해 한국 시장만을 위한 리미티드 에디션을 출시할 만큼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시장이 됐다. 성장의 중심에는 이정학 대표가 있다.

▎첨단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혁신으로 클래식한 브랜드에 젊고 역동적인 기운을 주입하고 있는 불가리코리아의 이정학 대표.
불가리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최초’라는 수식어가 참 많다. 주얼리 브랜드 중 최초로 나무나 세라믹 등 색다른 소재를 주얼리에 사용했고, 시계 브랜드 중 최초로 베젤에 브랜드 로고를 새겨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렇게 기존 관행을 깬 다양한 발상과 실패를 용인하는 브랜드 문화는 남들보다 한 발 앞서 새로운 시도를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 됐다.

불가리코리아의 수장 이정학 대표는 이런 브랜드 DNA를 고스란히 물려받아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며 클래식한 브랜드에 신선한 기운을 주입하고 있다.

모두가 침묵하던 코로나 불경기에도 한 발 앞서 디지털 요소를 도입하며 디지털 혁신을 실험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오프라인 팝업 및 전시 매장을 온라인 가상 스토어로 구현하고, 메타버스를 활용해 언제 어디서나 전시를 감상할 수 있게 했다. 가상 캐릭터를 브랜드 앰배서더로 활용하는 등 신박한 발상으로 MZ 세대의 큰 호응을 받기도 했다.

그 결과 시장점유율이 계속해서 확대되고, 브랜드 인식 조사에서도 2~3년 전에 비해 젊고 역동적이라고 평가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또 글로벌 시장에서 불가리 주얼리를 구매하는 고객 중 10% 이상이 한국인일 정도로 구매력이 높아졌다. 덕분에 불가리 본사에서 해마다 시계, 주얼리, 액세서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 시장을 위한 리미티드 에디션을 출시할 만큼 주목받는 시장이 됐다.

2018년 10월, 불가리 한국 지사장으로 부임한 이정학 대표는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미국 와튼스쿨(펜실베이니아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과정을 밟았다. 그 전에는 한국투자증권을 시작으로 일본 사와카미 투자신탁의 리서치 애널리스트로서 2011년까지 근무했다.

지난 2012년 세계 최대 럭셔리 그룹 LVMH의 워치 & 주얼리 디비전(Watch & Jewelry Division)에 합류해 3년간 태그호이어(TAG Heuer) 일본 지사의 한국지역 세일즈매니저와 일본 오퍼레이션 매니저를 거친 후 홍콩 SAR(Special Administrative Region) 지사의 에이리어 세일즈 및 글로벌 면세사업부 디렉터를 역임했다. 이후 2015년 불가리(BVLGARI)로 옮겨 최근까지 홍콩 SAR 지사의 중화권 워치개발부 디렉터를 거쳐 중화권 트래블 리테일 및 글로벌 면세사업부 디렉터를 지냈다.

한국과 아시아 명품 시장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전문성, 풍부한 경험과 리더십을 인정받으며 불가리코리아를 이끌고 있는 이정학 대표에게 한국 시장의 성장 스토리를 들어봤다.


▎아이코닉한 부채꼴 모티브에 특별한 형태와 컬러를 입혀 우아한 여성미를 강조하는 디바스 드림 컬렉션.
한국 지사장으로 부임과 동시에 가장 신경 쓴 일은.

불가리코리아에 합류한 지 1년 정도 지났을 때 코로나19가 발발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코로나 팬데믹을 면세 쪽에 치중된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바꾸는 계기로 삼고자 했다. 코로나로 하늘길이 막히자 면세점 대신 백화점을 비롯한 로컬 마켓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을 예상하고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했다. 덕분에 기존에 면세 비중이 더 컸는데, 코로나가 끝날 무렵부터는 로컬 마켓의 비중이 커지며 사업 구조가 완전히 역전됐다. 위기로만 생각했던 코로나 시기를 브랜드 입장에서는 주어진 비지니스 환경에 보다 적합한 사업 모델로 재정립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았다.

2018년은 국내 하이 주얼리 시장이 태동하는 시점이었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 중국에서 근무하며 하이 주얼리 시장의 성장을 지켜보았기에 브랜드의 근간이 된 하이 주얼리에 투자하고 홍보에 집중했다. 코로나로 많은 브랜드가 행사를 취소할 때도 하이 주얼리 이벤트만은 강행할 정도였다. 매년 꾸준히 하이 주얼리에 투자한 덕분에 매출도 많이 성장했지만 무엇보다 대표적인 하이 주얼리 명가로 꼽히는 불가리의 이미지를 많은 사람에게 각인할 수 있었다.

또 브랜드 앰배서더를 앞세워 스타마케팅을 진행하고, 최근에 개최된 ‘불가리 스튜디오’를 비롯해 오랜 시간 회자될 만한 글로벌 이벤트들을 진행해 브랜드 이미지를 젊고 역동적으로 쇄신하고자 노력했다.

해마다 로컬 시장점유율이 확대되고, 2024년 4월까지 4개월 동안의 매출만으로도 이미 2018년 전체 로컬 매출을 초과할 정도로 짧은 시간 안에 가장 많이 성장한 럭셔리 브랜드가 됐다.


▎고대 로마 건축물에서 영감을 받은, 원형과 팔각형이 절묘하게 겹쳐진 기하학적인 케이스가 돋보이는 옥토 로마.
불가리는 세계 3대 주얼리 브랜드 중 하나로 알려질 만큼 주얼리로 명성이 높은 브랜드다. 2014년부터는 울트라-씬 워치 메이킹 분야에서 연속적인 세계신기록을 달성하고, 2021년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GPHG)에서 최고상인 에귀유 도르를 수상하는 등 시계 분야에서도 입지를 단단히 다지고 있다. 한국 시장에서 시계와 주얼리, 어떻게 비중을 두고 있나.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양쪽의 비중은 5대5로 동일하다. 여전히 주얼리가 매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브랜드의 지속적인 성장과 확장을 위해 시계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분야다. 한국 지사에 부임해 제일 먼저 전 직원에게 시계에 관한 트레이닝을 제공했을 만큼 시계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관련 활동들을 직접 챙기고 있다.

197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시계 제조를 시작했기에 브랜드의 탄생부터 함께한 주얼리에 비하면 기껏해야 50년 남짓한 역사를 가졌다. 하지만 불가리 시계는 혁신적인 기술과 모던한 디자인 감각을 앞세워 월드 레코드를 연이어 기록하는 등 그 어떤 시계 브랜드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성장률 차원에서 가장 많이 성장한 분야가 시계였고, 한국에서도 그 흐름에 맞춰 시계에 계속 투자하고 있다. 그만큼 이제 시계는 불가리에 없어서는 안 되는 카테고리가 됐다. 최근 주얼리의 급속한 성장이 맞물리며 매출 비율이 쉽사리 바뀌지는 않겠지만 시계 역시 꾸준히 성장하고 있기에 장기적으로 매출 비중 30%까지 성장할 수 있길 기대해본다.

지난 3월, 세계 최초로 불가리의 비제로원 25주년을 기념하는 불가리 스튜디오가 서울에서 첫선을 보였다. 불가리 스튜디오는 어떤 이벤트인지, 또 앞으로의 방향성도 궁금하다.

비제로원은 한국 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컬렉션이자 전 세계 비제로원 소비자 중 중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국적이 한국일 정도로 한국은 중요한 시장이다. 여기에 쿨하고 컨템퍼리한 서울의 이미지가 부각되며 첫 번째 불가리 스튜디오의 도시로 낙점됐다.

서울에서 열린 불가리 스튜디오는 아이코닉한 디자인을 대표하는 비제로원 25주념을 기념하는 행사로, 디자인(Design),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 익스페리먼트(Experiment) 등 3가지 단어를 키워드로 정했다. 시각예술, 음악, 아트 등 다양한 분야의 젊은 현대 예술가들이 그들만의 실험적인 시각으로 해석한 브랜드의 새로운 가치를 공유하는 프로젝트였다.

첫 번째 행사의 큰 성공에 힘입어 올해 연말 유럽에서 열릴 두 번째 불가리 스튜디오를 기획하고 있으며, 앞으로 계속해서 전 세계 도시를 순회하며 불가리의 유산과 새로운 세대의 크리에이티브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불가리만의 문화를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새로운 세대를 소비 주체로 끌어들이는 것은 전통적인 브랜드들에 주어진 또 다른 과제다. 젊은 층을 공략하기 위한 불가리만의 전략이 있다면.

불가리의 브랜드 밸류 중 하나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선구자 정신이다. 우리만의 전략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새로운 시도에 개방적인 브랜드 문화의 영향으로 남들보다 조금 빨리 젊은 세대를 타깃으로 한 디지털 혁신을 실행할 수 있었다. 특히 많은 것이 제한되었던 코로나 시기에 다양한 시도를 많이 했던 것 같다.

먼저 지난 2021년 열린 불가리 컬러 전시회를 언제 어디서나 감상할 수 있도록 메타버스에 오프라인 전시 공간을 재현했다. 아바타를 생성해 불가리의 컬렉션을 착용해 원하는 스타일로 꾸밀 수 있고, 전시 작품을 감상하고 작품에 대한 설명도 볼 수 있게 했다.

2022년에는 MZ 세대의 아이콘인 잔망루피를 불가리의 게스트 앰배서더로 임명해 국내외 불가리 이벤트에 참석시키고, 패션 매거진 보그와 함께 불가리 제품을 착용한 잔망루피가 모델로 등장한 디지털 화보를 선보이기도 했다.

또 주얼리 업계 최초로 메타버스 플랫폼인 네이버 제페토(ZEPETO)와 협업해 ‘불가리 월드’라는 가상 공간을 만들기도 했다. 불가리 글로벌 앰배서더인 블랙핑크 리사와 함께 불가리 월드에서 팬들과 셀카를 찍는 등 다양한 가상 이벤트를 진행해 새로운 브랜드 경험을 이끌어냈다.

불가리의 2023년은 오랜 시간 회자될 대형 프로젝트로 가득했다. 세르펜티 75주년 기념 전시를 비롯해 석촌호수에 세르펜티 라이트를 세워 도시를 빛냈다. 한식 파인다이닝 옮음과 협업한 정찬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올해도 이미 불가리 스튜디오 이벤트를 마쳤다. 올 시즌 계획된 또 다른 프로젝트가 있나.

불가리가 올해 탄생 140주년을 맞았다. 신기하게도 이탈리아와 한국의 수교 14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래서 올 하반기에는 이탈리아 대사관과 협업해 한국과 이탈리아 문화를 접목해 불가리의 역사를 조명하는 전시를 기획 중이다.

또 지난해부터 프리즈 서울 영 아티스트 어워드의 공식 스폰서이자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올해도 공식 파트너로 나서 한국의 재능 넘치는 신진 작가를 후원하며 꾸준히 문화와 예술의 접점을 만들어갈 생각이다.


▎세계에서 가장 얇은 기계식 시계로, 시계 제작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옥토 피니씨모 울트라.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2021년에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불가리 컬러 전시회’를 꼽고 싶다. 불가리가 한국에서 개최한 첫 번째 브랜드 전시이자 불가리의 아이덴티티인 컬러를 테마로 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선보인 행사였다. 코로나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준비하다 보니 어려움도 많고 너무 힘들었지만 그만큼 뿌듯하기도 했던, 개인적으로는 가장 의미가 깊은 행사다.

지난해 행사 중에는 석촌호수에 세웠던 18m 높이의 세르펜티 라이트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세르펜티가 브랜드의 상징적인 아이콘인 만큼 특별한 장소를 물색하다 서울의 랜드마크인 석촌호수로 결정했다. 차가운 늦가을 날씨에 호수 한가운데 전기 조형물을 설치하려니 너무나도 어려움이 많은, 고난도 프로젝트였다. 오랜 시간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세르펜티 라이트의 조명이 켜지고 불이 들어오는 순간 지켜보던 팀원 모두가 울컥할 만큼 감동적이었다.

다른 주얼리 브랜드와 불가리의 차별점은 뭘까.

로마의 화려한 유산에서 영감을 받은 다채로운 컬러 사용이 아닐까 한다. 유색 보석의 대가답게 컬러를 향한 열정으로 전 세계를 누비며 찾아낸 가장 화려한 젬스톤을 엄격한 기준에 따라 선정하고 공들여 세공해 불가리만의 스타일을 완성한다.

여기에 화려한 주얼리를 매일 즐기며 착용할 수 있도록 편안함에도 신경 쓴다. 신체에 편안하게 감길 수 있도록 분절을 많이 사용해 그만큼 손이 많이 간다. 하이주얼리 제품 하나를 제작하는 데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이 걸릴 정도로 공을 들인다.

불가리의 수많은 아이콘 중 가장 선호하는 컬렉션은.

원래 시계를 좋아해 다양한 시계를 가지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불가리의 ‘옥토 피니씨모’ 컬렉션을 제일 좋아한다. 일단 두께가 얇다 보니 착용 시 너무 편안하다. 얼핏 보면 단순한 디자인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교한 세공 기술을 활용한 디테일의 변주로 고급스러운 멋이 느껴진다. 캐주얼에도, 정장에도 너무 잘 어울리고, 얇은 두께 덕분에 걸리적거림 없이 소매 라인이 매끈하게 마무리되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든다.

주얼리 라인으로는 디바스 드림 컬렉션에 주목하고 있다. 더없이 여성적이면서도 누가 봐도 단번에 불가리임을 알 수 있는 아이코닉한 부채 모양 모티브를 우아하게 해석한 컬렉션이다. 불가리의 헤리티지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데다 엔트리 모델부터 하이 주얼리까지, 다양한 가격대로 선택의 폭을 넓힌 것도 인상적이다.

현재 주력하고 있는 일은.

많은 고객분이 불가리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로 “매장을 방문했을 때 따뜻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라고 말씀해주신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렇듯 긍정적인 브랜드 경험을 선사해 고객과의 유대를 강화하는 것이다. 올 시즌처럼 불확실성이 큰 시기에 당장의 매출에 신경 쓰기보다는 불가리만의 의미 있고 특별한 고객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올해도 반이 지나갔다. 남은 기간 동안의 목표가 있다면.

2024년은 불가리에 의미 있는 해가 될 것 같다. 부임 이후 10%p 가량 시장점유율을 꾸준히 확대해왔고, 지금까지 선전하며 럭셔리 주얼리 브랜드 중 두 번째로 큰 시장점유율을 확보했다. 하반기에도 경쟁사와 격차를 확실하게 벌리고 좀 더 탄탄하게 내년 시즌을 준비하고자 한다.

불가리가 어떤 브랜드로 기억되면 좋겠나.

뛰어난 디자인, 모두가 인정하는 퀄리티, 시대 흐름에 휩쓸리지 않은 클래식한 매력적으로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 싶은 브랜드로 기억되고 싶다.

- 정소나 기자 jung.son@joongang.co.kr _ 사진 최기웅 기자

202406호 (2024.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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